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 이후 마리아에 대한 가르침

 

II.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의 마리아에 대한 가르침




    공의회 직후 가톨릭 교회의 마리아에 대한 가르침은 교회 헌장을 통해 묘사된 지침들에 충실하였다. 연구가 성서로 되돌아 왔으며 그 기본 축이 특전과 호칭 신학인 마리아-여왕 신학에서, 신앙 안에서 그녀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이스라엘의 딸인 마리아-여종 신학에로 넘어왔다. 그 신학은 동시에 성령에 대한 마리아의 관련성에 대해 자문한다. 가톨릭 교회가 뛰어든 새로운 교회 일치차원의 상황이 항상 내면에 깔려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동정 마리아라는 주제는 이 시기에는 무기력하게 일치 위원회 안에서밖에 대화의 주제가 되지 않는다.




    1.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1986년 3월 25일의 ‘구세주의 어머니’ 회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마리아에 대한 주요 문헌이다. 이 회칙은 교회 일치 차원의 지향을 확인한 것으로 특히 동방 정교회를 향한 것이다. 어조는 의도적으로 성서적이다 : 요한 바오로 2세는 마리아에 관한 복음서의 큰 본문들을 풍부히 인용할 뿐만 아니라, 그는 간택, 축복, 은총(8-10항), 의화와 신앙에 관한 사도 바울로의 결정적인 본문들을 마리아에게 적용시킨다. 마리아의 신앙이 아브라함의 신앙과 비교된다(14항). 동정녀는 이처럼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에 들어오며 그녀의 예외적인 성소가 신앙 덕택으로 은총을 통한 의화의 필요로 나타나는 인간의 공통 조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본문은 끊임없이 67회나 인용하면서 교회 헌장 8장을 언급한다. 여기서 본문은 실재적으로 그 목차를 따른다 : 그리스도 신비 안의 마리아, 그리고 교회 신비 안의 마리아가 그것이다. 본문의 독창성은 동정녀의 모성을 부각시키는 데에 있다.   




    2. 마리아의 모성적 ‘중개’




    그렇지만 이 회칙이 교회 헌장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제3부가 마리아의 ‘모성적 중개’에 할애된다. 유일하게 오직 한 번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용어에 의존하면서 – 그 당시에는 부차적인 양보의 가치를 지녔다 – 교황은 이 주제를 풍부히 발전시킨다. 표현이 분명히 모든 애매성을 제거하는 의미에서 설명된다. 그 통찰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에 관한 1디모 2, 5의 주요 확인으로부터 출발하여 끊임없이 자기 규범처럼 여기에 되돌아온다. 따라서 마리아의 ‘중개’는 오직 하나의 원천에서 나오며 그 중개는 ‘참여하며 종속된다’ ; 동정녀가 충분히 구원자에게 결합되었다는 사실에서 중개는 비롯된다. 이것이 모성적 중개인데 예수의 어머니의 요청으로 가나에서 실현되었던 중개가 그 한 예이다. 이 중개는 자기 아들의 구원 행위에 대한 마리아의 ‘협조’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마리아에 관해 사용한 이 용어가 목적하는 바는 근본적으로 육화된 말씀에 의해 성취된 참되고 유일한 중개와는 다르다. 유비는 유사성보다 훨씬 더 상이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중함과 이러한 설명들이 똑같이 다른 용어 선택을 위해 불목하지 않고 종교개혁으로 갈라진 형제들의 근심을 덜어주기에 충분한가?




    3. 동정 마리아에 대한 교회 일치 차원의 의견 차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마리아에 대한 의견 차이의 주요 대상은  마리아의 간구에 대한 문제도 그녀의 특전에 대한 문제도 아니며, 구원에 있어서 마리아의 협조에 대한 문제이다. 칼 바르트(K. Barth)는 그의 ‘교의 신학’에서 전적인 논쟁의 필치로 ‘가톨릭 이단1)’에 반대하는 프로테스탄트의 거부를 명백히 하였다. 그 고발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역할에서 ‘독립된’ 역할을 마리아에게 부여하는 마리아의 ‘협조’와 관련된다. 그 역할은 전적으로 상대적이었고 이는 ‘약속에 대한 동의’, 다시 말해서 결정적으로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이었다. 결국 이러한 개념이 이단으로 몰리게 된다. 이는 특히 가톨릭이 객관적으로 잘못 사용된 용어인 공동-구속(co-rédemption)에 대한 천명을 철회하도록 촉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기서 모든 의미를 제거하는 예방으로 둘러 처져 있거나 마리아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같은 차원의 구원에 참여하였다는 것을 동의하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그녀는 여기서 자기 아들의 부분에 첨가하는 형태로 극히 작은 부분을 실현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의 정통 교리는 – ‘마리아론’의 어떤 지나침이 그럴 수 있었을지라도2) -, 이처럼 말하지 않는다. 마리아의 구원 참여는 은총으로 보완되는 주도권을 구성하지 않는다. 그 참여는 받은 은총의 열매이며 은총 아래서 그리고 은총 안에서 행사된다. 그리스도의 행위와 마리아의 참여 사이의 질적 차이는 절대적이다. 이것이 그녀의 순종(Fiat)과 신비 참여인 마리아의 신앙을 가능하게 한 은총의 효과이기도 하다. 바르트의 어려움은 구원된 피조물들에게 있어서 은총에 의한 의화와 은총 안에서 구원 사업에 협조하는 능력의 결과에 대한 더 광의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은 동시에 교회에서 인정되거나 거부되거나 하는 역할 안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분명히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 신앙 덕택으로 은총에 의한 의화에 대한 공통 교리에서 비롯되는 교회 일치 차원의 대화가 이 분야에서는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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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 이후 마리아에 대한 가르침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II.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의 마리아에 대한 가르침


        공의회 직후 가톨릭 교회의 마리아에 대한 가르침은 교회 헌장을 통해 묘사된 지침들에 충실하였다. 연구가 성서로 되돌아 왔으며 그 기본 축이 특전과 호칭 신학인 마리아-여왕 신학에서, 신앙 안에서 그녀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이스라엘의 딸인 마리아-여종 신학에로 넘어왔다. 그 신학은 동시에 성령에 대한 마리아의 관련성에 대해 자문한다. 가톨릭 교회가 뛰어든 새로운 교회 일치차원의 상황이 항상 내면에 깔려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동정 마리아라는 주제는 이 시기에는 무기력하게 일치 위원회 안에서밖에 대화의 주제가 되지 않는다.


        1.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1986년 3월 25일의 ‘구세주의 어머니’ 회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마리아에 대한 주요 문헌이다. 이 회칙은 교회 일치 차원의 지향을 확인한 것으로 특히 동방 정교회를 향한 것이다. 어조는 의도적으로 성서적이다 : 요한 바오로 2세는 마리아에 관한 복음서의 큰 본문들을 풍부히 인용할 뿐만 아니라, 그는 간택, 축복, 은총(8-10항), 의화와 신앙에 관한 사도 바울로의 결정적인 본문들을 마리아에게 적용시킨다. 마리아의 신앙이 아브라함의 신앙과 비교된다(14항). 동정녀는 이처럼 구원받은 자들의 공동체에 들어오며 그녀의 예외적인 성소가 신앙 덕택으로 은총을 통한 의화의 필요로 나타나는 인간의 공통 조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본문은 끊임없이 67회나 인용하면서 교회 헌장 8장을 언급한다. 여기서 본문은 실재적으로 그 목차를 따른다 : 그리스도 신비 안의 마리아, 그리고 교회 신비 안의 마리아가 그것이다. 본문의 독창성은 동정녀의 모성을 부각시키는 데에 있다.   


        2. 마리아의 모성적 ‘중개’


        그렇지만 이 회칙이 교회 헌장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제3부가 마리아의 ‘모성적 중개’에 할애된다. 유일하게 오직 한 번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용어에 의존하면서 – 그 당시에는 부차적인 양보의 가치를 지녔다 – 교황은 이 주제를 풍부히 발전시킨다. 표현이 분명히 모든 애매성을 제거하는 의미에서 설명된다. 그 통찰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에 관한 1디모 2, 5의 주요 확인으로부터 출발하여 끊임없이 자기 규범처럼 여기에 되돌아온다. 따라서 마리아의 ‘중개’는 오직 하나의 원천에서 나오며 그 중개는 ‘참여하며 종속된다’ ; 동정녀가 충분히 구원자에게 결합되었다는 사실에서 중개는 비롯된다. 이것이 모성적 중개인데 예수의 어머니의 요청으로 가나에서 실현되었던 중개가 그 한 예이다. 이 중개는 자기 아들의 구원 행위에 대한 마리아의 ‘협조’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마리아에 관해 사용한 이 용어가 목적하는 바는 근본적으로 육화된 말씀에 의해 성취된 참되고 유일한 중개와는 다르다. 유비는 유사성보다 훨씬 더 상이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중함과 이러한 설명들이 똑같이 다른 용어 선택을 위해 불목하지 않고 종교개혁으로 갈라진 형제들의 근심을 덜어주기에 충분한가?


        3. 동정 마리아에 대한 교회 일치 차원의 의견 차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마리아에 대한 의견 차이의 주요 대상은  마리아의 간구에 대한 문제도 그녀의 특전에 대한 문제도 아니며, 구원에 있어서 마리아의 협조에 대한 문제이다. 칼 바르트(K. Barth)는 그의 ‘교의 신학’에서 전적인 논쟁의 필치로 ‘가톨릭 이단1)’에 반대하는 프로테스탄트의 거부를 명백히 하였다. 그 고발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역할에서 ‘독립된’ 역할을 마리아에게 부여하는 마리아의 ‘협조’와 관련된다. 그 역할은 전적으로 상대적이었고 이는 ‘약속에 대한 동의’, 다시 말해서 결정적으로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이었다. 결국 이러한 개념이 이단으로 몰리게 된다. 이는 특히 가톨릭이 객관적으로 잘못 사용된 용어인 공동-구속(co-rédemption)에 대한 천명을 철회하도록 촉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기서 모든 의미를 제거하는 예방으로 둘러 처져 있거나 마리아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같은 차원의 구원에 참여하였다는 것을 동의하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그녀는 여기서 자기 아들의 부분에 첨가하는 형태로 극히 작은 부분을 실현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의 정통 교리는 – ‘마리아론’의 어떤 지나침이 그럴 수 있었을지라도2) -, 이처럼 말하지 않는다. 마리아의 구원 참여는 은총으로 보완되는 주도권을 구성하지 않는다. 그 참여는 받은 은총의 열매이며 은총 아래서 그리고 은총 안에서 행사된다. 그리스도의 행위와 마리아의 참여 사이의 질적 차이는 절대적이다. 이것이 그녀의 순종(Fiat)과 신비 참여인 마리아의 신앙을 가능하게 한 은총의 효과이기도 하다. 바르트의 어려움은 구원된 피조물들에게 있어서 은총에 의한 의화와 은총 안에서 구원 사업에 협조하는 능력의 결과에 대한 더 광의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은 동시에 교회에서 인정되거나 거부되거나 하는 역할 안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분명히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 신앙 덕택으로 은총에 의한 의화에 대한 공통 교리에서 비롯되는 교회 일치 차원의 대화가 이 분야에서는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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