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2-14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집수리를 하느라 바쁜 요즈음 눈만 뜨면 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는데 청소를 하다보니 탁자에 성사표가 있는 것 이었습니다 그 순간 세례를 받고 지금까지 성사를 본 내용이 가장 많았던 것이 가족이나 남을 사랑하지 않았고 미워했다는 것인데 그때마다 신부님께서 보속을 주셨지만 실천도 하지 못하고 매번 똑같은 내용의 성사를 봤던 자신을 생각해보니 회개하지 못하는 자신이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까지 드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못하면서 매번 성사를 봐야 하는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더욱 죄스러운 것은 남들 보기에는 언제나 열심 한 것같이 보이니 성당에서 임원을 뽑을 때마다 저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에 속은 검으면서도 잘 포장된 자신의 가식적인 모습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고사하고 자신과 남을 속이면서까지 포장을 했던 자신이 고백성사를 본다고 회개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그런데도……. 아직까지 냉담자 들을 믿음이 없다느니 구제불능이라니 하며 평가를 하며 눈만 뜨면 하느님사랑을 앵무새처럼 지껄이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묵상하며
소나무: † 찬미 예수님
헬레나 자매님.. 묵상 글 읽을 때마다 저로 하여금 미소를 띄우게 한답니
다. ^^ 늦은 시각에 들어와 몇자 적고 나갑니다.. 오늘 좋은 하루가 되
세요…^*^ [12/08-03:05]
이 헬레나: 소나무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잠은 언제 주무시는지 디게 궁금하답니다^^
저는 자매님께 리풀을 달고있는 지금도 졸려서 두눈이 다 감겼는데….
멋진음악과 함께 가끔씩 감동을 주시는묵상글이 그립기도 해서리…
격려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 고마워요 안뇽 [12/08-23:04]
집수리를 하느라 바쁜 요즈음 눈만 뜨면 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는데 청소를 하다보니 탁자에 성사표가 있는 것 이었습니다 그 순간 세례를 받고 지금까지 성사를 본 내용이 가장 많았던 것이 가족이나 남을 사랑하지 않았고 미워했다는 것인데 그때마다 신부님께서 보속을 주셨지만 실천도 하지 못하고 매번 똑같은 내용의 성사를 봤던 자신을 생각해보니 회개하지 못하는 자신이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까지 드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못하면서 매번 성사를 봐야 하는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더욱 죄스러운 것은 남들 보기에는 언제나 열심 한 것같이 보이니 성당에서 임원을 뽑을 때마다 저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에 속은 검으면서도 잘 포장된 자신의 가식적인 모습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고사하고 자신과 남을 속이면서까지 포장을 했던 자신이 고백성사를 본다고 회개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그런데도……. 아직까지 냉담자 들을 믿음이 없다느니 구제불능이라니 하며 평가를 하며 눈만 뜨면 하느님사랑을 앵무새처럼 지껄이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묵상하며
소나무: † 찬미 예수님
헬레나 자매님.. 묵상 글 읽을 때마다 저로 하여금 미소를 띄우게 한답니
다. ^^ 늦은 시각에 들어와 몇자 적고 나갑니다.. 오늘 좋은 하루가 되
세요…^*^ [12/08-03:05]
이 헬레나: 소나무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잠은 언제 주무시는지 디게 궁금하답니다^^
저는 자매님께 리풀을 달고있는 지금도 졸려서 두눈이 다 감겼는데….
멋진음악과 함께 가끔씩 감동을 주시는묵상글이 그립기도 해서리…
격려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 고마워요 안뇽 [12/08-23:04]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영혼이라도 예외 없이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길 잃은 양을 찾으러 가는 목동과 같으신 분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다른 모든 양을 두고 가는 목동의 행동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 길 잃은 한 마리 양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리고 생각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의인을 전부 버려두시는 일은 결코 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11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을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길을 잃은 양은 목자의 도움을 받으면 다시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길 잃은 그리스도인도 형제들의 도움을 받으면 다시 구원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목자를 생각해 봅시다. 목자는 자기에게 위임된 많은 양떼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 마리 양까지도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래서 만일 양 한 마리가 바위틈이나 가파른 비탈길에서 헤매고 있다면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 됩니다. 목자는 양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이와 똑같습니다.
12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길 잃은 양을 찾았을 때 목자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냉담 하는 형제를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을 때 그 기쁨은 어떻겠습니까? 다른 형제들과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직장공동체이든, 본당 구역 공동체이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열심한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데리고 와야 하지만 냉담 하는 사람이나, 신앙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모임을 가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한 마리 양은 바로 냉담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형제 자매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3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형제들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길을 잃는 것은 자신의 부주의 때문인지, 죄악의 유혹과 같이 다른 사람의 탓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길을 잃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다른 이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 길에서 벗어나게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직장 내에서 나 때문에 신앙생활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 때문에 신앙에로 불타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구역모임이나 직장 모임을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특히 믿지 않는 사람이나, 냉담자를 데려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2. 신앙인들이 함께 모였을 때 다음번에 꼭 다시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영혼이라도 예외 없이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길 잃은 양을 찾으러 가는 목동과 같으신 분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다른 모든 양을 두고 가는 목동의 행동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 길 잃은 한 마리 양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리고 생각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의인을 전부 버려두시는 일은 결코 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11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을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길을 잃은 양은 목자의 도움을 받으면 다시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길 잃은 그리스도인도 형제들의 도움을 받으면 다시 구원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목자를 생각해 봅시다. 목자는 자기에게 위임된 많은 양떼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 마리 양까지도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래서 만일 양 한 마리가 바위틈이나 가파른 비탈길에서 헤매고 있다면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 됩니다. 목자는 양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이와 똑같습니다.
12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길 잃은 양을 찾았을 때 목자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냉담 하는 형제를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을 때 그 기쁨은 어떻겠습니까? 다른 형제들과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직장공동체이든, 본당 구역 공동체이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열심한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데리고 와야 하지만 냉담 하는 사람이나, 신앙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모임을 가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한 마리 양은 바로 냉담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형제 자매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3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형제들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길을 잃는 것은 자신의 부주의 때문인지, 죄악의 유혹과 같이 다른 사람의 탓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길을 잃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다른 이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 길에서 벗어나게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직장 내에서 나 때문에 신앙생활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 때문에 신앙에로 불타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구역모임이나 직장 모임을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특히 믿지 않는 사람이나, 냉담자를 데려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2. 신앙인들이 함께 모였을 때 다음번에 꼭 다시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집수리를 하느라 바쁜 요즈음 눈만 뜨면 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는데
청소를 하다보니 탁자에 성사표가 있는 것 이었습니다
그 순간 세례를 받고 지금까지 성사를 본 내용이 가장 많았던 것이 가족이나
남을 사랑하지 않았고 미워했다는 것인데 그때마다 신부님께서 보속을 주셨지만
실천도 하지 못하고 매번 똑같은 내용의 성사를 봤던 자신을 생각해보니 회개하지
못하는 자신이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까지 드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못하면서 매번 성사를 봐야 하는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더욱 죄스러운 것은 남들 보기에는 언제나 열심 한 것같이 보이니 성당에서
임원을 뽑을 때마다 저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에 속은 검으면서도 잘 포장된
자신의 가식적인 모습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고사하고 자신과 남을 속이면서까지 포장을 했던 자신이 고백성사를 본다고 회개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그런데도…….
아직까지 냉담자 들을 믿음이 없다느니 구제불능이라니 하며 평가를 하며
눈만 뜨면 하느님사랑을 앵무새처럼 지껄이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묵상하며
헬레나 자매님.. 묵상 글 읽을 때마다 저로 하여금 미소를 띄우게 한답니
다. ^^ 늦은 시각에 들어와 몇자 적고 나갑니다.. 오늘 좋은 하루가 되
세요…^*^ [12/08-03:05]
감사합니다 그런데 잠은 언제 주무시는지 디게 궁금하답니다^^
저는 자매님께 리풀을 달고있는 지금도 졸려서 두눈이 다 감겼는데….
멋진음악과 함께 가끔씩 감동을 주시는묵상글이 그립기도 해서리…
격려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 고마워요 안뇽 [12/08-23:04]
“하느님께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집수리를 하느라 바쁜 요즈음 눈만 뜨면 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는데
청소를 하다보니 탁자에 성사표가 있는 것 이었습니다
그 순간 세례를 받고 지금까지 성사를 본 내용이 가장 많았던 것이 가족이나
남을 사랑하지 않았고 미워했다는 것인데 그때마다 신부님께서 보속을 주셨지만
실천도 하지 못하고 매번 똑같은 내용의 성사를 봤던 자신을 생각해보니 회개하지
못하는 자신이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까지 드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못하면서 매번 성사를 봐야 하는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더욱 죄스러운 것은 남들 보기에는 언제나 열심 한 것같이 보이니 성당에서
임원을 뽑을 때마다 저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에 속은 검으면서도 잘 포장된
자신의 가식적인 모습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고사하고 자신과 남을 속이면서까지 포장을 했던 자신이 고백성사를 본다고 회개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그런데도…….
아직까지 냉담자 들을 믿음이 없다느니 구제불능이라니 하며 평가를 하며
눈만 뜨면 하느님사랑을 앵무새처럼 지껄이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묵상하며
헬레나 자매님.. 묵상 글 읽을 때마다 저로 하여금 미소를 띄우게 한답니
다. ^^ 늦은 시각에 들어와 몇자 적고 나갑니다.. 오늘 좋은 하루가 되
세요…^*^ [12/08-03:05]
감사합니다 그런데 잠은 언제 주무시는지 디게 궁금하답니다^^
저는 자매님께 리풀을 달고있는 지금도 졸려서 두눈이 다 감겼는데….
멋진음악과 함께 가끔씩 감동을 주시는묵상글이 그립기도 해서리…
격려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 고마워요 안뇽 [12/08-23:04]
잃은 양 한 마리
<말씀연구>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영혼이라도 예외 없이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길 잃은 양을 찾으러 가는 목동과 같으신 분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다른 모든 양을 두고 가는 목동의 행동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 길 잃은 한 마리 양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리고 생각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의인을 전부 버려두시는 일은 결코 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11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을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길을 잃은 양은 목자의 도움을 받으면 다시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길 잃은 그리스도인도 형제들의 도움을 받으면 다시 구원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목자를 생각해 봅시다. 목자는 자기에게 위임된 많은 양떼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 마리 양까지도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래서 만일 양 한 마리가 바위틈이나 가파른 비탈길에서 헤매고 있다면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 됩니다. 목자는 양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이와 똑같습니다.
12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길 잃은 양을 찾았을 때 목자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냉담 하는 형제를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을 때 그 기쁨은 어떻겠습니까? 다른 형제들과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직장공동체이든, 본당 구역 공동체이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열심한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데리고 와야 하지만 냉담 하는 사람이나, 신앙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모임을 가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한 마리 양은 바로 냉담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형제 자매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3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형제들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길을 잃는 것은 자신의 부주의 때문인지, 죄악의 유혹과 같이 다른 사람의 탓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길을 잃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다른 이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 길에서 벗어나게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직장 내에서 나 때문에 신앙생활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 때문에 신앙에로 불타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구역모임이나 직장 모임을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특히 믿지 않는 사람이나, 냉담자를 데려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2. 신앙인들이 함께 모였을 때 다음번에 꼭 다시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잃은 양 한 마리
<말씀연구>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영혼이라도 예외 없이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길 잃은 양을 찾으러 가는 목동과 같으신 분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다른 모든 양을 두고 가는 목동의 행동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 길 잃은 한 마리 양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리고 생각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의인을 전부 버려두시는 일은 결코 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11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을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길을 잃은 양은 목자의 도움을 받으면 다시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길 잃은 그리스도인도 형제들의 도움을 받으면 다시 구원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목자를 생각해 봅시다. 목자는 자기에게 위임된 많은 양떼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 마리 양까지도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래서 만일 양 한 마리가 바위틈이나 가파른 비탈길에서 헤매고 있다면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 됩니다. 목자는 양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이와 똑같습니다.
12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길 잃은 양을 찾았을 때 목자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냉담 하는 형제를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을 때 그 기쁨은 어떻겠습니까? 다른 형제들과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직장공동체이든, 본당 구역 공동체이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열심한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데리고 와야 하지만 냉담 하는 사람이나, 신앙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모임을 가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한 마리 양은 바로 냉담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형제 자매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3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형제들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길을 잃는 것은 자신의 부주의 때문인지, 죄악의 유혹과 같이 다른 사람의 탓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길을 잃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다른 이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 길에서 벗어나게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직장 내에서 나 때문에 신앙생활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 때문에 신앙에로 불타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구역모임이나 직장 모임을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특히 믿지 않는 사람이나, 냉담자를 데려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2. 신앙인들이 함께 모였을 때 다음번에 꼭 다시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