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연중 제26주간 금요일(10/03)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 ◎ 알렐루야.
    복음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3-16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코라진아, 너는 화를 입으리라. 베싸이다야, 너도 화를 입으리라. 너희에게 행한 기적들을 띠로와 시돈에게 보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앉아서 재를 들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심판날에 띠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것 같으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꾸짖으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배척하는 사람은 나를 배척하는 사람이며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참된 삶을 -갓등 중창단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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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너희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배척하는 사람은 나를 배척하는 사람이며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맞아요, 예수님!
    길은 하나입니다.
    아버지께 다다르는 길은 하나입니다.

    아버지께서 마련하시고
    예수님께서 걸으시고
    기도하는 영혼, 삶으로 살아내는 영혼들이 흔적 남기며 따라간 길.

    그 길을 알고 따라 걷는 이들을 보고도 함께 가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몸소 걸으시며 보여주신 길에 들어서지 않는다면,
    아버지께서 그토록 오래전에 마련해 놓으신 하나뿐인 그 길을 걷지 않는다면,
    아버지께 다다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니, 그 길안에서 우리에게 오시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내 앞에 수많은 길들이 놓여 있지만,
    수많은 길에서 어서 들어서라 재촉하지만,

    길은 하나입니다.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길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
    기도하는 영혼, 삶으로 살아내는 영혼들이 따라 걷는 길

    맞아요, 예수님!
    걸어야 할 길은 하나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가 걷기를 바라시는 그 길, 그 하나.

    예수님!
    저의 발이 어느쪽을 향하고 있습니까?
    저의 발길을 아버지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211.58.144.13 이 헬레나: 우리모두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길을 따라 가야겠지요
    감사합니다 좋은 묵상해주심에……….
    휴일 잘 보내세요 [10/03-00:04]

  2. user#0 님의 말:

    >”너희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배척하는 사람은 나를 배척하는 사람이며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맞아요, 예수님!
    길은 하나입니다.
    아버지께 다다르는 길은 하나입니다.

    아버지께서 마련하시고
    예수님께서 걸으시고
    기도하는 영혼, 삶으로 살아내는 영혼들이 흔적 남기며 따라간 길.

    그 길을 알고 따라 걷는 이들을 보고도 함께 가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몸소 걸으시며 보여주신 길에 들어서지 않는다면,
    아버지께서 그토록 오래전에 마련해 놓으신 하나뿐인 그 길을 걷지 않는다면,
    아버지께 다다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니, 그 길안에서 우리에게 오시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내 앞에 수많은 길들이 놓여 있지만,
    수많은 길에서 어서 들어서라 재촉하지만,

    길은 하나입니다.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길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
    기도하는 영혼, 삶으로 살아내는 영혼들이 따라 걷는 길

    맞아요, 예수님!
    걸어야 할 길은 하나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가 걷기를 바라시는 그 길, 그 하나.

    예수님!
    저의 발이 어느쪽을 향하고 있습니까?
    저의 발길을 아버지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211.58.144.13 이 헬레나: 우리모두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길을 따라 가야겠지요
    감사합니다 좋은 묵상해주심에……….
    휴일 잘 보내세요 [10/03-00:04]

  3. user#0 님의 말: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개신교신자들이 전교할 때 예수님을 믿으면 천당가고
    믿지않으면 지옥에 간다고하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서 나쁜짓을 해도 천당을 간다면
    타종교인들이나 착하게 살은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을 간다는 말인지…….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세레를 받기만하면
    천당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하느님나라에 들어갈수 있다고 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천당을 갈수 있는 것은 우리의 판단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 갈수 있는 곳이아닌가 하는 생각이 ……
    하느님을 믿는 다고 세례를 받은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라는 특권을 받은 우리가 그 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 내 뜻대로 살면서 외인들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면 오히려 하느님께서 그들보다 더 큰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이유 하나로 교만에 빠져 그분의 뜻을 따라
    살지않을때 하느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더 큰 죄를
    짓는다는 사실에 두려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제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삶이 신자로써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게 되니
    복음을 묵상하는이 순간 하느님의 뜻을따라 그 분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비록 지킬수 없는 다짐이라할지라도

    이 순간만은 ……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이 성서말씀을 묵상하며

     좋은 하루 되세요

    내 평생에 가는 길

  4. user#0 님의 말: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개신교신자들이 전교할 때 예수님을 믿으면 천당가고
    믿지않으면 지옥에 간다고하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서 나쁜짓을 해도 천당을 간다면
    타종교인들이나 착하게 살은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을 간다는 말인지…….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세레를 받기만하면
    천당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하느님나라에 들어갈수 있다고 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천당을 갈수 있는 것은 우리의 판단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 갈수 있는 곳이아닌가 하는 생각이 ……
    하느님을 믿는 다고 세례를 받은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라는 특권을 받은 우리가 그 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 내 뜻대로 살면서 외인들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면 오히려 하느님께서 그들보다 더 큰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이유 하나로 교만에 빠져 그분의 뜻을 따라
    살지않을때 하느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더 큰 죄를
    짓는다는 사실에 두려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제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삶이 신자로써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게 되니
    복음을 묵상하는이 순간 하느님의 뜻을따라 그 분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비록 지킬수 없는 다짐이라할지라도

    이 순간만은 ……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이 성서말씀을 묵상하며

     좋은 하루 되세요

    내 평생에 가는 길

  5. user#0 님의 말:

    †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동안 주위사람들에게 나만 베풀며 살았다는 착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것이 불과 얼마 안되지만 지금이라도
    깨우쳐서 그나마 ‘나’가 아닌 다른이를 한번쯤 생각해 볼 수있는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나를 위해 얻는 기쁨과 행복보다는 남을 위할때
    느끼는 행복과 기쁨을 느끼며 살겠습니다.
    나보다는 우리를 더 사랑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211.58.144.13 이 헬레나: 오늘아침 눈을뜨고 처음으로 읽어보는 글이 이렇게 기쁨을 주는 내용
    이라는 사실에 기쁘네요
    감사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자매님의 글을 읽으며
    저도 용기를 내어봅니다
    저도 나보다는 우리를 더 사랑하며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해요 [10/03-06:46]

  6. user#0 님의 말:

    †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동안 주위사람들에게 나만 베풀며 살았다는 착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것이 불과 얼마 안되지만 지금이라도
    깨우쳐서 그나마 ‘나’가 아닌 다른이를 한번쯤 생각해 볼 수있는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나를 위해 얻는 기쁨과 행복보다는 남을 위할때
    느끼는 행복과 기쁨을 느끼며 살겠습니다.
    나보다는 우리를 더 사랑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211.58.144.13 이 헬레나: 오늘아침 눈을뜨고 처음으로 읽어보는 글이 이렇게 기쁨을 주는 내용
    이라는 사실에 기쁘네요
    감사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자매님의 글을 읽으며
    저도 용기를 내어봅니다
    저도 나보다는 우리를 더 사랑하며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해요 [10/03-06:46]

  7. user#0 님의 말:

    ”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어제는 복음묵상을 하는데 딸아이가 숙제라며 “야곱”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여
    사이버성당 성서 자료실에 있는 “야곱”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주었더니 교수님이
    목사님이라 성서에 대해 잘 알고 계시기에 고민했는데 사이버성당 자료실에 성서에
    대한 모든 것이 자세하게 있어 기쁘고 무엇보다 교수님께서 성서에 대한 숙제를 많이
    내주시는데 사이버성당에 모든 자료가 있어 안심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하신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행동으로 실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보다 미운사람이 더 생각이 나니…
    모든 잘못을 남에게 돌리며 상처받았다고 아파하는 자신의 모습이 우숩기도 합니다
    저의 그런 마음모두가 사랑이 없음을 깨달으면서도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복음을 묵상하려니
    “주 예수 따르기로” 성가가 생각이 납니다

    “주 예수 따르기로 나 약속했으니
    내 친구 되신 주여 늘 함께 하소서
    주 함께 계시오면 나 든든 하옵고
    주 나를 이끄시면 바른 길 가리다“
    아멘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써 몸과 마음이 건강한 신앙인이 되야 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주 하느님, 이 몸을 주님의 것이라 불러 주셨기에, 주님의 말씀이
    그렇게도 기쁘고 마음이 흐뭇하기만 하였나이다 (예레15,16)

    ”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묵상하며

  8. user#0 님의 말:

    ”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어제는 복음묵상을 하는데 딸아이가 숙제라며 “야곱”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여
    사이버성당 성서 자료실에 있는 “야곱”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주었더니 교수님이
    목사님이라 성서에 대해 잘 알고 계시기에 고민했는데 사이버성당 자료실에 성서에
    대한 모든 것이 자세하게 있어 기쁘고 무엇보다 교수님께서 성서에 대한 숙제를 많이
    내주시는데 사이버성당에 모든 자료가 있어 안심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하신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행동으로 실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보다 미운사람이 더 생각이 나니…
    모든 잘못을 남에게 돌리며 상처받았다고 아파하는 자신의 모습이 우숩기도 합니다
    저의 그런 마음모두가 사랑이 없음을 깨달으면서도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복음을 묵상하려니
    “주 예수 따르기로” 성가가 생각이 납니다

    “주 예수 따르기로 나 약속했으니
    내 친구 되신 주여 늘 함께 하소서
    주 함께 계시오면 나 든든 하옵고
    주 나를 이끄시면 바른 길 가리다“
    아멘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써 몸과 마음이 건강한 신앙인이 되야 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주 하느님, 이 몸을 주님의 것이라 불러 주셨기에, 주님의 말씀이
    그렇게도 기쁘고 마음이 흐뭇하기만 하였나이다 (예레15,16)

    ”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곧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묵상하며

  9. user#0 님의 말:

     

    나를 물리치는 사람은 나를 파견하신 분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말씀연구>

    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올바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신 동네에서 회개하지 않으시므로 동네들을 꾸짖으십니다. 이 꾸짖으심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과연 내가 심판받을 때 어떤 심판을 받게 될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받아들인 다면 나는 심판 때 커다란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3  “불행하다, 너 코라진아! 불행하다, 너 베싸이다야! 사실 너희 가운데서 행한 기적들을 띠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벌써 자루와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했을 것이다. 14  심판 때에 띠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더 수월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특혜를 받고 있던 코라진, 베싸이다, 가파르나움 등의 도시들을, 옛날부터 저주받은 도시의 대표로 여겨지는 띠로와 시돈과 소돔에 대조시키십니다. 팔레스티나의 북쪽 지방에 있는 띠로와 시돈이라는 이방인 도시들은 교만과 사치스러운 부의 표본으로 예언서에 잘 나오는 도시들입니다. 띠로와 시돈은 이교인의 동네로서 유다인들은 이 동네들을 세속적인 관심사에 완전히 빠져 버린 곳으로 간주하였으며 갈릴래야의 다른 동네들이 받은 은총을 받지 못한 곳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이 두 동네를 방문하여 은총을 베푸셨다면 그들은 베옷을 걸치고 재를 뒤집어 쓴 채 회개하였을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음탕하고 악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지구상에서 지워져 버렸습니다. 만일 이방인 도시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더라면 틀림없이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소돔도 예수님의 위대한 능력을 목격했더라면 틀림없이 오늘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코라진은 델 훔으로부터 북쪽 4키로 지점에 있는 킬벳트 게라제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지금도 유다인회당의 유적이 있습니다.

    베싸이다는 요르단강이 티베리아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에서 동쪽 2키로, 현재의 엘 아라디에 있었다고 합니다. 필립보 분국왕이 이와 똑같은 이름의 도시를 세워 아우구스토 황제의 공주 유리아의 이름을 기념하여 베싸이다 유리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 유적은 엘 아라디의 북쪽 2키로, 에도 텔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심판 날에 분명히 밝혀질 것입니다. 은총은 모든 사람들에게, 도시 전체에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민 전체가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고 계십니다. 물론 인격적인 만남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것은 항상 개인이며, 그가 신앙에 이르는 것도 개인으로서 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서로를 위해 있는 것이며 서로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베옷을 입고 앉아서 재를 들쓰고 있다는 것은 회개의 가장 뚜렷한 징표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초자연적 보증인 기적을 보았다면 믿고 회개를 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코라진다 베싸이다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15  그리고 너 가파르나움아, 하늘에라도 오를 성싶으냐?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가파르나눔의 회당과 율법학자의 학교는 상당히 유명했습니다. 더욱 이 사회 출신들이, 유난히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학교에서 수업하지 않은 목수의 아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그들은 교만에 가득 차서 예수님의 업적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더라면 소돔도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파르나움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실로 정식적 소경의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은 적중하여 현대의 고고학자가 이 도읍의 폐허는 물론, 일찍이 존재하고 있던 장소조차 알아내지 못할 만큼 멸망하였습니다.


    16  “여러분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것이요, 여러분을 물리치는 사람은 나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물리치는 사람은 나를 파견하신 분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파견받은 사람들은 자기들을 파견한 사람을 대신합니다. 사자들과 함께 오시는 분은 예수님 자신이며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이오십니다. 사자들의 말을 환영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환영하거나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느님께서 친히 하시는 말씀을 환영하거나 배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그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그 말씀을 경멸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형제 하나를 물리치는 것은 예수님을 물리치는 것이요,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형제 하나가 나에게 신앙생활을 권면하고 이끌어 주려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결국 구원을 거절하는 것과 같은 것이요, 파멸을 선택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우리가 저지르기 쉬운 죄 중의 하나가 바로 불신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어느 순간 교만에 가득 차서 하느님께 반항을 하게 되고, 그분을 믿고 따르기 보다는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 그래서 결국 하느님을 거부하게 되는, 아니 하느님을 거부하고 있다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내 마음은 어떻습니까?


    2.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내 곁에는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신 사람입니까? 그리고 나는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10. user#0 님의 말:

     

    나를 물리치는 사람은 나를 파견하신 분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말씀연구>

    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올바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신 동네에서 회개하지 않으시므로 동네들을 꾸짖으십니다. 이 꾸짖으심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과연 내가 심판받을 때 어떤 심판을 받게 될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받아들인 다면 나는 심판 때 커다란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3  “불행하다, 너 코라진아! 불행하다, 너 베싸이다야! 사실 너희 가운데서 행한 기적들을 띠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벌써 자루와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했을 것이다. 14  심판 때에 띠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더 수월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특혜를 받고 있던 코라진, 베싸이다, 가파르나움 등의 도시들을, 옛날부터 저주받은 도시의 대표로 여겨지는 띠로와 시돈과 소돔에 대조시키십니다. 팔레스티나의 북쪽 지방에 있는 띠로와 시돈이라는 이방인 도시들은 교만과 사치스러운 부의 표본으로 예언서에 잘 나오는 도시들입니다. 띠로와 시돈은 이교인의 동네로서 유다인들은 이 동네들을 세속적인 관심사에 완전히 빠져 버린 곳으로 간주하였으며 갈릴래야의 다른 동네들이 받은 은총을 받지 못한 곳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이 두 동네를 방문하여 은총을 베푸셨다면 그들은 베옷을 걸치고 재를 뒤집어 쓴 채 회개하였을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음탕하고 악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지구상에서 지워져 버렸습니다. 만일 이방인 도시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더라면 틀림없이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소돔도 예수님의 위대한 능력을 목격했더라면 틀림없이 오늘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코라진은 델 훔으로부터 북쪽 4키로 지점에 있는 킬벳트 게라제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지금도 유다인회당의 유적이 있습니다.

    베싸이다는 요르단강이 티베리아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에서 동쪽 2키로, 현재의 엘 아라디에 있었다고 합니다. 필립보 분국왕이 이와 똑같은 이름의 도시를 세워 아우구스토 황제의 공주 유리아의 이름을 기념하여 베싸이다 유리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 유적은 엘 아라디의 북쪽 2키로, 에도 텔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심판 날에 분명히 밝혀질 것입니다. 은총은 모든 사람들에게, 도시 전체에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민 전체가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고 계십니다. 물론 인격적인 만남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것은 항상 개인이며, 그가 신앙에 이르는 것도 개인으로서 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서로를 위해 있는 것이며 서로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베옷을 입고 앉아서 재를 들쓰고 있다는 것은 회개의 가장 뚜렷한 징표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초자연적 보증인 기적을 보았다면 믿고 회개를 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코라진다 베싸이다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15  그리고 너 가파르나움아, 하늘에라도 오를 성싶으냐?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가파르나눔의 회당과 율법학자의 학교는 상당히 유명했습니다. 더욱 이 사회 출신들이, 유난히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학교에서 수업하지 않은 목수의 아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그들은 교만에 가득 차서 예수님의 업적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더라면 소돔도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파르나움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실로 정식적 소경의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은 적중하여 현대의 고고학자가 이 도읍의 폐허는 물론, 일찍이 존재하고 있던 장소조차 알아내지 못할 만큼 멸망하였습니다.


    16  “여러분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것이요, 여러분을 물리치는 사람은 나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물리치는 사람은 나를 파견하신 분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파견받은 사람들은 자기들을 파견한 사람을 대신합니다. 사자들과 함께 오시는 분은 예수님 자신이며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이오십니다. 사자들의 말을 환영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환영하거나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느님께서 친히 하시는 말씀을 환영하거나 배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그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그 말씀을 경멸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형제 하나를 물리치는 것은 예수님을 물리치는 것이요,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형제 하나가 나에게 신앙생활을 권면하고 이끌어 주려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결국 구원을 거절하는 것과 같은 것이요, 파멸을 선택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우리가 저지르기 쉬운 죄 중의 하나가 바로 불신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어느 순간 교만에 가득 차서 하느님께 반항을 하게 되고, 그분을 믿고 따르기 보다는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 그래서 결국 하느님을 거부하게 되는, 아니 하느님을 거부하고 있다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내 마음은 어떻습니까?


    2.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내 곁에는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신 사람입니까? 그리고 나는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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