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부활 제2주간 화요일(4/17)


    말씀의 초대
    새로 태어나는 신비는 십자가의 신비를 통하여 드러난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가르치신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사람의 아들이 들어 올려져야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7ㄱ.8-15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하느님, 이 거룩한 신비로 저희 구원을 완성하시니, 저희가 거행하는 이 파스카 신비가 저희에게 영원한 기쁨의 원천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한다. 알렐루야.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가 현세의 삶을 잘 살도록 도와주시고, 마침내는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이 말씀은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게 되는 모든 문제도 우리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시는 하느님의 표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대부분은 자신에게 부닥친 문제만을 가지고 씨름하는 가운데 해결책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한 삶의 문제들이 삶의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미봉책으로 수습하게 됩니다. 삶의 근본적인 변화란 신앙을 삶의 모든 기준으로 삼는 것을 뜻합니다. 신앙 안에 머무르는 삶이 곧 “위로부터 태어나고,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삶입니다. 따라서 삶의 여러 문제로 고통 받을 때 자신의 전체적인 삶을 신앙의 관점에서 다시 조망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겸손하게 살아왔는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얼마나 실천하였는가? 삶의 목표와 가치 추구에서 신앙인으로서 부끄러움은 없었는가?’ 이러한 성찰과 더불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을 신앙에서 멀어진 자신을 재정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관점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유혹은 바로 이러한 신앙으로의 회귀가 구체적인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혹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만이 우리 삶의 근원적인 주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분께 의지하는 것만이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만이 진정 성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할렐루야(무덤 이기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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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맞아요 주님!
    제가 당신을 믿는 이유도….
    제가 신앙을 갖는 이유도…..
    제가 힘들고 어려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워도
    고통을 겪어도 참고 견디는 것은 모두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이지요?

    그런데요 주님!
    왜 자꾸만 잊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약간의 재물을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아등바등 온갖 정성을 들이는데
    왜?
    영원한 생명을 얻게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당신을 믿는 그런 행위들이
    더 어렵고 때로는 귀찮고(?) 솔직히 재미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미운 사람이 있을 때에는 더 그렇습니다
    저에게 사랑이 없어서 그런데……..
    핑계를 댑니다
    저의 모든 잘못을 모두 에게 돌리고 저는 피해자라고………
    그렇게 핑계를 댑니다
    아니!
    그래야 저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저의 마음이 공허해서이지요?
    저의 잘못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이지요
    하지만 마음 속에는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있기에
    심기가 불편합니다
    살면서…..
    당신의 말씀과 세속의 이치를 조화시키기에는………
    저의 믿음이 턱 없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저의 못된 심성도 한 몫을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봐 줄어야 하는데………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유를 대고 의심하고 궁금하고 캐 묻고 싶고………
    저의 이런 성격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깨닫고 또 깨닫지만 언제나 머리로만 깨닫습니다
    언제나 신앙따로 생활따로 마음따로 몸 따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주님!
    저의 이런 생각들이 저의 이런 마음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인데 잊기에는 참 어렵습니다
    모두 아무렇지 않게 생각을 하기에는 저의 복잡한 머릿 속이
    어지럽습니다
    타고난 성미가 못되어서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말씀을 굳게 믿으며 기쁘고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믿음 안에서…..
    당신의 사랑 안에서….
    당신만을 생각하며….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아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묵상하며

  2. user#0 님의 말: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맞아요 주님!
    제가 당신을 믿는 이유도….
    제가 신앙을 갖는 이유도…..
    제가 힘들고 어려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워도
    고통을 겪어도 참고 견디는 것은 모두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이지요?

    그런데요 주님!
    왜 자꾸만 잊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약간의 재물을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아등바등 온갖 정성을 들이는데
    왜?
    영원한 생명을 얻게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당신을 믿는 그런 행위들이
    더 어렵고 때로는 귀찮고(?) 솔직히 재미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미운 사람이 있을 때에는 더 그렇습니다
    저에게 사랑이 없어서 그런데……..
    핑계를 댑니다
    저의 모든 잘못을 모두 에게 돌리고 저는 피해자라고………
    그렇게 핑계를 댑니다
    아니!
    그래야 저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저의 마음이 공허해서이지요?
    저의 잘못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이지요
    하지만 마음 속에는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있기에
    심기가 불편합니다
    살면서…..
    당신의 말씀과 세속의 이치를 조화시키기에는………
    저의 믿음이 턱 없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저의 못된 심성도 한 몫을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봐 줄어야 하는데………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유를 대고 의심하고 궁금하고 캐 묻고 싶고………
    저의 이런 성격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깨닫고 또 깨닫지만 언제나 머리로만 깨닫습니다
    언제나 신앙따로 생활따로 마음따로 몸 따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주님!
    저의 이런 생각들이 저의 이런 마음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인데 잊기에는 참 어렵습니다
    모두 아무렇지 않게 생각을 하기에는 저의 복잡한 머릿 속이
    어지럽습니다
    타고난 성미가 못되어서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말씀을 굳게 믿으며 기쁘고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믿음 안에서…..
    당신의 사랑 안에서….
    당신만을 생각하며….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아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묵상하며

  3. user#0 님의 말: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새로 나야 합니다. 어찌 보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잘못되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새로 나야 합니다.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겠지요. 옳지 않았다면, 부족했다면 옳은 방법으로, 보충하는 방법으로…,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삶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내 틀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세상을 볼 때, 나는 놀라운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끼고서 새로운 세상을 보듯이,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틀을 가지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면 틀리거나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싶은 데로 부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내가 원할 때나, 그분께서 원하실 때, 그분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니고데모는 다시 의문을 제기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니고데모는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의문은 나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일 수 있습니다. 모든 일안에서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나오는 말이 바로 그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일들은 신앙적인 면 안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내가 믿기 어려운 것들,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들 안에서…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새로 나는 것은 결국 예수님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새로 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지 않고서는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보기 위해서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니코데모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메시아 시대의 징표로서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풍성한 하느님의 영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이사야44,3,59,21;즈가리야12,1;요엘3,1) 영이 이와 같이 풍성하게 임하고 넘쳐흐른 결과 사람에게는 참된 내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 새 마음을 일도록 해 주리라. 그들의 몸에 박혔던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피가 통하는 마음을 주리라. 그래서 나의 규정을 따르고 나의 법을 지켜 그대로 실행하도록 만들겠다. 그제야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에제키엘11,19-20).


     율법학자들도 똑같은 사상을 말하였고 새로운 정신적 창조, 새로운 탄생에 대해서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유다 지식계에 이러한 사랑이 퍼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니고데모가 왜 예수님의 말씀을 그렇게도 명백하게 알아듣지 못하였던 것일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는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을 모르느냐?”하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결코 니고데모를 비웃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사랑을 거스르지 않는 부드러운 야유가 눈에 띕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빙그레 미소를 띠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너는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라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너는 사제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너는 영세 받은지 오래된 신자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너는 본당에서 봉사하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내가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보신 것을 말하고 증언합니다. 하지만 나는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맘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백성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을 하십니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하늘의 일”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말 합니다. 즉 하느님 자신에게 있어서 이루어지는 일, 곧 말씀의 영원하신 탄생, 삼위일체의 위격의 상호 관계, 인류의 구원에 관한 것 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사람은 아무도 하늘에 올라 간 일이 없으나 사람의 아들은 당신의 집인 하늘에서 내려 오셨다는 것입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들리다”라는 동사는 요한복음에서 십가가의 사형을 기록할 때 쓴 고유의 동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권능을 통하여 다시 태어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설명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높이 들려야 한다.” 이 말씀의 배경에는 민수기에 나오는 사건 이야기가 있습니다(민수21,4-9). 광야에서 당신께 불평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시려고, 야훼께서는 그들에게 치명적인 불 뱀을 보내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회개와 그들을 위한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야훼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매달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다음 불뱀한테 물린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나 장대 위에 높이 매달린 구리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높이 들려짐을 구리뱀이 높이 들려짐과 비교하십니다. 높이 들려진 구리 뱀은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육체적인 생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높이 들려진 사람의 아들은 신앙을 가지고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원천에 참여하는 것은 그 원천인 사람의 아들이 높이 들려졌음을 믿음으로써 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세상으로 파견하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지금 여기서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종말론적인 하느님 나라에서 만물과 만사가 그 종말을 고하게 될 먼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그 생명이 현존하는 것입니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새로운 탄생의 섭리적 수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의 의무를 가르쳐 주신 다음, 십자가의 희생 제물의 필요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가 지니는 구원적인 효과도 구세주의 수난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라고 명백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 까닭에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은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①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② 이러한 새로운 생명은 사람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얻어집니다. ③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 사람이 얻게 된 것입니다. ④그리스도의 속죄의 제물의 효과에 대한 믿음이 구원의 필수 조건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를 동료들과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증언하고 계십니까? 내가 체험한 것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계십니다. 나는 믿지 않는 형제 자매나, 쉬고 있는 형제 자매들의 구원을 위하여 얼마나 애를 쓰고 있습니까?





  4. user#0 님의 말: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새로 나야 합니다. 어찌 보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잘못되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새로 나야 합니다.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겠지요. 옳지 않았다면, 부족했다면 옳은 방법으로, 보충하는 방법으로…,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삶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내 틀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세상을 볼 때, 나는 놀라운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끼고서 새로운 세상을 보듯이,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틀을 가지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면 틀리거나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싶은 데로 부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내가 원할 때나, 그분께서 원하실 때, 그분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니고데모는 다시 의문을 제기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니고데모는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의문은 나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일 수 있습니다. 모든 일안에서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나오는 말이 바로 그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일들은 신앙적인 면 안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내가 믿기 어려운 것들,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들 안에서…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새로 나는 것은 결국 예수님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새로 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지 않고서는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보기 위해서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니코데모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메시아 시대의 징표로서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풍성한 하느님의 영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이사야44,3,59,21;즈가리야12,1;요엘3,1) 영이 이와 같이 풍성하게 임하고 넘쳐흐른 결과 사람에게는 참된 내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 새 마음을 일도록 해 주리라. 그들의 몸에 박혔던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피가 통하는 마음을 주리라. 그래서 나의 규정을 따르고 나의 법을 지켜 그대로 실행하도록 만들겠다. 그제야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에제키엘11,19-20).


     율법학자들도 똑같은 사상을 말하였고 새로운 정신적 창조, 새로운 탄생에 대해서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유다 지식계에 이러한 사랑이 퍼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니고데모가 왜 예수님의 말씀을 그렇게도 명백하게 알아듣지 못하였던 것일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는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을 모르느냐?”하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결코 니고데모를 비웃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사랑을 거스르지 않는 부드러운 야유가 눈에 띕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빙그레 미소를 띠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너는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라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너는 사제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너는 영세 받은지 오래된 신자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너는 본당에서 봉사하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내가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보신 것을 말하고 증언합니다. 하지만 나는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맘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백성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을 하십니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하늘의 일”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말 합니다. 즉 하느님 자신에게 있어서 이루어지는 일, 곧 말씀의 영원하신 탄생, 삼위일체의 위격의 상호 관계, 인류의 구원에 관한 것 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사람은 아무도 하늘에 올라 간 일이 없으나 사람의 아들은 당신의 집인 하늘에서 내려 오셨다는 것입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들리다”라는 동사는 요한복음에서 십가가의 사형을 기록할 때 쓴 고유의 동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권능을 통하여 다시 태어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설명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높이 들려야 한다.” 이 말씀의 배경에는 민수기에 나오는 사건 이야기가 있습니다(민수21,4-9). 광야에서 당신께 불평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시려고, 야훼께서는 그들에게 치명적인 불 뱀을 보내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회개와 그들을 위한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야훼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매달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다음 불뱀한테 물린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나 장대 위에 높이 매달린 구리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높이 들려짐을 구리뱀이 높이 들려짐과 비교하십니다. 높이 들려진 구리 뱀은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육체적인 생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높이 들려진 사람의 아들은 신앙을 가지고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원천에 참여하는 것은 그 원천인 사람의 아들이 높이 들려졌음을 믿음으로써 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세상으로 파견하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지금 여기서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종말론적인 하느님 나라에서 만물과 만사가 그 종말을 고하게 될 먼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그 생명이 현존하는 것입니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새로운 탄생의 섭리적 수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의 의무를 가르쳐 주신 다음, 십자가의 희생 제물의 필요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가 지니는 구원적인 효과도 구세주의 수난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라고 명백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 까닭에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은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①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② 이러한 새로운 생명은 사람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얻어집니다. ③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 사람이 얻게 된 것입니다. ④그리스도의 속죄의 제물의 효과에 대한 믿음이 구원의 필수 조건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를 동료들과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증언하고 계십니까? 내가 체험한 것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계십니다. 나는 믿지 않는 형제 자매나, 쉬고 있는 형제 자매들의 구원을 위하여 얼마나 애를 쓰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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