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부활 제5주간 화요일(5/12)


      말씀의 초대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교회 공동체마다 원로들을 임명하고, 주님께 그들을 의탁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어떤 권력도 당신께 아무 권한이 없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19-28 그 무렵 19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설득하고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20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떠나갔다. 21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28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따금 평화를 잔잔한 호수의 평온함에 빗대어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친 파도와 소란한 빗줄기를 ‘평화’라는 말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지요. 잔잔한 호수를 떠올리며 예수님의 평화를 묵상해 보자니, 예수님께서 평화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자리가 꽤나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세상을 떠나시는 당신 수난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계십니다. 스승을 따르며 한생을 내어 맡긴 제자들은 잔잔한 호수의 평화는커녕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만한데, 평화라니요? 예수님께서는 분명 세상의 평화와 다른 ‘당신의 평화’를 주시겠노라 말씀하십니다. 잔잔한 호수 같은 평화라면 무리 없이 받아들일 테지만, 세상과 다른 평화라면 도대체 어떤 평화일까요? 예수님의 평화는 무엇보다 마음의 산란함과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무엇 때문에 제자들의 마음이 산란하고 두려움에 휩싸일까?’ 되물어 봅니다. 스스로 챙겨야 할 몫과 예수님을 통하여 꿈꾸어 온 영광의 시간들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제자들은 불안한 것일까요? 아니면 예수님께서 걸어가실 수난의 길이 너무나 힘겨울 것 같아 연민의 정으로 제자들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일까요?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 낸 자리에 예수님의 평화는 기쁨의 자리로 다시 정리됩니다. 기쁨의 이유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만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챙겨야 할 몫도, 우리 각자가 지향하는 영광의 시간이나 명예로운 순간도 아닌, 그저 하느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기쁨을 위하여 수난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우리가 두려운 이유는, 스쳐 지나듯 사라지는 것들에 우리의 영혼마저 빼앗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예수님을 만나 평화로워지려면 우리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잠시 만족할 것들에 사로잡혀 진정 나아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저마다 자유로운 삶의 회복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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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5주간 화요일(5/12)


          말씀의 초대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교회 공동체마다 원로들을 임명하고, 주님께 그들을 의탁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어떤 권력도 당신께 아무 권한이 없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19-28 그 무렵 19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설득하고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20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떠나갔다. 21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28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따금 평화를 잔잔한 호수의 평온함에 빗대어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친 파도와 소란한 빗줄기를 ‘평화’라는 말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지요. 잔잔한 호수를 떠올리며 예수님의 평화를 묵상해 보자니, 예수님께서 평화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자리가 꽤나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세상을 떠나시는 당신 수난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계십니다. 스승을 따르며 한생을 내어 맡긴 제자들은 잔잔한 호수의 평화는커녕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만한데, 평화라니요? 예수님께서는 분명 세상의 평화와 다른 ‘당신의 평화’를 주시겠노라 말씀하십니다. 잔잔한 호수 같은 평화라면 무리 없이 받아들일 테지만, 세상과 다른 평화라면 도대체 어떤 평화일까요? 예수님의 평화는 무엇보다 마음의 산란함과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무엇 때문에 제자들의 마음이 산란하고 두려움에 휩싸일까?’ 되물어 봅니다. 스스로 챙겨야 할 몫과 예수님을 통하여 꿈꾸어 온 영광의 시간들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제자들은 불안한 것일까요? 아니면 예수님께서 걸어가실 수난의 길이 너무나 힘겨울 것 같아 연민의 정으로 제자들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일까요?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 낸 자리에 예수님의 평화는 기쁨의 자리로 다시 정리됩니다. 기쁨의 이유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만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챙겨야 할 몫도, 우리 각자가 지향하는 영광의 시간이나 명예로운 순간도 아닌, 그저 하느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기쁨을 위하여 수난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우리가 두려운 이유는, 스쳐 지나듯 사라지는 것들에 우리의 영혼마저 빼앗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예수님을 만나 평화로워지려면 우리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잠시 만족할 것들에 사로잡혀 진정 나아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저마다 자유로운 삶의 회복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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