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려 내시자, 사람들은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며 하느님을 찬양한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12-14.27-31ㄱ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1-17
그 무렵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청년의 장례 행렬을 만납니다.
외아들을 잃은 홀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먼저 다가가시어 관에 손을 대고 말씀하십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이 한마디 말씀에 죽었던 젊은이가 일어나 앉으며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얼마나 측은히 여기시는지 잘 알게 해 줍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어려움에 놓인 사람이나 좌절에
빠진 사람들의 아픔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현실 세계에서
이미 구원의 의미를 느끼도록 해 주셨지요.
구원은 이 현세에서 시작되어 초월적 생명을 얻음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배고픈 이들과는 먹을 것을 함께 나누며, 아픈 이들은 낫게 해 주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는 정의롭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실 내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관심에 더 익숙해 있지 않습니까?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일깨우십니다.
“일어나라, 무관심과 무표정에서 깨어 일어나라.”
따라서 이웃들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들에게 힘이 되도록 그들의 구체적인 아픔에 다가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 | | | | | | | | | | |
연중 제24주간 화요일(9/18)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려 내시자, 사람들은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며 하느님을 찬양한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12-14.27-31ㄱ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1-17 그 무렵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청년의 장례 행렬을 만납니다. 외아들을 잃은 홀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먼저 다가가시어 관에 손을 대고 말씀하십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이 한마디 말씀에 죽었던 젊은이가 일어나 앉으며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얼마나 측은히 여기시는지 잘 알게 해 줍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어려움에 놓인 사람이나 좌절에 빠진 사람들의 아픔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현실 세계에서 이미 구원의 의미를 느끼도록 해 주셨지요. 구원은 이 현세에서 시작되어 초월적 생명을 얻음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배고픈 이들과는 먹을 것을 함께 나누며, 아픈 이들은 낫게 해 주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는 정의롭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실 내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관심에 더 익숙해 있지 않습니까?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일깨우십니다. “일어나라, 무관심과 무표정에서 깨어 일어나라.” 따라서 이웃들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들에게 힘이 되도록 그들의 구체적인 아픔에 다가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