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연중 제10주간 금요일(6/16)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죄를 짓게 하는 몸의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고 가르치십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 ◎ 알렐루야.
    복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가 깨끗하고 거룩한 예물이 되게 하시고,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충만하게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주님 면전에서 넘치는 기쁨을 누리리이다.
    영성체 후 묵상
    우리는, 하느님은 크고 놀라운 사건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분으로 자주 착각합니다. 아니 우리는 어떤 일이 크고 놀라운 사건인지조차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대수롭지도 않은 평범한 일처럼 여겼던 것이 지나고 보면 크고 대단했던 일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함께하셨던 일들입니다. 내가 심사숙고 끝에, 또는 어쩌다가 내린 결정에서도 하느님의 섭리를 뒤늦게 깨닫는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언제나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엘리야 예언자와는 달리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영성체후 기도
    주님, 성체를 받아 모시고 힘을 얻은 저희에게 더욱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저희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저녁노을(모니카)




♬ 7.Os Lusti-베네딕도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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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주님!
    어제에 이어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의 자녀이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눈으로 보고 들으며 솔직히 윤리적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나쁜 줄도 알면서 마음으로 짓는 죄 또한 얼마나 많은지…….
    참 어렵습니다
    지키며 산다는 것이 ……
    다행히도 당신을 믿으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때도 많으니
    자제하는 법도 많이 배우며 잘 살려고 노력을 하니 부족하나마
    이 만큼이라도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말씀에 가슴이 뜨끔하지만 ……..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면 연옥 불을 면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이 순간 이후부터라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눈 팔지 않으며…..
    당신만을 사랑해야겠다고 ……

    알렐루야!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묵상하며

    
    

  2. user#0 님의 말: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주님!
    어제에 이어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의 자녀이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눈으로 보고 들으며 솔직히 윤리적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나쁜 줄도 알면서 마음으로 짓는 죄 또한 얼마나 많은지…….
    참 어렵습니다
    지키며 산다는 것이 ……
    다행히도 당신을 믿으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때도 많으니
    자제하는 법도 많이 배우며 잘 살려고 노력을 하니 부족하나마
    이 만큼이라도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말씀에 가슴이 뜨끔하지만 ……..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면 연옥 불을 면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이 순간 이후부터라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눈 팔지 않으며…..
    당신만을 사랑해야겠다고 ……

    알렐루야!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묵상하며

    
    

  3. user#0 님의 말:

     

    참된 의로움(극기와 가정생활)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 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율법에서는 간음을 금하고 있었으나 예수님께서는 나쁜 생각, 음란한 생각까지도 엄하게 금하십니다. 구약의 십계명은 남자우대(간음죄를 여자에게만 적용시킴)사상이 짙었습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결혼한 여인이 독신자나 비유다인과 성적으로 관계를 맺으면 간음하는 것이지만,  결혼한 남자가 같은 일을 하면 간음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근동 지방도 여자는 귀중한 재산목록에 속해 있었습니다. 십계명에도 이런 영향이 미쳐 재산,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자 그대로 간음을 금하고 있던 모세의 율법은 단순한 간음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보충하십니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예수님의 의도는 신체 절단 보다는 악한 마음의 뿌리를 없애라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6계명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차라리 피를 흘리는 희생과 고통이 있더라도 죄의 기회를 피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재산, 건강, 친구, 친척까지도 만일 우리에게 죄를 짓게 할 원인이 된다면 그들과의 그런 관계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구원은 모든 재산, 온갖 사랑보다 윗자리에 두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의 혼인법과 이혼법을 살펴보면 쿰란 종파만이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면서 이혼과 재혼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일부다처제를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이혼과 재혼을 쉽사리 허락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이혼이란 언제나 남편이 아내를 소박하여 내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있어야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수치스러운 일일까요? 남성 중심적인 사회 안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리사이계 율사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렸는데 간음, 풍기문란, 음식을 태우는 것, 계명을 어기는 것, 남편 눈에 거슬리는 모습 따위를 수치스러운 일로 보았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서 이런 일을 발견하고 버릴 마음이 있으면, 이혼장을 만들어 아내에게 건네주면 그 순간부터 아내는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가 됩니다. 이혼장에  소박 사유를 쓸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내가 무서워서 지붕위에 올라가서 아래에 있는 아내에게 이혼장을 던졌다고도 합니다.


    ■ 이혼장 ■

    나 말자의 남편 말똥이는

    아내 말자를 소박하니

    다른 남자가 데려가도 무방합니다.

    2006.6.16일

    증인: 소똥이, 개똥이.


    바리사이들의 이혼 관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시어 이혼 불가를 선언 하셨습니다. “모세는 여러분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그 계명을 적어 여러분에게 남겼습니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창조의 시초부터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은 한 몸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미 둘이 아니고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그와 간음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계명 중 제6계명과 관련하여 이혼을 단죄하십니다. 당시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는 홀로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아무래도 재혼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이 이혼을 단죄한 말씀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을 내렸습니다. 유다교인들이 모세의 이혼법을 내세워 소박을 정당화하자,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원초적인 뜻(창세1,27;2,24)을 내세워 예수님의 말씀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70년경 이방계 신도들은 남편이 아내를 내보낸 다음 재혼하면 간음하는 것처럼, 또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여자에게도 이혼하고 재혼할 권리를 인정한 로마와 그리스 사회에서나 할 수 있었습니다.

    55년경 에페소에서 고린토 교회로 써 보낸 편지에서 바울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이혼해서는 안 되지만 부득이 이혼한 경우 재혼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1고린 7,10-11). 그리고 비신자 부부 가운데 한편만 그리스도인이 된 경우에는 신자 편에서 이혼을 주장해서는 안 되지만 비신자편에서 이혼하려고 하면 갈라서도 무방하다(1고린7,12-15)


    예수님은 이혼하지 말라는 법을 제정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아내를 버리는 남편들에게 일대 회개를 부르짖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유로 아내를 버릴 수 있을까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둘이 한 몸이 되는 비결을 익힐 수 있을까 궁리하라는 외침인 것입니다.

    어떻게 아내를 사랑해야 할까? 어떻게 남편을 사랑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보아야 할 것이 있고,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보면 득이 되는 것이 있고, 보면 손해만 보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에 더 관심을 둬야 할까요?


    2. 가끔은 살다보면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부부들이 가정생활을 더욱 완만하게 하기 위해 조언을 해 준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4. user#0 님의 말:

     

    참된 의로움(극기와 가정생활)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 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율법에서는 간음을 금하고 있었으나 예수님께서는 나쁜 생각, 음란한 생각까지도 엄하게 금하십니다. 구약의 십계명은 남자우대(간음죄를 여자에게만 적용시킴)사상이 짙었습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결혼한 여인이 독신자나 비유다인과 성적으로 관계를 맺으면 간음하는 것이지만,  결혼한 남자가 같은 일을 하면 간음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근동 지방도 여자는 귀중한 재산목록에 속해 있었습니다. 십계명에도 이런 영향이 미쳐 재산,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자 그대로 간음을 금하고 있던 모세의 율법은 단순한 간음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보충하십니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예수님의 의도는 신체 절단 보다는 악한 마음의 뿌리를 없애라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6계명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차라리 피를 흘리는 희생과 고통이 있더라도 죄의 기회를 피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재산, 건강, 친구, 친척까지도 만일 우리에게 죄를 짓게 할 원인이 된다면 그들과의 그런 관계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구원은 모든 재산, 온갖 사랑보다 윗자리에 두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의 혼인법과 이혼법을 살펴보면 쿰란 종파만이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면서 이혼과 재혼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일부다처제를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이혼과 재혼을 쉽사리 허락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이혼이란 언제나 남편이 아내를 소박하여 내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있어야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수치스러운 일일까요? 남성 중심적인 사회 안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리사이계 율사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렸는데 간음, 풍기문란, 음식을 태우는 것, 계명을 어기는 것, 남편 눈에 거슬리는 모습 따위를 수치스러운 일로 보았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서 이런 일을 발견하고 버릴 마음이 있으면, 이혼장을 만들어 아내에게 건네주면 그 순간부터 아내는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가 됩니다. 이혼장에  소박 사유를 쓸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내가 무서워서 지붕위에 올라가서 아래에 있는 아내에게 이혼장을 던졌다고도 합니다.


    ■ 이혼장 ■

    나 말자의 남편 말똥이는

    아내 말자를 소박하니

    다른 남자가 데려가도 무방합니다.

    2006.6.16일

    증인: 소똥이, 개똥이.


    바리사이들의 이혼 관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시어 이혼 불가를 선언 하셨습니다. “모세는 여러분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그 계명을 적어 여러분에게 남겼습니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창조의 시초부터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은 한 몸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미 둘이 아니고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그와 간음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계명 중 제6계명과 관련하여 이혼을 단죄하십니다. 당시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는 홀로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아무래도 재혼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이 이혼을 단죄한 말씀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을 내렸습니다. 유다교인들이 모세의 이혼법을 내세워 소박을 정당화하자,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원초적인 뜻(창세1,27;2,24)을 내세워 예수님의 말씀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70년경 이방계 신도들은 남편이 아내를 내보낸 다음 재혼하면 간음하는 것처럼, 또한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여자에게도 이혼하고 재혼할 권리를 인정한 로마와 그리스 사회에서나 할 수 있었습니다.

    55년경 에페소에서 고린토 교회로 써 보낸 편지에서 바울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이혼해서는 안 되지만 부득이 이혼한 경우 재혼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1고린 7,10-11). 그리고 비신자 부부 가운데 한편만 그리스도인이 된 경우에는 신자 편에서 이혼을 주장해서는 안 되지만 비신자편에서 이혼하려고 하면 갈라서도 무방하다(1고린7,12-15)


    예수님은 이혼하지 말라는 법을 제정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아내를 버리는 남편들에게 일대 회개를 부르짖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유로 아내를 버릴 수 있을까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둘이 한 몸이 되는 비결을 익힐 수 있을까 궁리하라는 외침인 것입니다.

    어떻게 아내를 사랑해야 할까? 어떻게 남편을 사랑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보아야 할 것이 있고,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보면 득이 되는 것이 있고, 보면 손해만 보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에 더 관심을 둬야 할까요?


    2. 가끔은 살다보면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부부들이 가정생활을 더욱 완만하게 하기 위해 조언을 해 준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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