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멸망을 가슴 아프게 예고하시는 예수님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슴 아프게 예고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셨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늘에는 평화, 하느님께 영광”을 외치며 예수님을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 가까이에 이르러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예수님께서는 한탄하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으면 우셨을까요? 뻔히 보이는 상황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마음. 아무리 말을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 그 부모의 마음은 눈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당신에게 그 일들을 저지들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41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러 그 도성을 보시고는 그것을 두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이 날 너 역시 평화를 얻는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구나!


지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 어떻게 들어가셨고, 어떻게 군중들이 맞이했는지는 성지주일의 예식을 떠 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환영을 받으시면서 가시다가 예루살렘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실제로 로마는 기원 70년 4월 해방절 부터 예루살렘을 포위하다가 마침내 8월 29일에 예루살렘 시내를 완전히 점령하고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예레미야서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내 눈에서는 밤낮으로 눈물이 흘러 울음을 그칠 수가 없구나. 처녀 같은 내 딸, 이 백성이 심하게 얻어맞아 치명상을 입었다”(예레미야 14,17)




그런데 예수님의 눈물은 당신의 무능력의 고백인지도 모릅니다. 마음 닫은 이들을 향한 무능력의 고백.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쳐 주셨으며,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세리와 죄인들을 회개시키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제 십자가에 못 박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결단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기에 인간의 자유를 빼앗기보다는 예수님 안에서 무력하게 울기를 바라신 것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의 눈물은 당신이 이 완고한 도시 예루살렘에 하신 마지막 회개에로의 호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곳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란 그저 하느님께서 보내신 종말론적인 평화의 임금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을 하였지만 예루살렘 주민들은 마음을 닫고 오히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이 제공하신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것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43  네게 (불행한) 날들이 닥치리니, 네 원수들이 포위망을 치고 너를 에워싸 사방에서 좨들며


44  너와 네 안에 사는 자녀들을 짓밟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네 안에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로마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멸시켜 버렸습니다.


유행가의 가사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


좀 일찍 후회하고, 좀 일찍 마음을 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일이 저질러 진 상태에서 후회하는 듯 하다.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듯 하다.


지금이 바로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너를 찾아온 때를 너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은혜로운 방문의 결정적인 때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잘못으로 말미암아 이 때를 부여해 주심으로써 드러난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을 깨닫거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의 때는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가리야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세례자 요한을 낳고 입이 풀려서 예언한 말씀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찬미하여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 당신의 백성을 찾아와 해방시키셨으며…우리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의 덕분으로, 떠오르는 태양이 우리를 찾아와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이들에게 빛을 비추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루가1,67-79) 그래서 성무일도를 바칠 때 아침기도 때 우리는 즈가리야의 노래를 꼭 바치게 됩니다.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의 절정기에,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충만한 은총으로 자기들을 찾아 주셨음을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평화의 임금이 그 곳에 들어 가셨을 때에 하느님의 은혜로운 방문을 깨달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사랑을 주려 하셔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내가 예루살렘(오늘의 신앙인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내가 화해하고 용서를 청해도 받아주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혹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화를 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슴 아프게 예고하시는 예수님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1.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내가 예루살렘(오늘의 신앙인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이웃들은 각자 어떤 생각을 할까... 한번 묵상해 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감하시고 가슴아파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이 바로 지금 우리앞에 계신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 것인가?>

    우리는 어떤일이 잘못되거나 문제가 있을때 왜 나자신을 한번 살펴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옆사람에게 원망을 하기에 여념이 없는지요.
    우리의 현실 정치를 보아도 서로의 허물을 들춰내느라 민정에는 진척이 없습니다.
    우리가 입버릇 처럼하는 말들…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네….’어떻게 그럴수가…’참 한심하기짝이 없다.
    이 모두가 다른이를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는 뜻을 비칩니다.
    이해하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또 TV에서 보도되는 온갖 비리나 사건들을 보면서도 하나같이 비난을 합니다.
    그러한 말들을 들어보면 그 속에 나를 포함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나라면 절대 그렇지 않을듯 말을 합니다.

    스스로 생각해 봅니다.
    내가 저 입장이면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나도 그들보다 나을것이 없는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가족이 대통령이 아니고 고관이 아닌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사람이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어도 우리에게는 교훈이요
    어떤 잘못이나 실수를 해도 그것은 나에게 스승의 역할을 합니다.
    아무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가 아닌 우리들의 죄를 묵묵히 당신의 목숨과
    맞바꾸시며 감당을 하시는데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다른 사람을 몰아부치는데는 이골이 나있고,
    나의 허물을 돌아보는데는 무심한지…

    예루살렘이 멸망을 한다면 누구의 탓입니까?
    뜨끔하고 오금이 저립니다.
    나로 인해서 나의 허물로 인해서 상황이 그리된 것이라는 어렴풋한 생각이 들어 마음이 켕기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탓이라고 가슴을 치도록 절감하지는 못합니다.
    나보다는 더많은 책임을 져야할 다른이 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나 때문이라고 통곡하며 엎드려 용서를 빌기에는 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아직도 나는 다른이들보다는 옳은 사람이라는 교만이 내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다른이 눈의 티끌은 잘도 보이고 나의눈에 들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아전인수 잣대입니다.

    예루살렘이 아직은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위기의 순간에서 극적으로 구원하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남의 탓을 해서는 아무것도 바뀔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나는 나를 그래도 마음 굳게 먹으면 바꾸어 나갈 수 있으나 내가 남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나를 돌아보고 잘못된 것이 나로 인해서라는 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바꾸어 나간다면…
    그것이 확산되어 갈 것이며 궁극에는 바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꾸짖고 나의 책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아니 그 사람의 허물과 부족함을 이해 합니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사람을 딱하게 여깁니다. 가슴아파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허물을 감싸고 도닥 거려 줍니다.
    그 마음이 또 그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내탓이요, 내탓이요, 내 큰탓이옵니다라는 고백은 얼마나 훌륭한 우리의 지침서인지요.
    오늘도 나의 잘못을 살피며 그것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음쓰고 다른이들의 허물을 탓하지 않고
    살기로 다짐해 보면서 주님께 용서와 도움을 청합니다.

    211.194.124.5 루실라: 남의 탓 하기 좋아하는 제 자신 마음이 찔립니다.
    자신의 허물을 인정할 줄 아는 제가 되어야겠습니다.
    주님의 사랑안에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11/20-07:33]
    211.42.85.34 아만도: 요셉피나 자매님
    옆 사람의 잘못보다는 내 잘못을 먼저 살피는 마음
    저도 사고 싶습니다
    나를 믿지 않고 주님을 믿는 마음도
    남의 잘잘못을 가리지 않는 겸손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11/20-11:34]

  2. user#0 님의 말:

    1.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내가 예루살렘(오늘의 신앙인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이웃들은 각자 어떤 생각을 할까... 한번 묵상해 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감하시고 가슴아파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이 바로 지금 우리앞에 계신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 것인가?>

    우리는 어떤일이 잘못되거나 문제가 있을때 왜 나자신을 한번 살펴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옆사람에게 원망을 하기에 여념이 없는지요.
    우리의 현실 정치를 보아도 서로의 허물을 들춰내느라 민정에는 진척이 없습니다.
    우리가 입버릇 처럼하는 말들…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네….’어떻게 그럴수가…’참 한심하기짝이 없다.
    이 모두가 다른이를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는 뜻을 비칩니다.
    이해하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또 TV에서 보도되는 온갖 비리나 사건들을 보면서도 하나같이 비난을 합니다.
    그러한 말들을 들어보면 그 속에 나를 포함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나라면 절대 그렇지 않을듯 말을 합니다.

    스스로 생각해 봅니다.
    내가 저 입장이면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나도 그들보다 나을것이 없는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가족이 대통령이 아니고 고관이 아닌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사람이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어도 우리에게는 교훈이요
    어떤 잘못이나 실수를 해도 그것은 나에게 스승의 역할을 합니다.
    아무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가 아닌 우리들의 죄를 묵묵히 당신의 목숨과
    맞바꾸시며 감당을 하시는데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다른 사람을 몰아부치는데는 이골이 나있고,
    나의 허물을 돌아보는데는 무심한지…

    예루살렘이 멸망을 한다면 누구의 탓입니까?
    뜨끔하고 오금이 저립니다.
    나로 인해서 나의 허물로 인해서 상황이 그리된 것이라는 어렴풋한 생각이 들어 마음이 켕기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탓이라고 가슴을 치도록 절감하지는 못합니다.
    나보다는 더많은 책임을 져야할 다른이 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나 때문이라고 통곡하며 엎드려 용서를 빌기에는 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아직도 나는 다른이들보다는 옳은 사람이라는 교만이 내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다른이 눈의 티끌은 잘도 보이고 나의눈에 들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아전인수 잣대입니다.

    예루살렘이 아직은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위기의 순간에서 극적으로 구원하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남의 탓을 해서는 아무것도 바뀔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나는 나를 그래도 마음 굳게 먹으면 바꾸어 나갈 수 있으나 내가 남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나를 돌아보고 잘못된 것이 나로 인해서라는 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바꾸어 나간다면…
    그것이 확산되어 갈 것이며 궁극에는 바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꾸짖고 나의 책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아니 그 사람의 허물과 부족함을 이해 합니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사람을 딱하게 여깁니다. 가슴아파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허물을 감싸고 도닥 거려 줍니다.
    그 마음이 또 그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내탓이요, 내탓이요, 내 큰탓이옵니다라는 고백은 얼마나 훌륭한 우리의 지침서인지요.
    오늘도 나의 잘못을 살피며 그것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음쓰고 다른이들의 허물을 탓하지 않고
    살기로 다짐해 보면서 주님께 용서와 도움을 청합니다.

    211.194.124.5 루실라: 남의 탓 하기 좋아하는 제 자신 마음이 찔립니다.
    자신의 허물을 인정할 줄 아는 제가 되어야겠습니다.
    주님의 사랑안에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11/20-07:33]
    211.42.85.34 아만도: 요셉피나 자매님
    옆 사람의 잘못보다는 내 잘못을 먼저 살피는 마음
    저도 사고 싶습니다
    나를 믿지 않고 주님을 믿는 마음도
    남의 잘잘못을 가리지 않는 겸손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11/20-11:34]

user#0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