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품삯을 주시는 선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 <말씀연구> 하느님 나라에서는 소외된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로우심에 참여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시기와 질투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더 많은 공덕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더욱 겸손하게 하느님의 사랑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공덕을 쌓지 못한 이들을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그들 또한 하느님의 자녀이고, 나의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를 일컬어 흔히 “포도원 일꾼의 비유”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내용을 살펴보면 “선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라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같은 선한 포도원 주인…, 그런데 이런 선한 포도원 주인을 어디에 가면 찾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하느님 나라를 “선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통해서 밝혀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일꾼들은 이른 새벽부터 일한 사람, 아침 아홉시부터 일한 사람, 열두시와 오후 세시쯤부터 일한 사람, 그리고 오후 다섯시쯤부터 일한 사람들입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정당한 삯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1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얻으려고 이른 아침에 나갔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품삯을 돈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인력시장에서는 새벽에 노동자들이 이리저리 일거리를 찾아서 모여듭니다. 사무소에 등록을 하고 이리 저리 일이 있는 곳으로 일을 떠납니다. 하루 4만원을 받는다면 5천원은 사무소에 내야 합니다. 그곳에서도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팔레스티나에서는 그런 직업소개소를 차려 놓고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고용할 사람이 오면 간단하게 계약을 한 후 데리고 갑니다. 노동자 측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임금을 요구하고 고용주 측에서는 훨씬 싸게 주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쌍방이 타협하여 대개 시세에 맞는 값으로 계약이 이루어지고 일을 하러 가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노동자의 하루 임금을 1데나리온으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3 아홉 시쯤에 다시 나가서 장터에 할일 없이 서 있는 사람을 보고 4 ‘당신들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 그러면 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소’ 5 하고 말하니 그들도 일하러 갔다. 주인은 열두시와 오후 세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오후 다섯 시쯤에 다시 나가 보니 할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어서 ‘왜 당신들은 하루 종일 이렇게 빈둥거리며 서 있기만 하오?’ 하고 물었다. 7 그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주인은 ‘당신들도 내 포도원으로 가서 일하시오.’하고 말하였다. 포도원이 커서 그랬는지, 일자리가 없어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알아서인지 아직은 정확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포도원 주인은 아홉시에도 열두시와 오후 세시쯤에도,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그렇게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주인이 셈을 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드디어 문제가 발생합니다. 8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차례로 품삯을 치르시오’ 하고 일렀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은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계약을 하고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는 “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품삯 지불 방법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줘서 보냈더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마지막에 일한 사람부터 품삯을 지불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덕에 처음부터 일한 사람은 나중에 일한 사람이 얼마나 타는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불 방법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9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0 그런데 맨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은 품삯을 더 많이 받으려니 했지만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밖에 받지 못하였다. 11 그들은 돈을 받아 들고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12 ‘막판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하고 따졌다. 하루 종일 일 한 사람과 한 시간 일한 사람이 똑같은 품삯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똑같이 주어야 합니까? 아니면 차별을 두어야 합니까? 사실 저라도 기분 나쁘겠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차별대우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서 늦게 온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처음부터 온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다가 점심 먹고 몸이 피곤해지니 일하기도 싫었을 것이고 “시간아 빨리가라….”라는 마음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늦게 온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자신이 일을 하지 못하면 가족들이 굶게 되니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을 했을 것입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일을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 마음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그 마음을. 늦게 입교하여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불타오르는 사람들. 40년 50년 신앙생활 한 사람들보다 더 불태우는 사람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어느 한 순간만을 바라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꾼들이 주어진 시간만큼 일한 것처럼 내게 주어진 시간 전체를 바라볼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강의에 나선 사람들, 자신의 체험을 나눠 주는 사람들. 자기가 전에는 냉담을 했었는데 지금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이렇게 열심해졌습니다….이 말을 듣는 사람 중에는 “나도 지금은 냉담하고 나중에 열심히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그렇습니다. 지금은 학교 생활이 중요하니 학교 생활 열심히 하고 나중에 회개 하고 성당 다니겠습니다. 어른들 중에는, 지금은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니까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나중에 나이들면 다니겠습니다. 그때 열심히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늦게 포도원에 일하러 온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 한지를. 손과 발이 보이지 않도록 그렇게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강사를 선정할 때는 이런 사람을 선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평범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주일 잘 지키고, 레지오도 하고, 선교도 하고…그런데 어느날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부족했던 것이 너무도 많았다는 것을….하느님께서는 이런 체험을 주셨습니다…그래서 지금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강의를 듣는다면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별것 아니었구나”라는 생각만 들지 않을까요? 가득이나 합리화 시키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현대인들에게 조금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분심의 기회가… 13 그러자 주인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보고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오? 당신은 나와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지 않았소? 14 당신의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 만큼의 삯을 주기로 한 것이오. 15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하고 말하였다. 후한 처사에 대한 불만. 하느님의 사랑은 나의 행위의 결과가 아닙니다. 구원은 내가 무엇을 했기에 그 보답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구원하시는 것 입니다. 그분의 은총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총에 보답하기 위해서 나는 손발이 닳도록 하느님께로 향해야 하고, 겸손하게 그분앞에 서야 합니다.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나라면 하느님께서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남이 잘되기를 배 아파하고, 남의 불행을 기뻐한다면 나는 결코 열심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잘 되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16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고용주는 예수님이십니다. 노동자는 하느님께 봉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맨 처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며 마지막 사람은 회개한 죄인들입니다. 포도밭의 일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준비로서 해야 할 선행이며, 데나리온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불평은 어제까지 죄인이었던 세리나 창녀나 이방인들이 너그럽게도 하늘 나라에 들어 가는 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투입니다. 이 비유는 죄인과 회개하는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가르치는 것 입니다. 자만심에 우쭐거리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정의와 율법에 평생을 바쳤다고 자랑하고 죄인에 대한 예수님의 자비를 멸시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 때문에 그들은 처음 부르심을 받았으면서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격(데나리온)조차 잃을지도 모릅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멸망이 아닙니다. 바로 죄인과 이방인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인 것입니다. 이 자비에 힘입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고 배아파 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내가 잘 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함께 나눠 봅시다. 2. 착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들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무엇입니까? 루실라: 착한 포도원의 넉넉한 마음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는 아침입니다. 멋진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08/20-07:35] 이 헬레나: 알겠습니다! 열심하지않으면서 핑계를 대며 봉사하지않는 신앙인이 되지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복음강론은 저에게 그동안에 가졌던 선입견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서공부를 열심히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되니 신부님의 강론이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시니 감사할따름입니다 항상 저희들에게 강론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깨우쳐주시는 신부님께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 [08/20-09:24]
똑같은 품삯을 주시는 선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
<말씀연구>
하느님 나라에서는 소외된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로우심에 참여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시기와 질투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더 많은 공덕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더욱 겸손하게 하느님의 사랑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공덕을 쌓지 못한 이들을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그들 또한 하느님의 자녀이고, 나의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를 일컬어 흔히 “포도원 일꾼의 비유”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내용을 살펴보면 “선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라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같은 선한 포도원 주인…, 그런데 이런 선한 포도원 주인을 어디에 가면 찾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하느님 나라를 “선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통해서 밝혀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일꾼들은 이른 새벽부터 일한 사람, 아침 아홉시부터 일한 사람, 열두시와 오후 세시쯤부터 일한 사람, 그리고 오후 다섯시쯤부터 일한 사람들입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정당한 삯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1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얻으려고 이른 아침에 나갔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품삯을 돈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인력시장에서는 새벽에 노동자들이 이리저리 일거리를 찾아서 모여듭니다. 사무소에 등록을 하고 이리 저리 일이 있는 곳으로 일을 떠납니다. 하루 4만원을 받는다면 5천원은 사무소에 내야 합니다. 그곳에서도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팔레스티나에서는 그런 직업소개소를 차려 놓고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고용할 사람이 오면 간단하게 계약을 한 후 데리고 갑니다. 노동자 측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임금을 요구하고 고용주 측에서는 훨씬 싸게 주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쌍방이 타협하여 대개 시세에 맞는 값으로 계약이 이루어지고 일을 하러 가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노동자의 하루 임금을 1데나리온으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3 아홉 시쯤에 다시 나가서 장터에 할일 없이 서 있는 사람을 보고 4 ‘당신들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 그러면 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소’ 5 하고 말하니 그들도 일하러 갔다. 주인은 열두시와 오후 세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오후 다섯 시쯤에 다시 나가 보니 할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어서 ‘왜 당신들은 하루 종일 이렇게 빈둥거리며 서 있기만 하오?’ 하고 물었다. 7 그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주인은 ‘당신들도 내 포도원으로 가서 일하시오.’하고 말하였다.
포도원이 커서 그랬는지, 일자리가 없어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알아서인지 아직은 정확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포도원 주인은 아홉시에도 열두시와 오후 세시쯤에도,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그렇게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주인이 셈을 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드디어 문제가 발생합니다.
8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차례로 품삯을 치르시오’ 하고 일렀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은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계약을 하고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는 “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품삯 지불 방법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줘서 보냈더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마지막에 일한 사람부터 품삯을 지불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덕에 처음부터 일한 사람은 나중에 일한 사람이 얼마나 타는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불 방법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9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0 그런데 맨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은 품삯을 더 많이 받으려니 했지만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밖에 받지 못하였다. 11 그들은 돈을 받아 들고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12 ‘막판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하고 따졌다.
하루 종일 일 한 사람과 한 시간 일한 사람이 똑같은 품삯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똑같이 주어야 합니까? 아니면 차별을 두어야 합니까? 사실 저라도 기분 나쁘겠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차별대우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서 늦게 온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처음부터 온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다가 점심 먹고 몸이 피곤해지니 일하기도 싫었을 것이고 “시간아 빨리가라….”라는 마음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늦게 온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자신이 일을 하지 못하면 가족들이 굶게 되니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을 했을 것입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일을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 마음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그 마음을.
늦게 입교하여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불타오르는 사람들. 40년 50년 신앙생활 한 사람들보다 더 불태우는 사람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어느 한 순간만을 바라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꾼들이 주어진 시간만큼 일한 것처럼 내게 주어진 시간 전체를 바라볼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강의에 나선 사람들, 자신의 체험을 나눠 주는 사람들. 자기가 전에는 냉담을 했었는데 지금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이렇게 열심해졌습니다….이 말을 듣는 사람 중에는 “나도 지금은 냉담하고 나중에 열심히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그렇습니다. 지금은 학교 생활이 중요하니 학교 생활 열심히 하고 나중에 회개 하고 성당 다니겠습니다. 어른들 중에는, 지금은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니까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나중에 나이들면 다니겠습니다. 그때 열심히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늦게 포도원에 일하러 온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 한지를. 손과 발이 보이지 않도록 그렇게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강사를 선정할 때는 이런 사람을 선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평범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주일 잘 지키고, 레지오도 하고, 선교도 하고…그런데 어느날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부족했던 것이 너무도 많았다는 것을….하느님께서는 이런 체험을 주셨습니다…그래서 지금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강의를 듣는다면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별것 아니었구나”라는 생각만 들지 않을까요? 가득이나 합리화 시키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현대인들에게 조금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분심의 기회가…
13 그러자 주인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보고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오? 당신은 나와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지 않았소? 14 당신의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 만큼의 삯을 주기로 한 것이오. 15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하고 말하였다.
후한 처사에 대한 불만. 하느님의 사랑은 나의 행위의 결과가 아닙니다. 구원은 내가 무엇을 했기에 그 보답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구원하시는 것 입니다. 그분의 은총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총에 보답하기 위해서 나는 손발이 닳도록 하느님께로 향해야 하고, 겸손하게 그분앞에 서야 합니다.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나라면 하느님께서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남이 잘되기를 배 아파하고, 남의 불행을 기뻐한다면 나는 결코 열심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잘 되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16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고용주는 예수님이십니다. 노동자는 하느님께 봉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맨 처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며 마지막 사람은 회개한 죄인들입니다. 포도밭의 일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준비로서 해야 할 선행이며, 데나리온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불평은 어제까지 죄인이었던 세리나 창녀나 이방인들이 너그럽게도 하늘 나라에 들어 가는 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투입니다.
이 비유는 죄인과 회개하는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가르치는 것 입니다. 자만심에 우쭐거리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정의와 율법에 평생을 바쳤다고 자랑하고 죄인에 대한 예수님의 자비를 멸시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 때문에 그들은 처음 부르심을 받았으면서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격(데나리온)조차 잃을지도 모릅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멸망이 아닙니다. 바로 죄인과 이방인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인 것입니다. 이 자비에 힘입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고 배아파 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내가 잘 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함께 나눠 봅시다.
2. 착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들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때는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서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일한 사람은 주인과 계약한 그 약속 대로 받았기 때문이고 나중에 온 사람들은 서로 차이는 있지만 모두 후한 임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감사해야 할 사람은 있어도 투정해야 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경우 가장 일찍온 사람이 투덜 댈 수는 있습니다. 마는 자신의 정당한 댓가에 만족하고 뒤에 온 사람들의 후한 대접에 박수를 보낸다면 그 사람은 포도원 주인에게서 임금 차이 이상의 대접이나 더 큰 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그 농장의 감독을 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러고보니 먼저 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 공로를 쌓을 수 있는 기회
세상살이가 어찌보면 많이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세상에서 보속을 한 사람은 천국이 가깝다는 논리와 함께 생각하면 억울할 일이 없겠지요? 비슷한 경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인데 내가 아침부터 일을 한 일꾼이라면 주저없이 포도원 주인에게 달려가 따졌을 것이고 그 것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는 파업을 주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헬레나: 요셉피나형님께서 함께 묵상해주시니 기쁘네요 며칠동안 형님의 묵상글이 보이지않아 섭섭했거든요 깊은 묵상에 감사드리구요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하느님안에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08/20-08:42]
루실라: 저도 그런 생각이 들곤해요 인간의 잣대로 보면 세상이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것 같은 것… 그러나 주님의 잣대로 보면 지극히 공평하다는 것을 우리모두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한 날 되시길^^ [08/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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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
오늘의 묵상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때는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서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일한 사람은 주인과 계약한 그 약속 대로 받았기 때문이고
나중에 온 사람들은 서로 차이는 있지만 모두 후한 임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감사해야 할 사람은 있어도 투정해야 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경우 가장 일찍온 사람이 투덜 댈 수는 있습니다.
마는 자신의 정당한 댓가에 만족하고
뒤에 온 사람들의 후한 대접에 박수를 보낸다면
그 사람은 포도원 주인에게서 임금 차이 이상의 대접이나 더 큰 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그 농장의 감독을 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러고보니 먼저 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 공로를 쌓을 수 있는 기회
세상살이가 어찌보면 많이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세상에서 보속을 한 사람은 천국이 가깝다는 논리와 함께 생각하면 억울할 일이 없겠지요?
비슷한 경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인데
내가 아침부터 일을 한 일꾼이라면 주저없이 포도원 주인에게 달려가 따졌을 것이고
그 것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는 파업을 주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동안 형님의 묵상글이 보이지않아 섭섭했거든요
깊은 묵상에 감사드리구요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하느님안에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08/20-08:42]
오늘의 묵상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때는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서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일한 사람은 주인과 계약한 그 약속 대로 받았기 때문이고
나중에 온 사람들은 서로 차이는 있지만 모두 후한 임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감사해야 할 사람은 있어도 투정해야 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경우 가장 일찍온 사람이 투덜 댈 수는 있습니다.
마는 자신의 정당한 댓가에 만족하고
뒤에 온 사람들의 후한 대접에 박수를 보낸다면
그 사람은 포도원 주인에게서 임금 차이 이상의 대접이나 더 큰 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그 농장의 감독을 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러고보니 먼저 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 공로를 쌓을 수 있는 기회
세상살이가 어찌보면 많이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세상에서 보속을 한 사람은 천국이 가깝다는 논리와 함께 생각하면 억울할 일이 없겠지요?
비슷한 경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인데
내가 아침부터 일을 한 일꾼이라면 주저없이 포도원 주인에게 달려가 따졌을 것이고
그 것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는 파업을 주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동안 형님의 묵상글이 보이지않아 섭섭했거든요
깊은 묵상에 감사드리구요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하느님안에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08/20-0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