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렐루야.
○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26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하지 마라. 살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재판을 받아야 한다.'
하고 옛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 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누가 너를 고소하여 그와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서 얼른 화해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는 사람이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형리에게 내주어 감옥에 가둘 것이다.
분명히 말해 둔다.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오늘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 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하셨으며 또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하신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마음 한켠 불편함이 가득 차옵니다.
왜냐 하면요. 제가 진정으로 마음에서 화해하지 못한 형제자매들이 마구마구
떠올라서랍니다. 하지만 미워하진 않습니다. 아니 관심자체가 없어진 것이라고
해야 더 옳을지도 모를일이지요. 시간이 가고나면 불편한 마음이 없어지겠거니
하는 마음에서 커다란 덩어리 하나 담아 놓고 살아갑니다. 참 바보스럽게도
세월이 약이겠지요. 라는 유행가 가사에 더 위안을 삼고서 말입니다.
“화해와 용서”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임엔 틀림이 없습니다만, 부끄럽게도
저에게는 아직 낯설게 다가옵니다. 미움마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지금은
제 마음에서 지워진 사람이지만 세월이 좀더 흘러 그래도 아름다웠던 어느
한 순간이나마 떠올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누가 너를 고소하여 그와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서 얼른 화해하여라.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래요. 누군가 주님께 고소할지로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신앙인이 말로만 떠들줄 알았지 실천하지 못하는
위인 여기 있으니 잡아 가두세요” 라구요. 아니 어쩌면 이미 제 마음의 감옥에
갇혀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아직은 제 마음의
상처 저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겠나이다. 주님! 용서하소서. 지지리도 못난 이
죄인 용서 하소서. 그저 긍휼히 여기소서.
주님! 당신의 사랑을 당신의 너그러운 마음을 따르게 하소서. 따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 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하셨으며 또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하신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마음 한켠 불편함이 가득 차옵니다.
왜냐 하면요. 제가 진정으로 마음에서 화해하지 못한 형제자매들이 마구마구
떠올라서랍니다. 하지만 미워하진 않습니다. 아니 관심자체가 없어진 것이라고
해야 더 옳을지도 모를일이지요. 시간이 가고나면 불편한 마음이 없어지겠거니
하는 마음에서 커다란 덩어리 하나 담아 놓고 살아갑니다. 참 바보스럽게도
세월이 약이겠지요. 라는 유행가 가사에 더 위안을 삼고서 말입니다.
“화해와 용서”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임엔 틀림이 없습니다만, 부끄럽게도
저에게는 아직 낯설게 다가옵니다. 미움마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지금은
제 마음에서 지워진 사람이지만 세월이 좀더 흘러 그래도 아름다웠던 어느
한 순간이나마 떠올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누가 너를 고소하여 그와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서 얼른 화해하여라.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래요. 누군가 주님께 고소할지로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신앙인이 말로만 떠들줄 알았지 실천하지 못하는
위인 여기 있으니 잡아 가두세요” 라구요. 아니 어쩌면 이미 제 마음의 감옥에
갇혀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아직은 제 마음의
상처 저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겠나이다. 주님! 용서하소서. 지지리도 못난 이
죄인 용서 하소서. 그저 긍휼히 여기소서.
주님! 당신의 사랑을 당신의 너그러운 마음을 따르게 하소서. 따르게 하소서. 아멘.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내 영혼아!
오로지 그분께 말씀드려라.
오로지 주님께 들려드려라.
내 영혼아!
오로지 그분의 용서를 받아라.
오로지 주님의 허락을 들어라.
다 갚지 못하여, 다 갚을 수 없음에
풀려나오지 못하고 매여 있는 내 영혼아!
오로지 그분께 갚음을 구하여라.
오로지 주님께 해방을 청하여라.
예수여, 내 님이여..
예수여, 내 님이여..
들어주소서.
용서하소서.
풀어주소서.
제 이 영혼을 풀어주옵소서.
자유영혼이 아니고는 갈 수가 없나이다.
당신께 고하게 하소서.
당신께 고하는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내 영혼아!
오로지 그분께 말씀드려라.
오로지 주님께 들려드려라.
내 영혼아!
오로지 그분의 용서를 받아라.
오로지 주님의 허락을 들어라.
다 갚지 못하여, 다 갚을 수 없음에
풀려나오지 못하고 매여 있는 내 영혼아!
오로지 그분께 갚음을 구하여라.
오로지 주님께 해방을 청하여라.
예수여, 내 님이여..
예수여, 내 님이여..
들어주소서.
용서하소서.
풀어주소서.
제 이 영혼을 풀어주옵소서.
자유영혼이 아니고는 갈 수가 없나이다.
당신께 고하게 하소서.
당신께 고하는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오소서. 성령이여!
오늘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 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하셨으며 또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하신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마음 한켠 불편함이 가득 차옵니다.
왜냐 하면요. 제가 진정으로 마음에서 화해하지 못한 형제자매들이 마구마구
떠올라서랍니다. 하지만 미워하진 않습니다. 아니 관심자체가 없어진 것이라고
해야 더 옳을지도 모를일이지요. 시간이 가고나면 불편한 마음이 없어지겠거니
하는 마음에서 커다란 덩어리 하나 담아 놓고 살아갑니다. 참 바보스럽게도
세월이 약이겠지요. 라는 유행가 가사에 더 위안을 삼고서 말입니다.
“화해와 용서”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임엔 틀림이 없습니다만, 부끄럽게도
저에게는 아직 낯설게 다가옵니다. 미움마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지금은
제 마음에서 지워진 사람이지만 세월이 좀더 흘러 그래도 아름다웠던 어느
한 순간이나마 떠올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누가 너를 고소하여 그와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서 얼른 화해하여라.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래요. 누군가 주님께 고소할지로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신앙인이 말로만 떠들줄 알았지 실천하지 못하는
위인 여기 있으니 잡아 가두세요” 라구요. 아니 어쩌면 이미 제 마음의 감옥에
갇혀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아직은 제 마음의
상처 저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겠나이다. 주님! 용서하소서. 지지리도 못난 이
죄인 용서 하소서. 그저 긍휼히 여기소서.
주님! 당신의 사랑을 당신의 너그러운 마음을 따르게 하소서. 따르게 하소서. 아멘.
오소서. 성령이여!
오늘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 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하셨으며 또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하신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마음 한켠 불편함이 가득 차옵니다.
왜냐 하면요. 제가 진정으로 마음에서 화해하지 못한 형제자매들이 마구마구
떠올라서랍니다. 하지만 미워하진 않습니다. 아니 관심자체가 없어진 것이라고
해야 더 옳을지도 모를일이지요. 시간이 가고나면 불편한 마음이 없어지겠거니
하는 마음에서 커다란 덩어리 하나 담아 놓고 살아갑니다. 참 바보스럽게도
세월이 약이겠지요. 라는 유행가 가사에 더 위안을 삼고서 말입니다.
“화해와 용서”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임엔 틀림이 없습니다만, 부끄럽게도
저에게는 아직 낯설게 다가옵니다. 미움마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지금은
제 마음에서 지워진 사람이지만 세월이 좀더 흘러 그래도 아름다웠던 어느
한 순간이나마 떠올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누가 너를 고소하여 그와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서 얼른 화해하여라.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래요. 누군가 주님께 고소할지로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신앙인이 말로만 떠들줄 알았지 실천하지 못하는
위인 여기 있으니 잡아 가두세요” 라구요. 아니 어쩌면 이미 제 마음의 감옥에
갇혀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아직은 제 마음의
상처 저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겠나이다. 주님! 용서하소서. 지지리도 못난 이
죄인 용서 하소서. 그저 긍휼히 여기소서.
주님! 당신의 사랑을 당신의 너그러운 마음을 따르게 하소서. 따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