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성찬례 논쟁은 뚜르(Tour)의 참사위원인 베렝가(Berenger, +1088)에 의해서 야기되었다. 그는 아우구스티노와 라드람누스에 의거해서 성찬례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현존한다는 것을 부정했는데, 왜냐하면 현양된 그리스도의 몸은 세상 종말 이전에는 천상에서 ‘불러내려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성찬례 안에서 빵과 포도주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substantia”(實體)와 “accidentia”(偶有)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substantia란 한 사물의 정신적인 본질, 실재를 의미하고, accidentia는 겉모양을 뜻하는 것으로서 크기, 무게, 색깔, 맛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서 정신적인 본질을 ‘담고’, 유지한다. 빵과 포도주의 우유(accidentia)가 변하지 않는 이상 실체(substantia)의 변화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성찬례에서 빵과 포도주가 변화하지 않고 단지 천상에 계신 현양된 그리스도를 정신적으로 연결해주는 수단, 초자연적 힘을 얻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보았다.
베렝가의 견해는 1047년과 1054년 네 차례에 걸쳐 시노드에서 단죄되었다. 1059년에는 로마에서 열린 시노드에서 신앙고백문에 서명을 해야만 했다: “빵과 포도주는 […] 축성 이후에는 단지 상징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진정한 몸과 진정한 피이며, 그것들은 감각적 (sensualiter)이며, 상징적일뿐만 아니라 사실적으로(non solum sacramento, sed in veritate) 사제의 손으로 만져지고 부수어지며 신자들의 이로 씹혀먹힌다”(DS 690). 이 신앙고백문은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자연적인 몸과 피라는 극단적인 사실주의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베렝가는 고향으로 돌아온 후 자신이 서명한 신앙고백문을 철회하였고, 그래서 1079년 로마의 시노드에서 다음과 같은 새로운 신앙고백문에 서명을 해야만 했다. “나 베렌가는 제단에 놓여진 빵과 포도주가 거룩한 기도와 우리의 구세주의 말씀의 신비를 통해서 진정하고 본래적이며 생명을 주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체적으로 변화된다(substantialiter converti)는 것을 진심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다. 축성 이후에 빵은,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시고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되시어 십자가에 달리시고 성부 오른편에 좌정하신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이고,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진정한 그의 피이다. 이것은 단지 상징(signum)과 표상의 힘(virtus sacramenti)으로만 된 것이 아니라 본성의 고유함(proprietas naturae)과 실체의 진리(veritas substantiae) 안에서 된 것이다”(DS 700).
이 신앙고백문은 한 편으로는 상징(signum)과 표상의 힘(virtus sacramenti) 다른 한 편으로는 본성의 고유함(proprietas naturae)과 실체의 진리(veritas substantiae)란 말마디를 대립적으로 보았는데, 이를 통해서 고대 교회의 실재상징적 사고가 사라졌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실체적인 변화(substantialiter converti)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1059년의 신앙고백문에 나타난 감각 위주의 극단적인 사실주의가 극복되기 시작한다. 즉 실체는 감각적으로가 아니라 정신적 통찰력으로 인지될 수 있는 한 사물의 형의상학적 본질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성체 안의 그리스도의 현존은 어디까지나 정신적, 영적 차원으로 보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베크(Bec)의 신학자 랑프랑크(Lanfranc, +1089)와 아베르사(Aversa)의 구이트문트(Guitmund, +1095년)는 이 신앙고백문을 수용하여 實體(substantia)와 偶有(accidentia)를 구분하면서 극단적인 상징주의와 극단적인 사실주의와의 대립을 극복한다. 그들의 견해에 의하면 성변화 후에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지만 그 이전이 있던 맛이나 색깔, 그외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우유는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내용적으로 ‘실체변화’(transsubstantiatio)의 가르침에 이르게 된다. 실체변화라는 말은 나중에 교황 알렉산더 3세가 된 롤란도 반디넬리(Rolando Badinelli)에 의해서 1140/1142년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실체변화설은 제4차 라테란 공의회 (1215)에서 교회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DS 801).
우유와 실체라는 개념 구분을 도입하면서 한편으로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고 다른 한편으로 외적인 표시는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로써 적어도 성찬의 음식에 관해서는 본디 성사 개념이 의도하는 바, 즉 표시하는 바를 이루는 효과적 표지(signum efficax, efficit quod significat)라는 것을 다시 확립할 수 있게 되었다.1)
교의사를 통해서 얻어지는 결론으로, 성찬적 현존의 설명에 있어서 두 극단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극단은 성찬적 현존을 물질적 현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늘과 성체 안에 있다고 말한 9세기부터의 극단적 사실주의 경향이다. 두 번째 극단은 이와는 정반대되는 것으로서 성찬을 너무 영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성찬의 음식은 단지 그리스도가 세상에 현존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에 불과할뿐 그와의 만남을 중개해주지는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실체변화설이 확립되면서 성찬례와 성체 안의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신학적 표현을 찾게 되었다. 실상 중세초기의 교회는 9세기부터 11세기가지 이백년간 성찬례 안의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적합한 표현을 찾지 못한 채 성찬례를 거행하였던 것이다. 실체변화설에는 ‘실체’라는 철학적 개념이 사용되었지만 그 배경에는 신앙적 확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는 실체와 우유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고 그래서 한 사물의 우유는 그대로 있으면서 실체가 변화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변화 이후 빵과 포도주의 우유는 그대로 있지만 실체가 변화되는 것은 오로지 “전능하신 하느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고, 이렇게 해서 변화된 실체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오직 신앙만으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체가 그리스도의 전정한 몸과 피라고 한다면 그것은 감각적인 방법을 통해서 인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이성의 방법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신앙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고 하느님의 지극히 권위있는 증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2)
3.4. 스콜라 신학의 성찬례 신학
스콜라 신학에서는 12세기부터 성사론에 질료(materia)와 형상forma)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다. 성체성사의 질료는 빵과 포도주이고, 형상은 예수의 성찬례 설립의 말씀인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이다”로 보았다. 이런 점은 피렌체 공의회의 결정문에서 잘 드러난다(DS 1320-1322).
“세 번째 성사는 성체성사이다. 성체성사의 질료는 밀빵과 축성 전에 물을 조금 섞어야 하는 포도주이다. 물을 섞어야 하는 까닭은 주님 스스로 물이 섞인 포도주를 사용해서 이 성사를 건립하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는 주님의 수난의 현존에 상응하는 것이다. […] [포도주에 물을 섞는 것은 신자 백성과 그리스도와의 결합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체성사의 형상은 구세주께서 이 성사를 거행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in persona Christi) 말함으로써 이 성사를 거행한다. 즉 이 말씀의 능력으로써 빵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되는데, 전체 그리스도가 빵의 형상 안에, 전체 그리스도가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담겨있도록 변화된다. 축성된 제병과 축성된 포도주가 나뉘어지더라도 모든 부분에 전체 그리스도가 현존한다. 이 성사가 합당한 배령자의 영혼에 미치는 효과는 인간과 그리스도와의 결합이다. 그리고 인간은 은총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에 귀속되고 그의 지체와 결합됨으로써 이 성사의 합당한 배력자에게는 은총이 증가된다. 물질적인 음료가 육신적인 생명에 미치는 효력 즉 육신 생명을 유지하고 증가하며 새롭게하고 기쁘게하는 그런 효력을 이 성사는 영신의 생명에게 미치게 된다. 교황 우르반의 말씀대로 우리는 이 성사를 거행하면서 우리 구세주를 기억하며 감사하는데, 이 성사는 우리에게서 해로운 모든 것을 멀리하고 좋은 것에 굳세어지며 덕행과 은총이 증가하도록 한다”. (DS 1320-1322)
이 결정문은 성체성사의 질료, 형상에 대한 언급 외에도 실체변화 그리고 ‘同伴說’ (concomitentia)이 나타난다. ‘동반설’이란 중세에 미사 집전 사제만 성혈을 배령하고 신자들에게 유보된 관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형성된 견해이다. 12세기에 ‘전체 그리스도’(totus Christus)를 구성하는 부분들을 헤아리게 되었는데, 몸과 피, 영혼, 신성이 그것이다. 축성의 말씀의 능력으로 빵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로 변한다. 그러나 몸과 피는 다른 것들 즉 영혼, 신성과 떼어놓을 수 없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축성된 다음에 빵에는 예수님의 몸만이 아니라 실상은 전체 그리스도가 현존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성혈 배령을 유보하고 성체 배령만을 허락하더라도 전체 그리스도를 모시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이론이 ‘동반설’이다.
성체 건립의 말씀만이 실체변화를 일으켜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현존케 할 수 있다는 견해는 성찬례 거행에 있어서 사제의 위치를 강조하고 그의 성찬례 집전의 권한과 올바른 지향에 초점을 두도록 이끌었다. 반면 성찬례 거행에서 신자들의 역할은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했다. 전례 언어인 라틴어를 일반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신자들은 성찬례 동안에 말없는 ‘관중’으로 머물러 있어야 했다. 거기에다 거룩한 것에 대한 경외심이 점점 더 커져감에 따라 사제는 성찬기도 (최후만찬 기사 전체)를 낮은 소리로 읽음으로써 성찬례의 복음 선포적 성격과 anamnesis의 특성이 퇴색되었다. 성찬례 내에서 관심은 성변화에 집중되었고, 그래서 13세기 이후에는 밀떡과 잔을 들어올리며, 무릎을 꿇고, 종을 치는 것을 통해서 성변화를 강조되었다. 12, 13세기 사이에는 일반 신자들에게 성혈을 영해주는 것이 중지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성체 자체가 일반적으로 예외의 경우가 되었고, 그리스도와의 통교는 성체를 바라보며 흠숭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런 점은 성체 거동 축제 (1246년 뤼티히 [Lüttich]에서 시작하여, 1264년 전체교회에 도입되었다)와 성광에 모신 성체를 공경하는 것 (14세기에 성해를 성광에 모시는 관습에서 유래하였다)을 통해서 더욱 강화되었다. 공동체의 잔치로서의 성찬례는 성직자 단독의 성사적 행동과 신자들의 수동적인 성체공경으로 양분되었다고 하겠다.
3.5. 종교개혁자들의 성찬례 신학
종교개혁자들의 성찬례 신학은 하느님의 말씀, 신앙 그리고 죄의 사함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들에게 성사는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을 확실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였다. 가톨릭의 성찬례 신학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실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세부적인 문제들을 대상으로 하였는데,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문제들이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위험이 크다고 보았다. 그 문제들이란 실체변화설, 성찬례의 희생제사적 성격, ‘동반설’이다. 그 중에서 성찬례를 희생제사로 보는 것이 가장 큰 위험으로 간주되었다. 즉 성찬례를 통해서 십자가 상의 희생제물을 반복한다는 것은 히브리서에서 강조하는 “단 한 번에” (히브 7,27;9, 12;10,10)란 말을 거스리는 것이고 십자가상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회적 업적을 내용적으로 비워버리는 행업위주의 신앙이라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성찬례를 지칭하는 가톨릭 용어인 “미사”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성서에 나타난 주님의 성찬의 온전성을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성만찬”(Abendmahl)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루터(M.Luther)는 신약성서에 나타난 최후만찬 기사와 요한복음 6장의 빵에 대한 말씀을 근거로 성찬의 음식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현존한다는 것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실체변화설을 사견(私見)으로 간주하고 자신 스스로는 이를 거부하였다. 루터는 빵과 포도주의 실체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가 함께 공존하는 ‘실체공존론’(實體共存論, consubstantiatio)을 주장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 “안에(in), 함께(mit), 아래에(unter)” 현존하신다는 정식을 사용하였다. 그는 현양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지상의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현존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으로 인해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즉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全在性(ubiquitas)에 참여하기에 빵과 포도주 안에 현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받아서 먹어라”라는 말씀에 근거를 두고서 성찬례 동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이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in usu” 표현을 쓰는데, 이는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정확히는 성체축성의 말씀에서 성체배령까지를 의미한다. 루터는 환자를 위해서 축성된 성체를 보관해두는 데에서 유래한 성체경배나 성체거동 등의 성체신심을 거부하엿다.
또한 루터는 참된 예배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의 선물을 받는 것이지 인간이 무엇을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자신의 견해에 입각해서 미사가 희생제사라는 가톨릭의 입장을 비판한다. 즉 가톨릭 교회는 미사를 반복적인 희생제사로 보면서 하느님께 드리는 선행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저들은 모두 자신들이 그리스도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 앞에 제사드리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이것을 완전한 제사로 보고, 자신들의 이 선행을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미사가 선행의 성취라고 신뢰하고 이 선행을 기도로 돌리지 않는다”.3) 그래서 루터는 성찬례가 희생, 속죄의 제사라는 것을 부정하고 단지 감사의 제사라고만 하였다.
쯔빙글리(H.Zwingli)는 현양된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지상으로 내려와 빵 안에 현존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요한 6,63(“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요 육은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을 근거로 인간의 영혼은 그리스도의 몸으로도 양육될 수 없다고 보았다. 쯔빙글리는 “이는 내 몸이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비유적으로 해석해서 “이는 내 몸을 의미한다”는 뜻으로 이해하였다. 마치 바오로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바위에서 솓아 나온 물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런데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습니다”(1고린 10,4)라고 말하듯이 그렇게 전의(轉義)된 의미로 이해한 것이다. 그는 성만찬에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면서 빵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신앙을 견고케하는 기념의 표시일뿐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는 오직 신앙만이 전체 그리스도를 인간 영혼 안에 직접적으로 현존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미사의 희생제사성은 예수의 유일회적인 희생의 행동에 근거해서 거부되어야 하고, 예수의 희생 행동에 대해서 인간은 오직 기억과 감사로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성찬례에서 빵과 포도주는 “우리를 위한 희생제사에서 드려지는 몸과 피의 표징들이다. 이 표징들은 몸과 피가 이렇게 드려진다는 것을 상징하며 그리고 우리에게 구속 사업을 회상시켜 준다”.4)
칼빈(J.Calvin)은 의도적으로 루터와 쯔빙글리의 입장을 중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한편으로는 성만찬이 단지 기억의 표지에 지나는 않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주님의 몸과 피에 참되게 그리고 본질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믿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현양된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계신다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이 빵과 포도주 안에 ‘실체적’으로 현존한다는 생각은 그리스도를 지상적인 요소에 매어두려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고 간주하였다. 칼빈은 성만찬에서 이루어지는 신자들과 그리스도와의 실제적인 일치를 나타내기 위해서 다른 모형을 내세웠다. 즉 성만찬 중에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작용을 통해서 인간을 당신에게로 끌어올리신다는 것이다. 칼빈의 견해에 의하면 성만찬에서 신자들은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을 통해서 하늘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여서 그 효과를 얻는다. 또한 칼빈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되풀이 된다거나 인간에 의해서 그 희생에 무엇이 보태어진다는 오해의 소지를 근절시키기 위해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미사 거행을 통해서 바친다는 가톨릭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종교개혁자들 모두는 평신도들에게 성혈 배령을 유보한 것을 비난하였다. 이는 “모두 그것을 마시시오!”(마태 26,27; 마르 14,23)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한 명확한 저촉으로서 하느님 백성에게서 성만찬의 반쪽을 빼았고 성서에 어긋나게 성직자들만 우대하는 행위로 간주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이미 콘스탄쯔 공의회(1414-1418)에서는 후스(Johannes Hus, +1415)에 반대하여서 빵이나 포도주의 일부에도 전체 그리스도가 현존하시기에 성체만 영하더라도 전체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라는 ‘同伴說’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동반설’은 성서에 거스리는 관습을 복잡한 방법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2차 성찬례 논쟁은 뚜르(Tour)의 참사위원인 베렝가(Berenger, +1088)에 의해서 야기되었다. 그는 아우구스티노와 라드람누스에 의거해서 성찬례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현존한다는 것을 부정했는데, 왜냐하면 현양된 그리스도의 몸은 세상 종말 이전에는 천상에서 ‘불러내려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성찬례 안에서 빵과 포도주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substantia”(實體)와 “accidentia”(偶有)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substantia란 한 사물의 정신적인 본질, 실재를 의미하고, accidentia는 겉모양을 뜻하는 것으로서 크기, 무게, 색깔, 맛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서 정신적인 본질을 ‘담고’, 유지한다. 빵과 포도주의 우유(accidentia)가 변하지 않는 이상 실체(substantia)의 변화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성찬례에서 빵과 포도주가 변화하지 않고 단지 천상에 계신 현양된 그리스도를 정신적으로 연결해주는 수단, 초자연적 힘을 얻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보았다.
베렝가의 견해는 1047년과 1054년 네 차례에 걸쳐 시노드에서 단죄되었다. 1059년에는 로마에서 열린 시노드에서 신앙고백문에 서명을 해야만 했다: “빵과 포도주는 […] 축성 이후에는 단지 상징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진정한 몸과 진정한 피이며, 그것들은 감각적 (sensualiter)이며, 상징적일뿐만 아니라 사실적으로(non solum sacramento, sed in veritate) 사제의 손으로 만져지고 부수어지며 신자들의 이로 씹혀먹힌다”(DS 690). 이 신앙고백문은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자연적인 몸과 피라는 극단적인 사실주의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베렝가는 고향으로 돌아온 후 자신이 서명한 신앙고백문을 철회하였고, 그래서 1079년 로마의 시노드에서 다음과 같은 새로운 신앙고백문에 서명을 해야만 했다. “나 베렌가는 제단에 놓여진 빵과 포도주가 거룩한 기도와 우리의 구세주의 말씀의 신비를 통해서 진정하고 본래적이며 생명을 주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체적으로 변화된다(substantialiter converti)는 것을 진심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다. 축성 이후에 빵은,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시고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되시어 십자가에 달리시고 성부 오른편에 좌정하신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이고,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진정한 그의 피이다. 이것은 단지 상징(signum)과 표상의 힘(virtus sacramenti)으로만 된 것이 아니라 본성의 고유함(proprietas naturae)과 실체의 진리(veritas substantiae) 안에서 된 것이다”(DS 700).
이 신앙고백문은 한 편으로는 상징(signum)과 표상의 힘(virtus sacramenti) 다른 한 편으로는 본성의 고유함(proprietas naturae)과 실체의 진리(veritas substantiae)란 말마디를 대립적으로 보았는데, 이를 통해서 고대 교회의 실재상징적 사고가 사라졌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실체적인 변화(substantialiter converti)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1059년의 신앙고백문에 나타난 감각 위주의 극단적인 사실주의가 극복되기 시작한다. 즉 실체는 감각적으로가 아니라 정신적 통찰력으로 인지될 수 있는 한 사물의 형의상학적 본질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성체 안의 그리스도의 현존은 어디까지나 정신적, 영적 차원으로 보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베크(Bec)의 신학자 랑프랑크(Lanfranc, +1089)와 아베르사(Aversa)의 구이트문트(Guitmund, +1095년)는 이 신앙고백문을 수용하여 實體(substantia)와 偶有(accidentia)를 구분하면서 극단적인 상징주의와 극단적인 사실주의와의 대립을 극복한다. 그들의 견해에 의하면 성변화 후에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지만 그 이전이 있던 맛이나 색깔, 그외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우유는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내용적으로 ‘실체변화’(transsubstantiatio)의 가르침에 이르게 된다. 실체변화라는 말은 나중에 교황 알렉산더 3세가 된 롤란도 반디넬리(Rolando Badinelli)에 의해서 1140/1142년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실체변화설은 제4차 라테란 공의회 (1215)에서 교회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DS 801).
우유와 실체라는 개념 구분을 도입하면서 한편으로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고 다른 한편으로 외적인 표시는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로써 적어도 성찬의 음식에 관해서는 본디 성사 개념이 의도하는 바, 즉 표시하는 바를 이루는 효과적 표지(signum efficax, efficit quod significat)라는 것을 다시 확립할 수 있게 되었다.1)
교의사를 통해서 얻어지는 결론으로, 성찬적 현존의 설명에 있어서 두 극단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극단은 성찬적 현존을 물질적 현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늘과 성체 안에 있다고 말한 9세기부터의 극단적 사실주의 경향이다. 두 번째 극단은 이와는 정반대되는 것으로서 성찬을 너무 영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성찬의 음식은 단지 그리스도가 세상에 현존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에 불과할뿐 그와의 만남을 중개해주지는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실체변화설이 확립되면서 성찬례와 성체 안의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신학적 표현을 찾게 되었다. 실상 중세초기의 교회는 9세기부터 11세기가지 이백년간 성찬례 안의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적합한 표현을 찾지 못한 채 성찬례를 거행하였던 것이다. 실체변화설에는 ‘실체’라는 철학적 개념이 사용되었지만 그 배경에는 신앙적 확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는 실체와 우유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고 그래서 한 사물의 우유는 그대로 있으면서 실체가 변화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변화 이후 빵과 포도주의 우유는 그대로 있지만 실체가 변화되는 것은 오로지 “전능하신 하느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고, 이렇게 해서 변화된 실체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오직 신앙만으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체가 그리스도의 전정한 몸과 피라고 한다면 그것은 감각적인 방법을 통해서 인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이성의 방법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신앙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고 하느님의 지극히 권위있는 증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2)
3.4. 스콜라 신학의 성찬례 신학
스콜라 신학에서는 12세기부터 성사론에 질료(materia)와 형상forma)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다. 성체성사의 질료는 빵과 포도주이고, 형상은 예수의 성찬례 설립의 말씀인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이다”로 보았다. 이런 점은 피렌체 공의회의 결정문에서 잘 드러난다(DS 1320-1322).
“세 번째 성사는 성체성사이다. 성체성사의 질료는 밀빵과 축성 전에 물을 조금 섞어야 하는 포도주이다. 물을 섞어야 하는 까닭은 주님 스스로 물이 섞인 포도주를 사용해서 이 성사를 건립하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는 주님의 수난의 현존에 상응하는 것이다. […] [포도주에 물을 섞는 것은 신자 백성과 그리스도와의 결합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체성사의 형상은 구세주께서 이 성사를 거행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in persona Christi) 말함으로써 이 성사를 거행한다. 즉 이 말씀의 능력으로써 빵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되는데, 전체 그리스도가 빵의 형상 안에, 전체 그리스도가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담겨있도록 변화된다. 축성된 제병과 축성된 포도주가 나뉘어지더라도 모든 부분에 전체 그리스도가 현존한다. 이 성사가 합당한 배령자의 영혼에 미치는 효과는 인간과 그리스도와의 결합이다. 그리고 인간은 은총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에 귀속되고 그의 지체와 결합됨으로써 이 성사의 합당한 배력자에게는 은총이 증가된다. 물질적인 음료가 육신적인 생명에 미치는 효력 즉 육신 생명을 유지하고 증가하며 새롭게하고 기쁘게하는 그런 효력을 이 성사는 영신의 생명에게 미치게 된다. 교황 우르반의 말씀대로 우리는 이 성사를 거행하면서 우리 구세주를 기억하며 감사하는데, 이 성사는 우리에게서 해로운 모든 것을 멀리하고 좋은 것에 굳세어지며 덕행과 은총이 증가하도록 한다”. (DS 1320-1322)
이 결정문은 성체성사의 질료, 형상에 대한 언급 외에도 실체변화 그리고 ‘同伴說’ (concomitentia)이 나타난다. ‘동반설’이란 중세에 미사 집전 사제만 성혈을 배령하고 신자들에게 유보된 관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형성된 견해이다. 12세기에 ‘전체 그리스도’(totus Christus)를 구성하는 부분들을 헤아리게 되었는데, 몸과 피, 영혼, 신성이 그것이다. 축성의 말씀의 능력으로 빵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로 변한다. 그러나 몸과 피는 다른 것들 즉 영혼, 신성과 떼어놓을 수 없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축성된 다음에 빵에는 예수님의 몸만이 아니라 실상은 전체 그리스도가 현존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성혈 배령을 유보하고 성체 배령만을 허락하더라도 전체 그리스도를 모시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이론이 ‘동반설’이다.
성체 건립의 말씀만이 실체변화를 일으켜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현존케 할 수 있다는 견해는 성찬례 거행에 있어서 사제의 위치를 강조하고 그의 성찬례 집전의 권한과 올바른 지향에 초점을 두도록 이끌었다. 반면 성찬례 거행에서 신자들의 역할은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했다. 전례 언어인 라틴어를 일반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신자들은 성찬례 동안에 말없는 ‘관중’으로 머물러 있어야 했다. 거기에다 거룩한 것에 대한 경외심이 점점 더 커져감에 따라 사제는 성찬기도 (최후만찬 기사 전체)를 낮은 소리로 읽음으로써 성찬례의 복음 선포적 성격과 anamnesis의 특성이 퇴색되었다. 성찬례 내에서 관심은 성변화에 집중되었고, 그래서 13세기 이후에는 밀떡과 잔을 들어올리며, 무릎을 꿇고, 종을 치는 것을 통해서 성변화를 강조되었다. 12, 13세기 사이에는 일반 신자들에게 성혈을 영해주는 것이 중지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성체 자체가 일반적으로 예외의 경우가 되었고, 그리스도와의 통교는 성체를 바라보며 흠숭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런 점은 성체 거동 축제 (1246년 뤼티히 [Lüttich]에서 시작하여, 1264년 전체교회에 도입되었다)와 성광에 모신 성체를 공경하는 것 (14세기에 성해를 성광에 모시는 관습에서 유래하였다)을 통해서 더욱 강화되었다. 공동체의 잔치로서의 성찬례는 성직자 단독의 성사적 행동과 신자들의 수동적인 성체공경으로 양분되었다고 하겠다.
3.5. 종교개혁자들의 성찬례 신학
종교개혁자들의 성찬례 신학은 하느님의 말씀, 신앙 그리고 죄의 사함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들에게 성사는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을 확실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였다. 가톨릭의 성찬례 신학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실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세부적인 문제들을 대상으로 하였는데,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문제들이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위험이 크다고 보았다. 그 문제들이란 실체변화설, 성찬례의 희생제사적 성격, ‘동반설’이다. 그 중에서 성찬례를 희생제사로 보는 것이 가장 큰 위험으로 간주되었다. 즉 성찬례를 통해서 십자가 상의 희생제물을 반복한다는 것은 히브리서에서 강조하는 “단 한 번에” (히브 7,27;9, 12;10,10)란 말을 거스리는 것이고 십자가상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회적 업적을 내용적으로 비워버리는 행업위주의 신앙이라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성찬례를 지칭하는 가톨릭 용어인 “미사”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성서에 나타난 주님의 성찬의 온전성을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성만찬”(Abendmahl)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루터(M.Luther)는 신약성서에 나타난 최후만찬 기사와 요한복음 6장의 빵에 대한 말씀을 근거로 성찬의 음식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현존한다는 것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실체변화설을 사견(私見)으로 간주하고 자신 스스로는 이를 거부하였다. 루터는 빵과 포도주의 실체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가 함께 공존하는 ‘실체공존론’(實體共存論, consubstantiatio)을 주장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 “안에(in), 함께(mit), 아래에(unter)” 현존하신다는 정식을 사용하였다. 그는 현양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지상의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현존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으로 인해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즉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全在性(ubiquitas)에 참여하기에 빵과 포도주 안에 현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받아서 먹어라”라는 말씀에 근거를 두고서 성찬례 동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이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in usu” 표현을 쓰는데, 이는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정확히는 성체축성의 말씀에서 성체배령까지를 의미한다. 루터는 환자를 위해서 축성된 성체를 보관해두는 데에서 유래한 성체경배나 성체거동 등의 성체신심을 거부하엿다.
또한 루터는 참된 예배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의 선물을 받는 것이지 인간이 무엇을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자신의 견해에 입각해서 미사가 희생제사라는 가톨릭의 입장을 비판한다. 즉 가톨릭 교회는 미사를 반복적인 희생제사로 보면서 하느님께 드리는 선행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저들은 모두 자신들이 그리스도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 앞에 제사드리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이것을 완전한 제사로 보고, 자신들의 이 선행을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미사가 선행의 성취라고 신뢰하고 이 선행을 기도로 돌리지 않는다”.3) 그래서 루터는 성찬례가 희생, 속죄의 제사라는 것을 부정하고 단지 감사의 제사라고만 하였다.
쯔빙글리(H.Zwingli)는 현양된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지상으로 내려와 빵 안에 현존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요한 6,63(“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요 육은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을 근거로 인간의 영혼은 그리스도의 몸으로도 양육될 수 없다고 보았다. 쯔빙글리는 “이는 내 몸이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비유적으로 해석해서 “이는 내 몸을 의미한다”는 뜻으로 이해하였다. 마치 바오로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바위에서 솓아 나온 물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런데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습니다”(1고린 10,4)라고 말하듯이 그렇게 전의(轉義)된 의미로 이해한 것이다. 그는 성만찬에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면서 빵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신앙을 견고케하는 기념의 표시일뿐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는 오직 신앙만이 전체 그리스도를 인간 영혼 안에 직접적으로 현존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미사의 희생제사성은 예수의 유일회적인 희생의 행동에 근거해서 거부되어야 하고, 예수의 희생 행동에 대해서 인간은 오직 기억과 감사로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성찬례에서 빵과 포도주는 “우리를 위한 희생제사에서 드려지는 몸과 피의 표징들이다. 이 표징들은 몸과 피가 이렇게 드려진다는 것을 상징하며 그리고 우리에게 구속 사업을 회상시켜 준다”.4)
칼빈(J.Calvin)은 의도적으로 루터와 쯔빙글리의 입장을 중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한편으로는 성만찬이 단지 기억의 표지에 지나는 않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주님의 몸과 피에 참되게 그리고 본질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믿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현양된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계신다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이 빵과 포도주 안에 ‘실체적’으로 현존한다는 생각은 그리스도를 지상적인 요소에 매어두려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고 간주하였다. 칼빈은 성만찬에서 이루어지는 신자들과 그리스도와의 실제적인 일치를 나타내기 위해서 다른 모형을 내세웠다. 즉 성만찬 중에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작용을 통해서 인간을 당신에게로 끌어올리신다는 것이다. 칼빈의 견해에 의하면 성만찬에서 신자들은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을 통해서 하늘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여서 그 효과를 얻는다. 또한 칼빈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되풀이 된다거나 인간에 의해서 그 희생에 무엇이 보태어진다는 오해의 소지를 근절시키기 위해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미사 거행을 통해서 바친다는 가톨릭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종교개혁자들 모두는 평신도들에게 성혈 배령을 유보한 것을 비난하였다. 이는 “모두 그것을 마시시오!”(마태 26,27; 마르 14,23)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한 명확한 저촉으로서 하느님 백성에게서 성만찬의 반쪽을 빼았고 성서에 어긋나게 성직자들만 우대하는 행위로 간주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이미 콘스탄쯔 공의회(1414-1418)에서는 후스(Johannes Hus, +1415)에 반대하여서 빵이나 포도주의 일부에도 전체 그리스도가 현존하시기에 성체만 영하더라도 전체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라는 ‘同伴說’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동반설’은 성서에 거스리는 관습을 복잡한 방법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