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대림 제3주간 수요일(12/17)


    말씀의 초대
    야곱은 숨을 거두기 전에 열두 아들을 불러 그들 각자가 겪을 일을 말해 준다. 특히 유다에게는 훗날 왕권을 차지할 후손이 생길 것이라고 알려 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제1독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마태오 복음이 시작된다.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복음).
    제1독서
    <왕홀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으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9,1-2.8-10 그 무렵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는 모여들 오너라. 뒷날 너희가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 야곱의 아들들아, 모여 와 들어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7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추위가 심할수록 우리의 몸을 녹일 온기가 더 그립습니다. 눈이라도 내려 냉랭한 마음에 생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겨울에는 러시아의 작가들이 자주 떠오릅니다. ‘닥터 지바고’가 썰매로 눈보라 속을 달리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면서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집에 아무도 없으리’라는 시 한 구절을 음미합니다. “집에 아무도 없으리/ 땅거미만 머물 뿐 커튼 걷힌/ 창으로 투명하게 내비치는/ 어느 겨울날.” 이처럼 우울하고 쥐 죽은 듯한 적막에 휩싸인 겨울 한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내리는 눈을 보며 깨어날 것임을 그는 ‘눈이 온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눈이 온다, 눈이 온다/ 눈이 오자 모든 게 설렌다/ 새하얘진 행인도/ 깜짝 놀란 초목도/ 교차로의 모퉁이도.” 설레는 마음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약속을, 약속의 도달을 믿고 보게 합니다. 파스테르나크가 ‘집에 아무도 없으리’라는 시에서 노래하듯이, 아무도 없는 쓸쓸한 집에 반가운 손님이 오신 것을 문득 알아차리게 합니다. “그런데 문득 두터운 커튼이/ 홀연히 떨리면서/ 정적을 헤아리는 발걸음으로/ 마치 미래처럼, 너는 들어오리.// 너는 문 앞에 나타나리/ 어느 흰옷 차림으로, 다소곳이/ 눈송이로 짠 듯한 옷감으로/ 지은 옷을 입고서.” 대림 시기의 둘째 부분을 시작하는 오늘 전례에서 우리는 마태오 복음의 도입부인 예수님의 족보를 들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첫 구절에 하느님께서 베푸신 구원사의 업적과 미래의 구원 약속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구원의 역사에는 인간의 생각이나 계획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림 시기를 지내며 성탄에 도달하는 구원을 미리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늘 깨어 있는 정신과 설레는 마음을 가진 이만이,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구원의 약속을 믿고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을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그 아기 누구일까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대림 제3주간 수요일(12/17)


      말씀의 초대
      야곱은 숨을 거두기 전에 열두 아들을 불러 그들 각자가 겪을 일을 말해 준다. 특히 유다에게는 훗날 왕권을 차지할 후손이 생길 것이라고 알려 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제1독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마태오 복음이 시작된다.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복음).
      제1독서
      <왕홀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으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9,1-2.8-10 그 무렵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는 모여들 오너라. 뒷날 너희가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 야곱의 아들들아, 모여 와 들어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7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추위가 심할수록 우리의 몸을 녹일 온기가 더 그립습니다. 눈이라도 내려 냉랭한 마음에 생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겨울에는 러시아의 작가들이 자주 떠오릅니다. ‘닥터 지바고’가 썰매로 눈보라 속을 달리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면서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집에 아무도 없으리’라는 시 한 구절을 음미합니다. “집에 아무도 없으리/ 땅거미만 머물 뿐 커튼 걷힌/ 창으로 투명하게 내비치는/ 어느 겨울날.” 이처럼 우울하고 쥐 죽은 듯한 적막에 휩싸인 겨울 한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내리는 눈을 보며 깨어날 것임을 그는 ‘눈이 온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눈이 온다, 눈이 온다/ 눈이 오자 모든 게 설렌다/ 새하얘진 행인도/ 깜짝 놀란 초목도/ 교차로의 모퉁이도.” 설레는 마음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약속을, 약속의 도달을 믿고 보게 합니다. 파스테르나크가 ‘집에 아무도 없으리’라는 시에서 노래하듯이, 아무도 없는 쓸쓸한 집에 반가운 손님이 오신 것을 문득 알아차리게 합니다. “그런데 문득 두터운 커튼이/ 홀연히 떨리면서/ 정적을 헤아리는 발걸음으로/ 마치 미래처럼, 너는 들어오리.// 너는 문 앞에 나타나리/ 어느 흰옷 차림으로, 다소곳이/ 눈송이로 짠 듯한 옷감으로/ 지은 옷을 입고서.” 대림 시기의 둘째 부분을 시작하는 오늘 전례에서 우리는 마태오 복음의 도입부인 예수님의 족보를 들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첫 구절에 하느님께서 베푸신 구원사의 업적과 미래의 구원 약속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구원의 역사에는 인간의 생각이나 계획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림 시기를 지내며 성탄에 도달하는 구원을 미리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늘 깨어 있는 정신과 설레는 마음을 가진 이만이,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구원의 약속을 믿고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을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그 아기 누구일까
    
    
    

guest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