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 양자론 ~養子論 Adoptianismus
삼위일체에 대한 교의와 관련해서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우치에 대한 논쟁이 있어 왔다. 이러한 논쟁에 있어서 비잔틴의 테오도레트(Theodoret)는 예수는 단지 하나의 신적인 위격의 현현(顯現)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 때문에 교황 빅토리오 1세는 192년에 테오도레트를 파문시켰다.
교황 제피리노 재임시 아르테마스(Artemas)가 테오도레트와 동일한 견해를 주장하였다. 아울러 안티오키아의 주교였던 바오로 역시 그리스도의 신성을 배척하는 견해를 주장하였다. 즉 바오로는, 예수는 비록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마리아에게서 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예수 안에 내재하는 로고스를 통해 예수는 독특한 은총의 지위를 얻어, 그 결과 하느님으로부터 양자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269년에 개최된 시노드에서 바오로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주교직을 박탈당하고 파문되었다. 하지만 그의 견해와 주장은 4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바오로가 주장했던 이른바 ꡐ그리스도 양자론ꡑ은 교황 하드리아노 1세 재임 중에 다시금 등장하였다. 794년 칼(Karl) 대제는 프랑크푸르트 시노드를 소집했고, 이 시노드가 보편 공의회로 격상되어 인정받기를 원하였다. 성화 공경과 관련된 논쟁을 통해 칼 대제는 교황과 대립하는 태도를 취했고, 제2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인정하기를 거부한 바 있다. 이러한 거부의 배후에는 오역된 문서로 인한 오해가 작용하였다. 794년 개최된 프랑크푸르트 시노드에서 스페인 출신의 두 주교인 톨레도(Toledo)의 엘리판두스(Elipandus)와 우르겔(Urgel)의 펠릭스(Felix)에 의해 ꡐ그리스도 양자론ꡑ은 배척되었다.

■ 그리스도 양자론 ~養子論 Adoptianismus
삼위일체에 대한 교의와 관련해서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우치에 대한 논쟁이 있어 왔다. 이러한 논쟁에 있어서 비잔틴의 테오도레트(Theodoret)는 예수는 단지 하나의 신적인 위격의 현현(顯現)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 때문에 교황 빅토리오 1세는 192년에 테오도레트를 파문시켰다.
교황 제피리노 재임시 아르테마스(Artemas)가 테오도레트와 동일한 견해를 주장하였다. 아울러 안티오키아의 주교였던 바오로 역시 그리스도의 신성을 배척하는 견해를 주장하였다. 즉 바오로는, 예수는 비록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마리아에게서 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예수 안에 내재하는 로고스를 통해 예수는 독특한 은총의 지위를 얻어, 그 결과 하느님으로부터 양자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269년에 개최된 시노드에서 바오로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주교직을 박탈당하고 파문되었다. 하지만 그의 견해와 주장은 4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바오로가 주장했던 이른바 ꡐ그리스도 양자론ꡑ은 교황 하드리아노 1세 재임 중에 다시금 등장하였다. 794년 칼(Karl) 대제는 프랑크푸르트 시노드를 소집했고, 이 시노드가 보편 공의회로 격상되어 인정받기를 원하였다. 성화 공경과 관련된 논쟁을 통해 칼 대제는 교황과 대립하는 태도를 취했고, 제2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인정하기를 거부한 바 있다. 이러한 거부의 배후에는 오역된 문서로 인한 오해가 작용하였다. 794년 개최된 프랑크푸르트 시노드에서 스페인 출신의 두 주교인 톨레도(Toledo)의 엘리판두스(Elipandus)와 우르겔(Urgel)의 펠릭스(Felix)에 의해 ꡐ그리스도 양자론ꡑ은 배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