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성사-교의사적인 전개(20세기의 개혁)

 

3.6. 20세기의 개혁




20세기 전반에 어린이 세례에 대한 토론이 시작된다. 이 토론은 개신교에서 먼저 시작되는데, 개혁파 신학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가 1943년에 출판한 저서 “Die kirchliche Lehre von der Taufe”가 시발점이 된다. (로마 가톨릭의) “인과적”(kausativ) 이해와 (루터파의) “발생적”(generativ) 이해에 반대해서 (개혁파로서)그는 “인식적”(kognitiv)으로  세례사건을 이해하려 한다: 세례는 복음선포의 행위이다. 세례를 의미있게 실행하기 위해서는 세례 대상자의 이해와 수용을 전제한다. 이런 주장을 근거로 해서 바르트는 어린이 세례가 비록 무효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세례의 의미를 가리우는 실천이라고, “교회라는 몸에 있는 상처이고 세례받은 이들에게 하나의 병”이라고 간주한다.1) 루터파의 전통에 뿌리를 둔 에드문트 슐링크(Edmund Schlink)는 이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세례를 “새로운 창조”로 보는 근본이해에서 출발하면서, 유아세례가 <오직 은총의 원칙>(Sola-gratia-Prinzip)을 가장 명확하게 실현한다고 변호하였다: 교회는 어린이 세례를 통해서 “다른 어떤 행동보다도 확실하게 하느님 홀로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을 고백한다. 왜냐하면 어린이 세례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조력없이 하느님 나라에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2) 이 논쟁은 가톨릭 신학도 자극하여서 세례의 본질에 대해 숙고하도록 하였고, 어린이 세례에 관해서 구분을 두도록 이끌었다.


가톨릭 측에서의 어린이 세례에 대한 토론은 전례운동의 사상과 함께 만나는데, 전례운동은 고대교회의 신학과 실천에 영감을 받아서 세례에 있어 무엇보다도 입문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도 영향을 끼친다3): 예비자들은 “단계적으로 하느님 백성의 신앙과 전례와 사랑의 생활에 인도되어야 한다.”4) 공의회는 “입문”이라는 단어를 전교지방에서의 세례에 대한 맥락에서만 사용한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 “성인 (成人)의 단계적 성세 예비 기간을 복구”시켜야 한다는 요청을 통해서5) – 전체 교회에 해당하는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요청은 <어른 입교 예식서>(Ordo initiationis christianae adultorum 1972: 우리말 번역본은 1975년에 출간)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즉 입교는 단계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⑴ 예비자들을 받아들이는 예식 ⑵ 선발 예식 (등록 시기)으로 시작되는 정화와 조명의 시기 (수련 시기) ⑶ 입교성사와 신앙을 익히고 심화하는 신비교육 기간.


공의회는 어린이의 세례 예식을 “어린이들의 실제 상태에 적응”시킬 것을 권유한다(전례 67). 이런 의도에 상응해서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어린이 세례 예식서>(Ordo baptismi parvulorum, 1969: 우리말 번역본은 1970년에 출간)가 발간되었다.


세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교회 교도권은 어린이에게 세례를 주기 전에 세례의 전제 조건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대화를 부모와 갖도록 요청하고, 비상시에는 세례를 연기할 것을 허락한다. 1983년에 공포된 새 교회법에서는 세례를 경우에 따라 연기할 수 있다고 명시하였다: “아기가 가톨릭 종교로 교육되리라는 근거 있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 이 희망이 전혀 없다면 개별법의 규정에 따라 부모에게 그 이유를 알리고 세례를 연기해야 한다”(868 & 2). 이런 규정은 1917년의 교회법과는 분명한 차이가 난다: 거기에서는 가톨릭 신자 부모는 아이가 출생하면 무조건 “가능한 빨리” 세례를 주도록 해야 한다고 엄명하였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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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3.6. 20세기의 개혁


    20세기 전반에 어린이 세례에 대한 토론이 시작된다. 이 토론은 개신교에서 먼저 시작되는데, 개혁파 신학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가 1943년에 출판한 저서 “Die kirchliche Lehre von der Taufe”가 시발점이 된다. (로마 가톨릭의) “인과적”(kausativ) 이해와 (루터파의) “발생적”(generativ) 이해에 반대해서 (개혁파로서)그는 “인식적”(kognitiv)으로  세례사건을 이해하려 한다: 세례는 복음선포의 행위이다. 세례를 의미있게 실행하기 위해서는 세례 대상자의 이해와 수용을 전제한다. 이런 주장을 근거로 해서 바르트는 어린이 세례가 비록 무효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세례의 의미를 가리우는 실천이라고, “교회라는 몸에 있는 상처이고 세례받은 이들에게 하나의 병”이라고 간주한다.1) 루터파의 전통에 뿌리를 둔 에드문트 슐링크(Edmund Schlink)는 이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세례를 “새로운 창조”로 보는 근본이해에서 출발하면서, 유아세례가 <오직 은총의 원칙>(Sola-gratia-Prinzip)을 가장 명확하게 실현한다고 변호하였다: 교회는 어린이 세례를 통해서 “다른 어떤 행동보다도 확실하게 하느님 홀로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을 고백한다. 왜냐하면 어린이 세례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조력없이 하느님 나라에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2) 이 논쟁은 가톨릭 신학도 자극하여서 세례의 본질에 대해 숙고하도록 하였고, 어린이 세례에 관해서 구분을 두도록 이끌었다.

    가톨릭 측에서의 어린이 세례에 대한 토론은 전례운동의 사상과 함께 만나는데, 전례운동은 고대교회의 신학과 실천에 영감을 받아서 세례에 있어 무엇보다도 입문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도 영향을 끼친다3): 예비자들은 “단계적으로 하느님 백성의 신앙과 전례와 사랑의 생활에 인도되어야 한다.”4) 공의회는 “입문”이라는 단어를 전교지방에서의 세례에 대한 맥락에서만 사용한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 “성인 (成人)의 단계적 성세 예비 기간을 복구”시켜야 한다는 요청을 통해서5) – 전체 교회에 해당하는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요청은 <어른 입교 예식서>(Ordo initiationis christianae adultorum 1972: 우리말 번역본은 1975년에 출간)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즉 입교는 단계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⑴ 예비자들을 받아들이는 예식 ⑵ 선발 예식 (등록 시기)으로 시작되는 정화와 조명의 시기 (수련 시기) ⑶ 입교성사와 신앙을 익히고 심화하는 신비교육 기간.

    공의회는 어린이의 세례 예식을 “어린이들의 실제 상태에 적응”시킬 것을 권유한다(전례 67). 이런 의도에 상응해서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어린이 세례 예식서>(Ordo baptismi parvulorum, 1969: 우리말 번역본은 1970년에 출간)가 발간되었다.

    세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교회 교도권은 어린이에게 세례를 주기 전에 세례의 전제 조건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대화를 부모와 갖도록 요청하고, 비상시에는 세례를 연기할 것을 허락한다. 1983년에 공포된 새 교회법에서는 세례를 경우에 따라 연기할 수 있다고 명시하였다: “아기가 가톨릭 종교로 교육되리라는 근거 있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 이 희망이 전혀 없다면 개별법의 규정에 따라 부모에게 그 이유를 알리고 세례를 연기해야 한다”(868 & 2). 이런 규정은 1917년의 교회법과는 분명한 차이가 난다: 거기에서는 가톨릭 신자 부모는 아이가 출생하면 무조건 “가능한 빨리” 세례를 주도록 해야 한다고 엄명하였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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