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29)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죽음의 힘도 그것을 누르지 못하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19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나를 사랑하느냐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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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교황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멘.

  2. user#0 님의 말:

    교황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멘.

  3.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베드로 사도 “선생님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오로 사도 ”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오늘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먼저 오늘 베드로와 바오로 성인의 축일을 맞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참 재미있는 사실 한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을 하였지만 끝내 예수님을 살아계신
    그리스도이시다 하는 최초의 공적인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모든 믿는이들의
    신앙의 본보기가 된 베드로사도와

    처음에는 가톨릭 신자들을 박해하다 못해 그리스도 신앙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싶다 할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사람이 끝내는 회심하여 그리스도
    신앙을 이방인들에게까지 전파하기 위해 달릴 길을 다 달렸다고 자신있게 고백
    하기까지 최선을 다한 바오로 사도의 깊은 신앙을 보면서 하느님의 섭리하심은
    참으로 오묘하며 아울러 무수한 묵상거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두 분께서는 그리스도 신앙을 위해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하나 뿐인 목숨
    까지도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저는 주님을 위해 드린 것이
    무엇이며 희생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돌아다 봅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드린 것이 없으며 당신을 위해 희생한 것이 거의 없었음을
    발견하고 참으로 부끄러워 짐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겠나이다.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과 바오로 사도의 회심하여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된
    모습을 보며 저 역시 허물투성이임엔 틀림없지만, 오늘 복음을 통하여 저에게 희망과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 주심을 깨닫습니다.
    네 주님! 어렵지만 예수님 당신을 우리의 참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데 앞장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에게 참된 신앙의 본보기가 되어주신 베드로 사도와 참된 신앙인의
    길잡이가 되어주신 바오로 사도의 열정과 높은 신앙심을 저도 본받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서 당신의 진리를 전하고 당신의 사랑을 전하는데 미력하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218.53.6.165 흑진주: 혹시 루실라 자매님이시죠?어제,오늘 계속하야 제가 무쟈게 횃갈립니다.처음엔 어디 여행가신줄 알았죠. 건강하시죠?날씨가 이틀은 시원한해요. 더위가 오면 짜증내지 마시고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시기를~~^0^ [06/29-16:30]

  4.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베드로 사도 “선생님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오로 사도 ”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오늘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먼저 오늘 베드로와 바오로 성인의 축일을 맞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참 재미있는 사실 한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을 하였지만 끝내 예수님을 살아계신
    그리스도이시다 하는 최초의 공적인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모든 믿는이들의
    신앙의 본보기가 된 베드로사도와

    처음에는 가톨릭 신자들을 박해하다 못해 그리스도 신앙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싶다 할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사람이 끝내는 회심하여 그리스도
    신앙을 이방인들에게까지 전파하기 위해 달릴 길을 다 달렸다고 자신있게 고백
    하기까지 최선을 다한 바오로 사도의 깊은 신앙을 보면서 하느님의 섭리하심은
    참으로 오묘하며 아울러 무수한 묵상거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두 분께서는 그리스도 신앙을 위해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하나 뿐인 목숨
    까지도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저는 주님을 위해 드린 것이
    무엇이며 희생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돌아다 봅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드린 것이 없으며 당신을 위해 희생한 것이 거의 없었음을
    발견하고 참으로 부끄러워 짐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겠나이다.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과 바오로 사도의 회심하여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된
    모습을 보며 저 역시 허물투성이임엔 틀림없지만, 오늘 복음을 통하여 저에게 희망과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 주심을 깨닫습니다.
    네 주님! 어렵지만 예수님 당신을 우리의 참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데 앞장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에게 참된 신앙의 본보기가 되어주신 베드로 사도와 참된 신앙인의
    길잡이가 되어주신 바오로 사도의 열정과 높은 신앙심을 저도 본받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서 당신의 진리를 전하고 당신의 사랑을 전하는데 미력하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218.53.6.165 흑진주: 혹시 루실라 자매님이시죠?어제,오늘 계속하야 제가 무쟈게 횃갈립니다.처음엔 어디 여행가신줄 알았죠. 건강하시죠?날씨가 이틀은 시원한해요. 더위가 오면 짜증내지 마시고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시기를~~^0^ [06/29-16:30]

  5. user#0 님의 말: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너는 베드로이다.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공동체의 우두머리이신 베드로님!
    주님의 사랑으로 하늘나라의 열쇠를 쥐셨으니 넘 좋으시겠어요.(부러버라..)
    비결이 뭐래요?하나 가르쳐주시면 안될까요?
    아니면 저에게 주님 몰래 열쇠를 복사해서 하나 주셔도 절대 말안하는데…
    제가 원래 욕심이 무쟈게 많거든요.
    제가 원래 이렇게 기회주의자예요. 그것도 거저 얻으려하고,아니면 베드로님
    께서 그냥 문만 열어주시면 더 좋은데…

    제가 이렇게 착각속에 살고 있답니다.
    베드로님의 우직한 믿음을 본받고 작은것부터 실천해가는 그런 아녜스이겠
    습니다.
    저의 이런 악습관을 버리고,주님을 찬양하는 그런 시간들이기를 기도합니다.
    더 겸손해지도록 노력하며 많은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이시간 봉헌합니다.

  6. user#0 님의 말: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너는 베드로이다.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공동체의 우두머리이신 베드로님!
    주님의 사랑으로 하늘나라의 열쇠를 쥐셨으니 넘 좋으시겠어요.(부러버라..)
    비결이 뭐래요?하나 가르쳐주시면 안될까요?
    아니면 저에게 주님 몰래 열쇠를 복사해서 하나 주셔도 절대 말안하는데…
    제가 원래 욕심이 무쟈게 많거든요.
    제가 원래 이렇게 기회주의자예요. 그것도 거저 얻으려하고,아니면 베드로님
    께서 그냥 문만 열어주시면 더 좋은데…

    제가 이렇게 착각속에 살고 있답니다.
    베드로님의 우직한 믿음을 본받고 작은것부터 실천해가는 그런 아녜스이겠
    습니다.
    저의 이런 악습관을 버리고,주님을 찬양하는 그런 시간들이기를 기도합니다.
    더 겸손해지도록 노력하며 많은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이시간 봉헌합니다.

  7. user#0 님의 말:

    찬미예수님!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비단 베드로 사도뿐만이 아니라..
    저한테도 하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어제 하루는 이 말씀 묵상했습니다…

    어제는 미사사이트에서 저를 완강히 거부하는 통에 애를 좀 먹었어요..

    늦었지만 어제 베드로 축일을 맞으신분 축하드립니다.

    219.254.152.8 이 헬레나: 이상하넹 미사싸이트가 베로니카를 거부하다니? 간댕이가 부었나ㅋㅋㅋ
    오늘 레지오에서 성거산으로 성지순례갔다 지금 왔답니다^^
    성거산에서 십자가의 길도 하고 순교자의 길도 가서 기도하고.묵주기도
    도하면서즐겁게 지내다 왔더니 베로니카가 반갑게 맞아줘서 기쁘네요
    감사해요 자주 만나뵙길 기도합니다 안녕 [06/30-19:04]

  8. user#0 님의 말:

    찬미예수님!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비단 베드로 사도뿐만이 아니라..
    저한테도 하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어제 하루는 이 말씀 묵상했습니다…

    어제는 미사사이트에서 저를 완강히 거부하는 통에 애를 좀 먹었어요..

    늦었지만 어제 베드로 축일을 맞으신분 축하드립니다.

    219.254.152.8 이 헬레나: 이상하넹 미사싸이트가 베로니카를 거부하다니? 간댕이가 부었나ㅋㅋㅋ
    오늘 레지오에서 성거산으로 성지순례갔다 지금 왔답니다^^
    성거산에서 십자가의 길도 하고 순교자의 길도 가서 기도하고.묵주기도
    도하면서즐겁게 지내다 왔더니 베로니카가 반갑게 맞아줘서 기쁘네요
    감사해요 자주 만나뵙길 기도합니다 안녕 [06/30-19:04]

  9.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님!

    예수님께서는 저에게도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묻고 계십니다.

    그런데 말이죠. 주님!
    솔직히 저는 주님이신 당신을 꼭집어 누구라고 대답해야 할지
    재빠르게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머리속에선 늘 저와 함께 살아계시는 하느님이시라고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마음까지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항상 제 필요에 의해서 아쉬울 때만 찾았기에 어느 때는 저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해결사가 되는가 하면 또 어느 때는
    제 원망을 다 들어주시는 카운셀러가 되어 주시기도 하는 등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속의 베드로 사도의 ”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는 당당하고 멋진 신앙고백을 보면서
    참으로 부럽기도 했으며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베드로 사도처럼 멋진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지
    일하는 순간순간 가끔씩 성찰해 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이신 당신은 ”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십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 날 까지 당신의 말씀을 열심히
    배워익혀 조금씩이라도 생활속에서 실천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10.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님!

    예수님께서는 저에게도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묻고 계십니다.

    그런데 말이죠. 주님!
    솔직히 저는 주님이신 당신을 꼭집어 누구라고 대답해야 할지
    재빠르게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머리속에선 늘 저와 함께 살아계시는 하느님이시라고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마음까지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항상 제 필요에 의해서 아쉬울 때만 찾았기에 어느 때는 저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해결사가 되는가 하면 또 어느 때는
    제 원망을 다 들어주시는 카운셀러가 되어 주시기도 하는 등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속의 베드로 사도의 ”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는 당당하고 멋진 신앙고백을 보면서
    참으로 부럽기도 했으며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베드로 사도처럼 멋진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지
    일하는 순간순간 가끔씩 성찰해 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이신 당신은 ”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십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 날 까지 당신의 말씀을 열심히
    배워익혀 조금씩이라도 생활속에서 실천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11. user#0 님의 말: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
    오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베드로사도가 고백한 것처럼 저도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고백할수 있는 신앙심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님!

    오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에게는 아직 당신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신앙고백을 할만큼의 믿음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직도 저에게는 베드로사도같은 신앙심이 없다는 사실이…..

    그런데요 주님!
    오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에게도 당신께서 베드로사도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신 것처럼
    비록 아직은 부족하고 믿음이 없는 저이지만 당신께서 특별한 은총을
    주셧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제넘은 생각이지만…..

    주님!
    저에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요?
    제가 당신을 믿는마음이 확고하다면….
    하지만 아직은 제가 당신을 완전히 믿고 사랑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솔직히 아직도 저는 당신의 말씀을 믿기보다는 세속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세상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많음도
    고백합니다
    아직은 이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것이 많아야한다는 생각이 더 ….

    하지만 주님!
    이렇게 이기적인 저이지만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다는 생각에 감히 당신께 청해봅니다
    저에게도 살면서 필요한 것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주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한답시고 아직도 세속의 욕심만 채우려는 제가
    한심하다는 생각에 당신께 죄송한 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
    사랑이신 당신께서는 저를 사랑해주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싶습니다
    언제까지나….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묵상하며

  12. user#0 님의 말: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
    오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베드로사도가 고백한 것처럼 저도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고백할수 있는 신앙심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님!

    오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에게는 아직 당신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신앙고백을 할만큼의 믿음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직도 저에게는 베드로사도같은 신앙심이 없다는 사실이…..

    그런데요 주님!
    오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에게도 당신께서 베드로사도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신 것처럼
    비록 아직은 부족하고 믿음이 없는 저이지만 당신께서 특별한 은총을
    주셧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제넘은 생각이지만…..

    주님!
    저에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요?
    제가 당신을 믿는마음이 확고하다면….
    하지만 아직은 제가 당신을 완전히 믿고 사랑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솔직히 아직도 저는 당신의 말씀을 믿기보다는 세속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세상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많음도
    고백합니다
    아직은 이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것이 많아야한다는 생각이 더 ….

    하지만 주님!
    이렇게 이기적인 저이지만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다는 생각에 감히 당신께 청해봅니다
    저에게도 살면서 필요한 것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주님!
    당신의 말씀을 묵상한답시고 아직도 세속의 욕심만 채우려는 제가
    한심하다는 생각에 당신께 죄송한 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
    사랑이신 당신께서는 저를 사랑해주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싶습니다
    언제까지나….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묵상하며

  13. user#0 님의 말: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도 베드로사도처럼 자신있게….
    당당하게 ….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떳떳하게….
    자랑스럽게….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싶습니다
    떳떳하게….
    자랑스럽게 그렇게….
    당신이 누구신지를 밝히고 싶습니다
    하지만 마음 뿐….
    아직은….
    저의 믿음이…
    저의 마음이….
    저의 태도가….
    저의 삶이….
    당신을 증거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직은…
    저의 믿음이……
    제가 처해있는 상황이….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은 당신을 완전히 사랑한다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직은 저의 믿음이 확고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지만 당신을 속인다는 것은….
    하지만 주님!
    그래도 마음만은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마음만은…
    당신을 온전히 믿고 싶기에….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께 신앙고백을 하는 베드로사도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당신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에….
    당신을 향한 베드로의 믿음이….
    당신을 향한 신앙고백이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부럽습니다
    저도 고백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은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고….
    그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도…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묵상하며

    베드로 바오로사도 대축일인 오늘 축일을 맞이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리며 행복한 나날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14. user#0 님의 말: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도 베드로사도처럼 자신있게….
    당당하게 ….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떳떳하게….
    자랑스럽게….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싶습니다
    떳떳하게….
    자랑스럽게 그렇게….
    당신이 누구신지를 밝히고 싶습니다
    하지만 마음 뿐….
    아직은….
    저의 믿음이…
    저의 마음이….
    저의 태도가….
    저의 삶이….
    당신을 증거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직은…
    저의 믿음이……
    제가 처해있는 상황이….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은 당신을 완전히 사랑한다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직은 저의 믿음이 확고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지만 당신을 속인다는 것은….
    하지만 주님!
    그래도 마음만은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마음만은…
    당신을 온전히 믿고 싶기에….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께 신앙고백을 하는 베드로사도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당신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에….
    당신을 향한 베드로의 믿음이….
    당신을 향한 신앙고백이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부럽습니다
    저도 고백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은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고….
    그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도…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묵상하며

    베드로 바오로사도 대축일인 오늘 축일을 맞이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리며 행복한 나날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15. user#0 님의 말: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말씀연구>

    13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이 동네 사람들은 빵신(神)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네아스>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필립보 분국왕이 재건한 도읍입니다. 그 후 가이사르 아우구스토를 숭앙하기 위해 가이사리아라고 개명하였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세운 또 하나의 가이사리아와 구별하기 위하여 보통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14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야는 사람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았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들어 높여졌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다시 오리라고 기대되고 있었습니다(말라4,5-6).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라는 추측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보다 더 높은 명예를 거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더 높은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분명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줄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귀에는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역사의 인물 중에서 위대한 성현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15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6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요한 금구 성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계시는 없었으리라. 베드로가 예수님도 다른 사람의 아들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칭찬받을 가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17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18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존엄성과 그분의 위격의 신비에 대한 지식은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기에 이 지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심오한 신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복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복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 선언을 살펴보면 “안다는 사람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신비를 보여 주셨다는 예수님의 찬양”을 기억하게 합니다. 자신들의 머리로 파악하려는 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려고만 하는 이들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라는 말은 아람어의 게파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반석, 바위”라는 뜻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라는 말씀의 주요한 의미는 시몬이 이제 반석이 되어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서 바위는 하느님 자신을 가리켜 비번히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바위시오 성채이시며 확실한 지주시오 영원한 기반이시며, 영원 불변하고 굳건한 보증이십니다. 폭풍이 일거나 홍수가 골짜기로 밀어닥칠 때 사람들은 바위로 피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머무르실 거처로 바위 하나와 집 한 채를 특별히 뽑으셨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이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지옥문은 죽음이 정복한 자들에게 활짝 열려 있으며 이미 이 죽음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망칠 수 없도록 굳게 닫혀져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해 죽임이 더 이상 맥을 못추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공동체에 대해서도 죽음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지만(로마5,12)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몸값으로 당신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를 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반석은 죽음에 의해 억눌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력은 더 이상 죽음에 의해 정복될 수 없습니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완전히 땡 잡았습니다. 적어도 38광땡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문에 의해 보호되는 도시나 현관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집에 비유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닫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열쇠는 권한을 부여받은 쉬위나 청지기가 갖고 있는데 베드로는 바로 이런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 큰 권한을 갖게 되는 청지기입니다.

    풀다와 매다라는 용어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것은 기존하는 교리를 옳다 그르다를 판정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공동체에서 제외시키거나(파문)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권한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무엇이 올바른 교리인가 하는 결정과 누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받아들여짐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풀고 매는 권한은 구원의 중개에 대해서나 그러한 중개가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양식에 있어서 포괄적인 위임인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이 선언은 하느님 앞에서 유효할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몸소 선언하신 것처럼 선언되는 그 순간에 유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엄밀히 말한다면 신적인 사명으 수여 받은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판정은 이러한 힘과 신적인 유효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교회에 부여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앞에서 유효한 사도들의 성스러운 사법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일은 마지막 날의 심판관에게 유보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양과 염소를 갈라 놓으실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행사되는 사법권에 의한 예비적인 판결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뽑힌 선택된 자들의 이름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감추어져 있지만, 최종적인 하느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공동체에 누가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베드로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한이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인 질서라는 것,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말입니다.

    20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의 신비는 믿는 제자들에게만 계시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에게만 계시되었습니다. 이 신비는 신앙의 도정의 종점이자 목적이지 신앙의 시작은 아닙니다. 먼저 시대의 표징을 이해해야만 하고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이런 과정의 결실로서 예수님의 신비를 알게 될 것입니다.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고를 하십니다. 수난의 장소는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입니다(루가13,33 참조).  살인 대행자들은 이스라엘의 대법원인 최고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자들, 즉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될 것입니다. 메시아는 그들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삼일 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22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 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들은 베드로 사도가 “예! 그렇습니까? 그럼 그래야지요.”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펄쩍 뜁니다. 아직까지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인간적인 사랑으로 베드로 사도는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인간적인 사랑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베드로 사도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사탄이라고 말씀을 하시니. 그러나 아직까지 베드로 사도는 단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비록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지만 그의 온 몸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기 위해서는 더 큰 희생이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분을 생각할 때 나의 신앙의 토대는 더욱 단단하게 다져질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의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꾸짖으십니다.”내가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공동체를 위해서 한 일인데 그것이 결국에는 공동체에게 약간의 손해를 가져온 그런 경우가 혹시 있습니까?




  16. user#0 님의 말: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말씀연구>

    13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이 동네 사람들은 빵신(神)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네아스>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필립보 분국왕이 재건한 도읍입니다. 그 후 가이사르 아우구스토를 숭앙하기 위해 가이사리아라고 개명하였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세운 또 하나의 가이사리아와 구별하기 위하여 보통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14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야는 사람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았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들어 높여졌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다시 오리라고 기대되고 있었습니다(말라4,5-6).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라는 추측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보다 더 높은 명예를 거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더 높은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분명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줄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귀에는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역사의 인물 중에서 위대한 성현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15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6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요한 금구 성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계시는 없었으리라. 베드로가 예수님도 다른 사람의 아들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칭찬받을 가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17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18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존엄성과 그분의 위격의 신비에 대한 지식은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기에 이 지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심오한 신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복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복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 선언을 살펴보면 “안다는 사람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신비를 보여 주셨다는 예수님의 찬양”을 기억하게 합니다. 자신들의 머리로 파악하려는 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려고만 하는 이들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라는 말은 아람어의 게파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반석, 바위”라는 뜻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라는 말씀의 주요한 의미는 시몬이 이제 반석이 되어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서 바위는 하느님 자신을 가리켜 비번히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바위시오 성채이시며 확실한 지주시오 영원한 기반이시며, 영원 불변하고 굳건한 보증이십니다. 폭풍이 일거나 홍수가 골짜기로 밀어닥칠 때 사람들은 바위로 피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머무르실 거처로 바위 하나와 집 한 채를 특별히 뽑으셨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이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지옥문은 죽음이 정복한 자들에게 활짝 열려 있으며 이미 이 죽음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망칠 수 없도록 굳게 닫혀져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해 죽임이 더 이상 맥을 못추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공동체에 대해서도 죽음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지만(로마5,12)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몸값으로 당신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를 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반석은 죽음에 의해 억눌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력은 더 이상 죽음에 의해 정복될 수 없습니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완전히 땡 잡았습니다. 적어도 38광땡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문에 의해 보호되는 도시나 현관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집에 비유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닫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열쇠는 권한을 부여받은 쉬위나 청지기가 갖고 있는데 베드로는 바로 이런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 큰 권한을 갖게 되는 청지기입니다.

    풀다와 매다라는 용어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것은 기존하는 교리를 옳다 그르다를 판정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공동체에서 제외시키거나(파문)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권한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무엇이 올바른 교리인가 하는 결정과 누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받아들여짐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풀고 매는 권한은 구원의 중개에 대해서나 그러한 중개가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양식에 있어서 포괄적인 위임인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이 선언은 하느님 앞에서 유효할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몸소 선언하신 것처럼 선언되는 그 순간에 유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엄밀히 말한다면 신적인 사명으 수여 받은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판정은 이러한 힘과 신적인 유효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교회에 부여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앞에서 유효한 사도들의 성스러운 사법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일은 마지막 날의 심판관에게 유보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양과 염소를 갈라 놓으실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행사되는 사법권에 의한 예비적인 판결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뽑힌 선택된 자들의 이름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감추어져 있지만, 최종적인 하느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공동체에 누가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베드로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한이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인 질서라는 것,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말입니다.

    20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의 신비는 믿는 제자들에게만 계시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에게만 계시되었습니다. 이 신비는 신앙의 도정의 종점이자 목적이지 신앙의 시작은 아닙니다. 먼저 시대의 표징을 이해해야만 하고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이런 과정의 결실로서 예수님의 신비를 알게 될 것입니다.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고를 하십니다. 수난의 장소는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입니다(루가13,33 참조).  살인 대행자들은 이스라엘의 대법원인 최고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자들, 즉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될 것입니다. 메시아는 그들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삼일 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22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 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들은 베드로 사도가 “예! 그렇습니까? 그럼 그래야지요.”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펄쩍 뜁니다. 아직까지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인간적인 사랑으로 베드로 사도는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인간적인 사랑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베드로 사도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사탄이라고 말씀을 하시니. 그러나 아직까지 베드로 사도는 단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비록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지만 그의 온 몸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기 위해서는 더 큰 희생이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분을 생각할 때 나의 신앙의 토대는 더욱 단단하게 다져질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의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꾸짖으십니다.”내가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공동체를 위해서 한 일인데 그것이 결국에는 공동체에게 약간의 손해를 가져온 그런 경우가 혹시 있습니까?




  17. user#0 님의 말: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어제 문자가 하나왔었습니다.
    예전에 같이 공동체에서 함께했던 자매님이셨습니다.
    잠깐의 만남이였지만 가끔씩 저에게 메세지를 남겨주십니다.
    그분을 자세히는 모르오나 그냥 편안한 느낌이였습니다.
    그냥 편안한 분인가보다정도였습니다.그런데 어느날 저에게 메세지를 보내
    주시며 항상 기도해주신다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좋아했습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는데…ㅎㅎ
    어제도 실수로 깜빡하고 보낸 메세지였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냥 좋았습니다.
    그시간에 저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자체에 너무 고마웠습니다.
    더 많은 시간을 두고 만남을 가졌더라면 좋은 인연이되었을것입니다.
    같이 공동체에서 좋은 만남을 가졌으면 더 좋을꺼라고 말끝을 흐리셨고 다시
    만날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럴때마다 이런생각이 들곤합니다
    정신없이 사는 저에게 끈이라도 이어주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잠시나마 공동체식구들과 함께했던 시간들과 기도를 잠깐이라도 할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더 좋았습니다.
    그분의 실수메세지로 인해 저는 오히려 하느님을,예수님을 뵌것같았습니다.
    잘 깜빡하는 저에게도 항상 함께하신다는 느낌을 받고 언제나,항상…

    그때그때 너무나 좋은 분들을 보내주셔서 저를 각인시켜주시는 느낌이 강하게
    와닿는 복음말씀입니다.
    많이 부족한저이지만 항상 같이하심을~~
    하늘나라의 열쇠를 매일매일 주시는데 아직 준비가 안되어있어 문앞까지 갔다가
    돌아서고나 있는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어리석음만은 범하지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묵상해봅니다.

  18. user#0 님의 말: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어제 문자가 하나왔었습니다.
    예전에 같이 공동체에서 함께했던 자매님이셨습니다.
    잠깐의 만남이였지만 가끔씩 저에게 메세지를 남겨주십니다.
    그분을 자세히는 모르오나 그냥 편안한 느낌이였습니다.
    그냥 편안한 분인가보다정도였습니다.그런데 어느날 저에게 메세지를 보내
    주시며 항상 기도해주신다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좋아했습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는데…ㅎㅎ
    어제도 실수로 깜빡하고 보낸 메세지였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냥 좋았습니다.
    그시간에 저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자체에 너무 고마웠습니다.
    더 많은 시간을 두고 만남을 가졌더라면 좋은 인연이되었을것입니다.
    같이 공동체에서 좋은 만남을 가졌으면 더 좋을꺼라고 말끝을 흐리셨고 다시
    만날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럴때마다 이런생각이 들곤합니다
    정신없이 사는 저에게 끈이라도 이어주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잠시나마 공동체식구들과 함께했던 시간들과 기도를 잠깐이라도 할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더 좋았습니다.
    그분의 실수메세지로 인해 저는 오히려 하느님을,예수님을 뵌것같았습니다.
    잘 깜빡하는 저에게도 항상 함께하신다는 느낌을 받고 언제나,항상…

    그때그때 너무나 좋은 분들을 보내주셔서 저를 각인시켜주시는 느낌이 강하게
    와닿는 복음말씀입니다.
    많이 부족한저이지만 항상 같이하심을~~
    하늘나라의 열쇠를 매일매일 주시는데 아직 준비가 안되어있어 문앞까지 갔다가
    돌아서고나 있는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어리석음만은 범하지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묵상해봅니다.

  19. user#0 님의 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사랑이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는다고 했지만
    아니!
    당신께서는 베드로사도가 고백한 것처럼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라는 사실을 ….
    저도 믿는다고 고백을 하지만 언제나 입으로만 외치며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직은 저의 믿음이
    확고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사랑이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짐을 해봅니다

    당신께서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하신말씀을 믿으며 당신을 사랑하겠다고 …..
    당신께서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겠습니다
    믿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할 정도로….
    당신을 믿으며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며
    당신의 뜻을 따라 살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주님!
    아직은 마음 뿐 ….
    솔직히 자신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직은 마음 뿐….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사랑이신 주님!
    저에게 당신의 말씀을 믿으며
    당신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헬레나가 되게해주십시오
    저에게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할 그런 믿음을 주십시오
    저에게…..
    그리하여
    당신의 말씀으로 행복하며 즐겁고 기쁜나날이 되게 해주십시오
    저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당신의 자녀로써 합당한 신앙인이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
    아멘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묵상하며

  20. user#0 님의 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사랑이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는다고 했지만
    아니!
    당신께서는 베드로사도가 고백한 것처럼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라는 사실을 ….
    저도 믿는다고 고백을 하지만 언제나 입으로만 외치며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직은 저의 믿음이
    확고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사랑이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짐을 해봅니다

    당신께서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하신말씀을 믿으며 당신을 사랑하겠다고 …..
    당신께서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겠습니다
    믿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할 정도로….
    당신을 믿으며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며
    당신의 뜻을 따라 살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주님!
    아직은 마음 뿐 ….
    솔직히 자신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직은 마음 뿐….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사랑이신 주님!
    저에게 당신의 말씀을 믿으며
    당신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헬레나가 되게해주십시오
    저에게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할 그런 믿음을 주십시오
    저에게…..
    그리하여
    당신의 말씀으로 행복하며 즐겁고 기쁜나날이 되게 해주십시오
    저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당신의 자녀로써 합당한 신앙인이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
    아멘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묵상하며

  21. user#0 님의 말:

     

    베드로 사도! 훌륭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훌륭한 신앙고백이라 하더라도 주님의 뜻 보다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다시금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정말 주님을 내 온 몸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13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이 동네 사람들은 빵신(神)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네아스>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필립보 분국왕이 재건한 도읍입니다. 그 후 가이사르 아우구스토를 숭앙하기 위해 가이사리아라고 개명하였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세운 또 하나의 가이사리아와 구별하기 위하여 보통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동안에 자신들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합니다.

    14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야는 사람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았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들어 높여졌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다시 오리라고 기대되고 있었습니다(말라4,5-6).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라는 추측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보다 더 높은 명예를 거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더 높은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분명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줄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귀에는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역사의 인물 중에서 위대한 성현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15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6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요한 금구 성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계시는 없었으리라. 베드로가 예수님도 다른 사람의 아들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칭찬받을 가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17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18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존엄성과 그분의 위격의 신비에 대한 지식은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기에 이 지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심오한 신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복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복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 선언을 살펴보면 “안다는 사람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신비를 보여 주셨다는 예수님의 찬양”을 기억하게 합니다. 자신들의 머리로 파악하려는 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려고만 하는 이들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라는 말은 아람어의 게파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반석, 바위”라는 뜻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라는 말씀의 주요한 의미는 시몬이 이제 반석이 되어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서 바위는 하느님 자신을 가리켜 비번히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바위시오 성채이시며 확실한 지주시오 영원한 기반이시며, 영원 불변하고 굳건한 보증이십니다. 폭풍이 일거나 홍수가 골짜기로 밀어닥칠 때 사람들은 바위로 피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머무르실 거처로 바위 하나와 집 한 채를 특별히 뽑으셨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이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지옥문은 죽음이 정복한 자들에게 활짝 열려 있으며 이미 이 죽음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망칠 수 없도록 굳게 닫혀져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해 죽임이 더 이상 맥을 못추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공동체에 대해서도 죽음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지만(로마5,12)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몸값으로 당신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를 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반석은 죽음에 의해 억눌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력은 더 이상 죽음에 의해 정복될 수 없습니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완전히 땡 잡았습니다. 적어도 38광땡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문에 의해 보호되는 도시나 현관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집에 비유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닫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열쇠는 권한을 부여받은 쉬위나 청지기가 갖고 있는데 베드로는 바로 이런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 큰 권한을 갖게 되는 청지기입니다.

    풀다와 매다라는 용어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것은 기존하는 교리를 옳다 그르다를 판정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공동체에서 제외시키거나(파문)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권한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무엇이 올바른 교리인가 하는 결정과 누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받아들여짐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풀고 매는 권한은 구원의 중개에 대해서나 그러한 중개가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양식에 있어서 포괄적인 위임인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이 선언은 하느님 앞에서 유효할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몸소 선언하신 것처럼 선언되는 그 순간에 유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엄밀히 말한다면 신적인 사명으 수여 받은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판정은 이러한 힘과 신적인 유효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교회에 부여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앞에서 유효한 사도들의 성스러운 사법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일은 마지막 날의 심판관에게 유보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양과 염소를 갈라 놓으실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행사되는 사법권에 의한 예비적인 판결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뽑힌 선택된 자들의 이름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감추어져 있지만, 최종적인 하느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공동체에 누가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베드로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한이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인 질서라는 것,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말입니다.

    20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의 신비는 믿는 제자들에게만 계시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에게만 계시되었습니다. 이 신비는 신앙의 도정의 종점이자 목적이지 신앙의 시작은 아닙니다. 먼저 시대의 표징을 이해해야만 하고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이런 과정의 결실로서 예수님의 신비를 알게 될 것입니다.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고를 하십니다. 수난의 장소는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입니다(루가13,33 참조).  살인 대행자들은 이스라엘의 대법원인 최고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자들, 즉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될 것입니다. 메시아는 그들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삼일 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22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 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들은 베드로 사도가 “예! 그렇습니까? 그럼 그래야지요.”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펄쩍 뜁니다. 아직까지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인간적인 사랑으로 베드로 사도는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인간적인 사랑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베드로 사도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사탄이라고 말씀을 하시니. 그러나 아직까지 베드로 사도는 단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비록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지만 그의 온 몸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기 위해서는 더 큰 희생이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분을 생각할 때 나의 신앙의 토대는 더욱 단단하게 다져질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의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꾸짖으십니다.”내가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공동체를 위해서 한 일인데 그것이 결국에는 공동체에게 약간의 손해를 가져온 그런 경우가 혹시 있습니까?



  22. user#0 님의 말:

     

    베드로 사도! 훌륭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훌륭한 신앙고백이라 하더라도 주님의 뜻 보다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다시금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정말 주님을 내 온 몸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13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이 동네 사람들은 빵신(神)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네아스>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필립보 분국왕이 재건한 도읍입니다. 그 후 가이사르 아우구스토를 숭앙하기 위해 가이사리아라고 개명하였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세운 또 하나의 가이사리아와 구별하기 위하여 보통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동안에 자신들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합니다.

    14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야는 사람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았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들어 높여졌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다시 오리라고 기대되고 있었습니다(말라4,5-6).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라는 추측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보다 더 높은 명예를 거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더 높은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분명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줄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귀에는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역사의 인물 중에서 위대한 성현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15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6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요한 금구 성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계시는 없었으리라. 베드로가 예수님도 다른 사람의 아들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칭찬받을 가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17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18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존엄성과 그분의 위격의 신비에 대한 지식은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기에 이 지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심오한 신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복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복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 선언을 살펴보면 “안다는 사람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신비를 보여 주셨다는 예수님의 찬양”을 기억하게 합니다. 자신들의 머리로 파악하려는 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려고만 하는 이들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라는 말은 아람어의 게파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반석, 바위”라는 뜻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라는 말씀의 주요한 의미는 시몬이 이제 반석이 되어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서 바위는 하느님 자신을 가리켜 비번히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바위시오 성채이시며 확실한 지주시오 영원한 기반이시며, 영원 불변하고 굳건한 보증이십니다. 폭풍이 일거나 홍수가 골짜기로 밀어닥칠 때 사람들은 바위로 피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머무르실 거처로 바위 하나와 집 한 채를 특별히 뽑으셨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이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지옥문은 죽음이 정복한 자들에게 활짝 열려 있으며 이미 이 죽음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망칠 수 없도록 굳게 닫혀져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해 죽임이 더 이상 맥을 못추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공동체에 대해서도 죽음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지만(로마5,12)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몸값으로 당신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를 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반석은 죽음에 의해 억눌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력은 더 이상 죽음에 의해 정복될 수 없습니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완전히 땡 잡았습니다. 적어도 38광땡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문에 의해 보호되는 도시나 현관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집에 비유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닫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열쇠는 권한을 부여받은 쉬위나 청지기가 갖고 있는데 베드로는 바로 이런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 큰 권한을 갖게 되는 청지기입니다.

    풀다와 매다라는 용어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것은 기존하는 교리를 옳다 그르다를 판정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공동체에서 제외시키거나(파문)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권한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무엇이 올바른 교리인가 하는 결정과 누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받아들여짐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풀고 매는 권한은 구원의 중개에 대해서나 그러한 중개가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양식에 있어서 포괄적인 위임인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이 선언은 하느님 앞에서 유효할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몸소 선언하신 것처럼 선언되는 그 순간에 유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엄밀히 말한다면 신적인 사명으 수여 받은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판정은 이러한 힘과 신적인 유효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교회에 부여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앞에서 유효한 사도들의 성스러운 사법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일은 마지막 날의 심판관에게 유보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양과 염소를 갈라 놓으실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행사되는 사법권에 의한 예비적인 판결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뽑힌 선택된 자들의 이름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감추어져 있지만, 최종적인 하느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공동체에 누가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베드로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한이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인 질서라는 것,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말입니다.

    20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의 신비는 믿는 제자들에게만 계시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에게만 계시되었습니다. 이 신비는 신앙의 도정의 종점이자 목적이지 신앙의 시작은 아닙니다. 먼저 시대의 표징을 이해해야만 하고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이런 과정의 결실로서 예수님의 신비를 알게 될 것입니다.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고를 하십니다. 수난의 장소는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입니다(루가13,33 참조).  살인 대행자들은 이스라엘의 대법원인 최고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자들, 즉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될 것입니다. 메시아는 그들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삼일 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22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 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들은 베드로 사도가 “예! 그렇습니까? 그럼 그래야지요.”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펄쩍 뜁니다. 아직까지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인간적인 사랑으로 베드로 사도는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인간적인 사랑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베드로 사도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사탄이라고 말씀을 하시니. 그러나 아직까지 베드로 사도는 단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비록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지만 그의 온 몸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기 위해서는 더 큰 희생이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분을 생각할 때 나의 신앙의 토대는 더욱 단단하게 다져질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의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꾸짖으십니다.”내가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공동체를 위해서 한 일인데 그것이 결국에는 공동체에게 약간의 손해를 가져온 그런 경우가 혹시 있습니까?



  23. user#0 님의 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말씀에서….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묵상 해 봤습니다
    맞아요 !
    저도 당신께서 세우신 교회는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감히 ….
    당신과 대적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것도 없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아니!
    느낍니다 살면서 점점 더….

    하지만 주님!
    오늘 당신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모두 다 알 것 같은데도 사실은….
    모두 알아 듣기는 저의 믿음이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모두를 알아 듣기에는….

    주님!

    그런데도 당신의 말씀을 믿으려 노력하는 그 마음만으로도 제가 구원을
    받을 수는 없는지요?
    아직은 당신의 말씀을 모두 다 알아듣지 못한다해도
    솔직히 제가 알아듣는 다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자신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전보다 제가 더 낳아 진 것이 있다면
    예전보다 요즈음이 더 당신을 믿는마음이 진실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물론 저 만의 느낌이지만요
    하지만 앞으로는 더 낳아지리라는 희망으로 당신을 믿고 사랑하도록
    노력하겟습니다
    지금은 비록 당신의 말씀을 당신의 마음을 모두 다 알지 못한다해도
    언젠가는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고 실천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주님!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하는 당신께서 세우신 교회에서 당신의 말씀을 새겨
    듣도록 노력하며 당신께서 계신 하늘나라에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직은 저의 믿음이 부족하지만 세 번씩이나 당신을 배반했던 베드로사도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신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믿으며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그 날이 하루빨리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갈수 있는 헬레나가 되도록….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하는 당신의 권능을 믿겠습니다

    아멘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24. user#0 님의 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말씀에서….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묵상 해 봤습니다
    맞아요 !
    저도 당신께서 세우신 교회는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감히 ….
    당신과 대적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것도 없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아니!
    느낍니다 살면서 점점 더….

    하지만 주님!
    오늘 당신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모두 다 알 것 같은데도 사실은….
    모두 알아 듣기는 저의 믿음이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모두를 알아 듣기에는….

    주님!

    그런데도 당신의 말씀을 믿으려 노력하는 그 마음만으로도 제가 구원을
    받을 수는 없는지요?
    아직은 당신의 말씀을 모두 다 알아듣지 못한다해도
    솔직히 제가 알아듣는 다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자신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전보다 제가 더 낳아 진 것이 있다면
    예전보다 요즈음이 더 당신을 믿는마음이 진실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물론 저 만의 느낌이지만요
    하지만 앞으로는 더 낳아지리라는 희망으로 당신을 믿고 사랑하도록
    노력하겟습니다
    지금은 비록 당신의 말씀을 당신의 마음을 모두 다 알지 못한다해도
    언젠가는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고 실천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주님!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하는 당신께서 세우신 교회에서 당신의 말씀을 새겨
    듣도록 노력하며 당신께서 계신 하늘나라에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직은 저의 믿음이 부족하지만 세 번씩이나 당신을 배반했던 베드로사도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신 당신의 사랑과 자비를 믿으며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그 날이 하루빨리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갈수 있는 헬레나가 되도록….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하는 당신의 권능을 믿겠습니다

    아멘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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