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진성사에 대한 교부들의 언급들

 

견진성사에 대한 교부들의 언급들


성령이 지니는 구세사적 입장에 대해 바실리오는,


“과거를 바라보면 성조들의 측복들, 법이라는 선물로써 주어진 도움, 구체적인 예로써, 예언들, 전쟁의 영광스런 승리, 의인들이 행한 기적들, 육을 취하여 오실 주님의 오심의 준비, 이 모든 것은 성령의 힘으로 이룩된 것이다. 그분은 주님의 강생때에 함께 계셨다. 도유로써 불가분이 동반자가 되셨을 때 성서에 씌여진 바와 같이, ‘그분 위에 성령이 내려오시고 머무시는 걸 보게 될 터이니 그분이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리고 그분이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도유하신 나자렛의 예수이다. 그 다음 그리스도의 모든 활동이 성령과 함께 전개되었다. 성령은 그분과 함께 계셨다. 악마에게 유혹을 당하실 때에도 (성서에 씌여진 바와 같이) ‘예수님은 유혹을 받으시기 위해 성령의 인도로 사막에 가셨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성령은 그분과 함께 계셨다. ‘내가 악마를 쫓아내는 것은 하느님의 성령을 통해서이다.’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후에도 성령은 그분을 떠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 인간을 새롭게 하고 상실했던 하느님의 입김으로 받은 은총을 되돌려줄 목적으로 당신 제자들의 얼굴에 입김을 불어 넣으셨다.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성령을 받아라!’”(Basilio, De Spiritu Sancto 16; SC 17, 180)




성 아타나시오는


“우리가 성령을 받도록 하기위해 말씀이 육신을 취하셨다.”(Athanasius, De incarnatione 8; PG 25,110)




레오 대교황은


“성령의 선물은 그리스도의 새 빠스카의 종결 내지는 구원사건 전체에 대한 확인이며, 새로운 오순절에 기원을 두게 되는 완성이다. 인간은 원초의 모습과 같이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참 모습을 갖춘다.”(Leone Magno, Sermo 75; De Pentec. 1.1; PL 54,400)


“가장 거룩하신 분의 능력과 마리아를 구세주의 어머니로 되게 하셨던 성령의 그림자는 이제 물로써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Leone Magno, Sermo 24,3 e 25,5; PL 54,206 e 211)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는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을 때 그분은 우리들 중의 한사람과 같이 성령을 받으셨다. 사실 그분은 성령을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전적으로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 인간 본래의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성령을 받으신 것이다.”(Cirillo Alessandrino, In Joann 5.2,1; PL 73,203)


“크게 부요한 거룩한 예언자들 안에는 성령의 비추임이 있었다. 이는 장래와 숨겨진 사실의 비젼으로 예언자들을 바라보아야 할 빛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 있어서 우리는 성령의 단 하나의 비추임만이 있다고 생각치 않으며 오히려 성령이 그들 안에 온전히(in persona) 거처하시며 머물고 계신다고 확신한다.”(Cirillo Alessandrino, In Joann 5.2; PG 73,757)




뗴르뚤리아노는


“세례를 통해 한처음의 인간의 모습을 되찾은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게 된다. 인간의 창조 때에 그분의 입김을 받았고, 그 이후 죄로 인해 상실했던 성령을 받는다. 세례의 물에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물에서 깨끗해져서, 성령을 받을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세례를 받은 후 성령은 성부께로부터 신자들에게 내려오신다. 주님 위에 비둘기 모양으로 오셨던 것 같이”(Tertulliano, De Baptismo 5,7; 6,1; SC 35,74,75,79)




치쁘리아노는


“하느님은 사실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의 모습을 만드신 후 성령의 입김을 불어넣으셨다. 세례에서 다시 태어나 죄짓기 이전의 모습을 회복한 사람만이 그 후 성령을 또 받게 된다.”(Cypriano, Epist. 74,7)




예루살렘의 치릴로는


“호칭기도 후에 행하는 크리스마 도유는 그리스도의 선물이며 당신의 동일한 신성의 현존을 위한 성령의 효과이다.”(Cirillio di Gerusalemme, Cathech. Myst. 3.3; SC 126,124)




남부 프랑스 Ries의 주교인 Fausto는


“성령이 세례때 이미 주어졌지만, 견진은 세례의 완성이다.”(PL 7,1119)


“성령은 세례때 무죄함을, 그후 견진에서 은총의 증진을 준다. 세례에서 다시 태어난 후 전투에 대비하기위해 정비를 갖추게 된다. 견진은 이 세상의 투쟁에 항거해야 할 모든 이를 무장시킨다.”


“견진은 영적 투쟁에 필요한 힘을 돋우어주는 은총의 증진을 주고”




11세기에 Magonza의 Rabano Moauro는


“성령은 세상의 군주와 권력 앞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두려움 없이 전할 용기를 주기위해 인간에게 내려오며 완전한 자유로 선교할 용기를 주기위해 인간에게 내려온다.”(Rabano Moauro, De Cleric Instit 30; PL 107,314)




성 토마스는


“견진을 말하자면, 인간이 완숙한 영적 연령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돕는 영적인 성숙이라고 말할수 있다. 견진은 은총의 충만함을 주는 성사이다.”(S. Th. Ⅲ. 72,5; 72,1. 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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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견진성사에 대한 교부들의 언급들

    성령이 지니는 구세사적 입장에 대해 바실리오는,

    “과거를 바라보면 성조들의 측복들, 법이라는 선물로써 주어진 도움, 구체적인 예로써, 예언들, 전쟁의 영광스런 승리, 의인들이 행한 기적들, 육을 취하여 오실 주님의 오심의 준비, 이 모든 것은 성령의 힘으로 이룩된 것이다. 그분은 주님의 강생때에 함께 계셨다. 도유로써 불가분이 동반자가 되셨을 때 성서에 씌여진 바와 같이, ‘그분 위에 성령이 내려오시고 머무시는 걸 보게 될 터이니 그분이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리고 그분이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도유하신 나자렛의 예수이다. 그 다음 그리스도의 모든 활동이 성령과 함께 전개되었다. 성령은 그분과 함께 계셨다. 악마에게 유혹을 당하실 때에도 (성서에 씌여진 바와 같이) ‘예수님은 유혹을 받으시기 위해 성령의 인도로 사막에 가셨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성령은 그분과 함께 계셨다. ‘내가 악마를 쫓아내는 것은 하느님의 성령을 통해서이다.’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후에도 성령은 그분을 떠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 인간을 새롭게 하고 상실했던 하느님의 입김으로 받은 은총을 되돌려줄 목적으로 당신 제자들의 얼굴에 입김을 불어 넣으셨다.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성령을 받아라!’”(Basilio, De Spiritu Sancto 16; SC 17, 180)


    성 아타나시오는

    “우리가 성령을 받도록 하기위해 말씀이 육신을 취하셨다.”(Athanasius, De incarnatione 8; PG 25,110)


    레오 대교황은

    “성령의 선물은 그리스도의 새 빠스카의 종결 내지는 구원사건 전체에 대한 확인이며, 새로운 오순절에 기원을 두게 되는 완성이다. 인간은 원초의 모습과 같이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참 모습을 갖춘다.”(Leone Magno, Sermo 75; De Pentec. 1.1; PL 54,400)

    “가장 거룩하신 분의 능력과 마리아를 구세주의 어머니로 되게 하셨던 성령의 그림자는 이제 물로써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Leone Magno, Sermo 24,3 e 25,5; PL 54,206 e 211)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는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을 때 그분은 우리들 중의 한사람과 같이 성령을 받으셨다. 사실 그분은 성령을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전적으로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 인간 본래의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성령을 받으신 것이다.”(Cirillo Alessandrino, In Joann 5.2,1; PL 73,203)

    “크게 부요한 거룩한 예언자들 안에는 성령의 비추임이 있었다. 이는 장래와 숨겨진 사실의 비젼으로 예언자들을 바라보아야 할 빛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 있어서 우리는 성령의 단 하나의 비추임만이 있다고 생각치 않으며 오히려 성령이 그들 안에 온전히(in persona) 거처하시며 머물고 계신다고 확신한다.”(Cirillo Alessandrino, In Joann 5.2; PG 73,757)


    뗴르뚤리아노는

    “세례를 통해 한처음의 인간의 모습을 되찾은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게 된다. 인간의 창조 때에 그분의 입김을 받았고, 그 이후 죄로 인해 상실했던 성령을 받는다. 세례의 물에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물에서 깨끗해져서, 성령을 받을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세례를 받은 후 성령은 성부께로부터 신자들에게 내려오신다. 주님 위에 비둘기 모양으로 오셨던 것 같이”(Tertulliano, De Baptismo 5,7; 6,1; SC 35,74,75,79)


    치쁘리아노는

    “하느님은 사실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의 모습을 만드신 후 성령의 입김을 불어넣으셨다. 세례에서 다시 태어나 죄짓기 이전의 모습을 회복한 사람만이 그 후 성령을 또 받게 된다.”(Cypriano, Epist. 74,7)


    예루살렘의 치릴로는

    “호칭기도 후에 행하는 크리스마 도유는 그리스도의 선물이며 당신의 동일한 신성의 현존을 위한 성령의 효과이다.”(Cirillio di Gerusalemme, Cathech. Myst. 3.3; SC 126,124)


    남부 프랑스 Ries의 주교인 Fausto는

    “성령이 세례때 이미 주어졌지만, 견진은 세례의 완성이다.”(PL 7,1119)

    “성령은 세례때 무죄함을, 그후 견진에서 은총의 증진을 준다. 세례에서 다시 태어난 후 전투에 대비하기위해 정비를 갖추게 된다. 견진은 이 세상의 투쟁에 항거해야 할 모든 이를 무장시킨다.”

    “견진은 영적 투쟁에 필요한 힘을 돋우어주는 은총의 증진을 주고”


    11세기에 Magonza의 Rabano Moauro는

    “성령은 세상의 군주와 권력 앞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두려움 없이 전할 용기를 주기위해 인간에게 내려오며 완전한 자유로 선교할 용기를 주기위해 인간에게 내려온다.”(Rabano Moauro, De Cleric Instit 30; PL 107,314)


    성 토마스는

    “견진을 말하자면, 인간이 완숙한 영적 연령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돕는 영적인 성숙이라고 말할수 있다. 견진은 은총의 충만함을 주는 성사이다.”(S. Th. Ⅲ. 72,5; 72,1. 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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