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성 주간 수요일(4/4)


    말씀의 초대
    유다는 은돈 서른 닢을 받고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아넘긴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 수난의 때가 더 가까이 와 있음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신다(복음).
    복음 환호송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저희 임금님이신 주님, 주님 홀로 저희 잘못을 가련히 여기시나이다.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6,14-25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봉헌하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고, 성자의 수난을 신비로이 재현하는 이 제사로써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러 오셨도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리시어, 이 거룩한 신비로 선포하는 성자의 죽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유다는 선과 악에 대한 긴장을 늘 심하게 느끼며 산 사람으로 보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유다는 자신의 인간적 욕망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고 짐작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공생활 내내 그분과 함께 그리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생활해 온 유다에게서 다른 제자들은 전혀 그 내면의 탐욕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유다의 마음이 악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분께서 복음을 전한 3년간의 세월을 결코 함께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며, 다른 제자들 또한 그러한 유다의 면모를 능히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이루어진 제자들의 친밀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유대감으로 형성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박해받는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려면 그분에 대한 강한 유대감과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자들 간에 서열 의식을 가지고 다투는 모습을 볼 수는 있을지언정(마르 9,33-35) 그들 스스로 분열하는 모습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의 유대감은 훌륭했을지언정 제자들 개개인이 예수님과 맺은 유대감은 서로 달랐을 것입니다. 곧, 베드로가 지닌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유다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금전적인 욕망의 그늘 아래 있었던 유다는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의 모습을 함께 체험하며 끊임없이 양심의 갈등을 느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이처럼 애초부터 있었다고 보기보다는, 자신의 비천함과 예수님의 거룩함 사이의 심한 괴리감으로 말미암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주님을 일부러 배신하려고 계획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주님에게서 벗어나고 있는 자신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언젠가는 악으로 향하고 있는 자신을 느끼면서도 그 한계선을 넘어 버렸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통회 - 김태진 신부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 주간 수요일(4/4)


      말씀의 초대
      유다는 은돈 서른 닢을 받고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아넘긴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당신 수난의 때가 더 가까이 와 있음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신다(복음).
      복음 환호송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저희 임금님이신 주님, 주님 홀로 저희 잘못을 가련히 여기시나이다.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6,14-25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봉헌하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고, 성자의 수난을 신비로이 재현하는 이 제사로써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러 오셨도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리시어, 이 거룩한 신비로 선포하는 성자의 죽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유다는 선과 악에 대한 긴장을 늘 심하게 느끼며 산 사람으로 보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유다는 자신의 인간적 욕망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고 짐작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공생활 내내 그분과 함께 그리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생활해 온 유다에게서 다른 제자들은 전혀 그 내면의 탐욕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유다의 마음이 악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분께서 복음을 전한 3년간의 세월을 결코 함께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며, 다른 제자들 또한 그러한 유다의 면모를 능히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이루어진 제자들의 친밀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유대감으로 형성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박해받는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려면 그분에 대한 강한 유대감과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자들 간에 서열 의식을 가지고 다투는 모습을 볼 수는 있을지언정(마르 9,33-35) 그들 스스로 분열하는 모습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의 유대감은 훌륭했을지언정 제자들 개개인이 예수님과 맺은 유대감은 서로 달랐을 것입니다. 곧, 베드로가 지닌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유다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금전적인 욕망의 그늘 아래 있었던 유다는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의 모습을 함께 체험하며 끊임없이 양심의 갈등을 느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이처럼 애초부터 있었다고 보기보다는, 자신의 비천함과 예수님의 거룩함 사이의 심한 괴리감으로 말미암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주님을 일부러 배신하려고 계획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주님에게서 벗어나고 있는 자신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언젠가는 악으로 향하고 있는 자신을 느끼면서도 그 한계선을 넘어 버렸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통회 - 김태진 신부 
    
    
    
    
    

guest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