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대림 제2주간 금요일(12/11)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바른길을 가르치셨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계명을 알려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길을 따르지 않아 하느님께서는 다시 멸망이라는 고통을 통해 이스라엘을 가르치셔야 했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군중을 안타까워하신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도 거부하고 이제 예수님도 거부한다. 그들에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인간 사회와 격리된 광야에서 단식하며 고행을 하던 세례자 요한은 마귀가 들렸다고 험담하며 배격하였고, 모든 계층의 사람과 친교를 나누시며 죄인들과도 어울려 먹고 마시는 예수님은 도덕적으로 방탕한 생활을 한다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런데 군중이 세례자 요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 그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을까요?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과연 예수님께서 먹보요 술꾼이시기 때문이었을까요? 요한이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내용은 회개하고 죄의 용서를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전하는 분이 광야에서 단식을 하는 사람이든 도시에서 보통 생활을 하는 사람이든 무슨 차이가 있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누가 어떤 환경에서 말하든 관계없이 진리는 진리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거북해서 여러 가지 핑계와 구실을 대가면서 그 사람에게서 생트집을 잡으려는 것이며, 결국 문제의 핵심은 회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조차 원하지 않거나 진리의 편에 서는 것을 거절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변명과 구실을 내걸 수 있지만, 대부분 그 변명에는 설득력이 없고 그저 반대를 위한 논거에 불과합니다.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의 비유 말씀에 등장하는 아이들처럼, 이래도 아니요, 저래도 아니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물론이고, 반대하기로 작심한 사람에게 진리와 논리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뿐 아니라 인간 생활에서도 완고한 외고집과 편견은 금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를 맞이하여 깎아지른 듯한 외고집과 변덕이 심한 울퉁불퉁한 길을 평탄하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님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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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 제2주간 금요일(12/11)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바른길을 가르치셨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계명을 알려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길을 따르지 않아 하느님께서는 다시 멸망이라는 고통을 통해 이스라엘을 가르치셔야 했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군중을 안타까워하신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도 거부하고 이제 예수님도 거부한다. 그들에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인간 사회와 격리된 광야에서 단식하며 고행을 하던 세례자 요한은 마귀가 들렸다고 험담하며 배격하였고, 모든 계층의 사람과 친교를 나누시며 죄인들과도 어울려 먹고 마시는 예수님은 도덕적으로 방탕한 생활을 한다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런데 군중이 세례자 요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 그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을까요?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과연 예수님께서 먹보요 술꾼이시기 때문이었을까요? 요한이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내용은 회개하고 죄의 용서를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전하는 분이 광야에서 단식을 하는 사람이든 도시에서 보통 생활을 하는 사람이든 무슨 차이가 있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누가 어떤 환경에서 말하든 관계없이 진리는 진리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거북해서 여러 가지 핑계와 구실을 대가면서 그 사람에게서 생트집을 잡으려는 것이며, 결국 문제의 핵심은 회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조차 원하지 않거나 진리의 편에 서는 것을 거절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변명과 구실을 내걸 수 있지만, 대부분 그 변명에는 설득력이 없고 그저 반대를 위한 논거에 불과합니다.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의 비유 말씀에 등장하는 아이들처럼, 이래도 아니요, 저래도 아니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물론이고, 반대하기로 작심한 사람에게 진리와 논리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뿐 아니라 인간 생활에서도 완고한 외고집과 편견은 금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를 맞이하여 깎아지른 듯한 외고집과 변덕이 심한 울퉁불퉁한 길을 평탄하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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