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스스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은 안식일도 지키지 않으셨고, 정결례도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율법의 혁명자로 생각했을까요? 모든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가르치러 오신 분으로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으이 반대자들은 유언비어를 퍼뜨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회의 암과 같은 존재이다. 그분이 더 활보하시면 우리 사회는 기강이 무너진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의미를 바로 잡고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보내시어 인류를 결합시키는 신약의 예비이며, 그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로마3,21.10,4). 실물이 나타나면 이제 그림자는 존재를 감추고 사라져도 좋습니다. 성숙은 미숙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파괴가 아니라 건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명하는 도덕을 조금도 파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가져다 준 개혁은 넓고 또한 깊은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침범할 수 없는 율법을 가르쳤으나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위로의 하느님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는 똑같은 구약성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확실히 다른 종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 율법의 영속성과 그리하여 완전하게 지켜야 됨을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일 점”은 히브리말의 욧드를 말합니다. 이것은 히브리말 알파베트 중 가장 작은 글자입니다. “일 획”은 히브리말 알파베트의 서로 비슷한 글자를 구별하기 위한 세로 세운 자획이었습니다.


율법은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 불완전이 보충되어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아직도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모세의 율법이라는 좁은 의미에 국한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에 따라 개량되고 완성된 보편적인 율법의 이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조그마한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것은 복음의 완덕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완전한 義에는 자기의 의무를 완전히 수행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하느님 계획의 중대한 점에 대해 거역하는 것이 아니므로 단순히 소죄에 머물고, 나늘 나라로부터 배척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늘 나라에서 높은 영광을 받지 못할 뿐입니다. 이것은 주로 계명을 스스로 지키며, 타인에게도 가르칠 의무가 있는 지도계급에 대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지키는 계명 중 그 의미를 상실하고 형식적으로 지키는 계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2. 내가 지키는 계명 중에 나도 모르게 남을 어기도록 만드는 것은 어떤 것이 있으며, 고의로 어기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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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지키는 계명 중 그 의미를 상실하고 형식적으로 지키는 계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글쎄요… 너무 많아서 한 가지만 말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속이 들여다 보이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부모님께 공경하라” 하신 계명을
    가장 형식적이고 헛되이 입으로만 되뇌이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말로써 부모님께 공손하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론 늘 잘 해드려야지 생각 하면서도 어머님께서 어떤 실수를 하시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도대체 왜 그러세요” 라는 말이 먼저 나갑니다
    저도 나이들면 그럴날이 머지 않았으면서 저렇게 큰소리를 치는가 싶은가 하며 마음이
    아프실까를 생각하면 해 놓고도 제 마음 또한 아프지요
    몸도 건강치 못하신데 딸마저 다정하지 못하니 무슨 낙이 있을까 싶으면 정말 잘해 드려야
    겠다는 생각은 하면서 실천하지 못하니 저라는 사람 정말 구제불능인거 같아 마음이 무겁네요
    남들은 고부간의 갈등을 얘기하는 시대에 저는 친정어머님과의 갈등이 더 심한 것 같아요
    시어머님과는 입만 열면 자랑할 정도로 잘 지내면서 친정어머님과는 마찰이 많은걸 보면
    (아마도 다중인격의 소유자인 듯) 이상하다고도 합니다
    주님!
    저의 이 무딘 마음과 급한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주시어 좀더 넉넉한 마음, 다정한 말씨로
    조금씩 변화될 수 있도록 저에게 은총 주시기 기도드립니다

    2. 내가 지키는 계명 중에 나도 모르게 남을 어기도록 만드는 것은 어떤 것이 있으며, 고의로
    어기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나도 모르게 계명을 어기게 하는 것은 그야말로 생각이 잘 나질 않습니다
    더구나 고의로 어기게 한 것도 부족한 머리로는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정말 제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에게 계명을 어기게 부추기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고 그 분들께도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고 싶습니다

  2.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지키는 계명 중 그 의미를 상실하고 형식적으로 지키는 계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글쎄요… 너무 많아서 한 가지만 말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속이 들여다 보이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부모님께 공경하라” 하신 계명을
    가장 형식적이고 헛되이 입으로만 되뇌이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말로써 부모님께 공손하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론 늘 잘 해드려야지 생각 하면서도 어머님께서 어떤 실수를 하시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도대체 왜 그러세요” 라는 말이 먼저 나갑니다
    저도 나이들면 그럴날이 머지 않았으면서 저렇게 큰소리를 치는가 싶은가 하며 마음이
    아프실까를 생각하면 해 놓고도 제 마음 또한 아프지요
    몸도 건강치 못하신데 딸마저 다정하지 못하니 무슨 낙이 있을까 싶으면 정말 잘해 드려야
    겠다는 생각은 하면서 실천하지 못하니 저라는 사람 정말 구제불능인거 같아 마음이 무겁네요
    남들은 고부간의 갈등을 얘기하는 시대에 저는 친정어머님과의 갈등이 더 심한 것 같아요
    시어머님과는 입만 열면 자랑할 정도로 잘 지내면서 친정어머님과는 마찰이 많은걸 보면
    (아마도 다중인격의 소유자인 듯) 이상하다고도 합니다
    주님!
    저의 이 무딘 마음과 급한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주시어 좀더 넉넉한 마음, 다정한 말씨로
    조금씩 변화될 수 있도록 저에게 은총 주시기 기도드립니다

    2. 내가 지키는 계명 중에 나도 모르게 남을 어기도록 만드는 것은 어떤 것이 있으며, 고의로
    어기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나도 모르게 계명을 어기게 하는 것은 그야말로 생각이 잘 나질 않습니다
    더구나 고의로 어기게 한 것도 부족한 머리로는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정말 제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에게 계명을 어기게 부추기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고 그 분들께도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고 싶습니다

  3.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지키는 계명 중 그 의미를 상실하고 형식적으로 지키는 계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2. 내가 지키는 계명 중에 나도 모르게 남을 어기도록 만드는 것은 어떤 것이 있으며,
    고의로 어기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이웃사랑입니다. 자신도 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말하지 않음은 묵인이며 동조이겠지요?
    상대방이 상처를 입을까봐 남들이 뭐라고 말 할까봐 망서림은 소극적인 사랑이지요?

    진정한 사랑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며,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부족함도 공유하겠지요?
    그의 기쁨이 내 기쁨이고 그의 부족함이 자신의 불완전으로 아파 기도하며
    그의 행복이 내 행복으로 그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 보다 기쁠테니 그를 위해 헌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충고는 사랑으로 아니 자신을 완성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손길임을 그가 인식하겠지요?

    하느님의 사랑 안에는 주고 받음도 떠나
    이제는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하늘나라 궁전을 살겠지요?

    그런데도 저는 적극적인 사랑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이기심과 자애심과 무관심으로 말입니다.

  4.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지키는 계명 중 그 의미를 상실하고 형식적으로 지키는 계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2. 내가 지키는 계명 중에 나도 모르게 남을 어기도록 만드는 것은 어떤 것이 있으며,
    고의로 어기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이웃사랑입니다. 자신도 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말하지 않음은 묵인이며 동조이겠지요?
    상대방이 상처를 입을까봐 남들이 뭐라고 말 할까봐 망서림은 소극적인 사랑이지요?

    진정한 사랑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며,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부족함도 공유하겠지요?
    그의 기쁨이 내 기쁨이고 그의 부족함이 자신의 불완전으로 아파 기도하며
    그의 행복이 내 행복으로 그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 보다 기쁠테니 그를 위해 헌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충고는 사랑으로 아니 자신을 완성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손길임을 그가 인식하겠지요?

    하느님의 사랑 안에는 주고 받음도 떠나
    이제는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하늘나라 궁전을 살겠지요?

    그런데도 저는 적극적인 사랑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이기심과 자애심과 무관심으로 말입니다.

  5.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지키는 계명 중 그 의미를 상실하고 형식적으로 지키는 계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글쎄요. 계명하면 우선 십계명이 떠오르는데 제대로 지키는 계명이 별로 없으며
    오늘 말씀의 율법의 완성이란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 또한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내가 지키는 계명 중에 나도 모르게 남을 어기도록 만드는 것은 어떤 것이 있으며, 고의로 어기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나에게 상처 준 형제자매에게는 고개를 돌리게 되고 말 역시 곱게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 나의 기분을 옆 동료에게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 동료는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았음에도
    상처 받은 나 보다 더 그 형제자매를 싫어하여 멀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랑이 없는 행위야말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안좋은 선입견을 갖게 함으로써 나도 모르
    게 또는 고의로 주님의 계명을 어기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6. user#0 님의 말: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지키는 계명 중 그 의미를 상실하고 형식적으로 지키는 계명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글쎄요. 계명하면 우선 십계명이 떠오르는데 제대로 지키는 계명이 별로 없으며
    오늘 말씀의 율법의 완성이란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 또한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내가 지키는 계명 중에 나도 모르게 남을 어기도록 만드는 것은 어떤 것이 있으며, 고의로 어기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나에게 상처 준 형제자매에게는 고개를 돌리게 되고 말 역시 곱게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 나의 기분을 옆 동료에게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 동료는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았음에도
    상처 받은 나 보다 더 그 형제자매를 싫어하여 멀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랑이 없는 행위야말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안좋은 선입견을 갖게 함으로써 나도 모르
    게 또는 고의로 주님의 계명을 어기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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