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 길을 가야만 한다.
참으로 멋진 말씀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부나 변함없이 자신의 일을 하시는 예수님. 나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해야 합니다. 변함없이 예수님을 향하고,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하고, 변함없이 내 일을 하는 것. 나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31 바로 그 시각에 몇몇 바리사이가 다가와서 예수께 “여기서 떠나가시오. 헤로데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일렀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와 요르단 강 동쪽 베레아 지방에 포함된 헤로데 안티파스(기원전 4년-기원후 39년)의 영토를 여행하고 계셨습니다. 헤로데에게는 예수님의 전도 활동이 골칫거리였을 것입니다. 헤로데는 예수님께서 자기 신하들을 선동할까 두려웠을 것입니다. 군중을 선통하여 폭동을 일으킬까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자기 영토 밖으로 내쫓고 싶어했습니다. 예수님을 쫓아내면 로마인들과 대립하지 않아도 되고, 군중의 술렁거림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몇몇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헤로데의 사람들로서 “나가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2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들을 쫓아내며 질병들을 다 고쳐 주고 사흘째는 내 (모든 것이) 끝난다.
예수님의 여행은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헤로데는 예수님의 활동을 정치적 모험으로, 그리고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교활함과 비열함을 모두 갖춘 한 마리 여우였습니다. 여우는 밤에는 은밀하게 도둑질을 하러 나가고 낮이 되어 위험할 때면 굴속에 숨습니다. 헤로데는 어떠한 찬성이나 반대의 입장도 취하지 않고 교활하게 예수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였으며, 이 점에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헤로데는 예수님의 생명이 마치 자기 손에 달린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결정하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오늘과 내일”은 앞으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그분의 사랑의 사업의 기간입니다. 사흘째 되는 날은 아버지께서 정하신 그분의 죽음의 날입니다. 이 사흘째 되는 날이 바로 예수님의 목적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활동은 이제 잠깐 동안만 계속될 것입니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만 한다. 예언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큰 사업을 다하시려고 마련된 기간 동안 동네와 마을에서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계속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가 두려워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도록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것입니다. 이 도시는 예언자를 죽이는 도성이라는 무서운 평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뛰어난 예언자이신 예수님께서도 그곳에서 죽어야만 하십니다.
우리는 호세아 예언서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틀이 멀다 하고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리니 우리 다 야훼 앞에서 복되게 살리라(호세6,2)” 이것은 예언자 호세아가 동족 에브라임과 유다의 입을 빌어 부른 참회의 노래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그 예언자는 그들에게 닥친 국가적 재난에서 하느님의 징벌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이 그들 모두에게 새 생명을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신비스러운 말씀은 예언자의 이 말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그 경우라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죽은 이들로부터의 당신의 부활을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하시게 될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그 죽음에 이어 예수님의 부활과 영광스럽게 되심이 따를 것 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그 모든 것, 하느님 백성의 전 역사는 이 “사흘째 되는 날”을 구속의 날로 고대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부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여행은 구원사의 과정에서 하느님이 하신 모든 약속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 것아!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식들을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이제 너희 집은 너희에게 버려 둔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을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죄, 즉 하느님을 거부하는 역사가 이제 그 정점에 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자녀들, 즉 온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하느님의 보호 아래 두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새로운 말씀을 전하고자 하셨을 때,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와 그들이 누리는 특권을 빙자하여 오만하게도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은 안전하다고 느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로부터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사자들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았고, 그들의 지도를 거부하였기에 파멸하고 말 것 입니다. 예루살렘의 위대함과 영광은 하느님께서 그 도시를 당신 거처로 삼으신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위대한 영광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도시에서 사형에 처해지셨을 때, 그 곳에는 재난이 닥쳤습니다. 그들을 보호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철회되었으며, 예루살렘은 그 주민들에게 내맡겨졌습니다. 파멸이 예루살렘의 종말입니다. 예수림께서 예루살렘에서 겪으신 최후는 또한 예루살렘의 최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또한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예레미야12,7)이 이루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멸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멸망했다고 해서 구원에서 영원히 제외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회개하고 찬미를 드린다면 구원에 초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축복 받으소서’ 하고 너희가 말할 [그 때가 오기]까지 너희는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은 오시기로 되어 있는 바로 그분이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축복 받으소서”라고 축복의 인사를 해야 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재림)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축복 받으소서”라고 고백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예수님을 뵙고 그렇게 말씀드렸다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바로 회개의 때이고, 지금이 바로 구원의 때이기에 그렇습니다. 지금 준비하지 않고, 지금 구원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때에 가서(재림)는 아무리 내가 주님을 메시아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늦는다는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해야 될 것은 무엇이며,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살아오면서 나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다가온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루실라: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제가 해야 할 일은 직장공동체 형제자매님들께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의 집에 우리 함께 손잡고 가자고 그렇게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전하렵니다. [10/30-14:31]

(주님! 제가 지금 이자리에 이렇게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온전히 당신께 의탁하오니 당신 뜻대로 저를 이끄소서…)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 길을 가야만 한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 중에 당신의 계획 밖의 일은 없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어떠한 일도 당신의 메세지를 담지 않는 그것은 없습니다.
내게 행하시는 모든 일들은 당신께서 한없이 사랑하시는 나를
위해 하시는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이 부활을 위함이듯이
나에게 주시는 어떠한 고통도 수난도 당신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오늘도 멈춤이 없이 나는 나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발걸음만 옮겨 놓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죄감각이 얼마나 무디어졌는지…
어지간해서는 골수에 사무친 악습이 바뀔 수 없습니다.
아니 나의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합니다.
무딜대로 무디어진 저의 의식은 깨어날 줄 모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소서
.
제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이제 비로소 어렴풋이 저는 느낍니다.
저의 죄를 깨닫게 하시려고 애꿋은 제 옆사람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사람을 축복하시고 당신의 도구로 써주십시요.
제가 새사람으로 당신께 가까이 걸어갈 수 있도록 은총베푸시고
우리가 함께 당신의 집에 들어 갈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당신이 주신 그 수난이 얼마나 큰 당신의 사랑의 표현인지 깨달을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으로 가득할 수 있음은 분명 당신 사랑의 힘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 길을 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오늘이 어제의 그것이 아니라 새로운 오늘이게 하시고
내일 또한 다시 새로운 날이게 하소서 -아멘-
그동안 자매님 묵상글이 없어 섭섭했었는데 다시 볼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늘 저희와 함께하여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주님의 은총 자매님의 가정에 충만하시도록 기도합니다 [10/30-14:16]
(주님! 제가 지금 이자리에 이렇게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온전히 당신께 의탁하오니 당신 뜻대로 저를 이끄소서…)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 길을 가야만 한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 중에 당신의 계획 밖의 일은 없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어떠한 일도 당신의 메세지를 담지 않는 그것은 없습니다.
내게 행하시는 모든 일들은 당신께서 한없이 사랑하시는 나를
위해 하시는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이 부활을 위함이듯이
나에게 주시는 어떠한 고통도 수난도 당신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오늘도 멈춤이 없이 나는 나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발걸음만 옮겨 놓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죄감각이 얼마나 무디어졌는지…
어지간해서는 골수에 사무친 악습이 바뀔 수 없습니다.
아니 나의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합니다.
무딜대로 무디어진 저의 의식은 깨어날 줄 모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소서
.
제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이제 비로소 어렴풋이 저는 느낍니다.
저의 죄를 깨닫게 하시려고 애꿋은 제 옆사람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사람을 축복하시고 당신의 도구로 써주십시요.
제가 새사람으로 당신께 가까이 걸어갈 수 있도록 은총베푸시고
우리가 함께 당신의 집에 들어 갈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당신이 주신 그 수난이 얼마나 큰 당신의 사랑의 표현인지 깨달을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으로 가득할 수 있음은 분명 당신 사랑의 힘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 길을 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오늘이 어제의 그것이 아니라 새로운 오늘이게 하시고
내일 또한 다시 새로운 날이게 하소서 -아멘-
그동안 자매님 묵상글이 없어 섭섭했었는데 다시 볼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늘 저희와 함께하여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주님의 은총 자매님의 가정에 충만하시도록 기도합니다 [10/30-14:16]
1.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해야 될 것은 무엇이며,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살아오면서 나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다가온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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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의 시작기도
사랑이신 주님! 오늘 하루를 저희에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 제게 맡기신 이 일들을 축복해 주시고 제가 당신 뜻대로 이일들을 행하고 먼저 사랑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그리고 제눈으로 일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당신의 뜻 안에서 제가 한 일들을 돌아보게 하시며 바로 이 일들이 당신 창조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일들임을 깨닫게 해 주소서.
또한 이곳 동료들이 당신 안에 한 형제 자매임을 깨달아 주님을 섬기듯 사랑으로 서로 섬길 수 있는 은총을 주시고 일의 어려윰과 버거움으로 지칠 때라도 행여 서로 상처가 되는 말과 행위를 삼가하여 기도와 위로로 이들을 대할 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
그리하여 온전히 당신께 바치는 제 하루의 삶이 당신의 사랑과 영광이 드러나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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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회사 밀알회에서 주신 기도문이에요.. 그 의미가 참 좋아서 일과 시작전에 기도하곤 합니다.
이 기도문이 오늘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질문의 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소중히 여기고 기도하는 맘으로 열심히 일 한다면 그 것 역시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것 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내 이웃이고 넓게 보아서는 직장 동료도 될 수 있겠지요. 같이 어우러지면서 화합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저의 큰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해야할 나의 일이 있습니다. 그 일들이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되지 않고 그 안에서 보람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회 초년병 올림..^^
1.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해야 될 것은 무엇이며,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살아오면서 나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다가온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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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의 시작기도
사랑이신 주님! 오늘 하루를 저희에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 제게 맡기신 이 일들을 축복해 주시고 제가 당신 뜻대로 이일들을 행하고 먼저 사랑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그리고 제눈으로 일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당신의 뜻 안에서 제가 한 일들을 돌아보게 하시며 바로 이 일들이 당신 창조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일들임을 깨닫게 해 주소서.
또한 이곳 동료들이 당신 안에 한 형제 자매임을 깨달아 주님을 섬기듯 사랑으로 서로 섬길 수 있는 은총을 주시고 일의 어려윰과 버거움으로 지칠 때라도 행여 서로 상처가 되는 말과 행위를 삼가하여 기도와 위로로 이들을 대할 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
그리하여 온전히 당신께 바치는 제 하루의 삶이 당신의 사랑과 영광이 드러나는 자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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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회사 밀알회에서 주신 기도문이에요.. 그 의미가 참 좋아서 일과 시작전에 기도하곤 합니다.
이 기도문이 오늘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질문의 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소중히 여기고 기도하는 맘으로 열심히 일 한다면 그 것 역시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것 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내 이웃이고 넓게 보아서는 직장 동료도 될 수 있겠지요. 같이 어우러지면서 화합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저의 큰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해야할 나의 일이 있습니다. 그 일들이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되지 않고 그 안에서 보람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회 초년병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