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6.12-14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 뜯을지도 모른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좁은 문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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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예전에 본당에서 봉사를 할 때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일중에 하나가
교우들의 무반응과 비협조적이며 일의 성과에 대해 비판을 하여
맥이 빠지기도 하고 협조를 해주지 않은 자매들을 미워했었는데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본당 일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미워하며 무시했던 자신 상대방의 사정이나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판단과 기준을 내 식대로 내 마음대로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협조하지 않는다고 신앙인이 그럴 수
있느냐고 하면서 미워했던 자신이 오히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이
하느님의 일은 한답시고 자신의 생각대로 남을 쉽게 판단하며 미워했던
자신이 더 옹졸하고 사랑이 없었음을 ……
오늘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남에게도 해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남을 사랑하기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더 사랑받고
더 갖고 싶어 했던 저의 이기심이 부끄럽습니다
영양가 없는 데는 목숨을 걸면서도 영혼의 양식인 생명이 걸린
하느님의 말씀을
어렵게 여기는 자신이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오늘의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실천하도록 노력하기만 해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좁은문으로 들어갈수 있을텐데…..
내 뜻대로 살면서 남을 쉽게 판단하며 자신의 틀에 넣으려했던
옹졸한 사람임을……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 성서 말씀을 묵상하며
좋은 하루 되세요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예전에 본당에서 봉사를 할 때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일중에 하나가
교우들의 무반응과 비협조적이며 일의 성과에 대해 비판을 하여
맥이 빠지기도 하고 협조를 해주지 않은 자매들을 미워했었는데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본당 일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미워하며 무시했던 자신 상대방의 사정이나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판단과 기준을 내 식대로 내 마음대로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협조하지 않는다고 신앙인이 그럴 수
있느냐고 하면서 미워했던 자신이 오히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이
하느님의 일은 한답시고 자신의 생각대로 남을 쉽게 판단하며 미워했던
자신이 더 옹졸하고 사랑이 없었음을 ……
오늘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남에게도 해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남을 사랑하기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더 사랑받고
더 갖고 싶어 했던 저의 이기심이 부끄럽습니다
영양가 없는 데는 목숨을 걸면서도 영혼의 양식인 생명이 걸린
하느님의 말씀을
어렵게 여기는 자신이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오늘의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실천하도록 노력하기만 해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좁은문으로 들어갈수 있을텐데…..
내 뜻대로 살면서 남을 쉽게 판단하며 자신의 틀에 넣으려했던
옹졸한 사람임을……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 성서 말씀을 묵상하며
좋은 하루 되세요
오소서. 성령이여!
”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마라. ”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고 사랑을 베풀어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색안경을 끼고 되받아치는 사람들을 가끔씩 만나게 됩니다.
그럴때면 오히려 친절을 베푼사람이 좀 이상한 사람 취급 당하기가 쉽고 오래
오래 상처로 남아있게 됩니다. 참으로 힘빠지는 경우이지요.
또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하는 율법의 황금율을 말씀하시며 좁은 문으로 들어 가는 길임을 알려주십니다.
“멸망의 길로 가는 문은 넓고 찾는 사람도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 하시며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가는
여정은 비록 험란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부단히 노력하길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도 당신이 주신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면서 제 자신을 바라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주셔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저의
모습이야말로 개, 돼지처럼 처신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받아들이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볼 줄 알며
귀한 것을 귀하게 받아들일줄 아는 루실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남에게 좋은 대접과 남이 나에게 잘 해주기만을 기대합니다.
정작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기 때문이겠지요.
주님!
제가 남에게 못하는 것을 남에게 기대하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바라는 것을 제가
실천하면서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겠습니다.
친절과 사랑을 받으려만 하지말고 먼저 베풀며 살아가는 이웃이 되길 기도하며
내가 베풀었다 하여 꼭 되받으려 기대하지 않는 편안한 사람어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생명의 길로 가는 길이 좁고 험하더라도, 함께 가는 사람이 적어 조금 외롭더
라도 그 곳을 향해 행복한 발걸음 떼어놓게 저의 손을 잡아 주소서. 아멘.
생명의 양식
오소서. 성령이여!
”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마라. ”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고 사랑을 베풀어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색안경을 끼고 되받아치는 사람들을 가끔씩 만나게 됩니다.
그럴때면 오히려 친절을 베푼사람이 좀 이상한 사람 취급 당하기가 쉽고 오래
오래 상처로 남아있게 됩니다. 참으로 힘빠지는 경우이지요.
또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하는 율법의 황금율을 말씀하시며 좁은 문으로 들어 가는 길임을 알려주십니다.
“멸망의 길로 가는 문은 넓고 찾는 사람도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 하시며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가는
여정은 비록 험란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부단히 노력하길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도 당신이 주신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면서 제 자신을 바라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주셔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저의
모습이야말로 개, 돼지처럼 처신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받아들이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볼 줄 알며
귀한 것을 귀하게 받아들일줄 아는 루실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남에게 좋은 대접과 남이 나에게 잘 해주기만을 기대합니다.
정작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기 때문이겠지요.
주님!
제가 남에게 못하는 것을 남에게 기대하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바라는 것을 제가
실천하면서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겠습니다.
친절과 사랑을 받으려만 하지말고 먼저 베풀며 살아가는 이웃이 되길 기도하며
내가 베풀었다 하여 꼭 되받으려 기대하지 않는 편안한 사람어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생명의 길로 가는 길이 좁고 험하더라도, 함께 가는 사람이 적어 조금 외롭더
라도 그 곳을 향해 행복한 발걸음 떼어놓게 저의 손을 잡아 주소서. 아멘.
생명의 양식
주일 저녁에 미사에 갔는데 성당 바닥에서
교황님 얼굴의 상본 하나를 주웠습니다.
저는 그 상본을 주워 들고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교황님을 위한 기도를 해야겠다.. 하였는데
바로 주님께서 “기도하라”하시니까요.
‘ 예수님, 기도하라구요? 하하하~ ^__________^ ‘
웃었습니다.
예수님때문에 웃음이 났습니다.
기뻤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주님 앞에 앉아있는데 수녀님께서 오셔서
부활 제대초라며 초 두자루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또 웃었습니다.
웃음이 났습니다.
‘ 예수님, 기도하라구요? 하하하~ ^_______________________^ ‘
기뻤습니다..
주님께서는 어제도 당신 앞에 앉아 있는 제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자주 이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제가 어려워하는 말씀 중의 하나인 이 말씀을요.
곰곰 곰곰..
아하! 나는 주님의 그림자,
주님께서 내게 당신을 주시며 행복하시듯이
나도 주님 따라 주는 것이 더 행복함을 살아야 하는구나.
주님께 받는 것이 큰 행복일진대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니
주님께서는 내게도 그 행복을 찾기바라시는구나.
아하! 나는 주님의 그림자..
오늘도 말씀해주십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용서해 주어라.’
‘오리를 가자 하거든 십리를 가 주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어라, 주어라, 주어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예수, 내 주님!
당신 제게 당신을 주시니 당신 그림자,
저도 제 자신을 주게 하소서.
당신께 드리게 하소서.
형제 자매에게 주게 하소서.
기도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삶이 되고
그리하여 제 모든 것을 온전히 주게 하소서.
당신께, 형제 자매에게.
다 주었을 때 비로소.. 좁은문으로 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주일 저녁에 미사에 갔는데 성당 바닥에서
교황님 얼굴의 상본 하나를 주웠습니다.
저는 그 상본을 주워 들고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교황님을 위한 기도를 해야겠다.. 하였는데
바로 주님께서 “기도하라”하시니까요.
‘ 예수님, 기도하라구요? 하하하~ ^__________^ ‘
웃었습니다.
예수님때문에 웃음이 났습니다.
기뻤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주님 앞에 앉아있는데 수녀님께서 오셔서
부활 제대초라며 초 두자루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또 웃었습니다.
웃음이 났습니다.
‘ 예수님, 기도하라구요? 하하하~ ^_______________________^ ‘
기뻤습니다..
주님께서는 어제도 당신 앞에 앉아 있는 제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자주 이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제가 어려워하는 말씀 중의 하나인 이 말씀을요.
곰곰 곰곰..
아하! 나는 주님의 그림자,
주님께서 내게 당신을 주시며 행복하시듯이
나도 주님 따라 주는 것이 더 행복함을 살아야 하는구나.
주님께 받는 것이 큰 행복일진대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니
주님께서는 내게도 그 행복을 찾기바라시는구나.
아하! 나는 주님의 그림자..
오늘도 말씀해주십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용서해 주어라.’
‘오리를 가자 하거든 십리를 가 주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어라, 주어라, 주어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예수, 내 주님!
당신 제게 당신을 주시니 당신 그림자,
저도 제 자신을 주게 하소서.
당신께 드리게 하소서.
형제 자매에게 주게 하소서.
기도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삶이 되고
그리하여 제 모든 것을 온전히 주게 하소서.
당신께, 형제 자매에게.
다 주었을 때 비로소.. 좁은문으로 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예전에 구역반장을 했을 때 나름대로는 참 열심히 했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을 해보니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봉사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구역일을 하면서 저의 뜻에 따라주지 않는 자매들을 미워하며
신자로써 그럴 수가 있냐는등등…
핏대를 올려가며 열을 올렸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이었는지….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봉사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닌
봉사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군림하며 남을 짓밣었던 것같았던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좋아할리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면서 남을 탓하며
하느님의 자녀로써 그럴 수가 있느냐는 둥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고
미워햇던 자신의 모습이 복음을 묵상하면서 떠오릅니다
오늘복음에서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면 …..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며 미워하며 섭섭해하지는 않았을 텐데….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묵상하며
♬ temple-monastic chants-christdesert(Benedict)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예전에 구역반장을 했을 때 나름대로는 참 열심히 했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을 해보니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봉사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구역일을 하면서 저의 뜻에 따라주지 않는 자매들을 미워하며
신자로써 그럴 수가 있냐는등등…
핏대를 올려가며 열을 올렸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이었는지….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봉사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닌
봉사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군림하며 남을 짓밣었던 것같았던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좋아할리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면서 남을 탓하며
하느님의 자녀로써 그럴 수가 있느냐는 둥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고
미워햇던 자신의 모습이 복음을 묵상하면서 떠오릅니다
오늘복음에서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면 …..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며 미워하며 섭섭해하지는 않았을 텐데….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묵상하며
♬ temple-monastic chants-christdesert(Benedict)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가치를 아는 것과 가치를 모르는 것.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어느 효자가 연로하신 어머니를 성경을 모두 암기하고 있는 앵무새를 비싼 값에 사서 어머니에게 보내드렸습니다. 얼마후에 어머니에게서 감사의 편지가 왔습니다. “얘야 네가 보내준 앵무새 잘 받았다. 그런데 고기가 좀 질기더구나…”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 서서 너희를 물어 뜯을지도 모른다.”
개와 돼지 같은 짐승을 거룩한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두 가지 종류의 인간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예로니모는 돼지란 한 번도 복음의 광명을 받지 못한 이교인을 말하고, 개란 한번 회개하였다가 다시 무신앙으로 타락한 인간을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요한 금구는 개란 회개의 가망이 전혀 없는 불신자를 뜻하며, 돼지란 타락한 자를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좌우지간 개와 돼지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거룩한 것에 접근시켜서는 안될 위험한 인간을 뜻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거룩한 것이란 완덕은 물론, 복음, 성사, 제자들의 의무를 포함한 그 모든 것을 뜻합니다. 개나 돼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것 뿐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가령 진주를 던져 주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먹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았을 때는 제 발로 진주를 밟아 버리고, 성을 내며 그것을 준 사람을 오히려 물려고 덤벼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적당한 준비도, 예비교육도 받지 않고 거룩한 것을 받은 후, 변절하여 박해자가 되어 어머니이신 교회를 물어뜯으려고 덤벼 든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2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이것은 사랑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내 방식대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대로 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고급 양주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이유식 대신 술을 마시게 하면 안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남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기를 바라면서 남에게는 내가 해 주고 싶은 대로 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랍비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훈계는 항상 소극적으로 얼마 쯤은 이기적인 더러움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예언서가 가르치는 것이 “하지 말라”라는 소극적인 방면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율법 모두가 “행하라”는 적극적이고 명령적인 형태로 되어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의 이방인이 랍비 샴마이(기원전 30년 경의 사람)에게 면회를 청하러 왔습니다. “나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곧 당신은 내가 한 쪽 발로 서 있는 동안에 모든 율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샴마이는 화를 내며 그 사나이를 쫓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랍비 힐레르는 그 사나이를 제자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네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다. 다른 것은 그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가서 이같이 가르쳐라.”
진리는 통한다고 했습니다. 아마 예수님 이전의 랍비들도 예수님과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지킴에 있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 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14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생명에 이르는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가치를 알고, 진주를 진주로 알아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황금율을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생명에 이르는 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가치를 아는 것과 가치를 모르는 것.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어느 효자가 연로하신 어머니를 성경을 모두 암기하고 있는 앵무새를 비싼 값에 사서 어머니에게 보내드렸습니다. 얼마후에 어머니에게서 감사의 편지가 왔습니다. “얘야 네가 보내준 앵무새 잘 받았다. 그런데 고기가 좀 질기더구나…”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 서서 너희를 물어 뜯을지도 모른다.”
개와 돼지 같은 짐승을 거룩한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두 가지 종류의 인간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예로니모는 돼지란 한 번도 복음의 광명을 받지 못한 이교인을 말하고, 개란 한번 회개하였다가 다시 무신앙으로 타락한 인간을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요한 금구는 개란 회개의 가망이 전혀 없는 불신자를 뜻하며, 돼지란 타락한 자를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좌우지간 개와 돼지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거룩한 것에 접근시켜서는 안될 위험한 인간을 뜻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거룩한 것이란 완덕은 물론, 복음, 성사, 제자들의 의무를 포함한 그 모든 것을 뜻합니다. 개나 돼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것 뿐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가령 진주를 던져 주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먹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았을 때는 제 발로 진주를 밟아 버리고, 성을 내며 그것을 준 사람을 오히려 물려고 덤벼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적당한 준비도, 예비교육도 받지 않고 거룩한 것을 받은 후, 변절하여 박해자가 되어 어머니이신 교회를 물어뜯으려고 덤벼 든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2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이것은 사랑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내 방식대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대로 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고급 양주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이유식 대신 술을 마시게 하면 안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남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기를 바라면서 남에게는 내가 해 주고 싶은 대로 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랍비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훈계는 항상 소극적으로 얼마 쯤은 이기적인 더러움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예언서가 가르치는 것이 “하지 말라”라는 소극적인 방면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율법 모두가 “행하라”는 적극적이고 명령적인 형태로 되어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의 이방인이 랍비 샴마이(기원전 30년 경의 사람)에게 면회를 청하러 왔습니다. “나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곧 당신은 내가 한 쪽 발로 서 있는 동안에 모든 율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샴마이는 화를 내며 그 사나이를 쫓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랍비 힐레르는 그 사나이를 제자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네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다. 다른 것은 그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가서 이같이 가르쳐라.”
진리는 통한다고 했습니다. 아마 예수님 이전의 랍비들도 예수님과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지킴에 있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 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14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생명에 이르는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가치를 알고, 진주를 진주로 알아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황금율을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생명에 이르는 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