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오의 밤 Bartholomausnacht

  바르톨로메오의 밤   Bartholomausnacht

  16세기 중엽 프랑스에서는 가톨릭과 이른바 위그노파라고 불렸던 칼뱅파 사이에 격렬한 종교 전쟁이 발생하였다. 한 왕족의 결혼식이 두 교파 사이의 평화를 회복시키려는 목적으로 준비되고 있었다. 샤를 9세 왕의 여동생 마르가레타(Margaretha von Valois) – 가톨릭을 신봉하였다 – 와 칼뱅파 교도였던 앙리(Heinrich von Navarra) 왕자 – 나중에 앙리 4세 왕으로 등극하였다 – 가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신앙을 고백하였기 때문에 교회에서의 결혼은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교황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또한 교회의 관면도 없이 교회에서의 결혼이 계획되고 있었다. 강한 지배욕의 성향을 지닌 왕자의 어머니 카트린(Katharina von Medici)은 아들의 결혼식을 결혼 축하객으로 파리에 온 수많은 위그노파 교도들을 섬멸시킬 기회로 이용하고자 하였다. 위그노파 교도들이 대역 모반을 꾸미고 있다는 허위 정보에 근거를 둔 감언이설로 가타리나는 아들 앙리 왕자에게 위그노파 교도들을 섬멸하도록 설득시켰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밤(1572년 8월 23일부터 24일로 건너가는 시간)에 파리에 도착한 모든 위그노파 교도들은 참살당하였다. 참살당한 자들 가운데는 위그노파 교도들의 지도자였던 콜리나(Admiral Coligny)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위그노파 교도들에 대한 참살은 프랑스 전역에 걸쳐 자행되었다. 이 참살로 약 오천 명 내지 일만여 명에 이르는 위그노파 교도들이 희생되었다. 로마에 도착한 프랑스 사절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에게 왕이 대역 모반의 위험을 모면하였다는 전갈을 하였다. 거짓 전갈에 속은 교황은 베드로 대성전에서 프랑스 국왕이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유로 감사가를 부르게 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이러한 참살의 계획을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못하였다. 만일 사전에 인지했더라면 결코 이러한 참살 계획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호사가들은 교황이 이 참살 계획을 사전에 미리 알고서도 동의했다고 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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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바르톨로메오의 밤   Bartholomausnacht

      16세기 중엽 프랑스에서는 가톨릭과 이른바 위그노파라고 불렸던 칼뱅파 사이에 격렬한 종교 전쟁이 발생하였다. 한 왕족의 결혼식이 두 교파 사이의 평화를 회복시키려는 목적으로 준비되고 있었다. 샤를 9세 왕의 여동생 마르가레타(Margaretha von Valois) – 가톨릭을 신봉하였다 – 와 칼뱅파 교도였던 앙리(Heinrich von Navarra) 왕자 – 나중에 앙리 4세 왕으로 등극하였다 – 가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신앙을 고백하였기 때문에 교회에서의 결혼은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교황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또한 교회의 관면도 없이 교회에서의 결혼이 계획되고 있었다. 강한 지배욕의 성향을 지닌 왕자의 어머니 카트린(Katharina von Medici)은 아들의 결혼식을 결혼 축하객으로 파리에 온 수많은 위그노파 교도들을 섬멸시킬 기회로 이용하고자 하였다. 위그노파 교도들이 대역 모반을 꾸미고 있다는 허위 정보에 근거를 둔 감언이설로 가타리나는 아들 앙리 왕자에게 위그노파 교도들을 섬멸하도록 설득시켰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밤(1572년 8월 23일부터 24일로 건너가는 시간)에 파리에 도착한 모든 위그노파 교도들은 참살당하였다. 참살당한 자들 가운데는 위그노파 교도들의 지도자였던 콜리나(Admiral Coligny)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위그노파 교도들에 대한 참살은 프랑스 전역에 걸쳐 자행되었다. 이 참살로 약 오천 명 내지 일만여 명에 이르는 위그노파 교도들이 희생되었다. 로마에 도착한 프랑스 사절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에게 왕이 대역 모반의 위험을 모면하였다는 전갈을 하였다. 거짓 전갈에 속은 교황은 베드로 대성전에서 프랑스 국왕이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유로 감사가를 부르게 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이러한 참살의 계획을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못하였다. 만일 사전에 인지했더라면 결코 이러한 참살 계획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호사가들은 교황이 이 참살 계획을 사전에 미리 알고서도 동의했다고 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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