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연중 제15주일(7/12)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5주일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사도들의 복음 선포를 통하여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전례 때에 선포되는 말씀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 뵈올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열어 주시기를 청하며, 감사와 사랑의 열린 마음으로 주님께 귀를 기울입시다.
    말씀의 초대
    아모스는 예언자의 길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는 남왕국 유다 출신이면서도 하느님의 명에 따라 북왕국의 베텔에 가서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임금과 사제의 권위도 아모스가 전하는 하느님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제1독서). 에페소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신 하느님을 찬미한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마련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우리는 그 말씀을 믿을 때에 약속의 보증인 성령을 받는다(제2독서). 사도들은 예수님의 파견을 받아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한다(복음).
    제1독서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2-15 그 무렵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3-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타당하고 옳은 말인 줄은 잘 알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있습니다. 아마츠야는 아모스가 전하는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더욱이 남왕국 유다 출신인 그가 북왕국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이 멸망하리라고 외치고 있으니 결코 달갑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모스도 본인이 자원하여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가서 그런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는 하느님께 사로잡혀 어쩔 수 없이 그분의 말씀을 전해야만 하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듣는 사람 모두가 그 말씀을 환영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일깨워 주십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던 청중 가운데서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요한 6,60) 하고 말하면서 많은 이가 예수님 곁을 떠나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말씀은 듣기조차 거북하고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에게 사로잡혀 그분의 말씀을 짊어지고 그분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가 속해 있는 시대와 사회의 양심 역할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언자들은 힘이 없고 억눌린 사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사람, 자신의 의사마저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늘 기구한 삶을 살다가 비운에 이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예언자들의 이러한 신원과 역할 때문에 그들의 삶은 늘 그렇게 고달팠는지도 모릅니다. 아모스도, 예레미야도,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셨습니다. 오늘 독서의 아모스 예언자와 아마츠야의 경우처럼, 힘 있고 가진 사람의 눈에는 예언자의 외침이 늘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해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사회의 안녕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였기에 그들은 예언자들을 제거하려고 하였고, 사실 지금까지 제거하여 온 것이 인류의 역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도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 시대에 하느님을 대신하여 양심에 호소하는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 그 말씀에 따라 우리가 먼저 변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우리 자신도 이 시대의 예언자가 되어 주님의 말씀을 용감하게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에페소서의 말씀대로,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하느님의 소유로 속량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 너를 지키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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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15주일(7/12)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5주일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사도들의 복음 선포를 통하여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전례 때에 선포되는 말씀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 뵈올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열어 주시기를 청하며, 감사와 사랑의 열린 마음으로 주님께 귀를 기울입시다.
      말씀의 초대
      아모스는 예언자의 길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는 남왕국 유다 출신이면서도 하느님의 명에 따라 북왕국의 베텔에 가서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임금과 사제의 권위도 아모스가 전하는 하느님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제1독서). 에페소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신 하느님을 찬미한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마련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우리는 그 말씀을 믿을 때에 약속의 보증인 성령을 받는다(제2독서). 사도들은 예수님의 파견을 받아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한다(복음).
      제1독서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2-15 그 무렵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3-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타당하고 옳은 말인 줄은 잘 알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있습니다. 아마츠야는 아모스가 전하는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더욱이 남왕국 유다 출신인 그가 북왕국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이 멸망하리라고 외치고 있으니 결코 달갑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모스도 본인이 자원하여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가서 그런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는 하느님께 사로잡혀 어쩔 수 없이 그분의 말씀을 전해야만 하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듣는 사람 모두가 그 말씀을 환영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일깨워 주십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던 청중 가운데서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요한 6,60) 하고 말하면서 많은 이가 예수님 곁을 떠나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말씀은 듣기조차 거북하고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에게 사로잡혀 그분의 말씀을 짊어지고 그분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가 속해 있는 시대와 사회의 양심 역할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언자들은 힘이 없고 억눌린 사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사람, 자신의 의사마저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늘 기구한 삶을 살다가 비운에 이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예언자들의 이러한 신원과 역할 때문에 그들의 삶은 늘 그렇게 고달팠는지도 모릅니다. 아모스도, 예레미야도,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셨습니다. 오늘 독서의 아모스 예언자와 아마츠야의 경우처럼, 힘 있고 가진 사람의 눈에는 예언자의 외침이 늘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해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사회의 안녕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였기에 그들은 예언자들을 제거하려고 하였고, 사실 지금까지 제거하여 온 것이 인류의 역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도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 시대에 하느님을 대신하여 양심에 호소하는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 그 말씀에 따라 우리가 먼저 변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우리 자신도 이 시대의 예언자가 되어 주님의 말씀을 용감하게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에페소서의 말씀대로,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하느님의 소유로 속량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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