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는 사자다


대림 제3주간 목요일(12/15)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요한을 칭찬하시며 주님의 은총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려 주십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보다 크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알렐루야.
    복음
    <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는 사자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4-30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선물 가운데에서 저희가 가리어 봉헌하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고, 현세에서 저희의 마음을 북돋아 주시어, 후세에서 영원한 구원의 상급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우리는 현세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의 노여움은 잠시뿐이나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길을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은 이 세상에 태어난 어느 누구보다 훌륭한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준비된 하느님 나라는 세례자 요한에게 베풀어진 사랑과 은총을 뛰어넘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영성체후 기도
    주님, 이 성찬에 참여한 저희가 잠시 지나가는 현세를 살면서도, 지금부터 천상 것에 맛들여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3.sanctus-monastic chants-christdesert(Bened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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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는 사자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대림 제3주간 목요일(12/15)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요한을 칭찬하시며 주님의 은총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려 주십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보다 크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알렐루야.
      복음
      <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는 사자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4-30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선물 가운데에서 저희가 가리어 봉헌하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고, 현세에서 저희의 마음을 북돋아 주시어, 후세에서 영원한 구원의 상급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우리는 현세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의 노여움은 잠시뿐이나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길을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은 이 세상에 태어난 어느 누구보다 훌륭한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준비된 하느님 나라는 세례자 요한에게 베풀어진 사랑과 은총을 뛰어넘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영성체후 기도
      주님, 이 성찬에 참여한 저희가 잠시 지나가는 현세를 살면서도, 지금부터 천상 것에 맛들여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3.sanctus-monastic chants-christdesert(Benedict)
    
    
    
    
    

  2. user#0 님의 말:

     

    나바태아인의 침략 위협을 받은 헤로데 안티파스는 동쪽 국경을 굳게 지키려고 그들의 왕 아레타 4세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복 동생 헤로데 필립보를 찾아 갔을 때 계수요, 조카벌인 헤로디아를 만나 자기와 결혼하자고 유혹을 했습니다. 허영심에 가득 찬 헤로디아는 인륜을 저버리고 곧 승낙을 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아레타의 딸은 쫓겨날 비참한 운명을 비하려고 스스로 친정으로 돌아갔고, 헤로디아는 필립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살로메를 안티파스의 양녀로 삼아 데리고 갔습니다.


    패륜의 이 한 쌍은 추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간통이요, 가정파괴요,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이었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솔직하게 꼬집어 주었습니다. 세례자의 이 비난은 안티파스에게 아물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혔고, 또 허영심 때문에 패륜의 길을 걷는 헤로디아에게는 복수심을 뿌리박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위협이나 협박도 세례자 요한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감옥에서 그는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인간 행동의 동기와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제자들을 보낸 것은 그들이 직접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도록 하려 한 것 만이었다고 간단히 말할 수많은 없다. 즉 요한은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는 동시에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명확히 선언하는 것이었다. 요한이 무엇보다도 갈망하고, 무엇보다도 명예로 여기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서 사람들에게 인정시키는 일, 그것  뿐이었다. 메시아의 사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고자 한 것이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 메시아성의 선언을 청했을 것이다.  요한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든가, 또 그가 불안에 빠져 있었다고 하는 해석은 복음서에서는 추리될 수가 없다.

    만일 요한이 불신에 의해서 제자들을 보냈다면 제자들을 보낸 다음 하신 요한에 대한 칭찬은 결국 조롱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조롱이 아니라 칭찬이었다. 그 무엇으로 보답하기 어려운 칭찬이었다.


    24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십니다. 없는 데서 칭찬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없는데서 상대방을 칭찬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던지시어 사람들에게 무엇을 찾으러 떼를 지어 요르단 강으로 갔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는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가를 기다려 보고 있다가 오늘은 저쪽에, 내일은 이쪽에 달라붙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조작함 없이 똑바로 전했으며, 사람들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왕에게까지 그의 잘못에 대해서 직언을 하였습니다.

    나 또한 지조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더 나아가 남을 흔들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5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세례자 요한은 부드러운 천으로 된 화려한 옷을 입고 이목을 끌지도 않았습니다. 낙타털옷과 들 꿀을 먹으면서 광야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 나갔습니다. 요한은 금욕적인 생활을 했고, 문화인의 음식을 멀리하고 유목민의 음식을 들었습니다.


    26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들은 예언자를 찾고 있었으며 예언자를 발견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사랑하여 메시아를 보낸다는 것을 …” 그래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함을.”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지금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 어느 예언자 보다 훌륭한 예언자임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누구인지,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오직 요한만이 자기보다 더 뛰어나시고 자기 뒤에 오시게 되어 있는 예수님을 위해(3,11)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그분께로 인도할 소명을 받았기에 더욱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예언자 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자(예언자)이며 하느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중개자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구원의 전달자이며 구원의 인물이기 때문에 더더욱 훌륭한 예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인품이나 수덕적인 생활에 의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의 활동은 다른 예언자들의 활동보다 더 위대한 것이기에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27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이사야 예언자는 이미 그 길의 준비에 대해 말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포로 생활에서 이끌어 내시어 기쁨으로 인도하시며, 이 백성은 곧고 평탄한 길을 따라 행진해 갈 것이라는 것을. 그 행군은 노예살이로부터 자유를 향한 행군임을(이사야40,3-4; 마태3,3). 말라기 예언자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종말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예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몸소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한 선구자가 그분보다 앞서 옵니다.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말라기3,1). 이러한 예언적인 말들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세례자 요한을 바라보게 하고, 더 나아가 바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그의 임무에 있어서 위대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과거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으로 세례자 요한을 높여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그럼 예수님 다음이어야지 왜 첫째입니까?”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적인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세례자 요한이 위대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에 있는 자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로서는 구약시대에 속하고 선구자로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교량입니다. 그런데 복음위에 서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본다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명과 신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시는 은총의 시대는 요한이 머물고 있는 율법의 시대보다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고, 세례자 요한은 단지 그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기에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29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여러분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요한은 의로움의 길을 가르쳐 주러 왔지만 여러분은 그를 믿지 않았다고, 하지만 세리들과 창녀들은 믿었다고. 그러므로 보고 뉘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봤으면 뉘우쳐야 하고, 들었으면 움직여야 합니다. 나머지는 악마에게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30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둠에 속한 사람들은 빛을 피합니다. 마치 악인들이 올바른 이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것처럼…,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알리고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한테 본 것은 무엇이고, 예수님께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또 말을 함에 있어서 어디에 기준을 두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있는 그대로입니까? 아니면 시기와 질투에 기준을 두고 비방을 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사자였습니다. 대림시기를 보내면서 나는 예수님의 길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례자 요한의 삶에 비추어 내가 해야 될 것을 결심해 봅시다.



    4.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

    1.

    2.


    5. 말씀으로 기도하기

  3. user#0 님의 말:

     

    나바태아인의 침략 위협을 받은 헤로데 안티파스는 동쪽 국경을 굳게 지키려고 그들의 왕 아레타 4세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복 동생 헤로데 필립보를 찾아 갔을 때 계수요, 조카벌인 헤로디아를 만나 자기와 결혼하자고 유혹을 했습니다. 허영심에 가득 찬 헤로디아는 인륜을 저버리고 곧 승낙을 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아레타의 딸은 쫓겨날 비참한 운명을 비하려고 스스로 친정으로 돌아갔고, 헤로디아는 필립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살로메를 안티파스의 양녀로 삼아 데리고 갔습니다.


    패륜의 이 한 쌍은 추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간통이요, 가정파괴요,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이었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솔직하게 꼬집어 주었습니다. 세례자의 이 비난은 안티파스에게 아물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혔고, 또 허영심 때문에 패륜의 길을 걷는 헤로디아에게는 복수심을 뿌리박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위협이나 협박도 세례자 요한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감옥에서 그는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인간 행동의 동기와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제자들을 보낸 것은 그들이 직접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도록 하려 한 것 만이었다고 간단히 말할 수많은 없다. 즉 요한은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는 동시에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명확히 선언하는 것이었다. 요한이 무엇보다도 갈망하고, 무엇보다도 명예로 여기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서 사람들에게 인정시키는 일, 그것  뿐이었다. 메시아의 사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고자 한 것이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 메시아성의 선언을 청했을 것이다.  요한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든가, 또 그가 불안에 빠져 있었다고 하는 해석은 복음서에서는 추리될 수가 없다.

    만일 요한이 불신에 의해서 제자들을 보냈다면 제자들을 보낸 다음 하신 요한에 대한 칭찬은 결국 조롱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조롱이 아니라 칭찬이었다. 그 무엇으로 보답하기 어려운 칭찬이었다.


    24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십니다. 없는 데서 칭찬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없는데서 상대방을 칭찬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던지시어 사람들에게 무엇을 찾으러 떼를 지어 요르단 강으로 갔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는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가를 기다려 보고 있다가 오늘은 저쪽에, 내일은 이쪽에 달라붙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조작함 없이 똑바로 전했으며, 사람들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왕에게까지 그의 잘못에 대해서 직언을 하였습니다.

    나 또한 지조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더 나아가 남을 흔들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5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세례자 요한은 부드러운 천으로 된 화려한 옷을 입고 이목을 끌지도 않았습니다. 낙타털옷과 들 꿀을 먹으면서 광야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 나갔습니다. 요한은 금욕적인 생활을 했고, 문화인의 음식을 멀리하고 유목민의 음식을 들었습니다.


    26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들은 예언자를 찾고 있었으며 예언자를 발견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사랑하여 메시아를 보낸다는 것을 …” 그래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함을.”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지금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 어느 예언자 보다 훌륭한 예언자임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누구인지,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오직 요한만이 자기보다 더 뛰어나시고 자기 뒤에 오시게 되어 있는 예수님을 위해(3,11)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그분께로 인도할 소명을 받았기에 더욱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예언자 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자(예언자)이며 하느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중개자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구원의 전달자이며 구원의 인물이기 때문에 더더욱 훌륭한 예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인품이나 수덕적인 생활에 의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의 활동은 다른 예언자들의 활동보다 더 위대한 것이기에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27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이사야 예언자는 이미 그 길의 준비에 대해 말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포로 생활에서 이끌어 내시어 기쁨으로 인도하시며, 이 백성은 곧고 평탄한 길을 따라 행진해 갈 것이라는 것을. 그 행군은 노예살이로부터 자유를 향한 행군임을(이사야40,3-4; 마태3,3). 말라기 예언자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종말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예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몸소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한 선구자가 그분보다 앞서 옵니다.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말라기3,1). 이러한 예언적인 말들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세례자 요한을 바라보게 하고, 더 나아가 바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그의 임무에 있어서 위대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과거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으로 세례자 요한을 높여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그럼 예수님 다음이어야지 왜 첫째입니까?”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적인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세례자 요한이 위대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에 있는 자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로서는 구약시대에 속하고 선구자로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교량입니다. 그런데 복음위에 서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본다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명과 신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시는 은총의 시대는 요한이 머물고 있는 율법의 시대보다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고, 세례자 요한은 단지 그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기에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29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여러분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요한은 의로움의 길을 가르쳐 주러 왔지만 여러분은 그를 믿지 않았다고, 하지만 세리들과 창녀들은 믿었다고. 그러므로 보고 뉘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봤으면 뉘우쳐야 하고, 들었으면 움직여야 합니다. 나머지는 악마에게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30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둠에 속한 사람들은 빛을 피합니다. 마치 악인들이 올바른 이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것처럼…,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알리고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한테 본 것은 무엇이고, 예수님께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또 말을 함에 있어서 어디에 기준을 두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있는 그대로입니까? 아니면 시기와 질투에 기준을 두고 비방을 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사자였습니다. 대림시기를 보내면서 나는 예수님의 길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례자 요한의 삶에 비추어 내가 해야 될 것을 결심해 봅시다.



    4.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

    1.

    2.


    5. 말씀으로 기도하기

  4. user#0 님의 말: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주님!

    촛불 하나를밝히고 대림시기가 시작된 후 세 개의 촛불을 밝혔는데도….
    아직도 당신을 맞이 할 준비가 덜 되어있음을 느낍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바쁜지……
    정신없이 지내는 요즈음 당신의 존재조차 잊을 때도 있습니다
    요즈음…….
    사실 신앙이 무엇일까?
    하느님은 어떤 분이실까?
    정말 계시는 것일까?
    시간이 날 때 복음을 묵상하면서 제 안에서 일어나는 당신께 대한 갈등으로
    신앙마저 흔들리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 알량한 신앙심마저….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던 당신께 대한 사랑과 믿음조차
    조금 바쁘다는 이유로 갈등을 하는 자신을 보면서 당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남들도 신앙생활을 하니까 심심해서 한 것인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동안 저의 신앙생활을 점검해보니….
    제가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가 제게 신앙의 뿌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열정적으로 했다는 신앙생활 또한 당신께 대한 믿음과 사랑이아닌
    세속적인 욕심과 인간적인 생각으로 당신을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이런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촛불을 네 개가 아니라 수 십개를 빍힌다해도
    저의 마음 속에는 오시는 당신을 맞이 할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는 사실이 슬프기도했습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당신의 탄생을 기다리며 거리에는 잔치분위기로 가고 있는데도
    예전 같으면 산타할아버지의 그림만 봐도 즐거웠는데 ….
    아무 감동이 없는 자신을 보면서 당신께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하신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께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저의 마음 속이
    따뜻해질 수있도록 당신을 사랑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촛불하나 밝히고 셀레는 마음으로 당신을 기다리던 순수했던 예전의  저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마음 간절합니다
    촛불하나 밝히고 기쁘고 행복했던 예전의 순수했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묵상하며

  5. user#0 님의 말: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주님!

    촛불 하나를밝히고 대림시기가 시작된 후 세 개의 촛불을 밝혔는데도….
    아직도 당신을 맞이 할 준비가 덜 되어있음을 느낍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바쁜지……
    정신없이 지내는 요즈음 당신의 존재조차 잊을 때도 있습니다
    요즈음…….
    사실 신앙이 무엇일까?
    하느님은 어떤 분이실까?
    정말 계시는 것일까?
    시간이 날 때 복음을 묵상하면서 제 안에서 일어나는 당신께 대한 갈등으로
    신앙마저 흔들리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 알량한 신앙심마저….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던 당신께 대한 사랑과 믿음조차
    조금 바쁘다는 이유로 갈등을 하는 자신을 보면서 당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남들도 신앙생활을 하니까 심심해서 한 것인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동안 저의 신앙생활을 점검해보니….
    제가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가 제게 신앙의 뿌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열정적으로 했다는 신앙생활 또한 당신께 대한 믿음과 사랑이아닌
    세속적인 욕심과 인간적인 생각으로 당신을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이런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촛불을 네 개가 아니라 수 십개를 빍힌다해도
    저의 마음 속에는 오시는 당신을 맞이 할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는 사실이 슬프기도했습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당신의 탄생을 기다리며 거리에는 잔치분위기로 가고 있는데도
    예전 같으면 산타할아버지의 그림만 봐도 즐거웠는데 ….
    아무 감동이 없는 자신을 보면서 당신께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하신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께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저의 마음 속이
    따뜻해질 수있도록 당신을 사랑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촛불하나 밝히고 셀레는 마음으로 당신을 기다리던 순수했던 예전의  저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마음 간절합니다
    촛불하나 밝히고 기쁘고 행복했던 예전의 순수했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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