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울다” 당신은 어떤 때에 우십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십니다. (다 큰 사람이 울기는 왜 울어…..이런 말 하면 예수님한테 혼나겠죠?)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으면 우셨을까요? 뻔히 보이는 상황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마음. 아무리 말을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 그 부모의 마음은 눈물로 가득찰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당신에게 그 일들을 저지들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이 날 너 역시 평화를 얻는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구나!” 지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성지주일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어떻게 들어가셨는지 아시죠?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환영했는지, 그런데 그런 환영을 받으시면서 가시다가 예루살렘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실제로 로마는 기원 70년 4월 해방절부터 예루살렘을 포위하다가 마침내 8월 29일에 예루살렘 시내를 완전히 점령하고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예레미야서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내 눈에서는 밤낮으로 눈물이 흘러 울음을 그칠 수가 없구나. 처녀 같은 내 딸, 이 백성이 심하게 얻어맞아 치명상을 입었다”(예레미야 14,17) 그런데 예수님의 눈물은 당신의 무능력의 고백인지도 모릅니다. 마음 닫은 이들을 향한 무능력의 고백…..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쳐 주셨으며,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세리와 죄인들을 회개시키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제 십자가에 못 박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결단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기에 인간의자유를 빼앗기보다는 예수님 안에서 무력하게 울기를 바라신 것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의 눈물은 당신이 이 완고한 도시 예루살렘에 하신 마지막 회개에로의 호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곳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란 그저 하느님께서 보내신 종말론적인 평화의 임금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을 하였지만 예루살렘 주민들은 마음을 닫고 오히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이 제공하신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것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습니다. “너와 네 안에 사는 자녀들을 짓밟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네 안에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로마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멸시켜 버렸다. 유행가의 가사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 좀 일찍 후회하고, 좀 일찍 마음을 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일이 저질러 진 상태에서 후회하는 듯 하다.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듯 하다. 지금이 바로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함께 묵상해 보아요> 1.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예수님처럼 그렇게 말을 해 보았으면 합니다. 2. 가끔은 후회하는 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그것을 미리 막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직 그런 일을 겪지 못한 님들을 위해서 조금만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울다”
당신은 어떤 때에 우십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십니다.
(다 큰 사람이 울기는 왜 울어…..이런 말 하면 예수님한테 혼나겠죠?)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으면 우셨을까요?
뻔히 보이는 상황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마음. 아무리 말을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 그 부모의 마음은 눈물로 가득찰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당신에게 그 일들을 저지들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이 날 너 역시 평화를 얻는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구나!”
지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성지주일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어떻게 들어가셨는지 아시죠?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환영했는지,
그런데 그런 환영을 받으시면서 가시다가 예루살렘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실제로 로마는 기원 70년 4월 해방절부터 예루살렘을 포위하다가 마침내 8월 29일에 예루살렘 시내를 완전히 점령하고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예레미야서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내 눈에서는 밤낮으로 눈물이 흘러 울음을 그칠 수가 없구나. 처녀 같은 내 딸, 이 백성이 심하게 얻어맞아 치명상을 입었다”(예레미야 14,17)
그런데 예수님의 눈물은 당신의 무능력의 고백인지도 모릅니다. 마음 닫은 이들을 향한 무능력의 고백…..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쳐 주셨으며,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세리와 죄인들을 회개시키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제 십자가에 못 박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결단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기에 인간의자유를 빼앗기보다는 예수님 안에서 무력하게 울기를 바라신 것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의 눈물은 당신이 이 완고한 도시 예루살렘에 하신 마지막 회개에로의 호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곳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란 그저 하느님께서 보내신 종말론적인 평화의 임금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을 하였지만 예루살렘 주민들은 마음을 닫고 오히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이 제공하신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것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습니다.
“너와 네 안에 사는 자녀들을 짓밟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네 안에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로마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멸시켜 버렸다.
유행가의 가사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
좀 일찍 후회하고, 좀 일찍 마음을 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일이 저질러 진 상태에서 후회하는 듯 하다.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듯 하다.
지금이 바로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함께 묵상해 보아요>
1.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예수님처럼 그렇게 말을 해 보았으면 합니다.
2. 가끔은 후회하는 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그것을 미리 막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직 그런 일을 겪지 못한 님들을 위해서 조금만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안나! 오늘도 하루가 그렇게 지났네.
어젠가, 한의사 박선생님과 한 대화 기억나니? 우린 마지막에 나를 지으신 분께로 돌아 갈 때 빈손으로 간다고.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모든 이들 마져 남기고 그렇게 훌훌 떠나게 된다고.
그런데 사람들은 미련하게도 모든 것이 제 것인 양 욕심을 부린다고 한 얘기 말이야.
모두 버리고 빈 손으로 떠나 하느님 앞에는 내가 행한 사랑만이 남게 된다고 얘기했잖아.
이제 기억나지?
안나야, 선생님 말씀 처럼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사용해야 나중에 후회하며 엉엉 울지 않는단다.
쉽지는 않지?
그럴꺼야. 나도 이해해.
그런데 안나! ‘지금이 바로 구원의 때’이며, 지금이 바로 안나에겐 마지막 기회이거든.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역이란다.
내일은 내일에 맡기고 오늘 안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랑으로 사용해야겠지?
아빠가 기뻐하시도록, 그이가 눈물 흘리며 안타까움으로 가슴앓이 하지 않도록 잘 해야 되잖아.
힘이 들겠지만 조금만 관대해 보자. 우리 주님이 가신 길을 잊지 말고 늘 가슴에 품어 되새기며 사노라면 조금씩 길들여지겠지?
아파도 나무 처럼 의연하고 묵묵히 침묵하며 그이를 생각하거라.
그런데 게으르고, 이기적인 안나가 걱정이구나. 더구나 애덕도, 인내도,
항구함도 미약하니 어쩌지?
아! 안나가 조금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환자 방문으로 후회되는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한 할아버자가 암으로 투병을 하셨는데 하느님께 돌아 가실 시간이 가까운 듯 하였습니다.
열이 아주 심하셔서 수건으로 바람을 일으킨다고 흔드는 그 무게 조차 감당키 어려운 상황으로 고통이 지극하셨습니다.
방문 간 안나는 가족들이 돌아 올 시간이어서 할아버지께 인사하고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안나는 저녁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아버지께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남편에게 밤에 나간다는 얘기를 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습니다.(가족이 집에 돌아 올 시간은 꼭 집에 있었음) 다시 뵙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께 가시는 길은 복된 길이라 축복해 드리고 하느님 아버지 뵙거들랑 안나 문안 전해 달라는 부탁도 하고 싶었습니다.
안나가 사랑한다 더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아버지께로 가는 낯선 길에 길 동무해 드리며 두려움을 이기도록 용기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지 못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염려만 하였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출근하는 남편에게 병원 데려다 달라 부탁하여 급히 중환자실로 갔으나 침대가 비워 있었습니다.
간호사 말씀이 영안실로 가라 하였습니다.
영안실로 가는데 어떤 낯선 여자 분이 “혹시 안나님이세요?”
“그런데, 누구세요?”
“저희 아버지가 임종때 안나씨에게 고맙다고 말씀전해 달라 하셨어요.”
“저를 어떻게 알아 보았어요?”
저는 놀랐습니다. 그 넓은 종합병원에서 생전 본적도 없는 할아버지의 따님이 안나를 알아보다니,
저는 그 할아버지의 존함도 몰랐습니다. 따님이 안나를 영전에 데려 가더니 가족들께 인사를 해 주시며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마지막 길을 동무해 드리지 못한 아픔으로 안나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눈이 너무나 맑으셔서 푸른 하늘 같은 할아버지는 한학자 셨다며 귀한 책도 안나에게 남기셨습니다.
왜 후회가 되느냐구요?
마음이 강하게 움직일 때는 내면의 소리에 따라야 하는데 안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안나는 늘 자기 의사를 말 하지않고 되어 가는 대로 따르는 소심한 면이 많거든요.
때를 놓치면 그 기회는 사라지는 경험을 여러번 하였습니다.
후회를 잘 모르는 안나이나 이런 어리석음을 여러번 범하였습니다.
애덕을 실천 할 기회는 내일이 아니라 님이 마련하신 바로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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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묵상해 보아요>
1.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예수님처럼 그렇게 말을 해 보았으면 합니다.
안나! 오늘도 하루가 그렇게 지났네.
어젠가, 한의사 박선생님과 한 대화 기억나니? 우린 마지막에 나를 지으신 분께로 돌아 갈 때 빈손으로 간다고.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모든 이들 마져 남기고 그렇게 훌훌 떠나게 된다고.
그런데 사람들은 미련하게도 모든 것이 제 것인 양 욕심을 부린다고 한 얘기 말이야.
모두 버리고 빈 손으로 떠나 하느님 앞에는 내가 행한 사랑만이 남게 된다고 얘기했잖아.
이제 기억나지?
안나야, 선생님 말씀 처럼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사용해야 나중에 후회하며 엉엉 울지 않는단다.
쉽지는 않지?
그럴꺼야. 나도 이해해.
그런데 안나! ‘지금이 바로 구원의 때’이며, 지금이 바로 안나에겐 마지막 기회이거든.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역이란다.
내일은 내일에 맡기고 오늘 안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랑으로 사용해야겠지?
아빠가 기뻐하시도록, 그이가 눈물 흘리며 안타까움으로 가슴앓이 하지 않도록 잘 해야 되잖아.
힘이 들겠지만 조금만 관대해 보자. 우리 주님이 가신 길을 잊지 말고 늘 가슴에 품어 되새기며 사노라면 조금씩 길들여지겠지?
아파도 나무 처럼 의연하고 묵묵히 침묵하며 그이를 생각하거라.
그런데 게으르고, 이기적인 안나가 걱정이구나. 더구나 애덕도, 인내도,
항구함도 미약하니 어쩌지?
아! 안나가 조금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2. 가끔은 후회하는 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그것을 미리 막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직 그런 일을 겪지 못한 님들을 위해서 조금만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환자 방문으로 후회되는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한 할아버자가 암으로 투병을 하셨는데 하느님께 돌아 가실 시간이 가까운 듯 하였습니다.
열이 아주 심하셔서 수건으로 바람을 일으킨다고 흔드는 그 무게 조차 감당키 어려운 상황으로 고통이 지극하셨습니다.
방문 간 안나는 가족들이 돌아 올 시간이어서 할아버지께 인사하고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안나는 저녁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아버지께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남편에게 밤에 나간다는 얘기를 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습니다.(가족이 집에 돌아 올 시간은 꼭 집에 있었음) 다시 뵙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께 가시는 길은 복된 길이라 축복해 드리고 하느님 아버지 뵙거들랑 안나 문안 전해 달라는 부탁도 하고 싶었습니다.
안나가 사랑한다 더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아버지께로 가는 낯선 길에 길 동무해 드리며 두려움을 이기도록 용기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지 못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염려만 하였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출근하는 남편에게 병원 데려다 달라 부탁하여 급히 중환자실로 갔으나 침대가 비워 있었습니다.
간호사 말씀이 영안실로 가라 하였습니다.
영안실로 가는데 어떤 낯선 여자 분이 “혹시 안나님이세요?”
“그런데, 누구세요?”
“저희 아버지가 임종때 안나씨에게 고맙다고 말씀전해 달라 하셨어요.”
“저를 어떻게 알아 보았어요?”
저는 놀랐습니다. 그 넓은 종합병원에서 생전 본적도 없는 할아버지의 따님이 안나를 알아보다니,
저는 그 할아버지의 존함도 몰랐습니다. 따님이 안나를 영전에 데려 가더니 가족들께 인사를 해 주시며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마지막 길을 동무해 드리지 못한 아픔으로 안나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눈이 너무나 맑으셔서 푸른 하늘 같은 할아버지는 한학자 셨다며 귀한 책도 안나에게 남기셨습니다.
왜 후회가 되느냐구요?
마음이 강하게 움직일 때는 내면의 소리에 따라야 하는데 안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안나는 늘 자기 의사를 말 하지않고 되어 가는 대로 따르는 소심한 면이 많거든요.
때를 놓치면 그 기회는 사라지는 경험을 여러번 하였습니다.
후회를 잘 모르는 안나이나 이런 어리석음을 여러번 범하였습니다.
애덕을 실천 할 기회는 내일이 아니라 님이 마련하신 바로 지금입니다.
<함께 묵상해 보아요>
1.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예수님처럼 그렇게 말을 해 보았으면 합니다.
안나! 오늘도 하루가 그렇게 지났네.
어젠가, 한의사 박선생님과 한 대화 기억나니? 우린 마지막에 나를 지으신 분께로 돌아 갈 때 빈손으로 간다고.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모든 이들 마져 남기고 그렇게 훌훌 떠나게 된다고.
그런데 사람들은 미련하게도 모든 것이 제 것인 양 욕심을 부린다고 한 얘기 말이야.
모두 버리고 빈 손으로 떠나 하느님 앞에는 내가 행한 사랑만이 남게 된다고 얘기했잖아.
이제 기억나지?
안나야, 선생님 말씀 처럼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사용해야 나중에 후회하며 엉엉 울지 않는단다.
쉽지는 않지?
그럴꺼야. 나도 이해해.
그런데 안나! ‘지금이 바로 구원의 때’이며, 지금이 바로 안나에겐 마지막 기회이거든.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역이란다.
내일은 내일에 맡기고 오늘 안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랑으로 사용해야겠지?
아빠가 기뻐하시도록, 그이가 눈물 흘리며 안타까움으로 가슴앓이 하지 않도록 잘 해야 되잖아.
힘이 들겠지만 조금만 관대해 보자. 우리 주님이 가신 길을 잊지 말고 늘 가슴에 품어 되새기며 사노라면 조금씩 길들여지겠지?
아파도 나무 처럼 의연하고 묵묵히 침묵하며 그이를 생각하거라.
그런데 게으르고, 이기적인 안나가 걱정이구나. 더구나 애덕도, 인내도,
항구함도 미약하니 어쩌지?
아! 안나가 조금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2. 가끔은 후회하는 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그것을 미리 막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직 그런 일을 겪지 못한 님들을 위해서 조금만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환자 방문으로 후회되는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한 할아버자가 암으로 투병을 하셨는데 하느님께 돌아 가실 시간이 가까운 듯 하였습니다.
열이 아주 심하셔서 수건으로 바람을 일으킨다고 흔드는 그 무게 조차 감당키 어려운 상황으로 고통이 지극하셨습니다.
방문 간 안나는 가족들이 돌아 올 시간이어서 할아버지께 인사하고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안나는 저녁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아버지께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남편에게 밤에 나간다는 얘기를 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습니다.(가족이 집에 돌아 올 시간은 꼭 집에 있었음) 다시 뵙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께 가시는 길은 복된 길이라 축복해 드리고 하느님 아버지 뵙거들랑 안나 문안 전해 달라는 부탁도 하고 싶었습니다.
안나가 사랑한다 더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아버지께로 가는 낯선 길에 길 동무해 드리며 두려움을 이기도록 용기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지 못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염려만 하였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출근하는 남편에게 병원 데려다 달라 부탁하여 급히 중환자실로 갔으나 침대가 비워 있었습니다.
간호사 말씀이 영안실로 가라 하였습니다.
영안실로 가는데 어떤 낯선 여자 분이 “혹시 안나님이세요?”
“그런데, 누구세요?”
“저희 아버지가 임종때 안나씨에게 고맙다고 말씀전해 달라 하셨어요.”
“저를 어떻게 알아 보았어요?”
저는 놀랐습니다. 그 넓은 종합병원에서 생전 본적도 없는 할아버지의 따님이 안나를 알아보다니,
저는 그 할아버지의 존함도 몰랐습니다. 따님이 안나를 영전에 데려 가더니 가족들께 인사를 해 주시며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마지막 길을 동무해 드리지 못한 아픔으로 안나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눈이 너무나 맑으셔서 푸른 하늘 같은 할아버지는 한학자 셨다며 귀한 책도 안나에게 남기셨습니다.
왜 후회가 되느냐구요?
마음이 강하게 움직일 때는 내면의 소리에 따라야 하는데 안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안나는 늘 자기 의사를 말 하지않고 되어 가는 대로 따르는 소심한 면이 많거든요.
때를 놓치면 그 기회는 사라지는 경험을 여러번 하였습니다.
후회를 잘 모르는 안나이나 이런 어리석음을 여러번 범하였습니다.
애덕을 실천 할 기회는 내일이 아니라 님이 마련하신 바로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