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부활 제2주간 수요일(4/6)


    말씀의 초대
    대사제의 시기로 감옥에 갇힌 사도들을 천사가 풀어 준다. 사도들이 성전에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자 성전 경비대장은 백성이 두려워 폭력은 쓰지 않고 사도들을 데려 온다(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고, 그를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심판을 받지 않게 하신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17-26 그 무렵 17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18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1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20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21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한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모여 와서 최고 의회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원로단을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22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르러 보니 사도들이 없으므로 되돌아가 보고하였다. 23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사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해하였다. 25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러자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그런데도 하느님을 무섭고 벌하시는 분으로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심판’이란 자신이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도 하겠습니다. 평소 내가 하느님을 어떻게 대했느냐? 이 점에 따라 내가 먼저 나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느 사람이 신앙생활을 통하여 기쁨과 평화를 누린다면, 그는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 되겠지요. 반면 악의 경향에 물들어 있는 자들은 빛과 선의 세계가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어둠의 세계가 더 편하겠지요. 그렇다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포기하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들이 자신을 단죄하고 만 것이지요. 우리 인간들이 지닌 온갖 고민과 속박은 스스로 만들어 내고, 거기에 자신이 묶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나 똑같이 당신의 빛을 비추시는데, 단지 사람에 따라 그 빛을 거부하기도 하고, 또는 기꺼이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점을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그 때가 이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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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2주간 수요일(4/6)


      말씀의 초대
      대사제의 시기로 감옥에 갇힌 사도들을 천사가 풀어 준다. 사도들이 성전에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자 성전 경비대장은 백성이 두려워 폭력은 쓰지 않고 사도들을 데려 온다(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고, 그를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심판을 받지 않게 하신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17-26 그 무렵 17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18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1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20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21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한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모여 와서 최고 의회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원로단을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22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르러 보니 사도들이 없으므로 되돌아가 보고하였다. 23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사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해하였다. 25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러자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그런데도 하느님을 무섭고 벌하시는 분으로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심판’이란 자신이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도 하겠습니다. 평소 내가 하느님을 어떻게 대했느냐? 이 점에 따라 내가 먼저 나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느 사람이 신앙생활을 통하여 기쁨과 평화를 누린다면, 그는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 되겠지요. 반면 악의 경향에 물들어 있는 자들은 빛과 선의 세계가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어둠의 세계가 더 편하겠지요. 그렇다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포기하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들이 자신을 단죄하고 만 것이지요. 우리 인간들이 지닌 온갖 고민과 속박은 스스로 만들어 내고, 거기에 자신이 묶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나 똑같이 당신의 빛을 비추시는데, 단지 사람에 따라 그 빛을 거부하기도 하고, 또는 기꺼이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점을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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