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사리아의 팜필루스-생애

 

24. 체사리아의 팜필루스




24.1. 생애


팜필루스(Pamphilus)는 열렬한 오리게네스 추종자였으며, 또한 교회사 분야에 대가(大家)인 에우세비우스의 스승이었다. 사실 에우세비우스는 스스로 ꡔ팜필루스의 아들ꡕ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그에게서 학문적으로나 영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다. 팜필루스에 관한 전기는 두 개가 있었는데, 첫째 전기는 팜필루스의 순교 후에 그의 스승이었던 삐에리우스가 쓴 것으로 상실되었고, 둘째 전기는 그의 제자 에우세비우스가 쓴 것으로서 역시 상실되었다. 그러나 에우세비우스가 쓴 ꡔ교회사ꡕ에 그에 관한 단편적인 내용이 전해 오고 있다. ꡔ그 당시 우리는 언변에 뛰어나고 학자로 생활하고 그리스도교 사제직의 영예에 오른 팜필루스라는 분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어떤 가문, 어느 지방의 출신이었는가?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이런 문제들을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저서에서 그의 생활의 요소들에 대해, 박해 동안 여러 형태의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견지했던 영적 투쟁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식했던 순교의 월계관에 대해 일일이 서술한 바있다. 이분은 참으로 우리 도시에서 가장 칭송받을 만한 분이었다ꡕ(교회사 7, 32, 25).


팜필루스는 베리투스(지금의 베이루트)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서 소년기의 교육을 받은 다음,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그곳의 교리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였다. 마침 이 교리학교에는 오리게네스의 제자였으며, 재능 면에서나 스승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ꡔ제2의 오리게네스ꡕ라 불리우던 삐에리우스가 281년부터 강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팜필루스는 오리게네스 신학을 심도있게 들을 수 있었고 이에 심취하였다. 그후 그는 빨레스티나의 체사리아에 와서 290년에 아가삐우스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고, 오리게네스가 세웠던 교리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체사리아 학파를 굳건히 하였다. 체사리아에는 오리게네스가 설립한 도서관이 있었는데, 팜필루스는 오리게네스의 수많은 저서들과 다른 교회저술가들의 저서들을 수집하였을 뿐만 아니라 손수 베껴씀으로써 도서관의 장서들을 풍부히 하였다. 이러한 그의 피나는 노력 덕택에 수많은 귀한 문헌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그는 막씨미우스 다이아 황제 박해 때인 307년 11월경에 투옥되어 많은 고문과 심문을 받은 다음 309년 2월 16일에 참수됨으로써 순교하였다. 에우세비우스는 팜필루스의 공적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ꡔ우리는 우리 시대의 순교자 팜필루스의 전기에서 이미 기록한 바있다. 거기서 우리는 팜필루스가 지녔던 하느님의 일에 대한 열정을 언급하면서, 그가 수집하였던 오리게네스와 다른 교회저술가들의 저서 목록들을 수록하였다. 이 저서 목록들 덕택에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우리에게까지 전해오는 오리게네스의 저서들을 매우 충실하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ꡕ(교회사 6, 32, 3). 교회는 그의 축일을 6월 1일에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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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사리아의 팜필루스-생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29. 체사리아의 팜필루스


    29.1. 생애

    팜필루스(Pamphilus)는 열렬한 오리게네스 추종자였으며, 또한 교회사 분야에 대가(大家)인 에우세비우스의 스승이었다. 사실 에우세비우스는 스스로 “팜필루스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그에게서 학문적으나 영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다. 팜필루스에 관한 전기는 두 개가 있었는데, 첫째 전기는 팜필루스의 순교 후에 그의 스승이었던 삐에리우스가 쓴 것으로 상실되었고, 둘째 전기는 그의 제자 에우세비우스가 쓴 것으로서 역시 상실되었다. 그러나 에우세비우스가 쓴 <교회사>에 그에 관한 단편적인 내용이 전해오고 있다. “그 당시 우리는 언변에 뛰어나고 학자로 생활하고 그리스도교의 사제직의 영예에 오른 팜필루스라는 분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어떤 가문, 어느 지방의 출신이었는가?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이런 문제들을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저서에서 그의 생활의 요소들에 대해, 그가 설립한 학교에 대해, 박해 동안 여러 형태의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견지했던 영적 투쟁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식했던 순교의 월계관에 대해 일일이 서술한 바 있다. 이분은 참으로 우리 도시에서 가장 칭송받을 만한 분이었다”(교회사 7,32,25).

    팜필루스는 베리투스(지금의 베이루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서 소년기의 교육을 받은 다음,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그곳의 교리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였다. 마침 이 교리학교에는 오리게네스의 제자였으며, 재능 면에서나 스승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제2의 오리게네스”라 불리우던 삐에리우스가 281년부터 강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팜필루스는 오리게네스 신학을 심도있게 들을 수 있었고 이에 심취하였다. 그후 그는 빨레스티나의 체사리아에 와서 290년에 아가삐우스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고, 오리게네스가 세웠던 교리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체사리아 학파를 굳건히 하였다. 체사리아에는 오리게네스가 설립한 도서관이 있었는데, 팜필루스는 오리게네스의 수많은 저서들과 다른 교회저술가들의 저서들을 수집하였을 뿐만 아니라 손수 베껴씀으로써 도서관의 장서들을 풍부히 하였다. 이러한 그의 피나는 노력 덕택에 수많은 귀한 문헌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그는 막씨미우스 다이아 황제 박해 때인 307년 11월경에 투옥되어 많은 고문과 심문을 받은 다음 309년 2월 16일에 참수됨으로써 순교하였다. 에우세비우스는 팜필루스의 공적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순교자 팜필루스의 전기에서 이미 기록한 바 있다. 거기서 우리는 팜필루스가 지녔던 하느님의 일에 대한 열정을 언급하면서, 그가 수집하였던 오리게네스와 다른 교회저술가들의 저서 목록들을 수록하였다. 이 저서 목록들 덕택에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우리에게까지 전해오는 오리게네스의 저서들을 매우 충실하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교회사 6,32,3). 교회는 그의 축일을 6월 1일에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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