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강림 대축일

1. 말씀읽기: 요한20,19-23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마태 28,16-20 ; 마르 16,14-18 ; 루카 24,36-49)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성령을 받아라.

오순절이 되어 주님의 제자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기도하며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골방에 숨어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내려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불길처럼 임하시어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가장 먼저 변화된 것은 바로 당당함입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나를 잡으러 올까도 걱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성령 강림 대축일은 교회의 생일이라고 합니다. 교회의 탄생일이라고 합니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사도들의 말이 모두 자기네 말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가장 큰 은사는 바로 굳건히 나의 신앙을 증거 할 수 있는 힘과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나도 굳건히 나의 신앙을 증거하며,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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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성령 강림 대축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령강림 대축일

    1. 말씀읽기: 요한20,19-23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마태 28,16-20 ; 마르 16,14-18 ; 루카 24,36-49)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성령을 받아라.

    오순절이 되어 주님의 제자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기도하며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골방에 숨어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내려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불길처럼 임하시어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가장 먼저 변화된 것은 바로 당당함입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나를 잡으러 올까도 걱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성령 강림 대축일은 교회의 생일이라고 합니다. 교회의 탄생일이라고 합니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사도들의 말이 모두 자기네 말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가장 큰 은사는 바로 굳건히 나의 신앙을 증거 할 수 있는 힘과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나도 굳건히 나의 신앙을 증거하며,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2. guest 님의 말:

    2.3. 제자들에게 용서의 권한을 주시는 예수님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용서의 권한을 주십니다. 제자들을 파견하신 이유는 세상 사람들을 구원에로 초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줌으로써 죄에서 벗어나 평화와 구원 안에서 살아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용서는 제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자들을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20,23)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특징은 주님의 용서를 전해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용서를 전하면서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이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누가 오른 뺨을 치면 왼뺨마저도 돌려 대 주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용서를 말씀하셨고, 용서를 보여주셨으며, 용서하시면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힘을 받아 용서하면서 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해 주고,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도 용서해 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이고, 성령 안에서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용서의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 내가 용서해 주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 죄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슬기와 통달함과 의견과 굳셈과 지식과 효경과 두려워함의 은사를 받은 신앙인들은 자신에게 잘못한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들을 용서해주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용서해 주실 수 있도록 청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성령께 힘을 청하는 것입니다. 내 힘만으로는 온전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둘째, 하느님을 공경하고,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슬기로운 사람들은 용서의 삶을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슬기로운 사람은 원수를 만들지 않고, 원수를 용서하려 하며, 원수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통달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잘못한 이의 잘못이 임을 알고 있지만 본인이 용서를 해 주지 않음도 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를 용서해 주는 것이 나 자신의 구원과 그의 구원에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구원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의견이 있기에 그는 용서를 선택하게 됩니다.

     

    셋째, 하느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용서의 삶을 살아가려고 할 때, 유혹자는 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 유혹자는 교묘하게 다가와 용서를 베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그는 그 유혹을 용감하게 물리치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굳세게(굳셈) 자신의 의견을 밀고 나갑니다. 그렇게 손해를 보더라도 용서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생명에 희망을 두고 있고,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리와 성경의 뜻을 잘 알아듣는 지식이 있기에 무엇이 주님의 뜻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에, 주님을 참 아버지로 모시는 그는 아버지께 온 마음으로 효성을 드리기 위해 굳은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용서의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를 잘 섬기고 공경”(효경)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기쁘게 용서의 손을 내 밀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용서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용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니 자연스럽게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넘쳐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향해 인내와 친절과 선행을 베풀고, 기도 안에서 진실과 온유와 절제의 삶을 살아가게 되니 그 삶은 주님께 큰 영광이 됩니다.

    천상의 기쁨을 미리 맛보며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삶은 자연스럽게 용서의 삶과 이해와 배려의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러한 삶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신앙생활의 모범이 됩니다. 그리고 그 삶은 하느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이름은 거룩히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 평화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얻으신 것입니다. 그 평화를 주시며 제자들을 파견하셨습니다. 그리고 파견 받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숨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성령 안에서 살아 가야만이 용서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용서의 삶이 나 자신도 구하고, 상대방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성령의 이끄심에 응답할 수 없고, 주님께서 주신 평화도 간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 대축일을 맞이하여 성령께 온전히 나를 내어 드리는 삶을 통해 주님께서 주신 평화를 온 세상에 전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봅시다. 성령께 의탁하며 더 많이 용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요?

     

    성령의 은사 중에서 내가 성령께 받은 은사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은사를 어떻게 열매 맺게 하고 있습니까? 또한 내 주변의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청하는 은사들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은사들은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성장시킵니까?

     

    4. 실천사항

     

    5. 말씀으로 기도하기

     

  3. guest 님의 말:

    2.2. 성령을 받아라(요한20,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힘을 주셨습니다. 그 힘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20,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는 모습은 마치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어 내시고 숨을 불어 넣으시어 생명을 주시는 것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제 성령강림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굳게 닫고 숨어 있던 모습이 아니라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면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성령께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아가기에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하느님을 공경하고,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들에 관심을 갖는 슬기로운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둘째,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잘 알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통달하여 그대로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변화됩니다.

    셋째,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선과 악을 구분하여 구원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의견이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떻게 구원에로 나아갈 것인지를 분별하고, 선택한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넷째,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성령께서 주시는 신앙의 힘으로 죄악과 악마를 거슬러 용감히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순교까지도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신앙을 굳세게(굳셈) 증거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다섯째,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교리와 성경의 뜻을 잘 알아듣는 지식이 있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 믿어야 하는 것과 믿지 말아야 하는 것을 분별하는 능력이 생겨납니다.

    여섯째,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온 마음으로 신뢰하며, 하느님께 효성을 다하는(효경)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일곱째,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합니다. 이 두려움은 공포와는 다릅니다. 하느님을 알기에 하느님을 경외하고, 경외감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느님을 두려하는 것이 바로 지혜의 시초이니 하느님을 경외(공경하면서 두려워 함)하는 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다듬기 위해 힘을 쏟게 됩니다. 이렇듯 두려워함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께 큰 기쁨과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이렇게 슬기와 통달함과 의견과 굳셈과 지식과 효경과 두려워함의 은사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스럽게 성령의 이끄심에 의해 증거 하는 삶,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 온전히 의탁하려 노력하면서 받은 은사들이 더욱 풍요롭게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성령께서 나를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내려오셨을 때 제자들이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한 것은 그들이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있었기에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는 두려움을 없애주고, 두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은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 주고, 그 준비된 그릇에 성령께서는 넘치도록 은사를 담아 주십니다.

  4. guest 님의 말:

    2.1. 평화가 너희와 함께

    주간 첫날 저녁(안식일 다음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요한20,19). 하지만 제자들의 마음은 평화보다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아 놓고 숨어 있는 상황에 갑자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 가득찬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구멍 난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 유령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손과 발, 옆구리가 구멍이 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는 평화를 말씀하십니다. 그 평화를 주시기 위해 수난과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하루 종일 시장에서 일한 돈으로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떡을 사 주시고, 먹는 것만 바라보아도 흐뭇해하시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굶은 아이가 엄마는 안 먹어?”하면 엄마는 많이 먹었단다.”하시며 아이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주시는 떡으로 배부르게 되고, 어머니의 땀 냄새 나는 무릎에서 기뻐하며, 편히 쉬는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머니의 모습은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그 어머니가 주시는 떡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닮았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바뀝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습니다(요한20,20). 이제 제자들은 두려움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로 가득 차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쁨에 가득 찬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20,21)

    이제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의 신분은 파견 받은 주님의 제자로 바뀌게 됩니다. 이제 파견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간직하고, 그 평화를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기쁨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일을 하면서 불평과 불만 속에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일을 하면 기쁨이 솟아나야 하고, 예수님의 일을 하면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온통 근심 걱정과 불만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두려움을 떨쳐 버리려 해도 밀려오는 두려움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높은 건물 위로 올라가 바닥이 투명한 곳에서 아래를 보면 누구나 두려움이 몰려오게 됩니다. 안전한 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떨립니다. 그런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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