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왔다


사순 제2주간 토요일(3/13)


    복음 환호송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 ○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가 말하리라.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지를 지었나이다." ◎ 길리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
    복음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왔다.> † 루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3.11-32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제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 가지고 먼 고장으로 떠나갔다. 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그 고장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그 고장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그를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 보려고 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어서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 주십시오 하고 사정해 보리라.'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를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어서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 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밭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오다가 집 가까이에서 음악 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하인 하나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하인이 '아우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으나 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 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 주시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희망의 선물(뮤지컬 '탕자의 노래' 中 에서)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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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왔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3월13일 토요일)

    오늘 복음에서는 집 떠날 때 가지고 갔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그야말로 비참한 신세가 되어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작은 아들의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복음 속의 큰아들과 작은 아들의 모습 모두 바로 저희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큰아들의 스스로 의로운 체 하는 모습이나 작은 아들처럼 죄를 짓고 또
    반성하고 회개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자식사랑의 무한하심과
    너그럽게 용서하시는 관용의 모습에서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
    하심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을 멀리하시지 않으시고 회개하는 죄인을 기쁘게 받아
    주심을 깨달았다면 저도 오늘 복음의 돌아온 탕자처럼 제 안에 있는 작은
    아들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깊이 뉘우치고 하느님 품안으로 돌아와 머무르
    기를 간절히 바라야겠습니다.
    또한 자신 스스로 모범생인줄 착각하고 내 안에 있는 큰아들의 옹졸한 마음
    없애고 좀더 마음을 넓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주님!
    주님 앞에 꿇어앉아 돌아온 탕자의 마음으로 당신께 용서를 청하옵니다.
    아직도 세상의 쾌락과 게으름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저를 하루빨리
    주님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잃었던 아들

  2.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3월13일 토요일)

    오늘 복음에서는 집 떠날 때 가지고 갔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그야말로 비참한 신세가 되어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작은 아들의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복음 속의 큰아들과 작은 아들의 모습 모두 바로 저희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큰아들의 스스로 의로운 체 하는 모습이나 작은 아들처럼 죄를 짓고 또
    반성하고 회개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자식사랑의 무한하심과
    너그럽게 용서하시는 관용의 모습에서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
    하심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을 멀리하시지 않으시고 회개하는 죄인을 기쁘게 받아
    주심을 깨달았다면 저도 오늘 복음의 돌아온 탕자처럼 제 안에 있는 작은
    아들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깊이 뉘우치고 하느님 품안으로 돌아와 머무르
    기를 간절히 바라야겠습니다.
    또한 자신 스스로 모범생인줄 착각하고 내 안에 있는 큰아들의 옹졸한 마음
    없애고 좀더 마음을 넓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주님!
    주님 앞에 꿇어앉아 돌아온 탕자의 마음으로 당신께 용서를 청하옵니다.
    아직도 세상의 쾌락과 게으름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저를 하루빨리
    주님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잃었던 아들

  3. user#0 님의 말:

    주님!
    저는 큰 아들도 못되고
    그렇다고 작은 아들도 못 되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저이기 때문이지요.
    회개했다는게 뭘까요?
    작은아들처럼 죄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당신품에 돌아오는게 아닌가요?
    저는 큰아들보다 작은아들처럼 사는게 더 어려울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하고 돌아서면 또 죄를 짓고사니 말이지요…
    작은아들처럼 온전히 당신께 의탁하는 저 이길 바라면서
    세상 유혹에 흔들려
    당신이 베풀어주신 자비와 사랑을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주님!
    저는 왜 이럴까요…
    죄인줄 알면서 왜 끊어버리지 못할까요…
    반복되는 죄로 인해 당신을 찾기가 너무 두렵습니다.
    당신이 저를 찾고 기다려도 제 죄, 제가 알기에 당신이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이
    당신의 따스한 손길을 밀쳐내게 하고
    당신과 저의 관계를 멀리하도록 유혹하는군요.
    당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절 기다리고 계시는데…

    저는
    당신에게 아쉬울때만 왔다가 또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습니다.
    당신만 보면 칭얼거리고 불만만 늘어놓기에 바쁘지요.
    그럼에도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주님.
    당신가슴은 꺼멓게 탔습니다.
    저는 우렁새끼입니다.
    당신을 갉아먹고 살아난 우렁새끼…

    주님!
    이런 저를 오늘도 기다리고 계시는군요.
    자비하신 주님…
    우리 아버지…

  4. user#0 님의 말:

    주님!
    저는 큰 아들도 못되고
    그렇다고 작은 아들도 못 되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저이기 때문이지요.
    회개했다는게 뭘까요?
    작은아들처럼 죄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당신품에 돌아오는게 아닌가요?
    저는 큰아들보다 작은아들처럼 사는게 더 어려울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하고 돌아서면 또 죄를 짓고사니 말이지요…
    작은아들처럼 온전히 당신께 의탁하는 저 이길 바라면서
    세상 유혹에 흔들려
    당신이 베풀어주신 자비와 사랑을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주님!
    저는 왜 이럴까요…
    죄인줄 알면서 왜 끊어버리지 못할까요…
    반복되는 죄로 인해 당신을 찾기가 너무 두렵습니다.
    당신이 저를 찾고 기다려도 제 죄, 제가 알기에 당신이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이
    당신의 따스한 손길을 밀쳐내게 하고
    당신과 저의 관계를 멀리하도록 유혹하는군요.
    당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절 기다리고 계시는데…

    저는
    당신에게 아쉬울때만 왔다가 또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습니다.
    당신만 보면 칭얼거리고 불만만 늘어놓기에 바쁘지요.
    그럼에도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주님.
    당신가슴은 꺼멓게 탔습니다.
    저는 우렁새끼입니다.
    당신을 갉아먹고 살아난 우렁새끼…

    주님!
    이런 저를 오늘도 기다리고 계시는군요.
    자비하신 주님…
    우리 아버지…

  5. user#0 님의 말: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저야말로 큰아들쪽도 아니고 작은아들쪽도 아니니…
    차라리 어느쪽이 더 가깝다고해야되나요?!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
    회개하고 깨우쳐주심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큰아들은 큰아들대로 작은아들은 작은 아들대로 받아주시는 분!!
    편견이 없이 이것은 이래서 좋고 저것은 저래서 좋으신 분!!
    누구 할 것없이 모두를 사랑하시는 분!!
    그래서 그 분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용서와 회개를 배우는 시간이겠습니다.

  6. user#0 님의 말: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저야말로 큰아들쪽도 아니고 작은아들쪽도 아니니…
    차라리 어느쪽이 더 가깝다고해야되나요?!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
    회개하고 깨우쳐주심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큰아들은 큰아들대로 작은아들은 작은 아들대로 받아주시는 분!!
    편견이 없이 이것은 이래서 좋고 저것은 저래서 좋으신 분!!
    누구 할 것없이 모두를 사랑하시는 분!!
    그래서 그 분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용서와 회개를 배우는 시간이겠습니다.

  7. user#0 님의 말:

    내가 무릎을 꿇었을 때 난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내 앞에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이제 내가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하는 것은
    내가 다시 떠나지 않을 것인가 불확신도 아니고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불안도 아니고
    나를 다시 받아주실 것인가 죄송함도 아닌
    단 한가지 뿐.

    내가 무릎을 꿇을 때 그 앞에 항상 아버지 계시다는 것.

    그뿐입니다.

    아멘.

  8. user#0 님의 말:

    내가 무릎을 꿇었을 때 난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내 앞에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이제 내가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하는 것은
    내가 다시 떠나지 않을 것인가 불확신도 아니고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불안도 아니고
    나를 다시 받아주실 것인가 죄송함도 아닌
    단 한가지 뿐.

    내가 무릎을 꿇을 때 그 앞에 항상 아버지 계시다는 것.

    그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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