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연중 제18주간 금요일(8/07)


    말씀의 초대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요르단 강을 건너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기 전에 시나이에서 맺은 계약을 되새겨 주는 책이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종살이에서 구해 주셨음을 상기시키며,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할 것을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제자들에게, 당신의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는 사람은 자기 목숨을 얻을 것이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4,32-4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제,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어보아라. 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와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아니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깨우치시려고 하늘로부터 당신의 소리를 너희에게 들려주셨다. 또 땅 위에서는 당신의 큰 불을 너희에게 보여 주시고, 너희가 불 가운데에서 울려 나오는 그분의 말씀을 듣게 해 주셨다. 그분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 그분께서는 몸소 당신의 큰 힘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그리하여 너희보다 크고 강한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내쫓으시고, 너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셔서, 오늘 이처럼 이 땅을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4-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 때문에.” 이 구절이 없으면 오늘 복음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늘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자기 목숨을 버리며, 자신보다 이웃을 앞세우라고 말씀하시니, 그분을 따르는 것은 손해가 막심해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어도 제 목숨을 잃으면 소용이 없고, 제 목숨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까지 말씀하시고서 ‘자신을 버리라.’고 하시니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여하튼 복음은 자신을 버리라고 하고,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비우셨다고 선포합니다(필리 2,7 참조). 그러나 이러한 버림과 비움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도, 고통 그 자체를 추구하고 즐기라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 소중하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자신을 버리라고 명하시는 것은, 바로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당신의 부활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른 아침 동이 트기 전, 캄캄한 하늘을 보며 생각해 봅니다. 밤이 없이 어떻게 아침이 올 수 있겠는가? 죽음이 없이 어떻게 부활이 있겠는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의 믿음도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를 요구합니다. 삶 안에서 가끔 맞닥뜨리게 되는 죽음의 그 순간에, 기꺼이 우리도 그분과 함께 죽을 수 있는 은총과 용기를 주시어 부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님께 간청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잃을 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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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18주간 금요일(8/07)


      말씀의 초대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요르단 강을 건너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기 전에 시나이에서 맺은 계약을 되새겨 주는 책이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종살이에서 구해 주셨음을 상기시키며,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할 것을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제자들에게, 당신의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는 사람은 자기 목숨을 얻을 것이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4,32-4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제,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어보아라. 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와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아니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깨우치시려고 하늘로부터 당신의 소리를 너희에게 들려주셨다. 또 땅 위에서는 당신의 큰 불을 너희에게 보여 주시고, 너희가 불 가운데에서 울려 나오는 그분의 말씀을 듣게 해 주셨다. 그분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 그분께서는 몸소 당신의 큰 힘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그리하여 너희보다 크고 강한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내쫓으시고, 너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셔서, 오늘 이처럼 이 땅을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4-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 때문에.” 이 구절이 없으면 오늘 복음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늘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자기 목숨을 버리며, 자신보다 이웃을 앞세우라고 말씀하시니, 그분을 따르는 것은 손해가 막심해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어도 제 목숨을 잃으면 소용이 없고, 제 목숨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까지 말씀하시고서 ‘자신을 버리라.’고 하시니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여하튼 복음은 자신을 버리라고 하고,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비우셨다고 선포합니다(필리 2,7 참조). 그러나 이러한 버림과 비움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도, 고통 그 자체를 추구하고 즐기라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 소중하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자신을 버리라고 명하시는 것은, 바로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당신의 부활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른 아침 동이 트기 전, 캄캄한 하늘을 보며 생각해 봅니다. 밤이 없이 어떻게 아침이 올 수 있겠는가? 죽음이 없이 어떻게 부활이 있겠는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의 믿음도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를 요구합니다. 삶 안에서 가끔 맞닥뜨리게 되는 죽음의 그 순간에, 기꺼이 우리도 그분과 함께 죽을 수 있는 은총과 용기를 주시어 부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님께 간청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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