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성 토마스 사도 축일(7/3)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토마스야, 너는 나를 보고야 믿었지만,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도다. ◎ 알렐루야.
    복음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4-29 열두 제자 중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스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스도 같이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그리고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하고 말씀하셨다. 토마스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나의 하느님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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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나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뭇해하리라.
    나는 그로 하여금 민중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대중을 전리품처럼 차지하게 하리라.
    이는 자기 목숨을 내던져 죽었기 때문이다. 반역자의 하나처럼 그 속에 끼여,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그 반역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주님..
    흐뭇하시더이까…

    당신은…
    ..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십니다..

  2. user#0 님의 말:

    나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뭇해하리라.
    나는 그로 하여금 민중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대중을 전리품처럼 차지하게 하리라.
    이는 자기 목숨을 내던져 죽었기 때문이다. 반역자의 하나처럼 그 속에 끼여,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그 반역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주님..
    흐뭇하시더이까…

    당신은…
    ..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십니다..

  3. user#0 님의 말:

    토마토라고도 불리는 제 남편 토마스의 축일이어서
    항상 남편을 위해 기도하지만 오늘은 더 정성되이 기도가 되는군요.
    그의 하는 일에 축복을 주시옵고 건강하고 기쁜 나날이 되길………..

    토마스 사도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대답하는 장면이 오늘따라 더욱 와 닿았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이, 영영 떠나 버렸다고 생각되었던 선생님이 정말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 감격이 너무나 컸을 테지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저도 죽었던 임 다시 살아나서 나타났을 때의 감격으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코 평수도 넓히고 숨을 몰아쉬며 입은 함박 웃음 띄우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니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부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상하게도 평화의 인사를 하시며 만져보라 하시는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을 모시고 오늘도 기쁘고 활기찬 하루를 살겠습니다………..

    211.42.85.34 아만도: 이곳 중부지방은 오늘 아침도 우중충한 날씨입니다.
    찬미 요안나 자매님의 활기찬 모습이
    제 마음속의 구름을 걷어가는 기분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07/03-10:53]
    211.42.85.34 사무엘: 자매님 의 형제님 축일을 축하드리며 늘 좋은 말씀 감사해요 [07/03-12:54]
    211.203.39.236 흑진주: 지도 추카추카~~3쁘를 열심히 실천하시며 사시죠??모든이를 사랑하는 시간이시기를… [07/03-19:44]

  4. user#0 님의 말:

    토마토라고도 불리는 제 남편 토마스의 축일이어서
    항상 남편을 위해 기도하지만 오늘은 더 정성되이 기도가 되는군요.
    그의 하는 일에 축복을 주시옵고 건강하고 기쁜 나날이 되길………..

    토마스 사도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대답하는 장면이 오늘따라 더욱 와 닿았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이, 영영 떠나 버렸다고 생각되었던 선생님이 정말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 감격이 너무나 컸을 테지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저도 죽었던 임 다시 살아나서 나타났을 때의 감격으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코 평수도 넓히고 숨을 몰아쉬며 입은 함박 웃음 띄우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니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부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상하게도 평화의 인사를 하시며 만져보라 하시는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을 모시고 오늘도 기쁘고 활기찬 하루를 살겠습니다………..

    211.42.85.34 아만도: 이곳 중부지방은 오늘 아침도 우중충한 날씨입니다.
    찬미 요안나 자매님의 활기찬 모습이
    제 마음속의 구름을 걷어가는 기분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07/03-10:53]
    211.42.85.34 사무엘: 자매님 의 형제님 축일을 축하드리며 늘 좋은 말씀 감사해요 [07/03-12:54]
    211.203.39.236 흑진주: 지도 추카추카~~3쁘를 열심히 실천하시며 사시죠??모든이를 사랑하는 시간이시기를… [07/03-19:44]

  5. user#0 님의 말:

     

    토마사도 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대하지 못했던 토마사도와 직접 목격한 제자들과의 접촉이 없는 나는 같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토마사도는 보고 믿으려고 하였습니다. 토마는 참으로 냉정한 현실주의자였던 것 같습니다. 손바닥의 상처에 자신의 손가락을, 창에 찔린 상처에 손을…이와 같은 극단적인 반응은 나로 하여금 반감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도 같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잠겨 있는 문을 통과하셔서 토마 사도 앞에 서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7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1주일 동안 토마는 아마도 홀로 의심 속에서 움츠리고 있었으며 다른 제자들과 함께 부활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토마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토마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28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그렇습니다. 그분의 부활을 내가 믿어야만이 그분께서 부활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께서 부활하셨기에 내가 믿어야 하는 것이고, 내가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결코 내 틀에 가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29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6. user#0 님의 말:

     

    토마사도 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대하지 못했던 토마사도와 직접 목격한 제자들과의 접촉이 없는 나는 같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토마사도는 보고 믿으려고 하였습니다. 토마는 참으로 냉정한 현실주의자였던 것 같습니다. 손바닥의 상처에 자신의 손가락을, 창에 찔린 상처에 손을…이와 같은 극단적인 반응은 나로 하여금 반감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도 같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잠겨 있는 문을 통과하셔서 토마 사도 앞에 서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7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1주일 동안 토마는 아마도 홀로 의심 속에서 움츠리고 있었으며 다른 제자들과 함께 부활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토마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토마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28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그렇습니다. 그분의 부활을 내가 믿어야만이 그분께서 부활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께서 부활하셨기에 내가 믿어야 하는 것이고, 내가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결코 내 틀에 가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29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7.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에 돌아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사건을 무언가
    표징이 있어야 믿겠다는 토마사도에게 나타나시어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시자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라고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하는 토마에게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고
    하십니다

    보고야 믿는 토마사도를 보면서, 또한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신 당신의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겨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그렇게 가끔씩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는 표징을
    보여주실 수 있었으니 그래도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불신으로 가득찬 이 시대에도 딱 필요하다 싶을 때 아주 가끔씩이라도
    예수님 당신께서 짜~~안 하고 나타나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허황된
    꿈을 꿔보면서 동시에 믿음이 부족한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토마 사도의 입을 통한 이 신앙 고백이 오늘까지 이어온 교회의 신앙 고백이
    되어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도들이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아였듯이, 사도들의 신앙을 이어받은 우리도 그들과 같은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는 오늘 토마사도 보다도 더 당신을 뵙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오릅니다. 믿음이 부족하고 나약하기만 한 저의 모습이지요.
    하지만 당신께서 그러셨죠?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는 이는 행복하다고요.
    제 앞에 당신이 나타나 주시지 않는다고, 당신을 볼 수 없다고 투정하기
    이전에 생활 속에서 당신을 찾으려 온유와 겸손으로 고요히 머물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고백하게 하소서. 아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8.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에 돌아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사건을 무언가
    표징이 있어야 믿겠다는 토마사도에게 나타나시어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시자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라고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하는 토마에게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고
    하십니다

    보고야 믿는 토마사도를 보면서, 또한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신 당신의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겨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그렇게 가끔씩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는 표징을
    보여주실 수 있었으니 그래도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불신으로 가득찬 이 시대에도 딱 필요하다 싶을 때 아주 가끔씩이라도
    예수님 당신께서 짜~~안 하고 나타나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허황된
    꿈을 꿔보면서 동시에 믿음이 부족한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토마 사도의 입을 통한 이 신앙 고백이 오늘까지 이어온 교회의 신앙 고백이
    되어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도들이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아였듯이, 사도들의 신앙을 이어받은 우리도 그들과 같은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는 오늘 토마사도 보다도 더 당신을 뵙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오릅니다. 믿음이 부족하고 나약하기만 한 저의 모습이지요.
    하지만 당신께서 그러셨죠?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는 이는 행복하다고요.
    제 앞에 당신이 나타나 주시지 않는다고, 당신을 볼 수 없다고 투정하기
    이전에 생활 속에서 당신을 찾으려 온유와 겸손으로 고요히 머물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고백하게 하소서. 아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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