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성월

“성모의 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사랑하올 성모를 찬미할지어다. 가장 좋은 꽃으로 성전을 꾸미고, 성모께 노래하며 자헌할지어다. 성모의 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사랑하올 성모를 찬미할지어다”(가톨릭 성가집에서)

1. 성모 신심과 성모성월의 유래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성모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셔 왔고 세기를 거듭하면서 특별한 예식으로 그분을 공경하여 왔다. 지금도 성모님 공경은 변함이 없다. 이것은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루가 1,48)하신 성모님 자신의 예언대로였다.
특히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님께 ‘천주의 모친’이란 칭호를 붙여 사람이시며 동시에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를 마리아께서 낳으셨음을 천명하면서부터 신자들의 성모님 공경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되었다.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님을 ‘천주의 모친’이라 천명하게 된 이유는 당시 네스토리우스파 이단자들이 성모 마리아는 인성으로만 예수님을 낳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지면 관계상 여기서 왜 성모님이 ‘천주의 모친’이 되시며 네스토리우스의 이단설이 그릇된지 다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후에 성모 마리아에 관한 교리를 이야기할 때 언급할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그리스도 신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성모님을 공경하고 그분을 우리의 표본으로 삼는 의의와 그 역사에 대해서만 간단히 살펴보겠다.
사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들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 분이다. 그분은 하느님의 인류 구속사업에 참여하시어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신 지극히 거룩한 하느님의 모친이시다. 그러므로 교회의 자녀들로부터 특별한 예식으로 공경받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교회라면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는 또한 교회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부터 우리 교회는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모셔 온 것이다. 신자들은 성모님을 ‘천주의 모친’으로서 존경과 사랑과 기도로 공경하며 그분의 숭고한 덕을 닮으려 노력하였다. 특히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아쉬움 중에 교회의 어머니로서 성모님의 그 큰 모성애에 의지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빌면서 그분의 보호 밑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하곤 하였다.
이러한 신자들의 성모께 대한 신심은 세기를 통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났다. 성모님을 기리는 찬양 기도문이 생겨나고 여러 가지 성모축일들이 생겨났다. 교회 교도권은 그럴 때마다 건전한 정통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그것을 판단해 주었다. 묵주의 기도도 이러한 신심에서 생겨났고 매주 토요일을 성모님의 날로 성모미사를 지내던 관습도 중세기 때부터 시행되던 것이었다. 오늘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많은 것이 잊혀지고 있지만 공의회의 정신은 “세기를 통하여 교도권이 권장해 온 신심행위 풍습을 중히 여기라”한다. 성모 성월도 성모를 공경하는 신심행위의 한 가지로서, 특히 5월에 날마다, 또는 특별한 열성을 갖고 자주 성모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알뜰한 마음으로 그분께 기도하도록 제정된 달이다. 그런데 성모성월이 오늘처럼 5월에 시행되고 널리 보급된 역사를 살펴보면, 중세 이전에 이미 있었던 5월 신심에서 비롯된다. 복자로 공경을 받는 헨리 세우세(Heinrich Seuse)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5월을 당신께 대한 신심의 달로 봉헌해 달라는 성모님의 메시지가 있고 나서부터, 5월에 특별히 성모님을 공경하는 신심이 생겨났다. 그러나 처음은 일부 지역에서만 있었다. 그러다가 중세기에 터어키나 사라센 민족의 잦은 침입과 함께 적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특히 성모님께 기도하게 되었을 때 이 5월 신심은 널리 알려지게 됐고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형태로 성모성월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초엽 이태리에서부터였다. 그 후 프랑스와 스페인 지방으로 전파되어 갔고 19세기 초엽에는 벨기에와 스위스 지방으로, 19세기 중엽 1840년대에 와서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도 전파되어 갔다. 그러나 오늘과 같이 모든 신자들이 다 참여하는 신심행사로 발전되게 된 것은 1815년 3월 21일과 1822년 6월 16일 두 차례에 걸쳐 교황 비오 7세께서 5월을 성모님의 달로 거룩히 지내고 타당히 고백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면 특별 은사를 받는다고 윤허하신 후부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천주교 전례초기부터, 특히 프랑스 선교 신부들이 입국하게 되면서부터 성모성월을 지내 온 듯하다.

2. 현대와 성모님의 뜻
우리는 금년에도 또 다시 성모성월을 맞이했다. 뜻있게 성모성월을 지내야겠다. 그러자면 오늘 우리에게 성모님은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알 필요가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일치운동의 일환으로 성모공경 존경과 사랑으로 성모 마리아를 받들어 모시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느님께 드리는 공경과는 다르며 성 인들게 드리는 공경과도 다르다. 좀 어려운 말이지만 구별해 보면 하느님께 드리는 것은 ‘흠숭지례’(欽崇 之禮)라 하고 성모님께 드리는 것은 ‘상경지례’(上敬之禮)라 하며 성인들께 드리는 것은 ‘공경지례’(恭敬之 禮)라 하여 각각 다르므로 구별한다.
이 축소되어 온 듯한 감이 있다. 그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젊은이들 손에는 아직 묵주가 들려져 있지 못하고, 마음 속엔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나 인류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오늘도 인류의 행방을 염려하고 계신다. 1917년 파티마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우리에게 주신 부탁은 “주님께 더 이상 죄를 범하지 말라. 전쟁이 끝나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메시지였다. 성모님은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을 내다 보셨고 염려하신 것이었다. 현대 원자시대에 살고 있는 인류가 평화를 위해 나아갈 것인지 멸망으로 나아갈 것인지 성모님은 우리의 행방을 염려하신다. 오늘날 우리는 무신론자들인 공산주의자들의 세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들의 회개를 성모님은 원하고 있다. 중세기때 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청하기 위해 성모성월 신심이 널리 전파되고 발전되었듯이 오늘을 사는 우리도 특히 5월의 성모성월을 같은 뜻을 갖고 지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것이 성모님의 뜻이리라.
그뿐만 아니다. 성모님의 탁월한 덕을 매일 매일 한 가지씩 깊이 묵상하며 배움으로써 훌륭한 그분의 자녀로서 자라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모님은 동정녀이시지만 동시에 어머니이셨다. 순결과 그 모성애는 온 세계 여성의 표본이시다. 복잡한 사회생활, 그 속에서 지친 우리 신심을 성모님의 위로로 위안을 얻고 쉴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사회의 온갖 부조리와 악에서 물이 들어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모습, 하느님께 감히 나아가기조차 부끄러워 용기가 없을 때, 우리는 상처를 매만져 주고 치료해 줄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5월을 ‘성모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이르는 달’로 지내야겠다. “죄인의 위로자이신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고 기도하며 언제나 성모님께 의탁하는 자세를 갖도록 노력하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황과 모든 교부들이 ‘성모님은 나그네 길에 있는 하느님 백성의 확실한 희망이시며 위로이심을’ 재천명하였다. “예수의 모친은 천상에서 이미 영혼과 육신으로 영광을 누리고 계심으로써 후세에 완성될 교회의 모상이며 시작이 되신 것처럼 이 지상에서는 주의 날이 올 때까지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시로 빛나고 계신다”(교회 68).
참된 신심은 결실없이 지나가는 일시적 감정이나 허황한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참된 신앙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참된 신앙에서 성모님의 탁월성을 인정하며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께 자녀다운 사랑을 드리며 그의 덕행을 본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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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성월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모의 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사랑하올 성모를 찬미할지어다. 가장 좋은 꽃으로 성전을 꾸미고, 성모께 노래하며 자헌할지어다. 성모의 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사랑하올 성모를 찬미할지어다”(가톨릭 성가집에서)

    1. 성모 신심과 성모성월의 유래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성모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셔 왔고 세기를 거듭하면서 특별한 예식으로 그분을 공경하여 왔다. 지금도 성모님 공경은 변함이 없다. 이것은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루가 1,48)하신 성모님 자신의 예언대로였다.
    특히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님께 ‘천주의 모친’이란 칭호를 붙여 사람이시며 동시에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를 마리아께서 낳으셨음을 천명하면서부터 신자들의 성모님 공경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되었다.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님을 ‘천주의 모친’이라 천명하게 된 이유는 당시 네스토리우스파 이단자들이 성모 마리아는 인성으로만 예수님을 낳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지면 관계상 여기서 왜 성모님이 ‘천주의 모친’이 되시며 네스토리우스의 이단설이 그릇된지 다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후에 성모 마리아에 관한 교리를 이야기할 때 언급할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그리스도 신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성모님을 공경하고 그분을 우리의 표본으로 삼는 의의와 그 역사에 대해서만 간단히 살펴보겠다.
    사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들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 분이다. 그분은 하느님의 인류 구속사업에 참여하시어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신 지극히 거룩한 하느님의 모친이시다. 그러므로 교회의 자녀들로부터 특별한 예식으로 공경받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교회라면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는 또한 교회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부터 우리 교회는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모셔 온 것이다. 신자들은 성모님을 ‘천주의 모친’으로서 존경과 사랑과 기도로 공경하며 그분의 숭고한 덕을 닮으려 노력하였다. 특히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아쉬움 중에 교회의 어머니로서 성모님의 그 큰 모성애에 의지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빌면서 그분의 보호 밑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하곤 하였다.
    이러한 신자들의 성모께 대한 신심은 세기를 통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났다. 성모님을 기리는 찬양 기도문이 생겨나고 여러 가지 성모축일들이 생겨났다. 교회 교도권은 그럴 때마다 건전한 정통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그것을 판단해 주었다. 묵주의 기도도 이러한 신심에서 생겨났고 매주 토요일을 성모님의 날로 성모미사를 지내던 관습도 중세기 때부터 시행되던 것이었다. 오늘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많은 것이 잊혀지고 있지만 공의회의 정신은 “세기를 통하여 교도권이 권장해 온 신심행위 풍습을 중히 여기라”한다. 성모 성월도 성모를 공경하는 신심행위의 한 가지로서, 특히 5월에 날마다, 또는 특별한 열성을 갖고 자주 성모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알뜰한 마음으로 그분께 기도하도록 제정된 달이다. 그런데 성모성월이 오늘처럼 5월에 시행되고 널리 보급된 역사를 살펴보면, 중세 이전에 이미 있었던 5월 신심에서 비롯된다. 복자로 공경을 받는 헨리 세우세(Heinrich Seuse)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5월을 당신께 대한 신심의 달로 봉헌해 달라는 성모님의 메시지가 있고 나서부터, 5월에 특별히 성모님을 공경하는 신심이 생겨났다. 그러나 처음은 일부 지역에서만 있었다. 그러다가 중세기에 터어키나 사라센 민족의 잦은 침입과 함께 적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특히 성모님께 기도하게 되었을 때 이 5월 신심은 널리 알려지게 됐고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형태로 성모성월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초엽 이태리에서부터였다. 그 후 프랑스와 스페인 지방으로 전파되어 갔고 19세기 초엽에는 벨기에와 스위스 지방으로, 19세기 중엽 1840년대에 와서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도 전파되어 갔다. 그러나 오늘과 같이 모든 신자들이 다 참여하는 신심행사로 발전되게 된 것은 1815년 3월 21일과 1822년 6월 16일 두 차례에 걸쳐 교황 비오 7세께서 5월을 성모님의 달로 거룩히 지내고 타당히 고백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면 특별 은사를 받는다고 윤허하신 후부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천주교 전례초기부터, 특히 프랑스 선교 신부들이 입국하게 되면서부터 성모성월을 지내 온 듯하다.

    2. 현대와 성모님의 뜻
    우리는 금년에도 또 다시 성모성월을 맞이했다. 뜻있게 성모성월을 지내야겠다. 그러자면 오늘 우리에게 성모님은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알 필요가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일치운동의 일환으로 성모공경 존경과 사랑으로 성모 마리아를 받들어 모시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느님께 드리는 공경과는 다르며 성 인들게 드리는 공경과도 다르다. 좀 어려운 말이지만 구별해 보면 하느님께 드리는 것은 ‘흠숭지례’(欽崇 之禮)라 하고 성모님께 드리는 것은 ‘상경지례’(上敬之禮)라 하며 성인들께 드리는 것은 ‘공경지례’(恭敬之 禮)라 하여 각각 다르므로 구별한다.
    이 축소되어 온 듯한 감이 있다. 그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젊은이들 손에는 아직 묵주가 들려져 있지 못하고, 마음 속엔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나 인류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오늘도 인류의 행방을 염려하고 계신다. 1917년 파티마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우리에게 주신 부탁은 “주님께 더 이상 죄를 범하지 말라. 전쟁이 끝나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메시지였다. 성모님은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을 내다 보셨고 염려하신 것이었다. 현대 원자시대에 살고 있는 인류가 평화를 위해 나아갈 것인지 멸망으로 나아갈 것인지 성모님은 우리의 행방을 염려하신다. 오늘날 우리는 무신론자들인 공산주의자들의 세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들의 회개를 성모님은 원하고 있다. 중세기때 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청하기 위해 성모성월 신심이 널리 전파되고 발전되었듯이 오늘을 사는 우리도 특히 5월의 성모성월을 같은 뜻을 갖고 지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것이 성모님의 뜻이리라.
    그뿐만 아니다. 성모님의 탁월한 덕을 매일 매일 한 가지씩 깊이 묵상하며 배움으로써 훌륭한 그분의 자녀로서 자라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모님은 동정녀이시지만 동시에 어머니이셨다. 순결과 그 모성애는 온 세계 여성의 표본이시다. 복잡한 사회생활, 그 속에서 지친 우리 신심을 성모님의 위로로 위안을 얻고 쉴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사회의 온갖 부조리와 악에서 물이 들어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모습, 하느님께 감히 나아가기조차 부끄러워 용기가 없을 때, 우리는 상처를 매만져 주고 치료해 줄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5월을 ‘성모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이르는 달’로 지내야겠다. “죄인의 위로자이신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고 기도하며 언제나 성모님께 의탁하는 자세를 갖도록 노력하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황과 모든 교부들이 ‘성모님은 나그네 길에 있는 하느님 백성의 확실한 희망이시며 위로이심을’ 재천명하였다. “예수의 모친은 천상에서 이미 영혼과 육신으로 영광을 누리고 계심으로써 후세에 완성될 교회의 모상이며 시작이 되신 것처럼 이 지상에서는 주의 날이 올 때까지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시로 빛나고 계신다”(교회 68).
    참된 신심은 결실없이 지나가는 일시적 감정이나 허황한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참된 신앙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참된 신앙에서 성모님의 탁월성을 인정하며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께 자녀다운 사랑을 드리며 그의 덕행을 본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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