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주님 공현 전 토요일(1/3)


    말씀의 초대
    요한 1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큰 사랑을 주셨으므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또한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강조한다(제1독서).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까지도 없애시니 하느님의 사람이 세상의 죄를 없애러 오셨다고 고백한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리고 보라! 저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가신다!’ 하느님의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임을 세상에 증언하며 드러낸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9―3,6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4 그때에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여 지배하고 강제하는 것은 권력이고 자본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일제 식민 통치와 우리의 군부 독재 시절은 무력으로 지배한 강제의 역사였다. 세상이 반대로 바뀌어 버렸다. 이제는 내가 나를 지배한다. 특근이나 휴일 잔업을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 많이 하고 돈 많이 받겠다.’고 나선다. 정치 사회적인 비리나 비정한 문제들은 귀찮다며 외면하고, 협박하지 않아도 부자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 사람들은 문제 해결의 열쇠는 돈이라고 생각한다. 경제를 행복의 전령이자 문제 해결사로 숭앙하는 데는 보수와 진보도 종교도 학문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모든 정치 공약이, 모든 희망 사항이 경제고 민생밖에 없다. 자신이 이미 물신 우상의 광신도가 되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돈과 정부는 어떻게 세워졌는가? 돈과 정부를 만들 때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이라는 말처럼 국익으로 민복을 이루어 고루 잘 살아 보자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돈과 권력이 고통과 눈물을 만들어 내는 원죄 장치가 되고 말았다. 전쟁, 폭력, 핵무기, 원자력 발전소, 재개발, 공공 부채 등 ‘세상의 죄’를 끊임없이 낳는다. 돈의 소유욕과 권력의 지배욕은 자신을 지키려고 다른 이들의 행복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생리 구조를 가졌으니 어리석은 물건들이다. 세례자 요한은 진정한 문제 해결은 하느님의 사랑을 복구하는 십자가의 헌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외친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정화하시고 죄를 소멸시키시고자 제물로 어린양이나 송아지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직접 바치셨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을 구원자시라고 고백한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Agnus Dei-dona nobis pacem 하느님의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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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공현 전 토요일(1/3)


      말씀의 초대
      요한 1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큰 사랑을 주셨으므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또한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강조한다(제1독서).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까지도 없애시니 하느님의 사람이 세상의 죄를 없애러 오셨다고 고백한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리고 보라! 저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가신다!’ 하느님의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임을 세상에 증언하며 드러낸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9―3,6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4 그때에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여 지배하고 강제하는 것은 권력이고 자본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일제 식민 통치와 우리의 군부 독재 시절은 무력으로 지배한 강제의 역사였다. 세상이 반대로 바뀌어 버렸다. 이제는 내가 나를 지배한다. 특근이나 휴일 잔업을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 많이 하고 돈 많이 받겠다.’고 나선다. 정치 사회적인 비리나 비정한 문제들은 귀찮다며 외면하고, 협박하지 않아도 부자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 사람들은 문제 해결의 열쇠는 돈이라고 생각한다. 경제를 행복의 전령이자 문제 해결사로 숭앙하는 데는 보수와 진보도 종교도 학문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모든 정치 공약이, 모든 희망 사항이 경제고 민생밖에 없다. 자신이 이미 물신 우상의 광신도가 되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돈과 정부는 어떻게 세워졌는가? 돈과 정부를 만들 때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이라는 말처럼 국익으로 민복을 이루어 고루 잘 살아 보자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돈과 권력이 고통과 눈물을 만들어 내는 원죄 장치가 되고 말았다. 전쟁, 폭력, 핵무기, 원자력 발전소, 재개발, 공공 부채 등 ‘세상의 죄’를 끊임없이 낳는다. 돈의 소유욕과 권력의 지배욕은 자신을 지키려고 다른 이들의 행복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생리 구조를 가졌으니 어리석은 물건들이다. 세례자 요한은 진정한 문제 해결은 하느님의 사랑을 복구하는 십자가의 헌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외친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정화하시고 죄를 소멸시키시고자 제물로 어린양이나 송아지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직접 바치셨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을 구원자시라고 고백한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Agnus Dei-dona nobis pacem 하느님의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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