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장애인의 날)(4/20)


    해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지위를 향상하고 사기 진작을 위하여 우리나라가 기념일로 정한 ‘장애인의 날’이다. 한국 천주교회도 2000년부터 해마다 이날을 장애인의 날로 지내며, 장애인들의 복지와 인권에 대한 관심을 더욱 기울이기로 하였다. 이날 각 교구에서는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자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말씀의 초대
    안티오키아 교회에 있는 예언자들과 교사들 가운데 성령께서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러 파견하신다. 그들은 살라미스의 유다인 회당들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고,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고 하시며,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야기한다’고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를 위하여 바르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2,24―13,5ㄱ 그 무렵 24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 25 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수행한 다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돌아갔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4 성령께서 파견하신 바르나바와 사울은 셀레우키아로 내려간 다음,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5 그리고 살라미스에 이르러 유다인들의 여러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4-50 그때에 44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45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46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7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48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49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50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보고 믿는 것이 하느님을 보고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만남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지 않습니까? 심판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중재자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지요. 그러기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심판은 피할 수가 없지요. 누구나 생전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라도 받아 주시려 하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결과는 영원한 어둠과 절망뿐이지요.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미지근하게 유지하다가 막상 하느님 앞에 나선다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변함없는 사랑으로 대해 주시는데도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면, 하느님을 뵙는 순간이 참으로 은총의 순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심판이 무섭고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분의 계명을 실천한다는 긍정적인 신앙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때 심판이란 바로 하느님과 일치되는 자리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빛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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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장애인의 날)(4/20)


      해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지위를 향상하고 사기 진작을 위하여 우리나라가 기념일로 정한 ‘장애인의 날’이다. 한국 천주교회도 2000년부터 해마다 이날을 장애인의 날로 지내며, 장애인들의 복지와 인권에 대한 관심을 더욱 기울이기로 하였다. 이날 각 교구에서는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자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말씀의 초대
      안티오키아 교회에 있는 예언자들과 교사들 가운데 성령께서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러 파견하신다. 그들은 살라미스의 유다인 회당들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고,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고 하시며,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야기한다’고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를 위하여 바르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2,24―13,5ㄱ 그 무렵 24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 25 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수행한 다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돌아갔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4 성령께서 파견하신 바르나바와 사울은 셀레우키아로 내려간 다음,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5 그리고 살라미스에 이르러 유다인들의 여러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4-50 그때에 44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45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46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7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48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49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50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보고 믿는 것이 하느님을 보고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만남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지 않습니까? 심판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중재자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지요. 그러기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심판은 피할 수가 없지요. 누구나 생전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라도 받아 주시려 하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결과는 영원한 어둠과 절망뿐이지요.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미지근하게 유지하다가 막상 하느님 앞에 나선다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변함없는 사랑으로 대해 주시는데도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면, 하느님을 뵙는 순간이 참으로 은총의 순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심판이 무섭고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분의 계명을 실천한다는 긍정적인 신앙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때 심판이란 바로 하느님과 일치되는 자리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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