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총론-일반성사론 형성의 역사적 과정(중세 스콜라 신학5)

 



4.2.5.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사 이해


토마스는 성사의 본질을 표징으로 규정한다: 성사란 “거룩한 것의 표징인데, 이는 인간을 성화시키는 작용을 한다”.1) 이렇게 토마스는 성사를 표징으로 봄으로써 아우구스티노의 사상을 수용한다.2) 동시에 그는 성사가 인간을 성화시키는 효력을 발휘한다는 설명을 덧붙힘으로써 성사 개념을 좀더 명확하게 한다. 토마스는 성사를 표징으로 정의함으로써 구약의 “성사”, 이른바 “자연성사”까지도 포함하는 넓은 성사 개념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교의 성사를 논하려고 하기에 제한을 해야만 했다.


초기 스콜라 신학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성사를 규정하는 데에 다른 개념을 덧붙임으로써 구약의 “성사”와 명확하게 구분지으려고 했다. 즉 성사는 거룩한 것의 표징(signum)일뿐만 아니라 그 원인(causa)이다. 토마스도 성사를 거룩한 것의 원인이며 표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는 신약의 성사를 구약의 성사와 구분하여 명확하게 하는 데에 새로운 개념인 causa에 역점을 두기 보다는 표징이라는 말 자체에 차이를 둔다. 즉 신약의 성사가 구약의 성사와 마찬가지로 거룩한 것의 표징이지만, 신약의 성사는 구약의 성사에 비해서 인간을 성화시키는 효과를 내는 데에 특별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토마스는 성사가 인간을 성화시키는 거룩한 것의 표징이라는 생각을 통해서 오해의 여지가 있는 초기 스콜라 신학의 전통을 극복한다. 초기 스콜라 신학에서는 성사를 우선적으로 “죄를 치료하는 약”(remedium peccati)으로 보았는데, 이는 성사를 물적으로 잘못 이해할 위험을 안겨준다. 물론 토마스에게서도 성사를 죄에 대한 치료약으로 보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성사의 7가지인 의미를 설명하는 데에서 그런 관점이 나타난다: “성사들은 두 가지 목적을 지닌다. 첫째는 죄의 치유요, 둘째는 영적 생활에 있어서 영혼의 완전함이다”.3) 그러나 토마스는 이런 관점을 성사의 일차적 관점인 표징에 철저히 종속시킨다.


  그러면 “거룩한 것”(rei sacrae)이란 무엇인가? 토마스는 한 항목 전체를 통해서 이를 설명한다:4) 거룩한 것이란 성화의 기반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성화의 본질로서의 은총과 성덕, 성화의 목적으로서의 영원한 생명인데, 이 셋은 뗄 수 없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토마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면:


“본래 성사란 우리의 성화를 표시하기 위해서 지정된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세가지를 주시해야 한다. 즉 우리 성화의 원천인 그리스도의 수난, 은총과 성덕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 성화의 본질, 우리 성화의 궁극적 목적인 영원한 생명이다. 이 모든 것이 성사를 통해서 표시된다. 그러므로 성사는 앞서간 것, 즉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기억의 표징(signum rememorativum)이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작용하는 것, 즉 은총을 표현하는 표징(signum demonstrativum)이며, 미래의 영광을 미리 선포하는 예고적 표징(signum prognosticum)이다”.5)














































 


 


 


memorativum (기억의 표지)


 


 


 


 


 


 


 


 


signum


 


 


demonstrativum (지시하는 표지)


 


 


 


 


 


 


 


 


 


 


 


prognosticum (예시하는 표지)


 


 




13세기에 아랍을 통해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사상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이 성사론에 적용된다: 물질적이고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은 변화되고 규정될 수 있는 질료(materia)와 이 질료를 규정하는 형상(forma)으로 구성된다. 이런 질료형상론에 따라서 모든 성사를 질료와 형상으로 구분하게 되었다.  


질료(materia): 질료는 다시 둘로 나뉜다. 하나는 materia remota(부차적 의미의 질료)로서


          이는 물질적 요소를 지칭한다. 세례의 경우는 물, 성체성사의 경우는 빵과 포도주


          이다. 다른 하나는 materia proxima(본래적 의미의 질료)로서 전례적 행동을 말한다.


          세례의 경우는 물을 붓는 행위, 성체성사의 경우는 먹고 마시는 식사 행동이다.


형상(forma): 성사 수여 정식 (세례의 경우는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라는 세례 수여 정식, 성체성사의 경우는 성체성사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고 하신 성찬례 제정의 말씀).




4.2.6.  교도권의 결정


피렌체 공의회 (1438-1445)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 (특히 그의 저서 De articulis fidei et Ecclesiae sacramentis)에 밀접하게 의존해서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칙령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신약의 성사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세례, 견진, 성체, 고백, 종부, 성품, 혼배. 그것들은 구약의 성사와는 구분이 된다. 왜냐하면 구약의 성사는 은총을 야기하지 않고, 단지 은총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한번 주어지리라는 것을 암시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성사는 은총을 포함하고 있으며, 성사를 정당하게 받는 이들에게 은총을 전달한다.


처음의 다섯 성사는 모든 사람의 자신의 영신적인 완성을 위해서 정해졌고, 마지막 두 성사는 전체 교회의 지도와 증가를 위해서 정해졌다. 즉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영신적으로 다시 태어나고, 견진을 통해서 우리의 은총이 증가되고 신앙이 굳어진다. 다시 태어나고 굳건해져서 우리는 신적인 음식인 성체로서 양육된다. 우리가 죄로 인해 영혼이 병들게 되면 고해를 통해서 영신적으로 치유된다. 종부성사를 통해서 영신적으로 치유되거, 영혼에 이익이 된다면 육체적으로도 취유된다. 신품을 통해서 교회가 인도되고 영신적으로 증가되며, 혼배를 통해서 육신적으로 증가된다.


이 모든 성사는 세 부분으로 실행된다: 질료로서의 물적인 실행, 형상으로서의 말씀, 교회가 행하는 바를 하고자하는 의도에서 성사를 집행하는 성사의 집전자. 이 세가지 부분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성사가 실현된 것이 아니다. 성사들 중에서 세가지, 세례, 견진, 성품성사는 영혼에 인호 (character)를 새겨두는데, 이는 소멸되지 않는 영신적인 표시로써, 이를 통해 다른 영혼들과 구분이 된다. 그러므로 이 성사는 한 사람이 반복해서 받을 수 없다. 다른 네 성사는 인호를 각인하지 않고, 그래서 반복이 허락된다” (DS 1310-1313).




중세의 성사론을 내용적으로 잘 요약하고 있는 이 문헌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잠시 지속된 동방 교회와의 일치의 결실로 생겨났고 아르메니아와 곱트 교회도 서명을 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문헌에는 동방 교회의 값진 유산, 특히 성사들을 전례 안에 자리 잡게 하고, 성령의 도래과 작용에 대한 청원이 반영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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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총론-일반성사론 형성의 역사적 과정(중세 스콜라 신학5)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4.2.5.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사 이해

    토마스는 성사의 본질을 표징으로 규정한다: 성사란 “거룩한 것의 표징인데, 이는 인간을 성화시키는 작용을 한다”.1) 이렇게 토마스는 성사를 표징으로 봄으로써 아우구스티노의 사상을 수용한다.2) 동시에 그는 성사가 인간을 성화시키는 효력을 발휘한다는 설명을 덧붙힘으로써 성사 개념을 좀더 명확하게 한다. 토마스는 성사를 표징으로 정의함으로써 구약의 “성사”, 이른바 “자연성사”까지도 포함하는 넓은 성사 개념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교의 성사를 논하려고 하기에 제한을 해야만 했다.

    초기 스콜라 신학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성사를 규정하는 데에 다른 개념을 덧붙임으로써 구약의 “성사”와 명확하게 구분지으려고 했다. 즉 성사는 거룩한 것의 표징(signum)일뿐만 아니라 그 원인(causa)이다. 토마스도 성사를 거룩한 것의 원인이며 표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는 신약의 성사를 구약의 성사와 구분하여 명확하게 하는 데에 새로운 개념인 causa에 역점을 두기 보다는 표징이라는 말 자체에 차이를 둔다. 즉 신약의 성사가 구약의 성사와 마찬가지로 거룩한 것의 표징이지만, 신약의 성사는 구약의 성사에 비해서 인간을 성화시키는 효과를 내는 데에 특별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토마스는 성사가 인간을 성화시키는 거룩한 것의 표징이라는 생각을 통해서 오해의 여지가 있는 초기 스콜라 신학의 전통을 극복한다. 초기 스콜라 신학에서는 성사를 우선적으로 “죄를 치료하는 약”(remedium peccati)으로 보았는데, 이는 성사를 물적으로 잘못 이해할 위험을 안겨준다. 물론 토마스에게서도 성사를 죄에 대한 치료약으로 보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성사의 7가지인 의미를 설명하는 데에서 그런 관점이 나타난다: “성사들은 두 가지 목적을 지닌다. 첫째는 죄의 치유요, 둘째는 영적 생활에 있어서 영혼의 완전함이다”.3) 그러나 토마스는 이런 관점을 성사의 일차적 관점인 표징에 철저히 종속시킨다.

      그러면 “거룩한 것”(rei sacrae)이란 무엇인가? 토마스는 한 항목 전체를 통해서 이를 설명한다:4) 거룩한 것이란 성화의 기반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성화의 본질로서의 은총과 성덕, 성화의 목적으로서의 영원한 생명인데, 이 셋은 뗄 수 없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토마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면:

    “본래 성사란 우리의 성화를 표시하기 위해서 지정된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세가지를 주시해야 한다. 즉 우리 성화의 원천인 그리스도의 수난, 은총과 성덕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 성화의 본질, 우리 성화의 궁극적 목적인 영원한 생명이다. 이 모든 것이 성사를 통해서 표시된다. 그러므로 성사는 앞서간 것, 즉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기억의 표징(signum rememorativum)이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작용하는 것, 즉 은총을 표현하는 표징(signum demonstrativum)이며, 미래의 영광을 미리 선포하는 예고적 표징(signum prognosticum)이다”.5)

     

     

     

    memorativum (기억의 표지)

     

     

     

     

     

     

     

     

    signum

     

     

    demonstrativum (지시하는 표지)

     

     

     

     

     

     

     

     

     

     

     

    prognosticum (예시하는 표지)

     

     


    13세기에 아랍을 통해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사상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이 성사론에 적용된다: 물질적이고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은 변화되고 규정될 수 있는 질료(materia)와 이 질료를 규정하는 형상(forma)으로 구성된다. 이런 질료형상론에 따라서 모든 성사를 질료와 형상으로 구분하게 되었다.  

    질료(materia): 질료는 다시 둘로 나뉜다. 하나는 materia remota(부차적 의미의 질료)로서

              이는 물질적 요소를 지칭한다. 세례의 경우는 물, 성체성사의 경우는 빵과 포도주

              이다. 다른 하나는 materia proxima(본래적 의미의 질료)로서 전례적 행동을 말한다.

              세례의 경우는 물을 붓는 행위, 성체성사의 경우는 먹고 마시는 식사 행동이다.

    형상(forma): 성사 수여 정식 (세례의 경우는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라는 세례 수여 정식, 성체성사의 경우는 성체성사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고 하신 성찬례 제정의 말씀).


    4.2.6.  교도권의 결정

    피렌체 공의회 (1438-1445)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 (특히 그의 저서 De articulis fidei et Ecclesiae sacramentis)에 밀접하게 의존해서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칙령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신약의 성사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세례, 견진, 성체, 고백, 종부, 성품, 혼배. 그것들은 구약의 성사와는 구분이 된다. 왜냐하면 구약의 성사는 은총을 야기하지 않고, 단지 은총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한번 주어지리라는 것을 암시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성사는 은총을 포함하고 있으며, 성사를 정당하게 받는 이들에게 은총을 전달한다.

    처음의 다섯 성사는 모든 사람의 자신의 영신적인 완성을 위해서 정해졌고, 마지막 두 성사는 전체 교회의 지도와 증가를 위해서 정해졌다. 즉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영신적으로 다시 태어나고, 견진을 통해서 우리의 은총이 증가되고 신앙이 굳어진다. 다시 태어나고 굳건해져서 우리는 신적인 음식인 성체로서 양육된다. 우리가 죄로 인해 영혼이 병들게 되면 고해를 통해서 영신적으로 치유된다. 종부성사를 통해서 영신적으로 치유되거, 영혼에 이익이 된다면 육체적으로도 취유된다. 신품을 통해서 교회가 인도되고 영신적으로 증가되며, 혼배를 통해서 육신적으로 증가된다.

    이 모든 성사는 세 부분으로 실행된다: 질료로서의 물적인 실행, 형상으로서의 말씀, 교회가 행하는 바를 하고자하는 의도에서 성사를 집행하는 성사의 집전자. 이 세가지 부분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성사가 실현된 것이 아니다. 성사들 중에서 세가지, 세례, 견진, 성품성사는 영혼에 인호 (character)를 새겨두는데, 이는 소멸되지 않는 영신적인 표시로써, 이를 통해 다른 영혼들과 구분이 된다. 그러므로 이 성사는 한 사람이 반복해서 받을 수 없다. 다른 네 성사는 인호를 각인하지 않고, 그래서 반복이 허락된다” (DS 1310-1313).


    중세의 성사론을 내용적으로 잘 요약하고 있는 이 문헌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잠시 지속된 동방 교회와의 일치의 결실로 생겨났고 아르메니아와 곱트 교회도 서명을 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문헌에는 동방 교회의 값진 유산, 특히 성사들을 전례 안에 자리 잡게 하고, 성령의 도래과 작용에 대한 청원이 반영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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