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청양(靑陽) 고을에서 1743년(英祖 19)에 태어난 이도기 바오로는 어려서부터 덕행이 있어 칭송을 받았다. 비록 그가 세속의 글은 배우지 않았을지라도 하느님의 사랑과 천주교의 덕행을 익히고 실천했던 때문이었다. 그는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을 모두 외교인을 입교시키는 데 사용하였다. 이러한 그의 열성은 신자들을 박해하려는 자들의 주의를 끌게 되어 대여섯 번이나 이사할수 밖에 없었는데 그가 피해가는 곳마다 얼마 안 있어 천주교회가 형성되곤 하였다.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던 바오로는 마침내 정산(定山) 고을(현, 충남 청양군 정산면)의 어떤 옹기점에서 자리잡고 조그만 장사로 살아갔다. 그런데 그 곳 주위 사람들은 모두가 외교인이었으므로 그를 몹시 학대하였다. 그렁에도 불구하고 바오로는 그들에게 하느님을 알리는 데에 전심하였고, 이 일이 크게 성공하여 잠깐 사이에 온 마을이 입교하게 되었다.
당시 공주의 충청감사 한용화(韓用和)는 도내의 모든 수령들에게 명령하여 천주교인들을 없애버리도록 하였다. 이러한 감사의 명령이 내렸을 때 바오로의 근처에 살던 金이라는 외교인이 그를 천주교인들의 두목으로 고발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의 아내는 겁이 나서 그에게 도망하라고 권하였으나, 그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또 그를 신임하고 있는 신입교우들을 저버릴 수 없다고 하여 아내의 말을 거절하였다. 이제 그는 천주교 서적과 성물을 감추고 체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707년(正祖 21) 6월 8일, 그가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장한 포졸들이 나타나 그가 집에 있는가를 물었다. 바오로는 즉시 그들을 집안으로 맞아 들인 다음, 그를 찾아온 까닭을 물었다. 그들은 말하길 ꡒ우리는 도망친 관노(官奴)를 찾으러 나온 관비이다. 네가 책력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으로 우리의 범인 색출에 다소간 도움을 얻으려고 그것을 보러 왔다ꡓ고 하였다. 당시 조선에서 쓰는 중국 책력(冊曆)에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한 미신의 말이 들어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었던 것이다. 바오로는 ꡒ책력이 있긴 합니다만 거기에는 절기(節氣)의 바뀜만이 적혀 있습니다ꡓ라고 대답하며 책력을 가져다 주었다. 포졸들의 두목은 그것을 자기에게 읽어 달라고 하였다. 그가 한문지 읽지 못한다고 하자, 포졸 두목은 ꡒ그러면 너는 천주교의 책밖에는 읽을 줄 모른단 말이냐?ꡓ라고 힐문한 후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0여명의 포졸들은 그를 묶고 나서 집을 뒤져 십자고상과 몇 권의 책을 찾아냈다. 그들은 바오로를 근처의 숲 속으로 끌고 가 매질을 하여 신부가 숨어 있는 곳과 함께 생활하던 천주교인들의 거처를 자백시키려고 하였으나 헛일이었다.
밤이 되자 그들은 바오로와 함께 체포된 다른 교우들을 초라한 주막으로 끌고 갔다. 주막 주인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들을 괴롭게 하는 결박을 늦추어 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읍내에 이르러 그와 동료들은 또 다시 쇠사슬로 결박되었다.
관청에 이르자 관장은 십자고상과 책들을 살펴보고 나서 잡혀온 사람들을 출두시키고 우선 바오로에게 물었다. ꡒ너는 어디 사느냐?ꡓ ꡒ처음에는 청양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정산에서 삽니다.ꡓ ꡒ누가 너를 가르쳤으며, 너의 제자는 누구냐?ꡓ ꡒ저는 선생도 없고 제자도 없습니다.ꡓ ꡒ너는 죽어 마땅한 놈이다. 선생도 없고 제자도 없다면 이 책들과 이 그림은 어디서 났다는 말이냐?ꡓ 바오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이내 손발을 쇠사슬로 결박당하고 다시 옥으로 끌려 갔다. 그의 목에는 큰 칼이 채워져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였다.
이튿날 관장은 그를 장거리로 끌고 가서 군중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도록 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바오로는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이 ꡒ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니, 저희는 그런 모욕을 달게 받겠습니다ꡓ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관장은 ꡒ공자나 맹자의 도나 불도는 바른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것을 배우기를 거절하고 어디가서 거짓 도를 찾아다가 따르며, 또 어찌하여 그것으로 온 나라를 휩쓸려 하느냐? 너희 무리는 국왕도 부모도 몰라서 국왕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그 도를 따르니 이는 크나큰 질서 문란이며, 따라서 너희는 죽어 마땅한 놈들이다ꡓ라고 질책하여 조금이라도 그의 마음을 꺾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천주교가 옳은 종교임을 밝히면서, ꡒ저는 무식한 탓으로 선비들이 배우는 공자와 맹자의 도를 알지 못하며, 불도는 중들에게만 관계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교리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천주 한 분만이 세상에 계셨습니다. 지금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은 그 분입니다. 창조 후에 부부와 가족이 있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임금과 신하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부처, 공자, 맹자, 임금과 신하 등은 천지창조 후에 생겨난 것입니다. 천주는 하늘과 땅의 참 임금이시고, 만물을 주재(主宰)하시고 보존하시는 분이시며, 부모께 대한 효도와 임금께 대한 충성의 근원이십니다. 부모께 대한 효도와 임금께 대한 충성은 십계(十誡)의 제4계에 명령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부모도 임금도 모른다고 우리를 부당하게 책망하십니까?ꡓ라고 설명하였다. ꡒ그렇다면 임금님과 조정과 관장들이 그것을 알 것이며 그들에게서 백성이 배울 것인데, 반대로 그들은 너희 종교가 조선에 불란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너희 무리들은 순종하기를 거절하며 너희 선생들을 바로대지도 않으니 죽어 마땅하다.ꡓ ꡒ천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것은 자기 영혼에 영원한 영광을 보존하는 것입니다ꡓ라고 하면서 바오로는 천주를 위하여 순교할 뜻을 명백히 하였다.
그러자 포졸들은 바오로와 배교하지 않은 교우 한 명을 관아에서 끌어 내어 뺨을 치고 발로 차며, 침을 뱉고 쓰고 있는 칼을 온 몸의 무게로 찍어 누르는 등 수없는 모욕을 가하였다. 마침내 포졸들은 그들의 얼굴에 회칠을 하고, 머리에는 글을 써서 달고 등에는 커다란 북을 지웠다. 관장은 말을 타고 포졸들은 채찍질로 그들을 장에 까지 뛰어 가게 하였다. 장으로 가는 동안 포졸들의 외치는 소리와 울리는 북소리에 끌려 꽤 많은 군중이 연도에 모여 들었다. 그들이 장에 이르자 관장은, ꡒ이 악한들은 천주교인이요, 이들의 죄는 반역죄이다. 이놈들은 임금을 섬기지 않고 부모도 공경치 않는 자들이다. 장을 한 바퀴 돌은 다음에 이놈들을 죽일 것이다ꡓ라고 말한 다음 곤장 열 대를 치게 하며 배교하라고 명하였다. 형리들은 여러개의 몽둥이 끝으로 바오로의 옆구리를 찌르며 배교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용감한 바오로는 ꡒ만번 죽어도 저는 배교할 수 없습니다ꡓ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백성들은 그의 굳센 태도에 감탄하며 ꡒ저 사람은 분명 배교하지 않을 것이다ꡓ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였다. 열두시간 이상이나 형벌을 가한 뒤 그들을 다시 옥으로 데려왔을 때는 저녁 일곱시가 되었다. 포졸들은 그에게 만일 관장에게 순종치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마음을 다시 흔들어 보려고 하였지만, 바오로는 그것을 잘 알고 있노라고만 대답하였다.
며칠 후 옥리가 와서 관장이 큰 잔치를 베풀 것인데 배교하면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다고 유혹하였다. 바오로는 절대로 이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약해진 동료 교우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 다음날 잔치를 하면서 관장은 바오로를 불러내어 배교를 강요하고 형벌을 가하기도 하였다. 함께 형벌을 받던 동료 교우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배교한다는 나약한 마음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렇게도 많은 고문을 당하였음에도 바오로는 침착하였고 계속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가을이 될 때까지 바오로는 이러한 신문을 당하고 또 반복하여 곤장을 맞았다. 그를 보는 사람들은 항상 ꡒ저 사람은 매를 맞아 죽을 것이다ꡓ하고 말하였다. 이럴 때면 바오로는 매를 맞아 죽거나 곤장을 맞아 죽거나 모든 것이 천주의 명령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천주의 찬미를 빌면서 끊임없이 순교의 영광을 기원하였다.
바오로는 자주 굶주림을 당하였고 옷이 해져 추위로 고통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의 아내는 돈을 약간 모아 술과 고기를 그에게 사다 주었다. 그는 처음에 그것을 거절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ꡒ성모님이 나를 십자가 위에 두셨으니 내가 그것을 먹으면 부당하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고통밖에 받지 않으셨으며, 맛있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잡수셨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오. 나도 십자가 위에 있으니 예수님과 같이 해야 되오.ꡓ 그러나 그는 아내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 음식을 받을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그는 끊임없이 천주를 생각하였고 그로부터 많은 위안을 받았다. 하루는 ꡒ주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ꡓ라는 천사의 말씀이 그에게 들려와 그는 기쁨이 자기 마음에 넘쳐 흐름을 깨달았다. 겨울의 혹한 중에 그는 상처로 인하여 매우 고통을 받았고, 성탄날에는 무자비한 신문을 당하였으므로 몸이 불덩이처럼 끓었다. 이때 그는 사람들을 향하여 ꡒ보시오, 천주께서는 특별한 은혜를 내리시어 내 마음이 식지 않도록 매로써 덥게 하여 주십니다ꡓ하고 말하였다.
1798년 새해의 첫날 이후 그는 세번 신문을 당하였다. 세번째에 가서 관장은 그에게 말하였다. ꡒ네가 배교한다면 네게 쌀을 주고, 네 상처를 치료하여 주고, 풍헌(風憲 : 조선시대 面․里의 일을 맡았던 鄕所職의 하나)자리도 하나 마련해 줄 것이다.ꡓ 이에 바오로가 ꡒ정산 고을을 전부 주신다해도 저는 천주를 결코 배반하지 못하겠습니다ꡓ라고 대답하자, 관장은 ꡒ너는 천주교인들이 부모를 공경한다고 주장하지만, 네 자식들은 네가 옥에 갇힌 뒤로 한번도 보러 온 일이 없으니 그러한 일이 또 어디 있느냐?ꡓ라고 덧붙여 반문하였다. 바오로는 ꡒ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바로 효도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제 자식놈들에게 나를 보러 오는 것이 해가 될 것이니 오지 말라고 여러번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금했기 때문에 그들이 오지 않은 것입니다ꡓ라고 대답하였다.
5월에 이르러서는 포졸들이 문을 별로 지키지 않고 그에게 도망가라고 권유하는 것 같았으나, 그는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누가 도망가라고 권하면 그는 ꡒ관장의 명령으로 내가 옥에 갇혔으니 그의 명령 없이는 여기서 나갈 수 없오ꡓ라고 대답하였다. 천주교인들이 그를 보러 와서 포졸들의 행동은 관장이 시켜서 한것이 분명하니 도망가는 것을 꺼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는 잠시 생각한 후, ꡒ만일 우리가 마귀의 함정에 빠져 들어가면 우리의 영혼과 함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공로를 잃게 될 것이오. 내집은 하도 가난해서 내가 옥에 있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고, 여기 있는 것이 차라리 편하오. 식구들이 나를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이 내게는 괴롭소ꡓ라고 말한 다음 아내에게도 다음과 같이 부탁하였다. ꡒ나를 위해 기도하는 모든 사람이 나의 세속생활을 위한 것이라면 그들의 기도를 그만두어야 하오. 그러나 내 영혼과 내 영생을 위하여 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공로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에게 끊임없이 기도하도록 부탁해 주시오. 또한 나는 내 가족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여 주기를 바라오. 내 음식은 당신 힘 자라는 대로 하루나 이틀에 한 사발씩만 갖다 주고,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걱정은 하지 마오. 앞으로는 어느 누구든지 무슨 말을 내게 전해 달라고 하더라도, 만약에 내 마음을 흔들리게 할 성질의 말이라면 내게 전하지 마시오. 내 마음이 약해질지도 모르니까 말이오. ꡓ 그날부터 그는 아내의 면회를 거절하고 멀리서 몇 마디 말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며칠이 지난 6월 3일에 그의 아내는 남편의 상태를 알아보고 혹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가를 물어보려고 왔다. 이때 바오로는 ꡒ나는 고통도 없고 배도 고프지 않소. 나는 매를 몇 대나 맞았는지도 모르오. 이달 초열흘까지 먹을 식량만 있으면 충분하겠오ꡓ라고 말하였다. 그가 더 이상 긴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하늘이 그에게 머지 않아 순교하리라는 것을 알려 주었음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10월 아침 포졸들이 와서 사형집행일이 되었다고 알려주자 바오로는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 하였다. 그 날은 장터에서 그에게 형벌을 가한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는 작은 칼을 쓰고 형구를 든 포졸들에게 둘러싸여 형장으로 나아갔고, 그 뒤에는 관장이 따랐다. 관장은 말에서 내려 그를 고문하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형리들은 그를 엎어 놓고 머리카락을 형틀에 잡아맨 후 두 팔을 큰 돌에 묶어 놓았다. 그가 질식할 정도까지 칼을 죄고 망나니 여럿이 삼모장으로 칠 때는 매번 상처가 났다. 관장은 그에게 배교하기를 원치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기진맥진하여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남은 힘을 다하여 배교할 수 없다고 소리쳤다. 그의 입술은 새카맣게 타 있었고, 생명의 입김이 겨우 붙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몇분 후에 그는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ꡒ성모 마리아여, 당신께 하례하나이다ꡓ라고 말한 다음 의식을 잃었다.
그러는 동안 외교인들은 ꡒ저놈 때문에 가뭄이 이렇게 심하고 우리가 굶어 죽게 되었으니 저놈을 발로 차서 끝장을 내야겠다ꡓ고 말하면서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의 아내가 그를 도우려고 가까이 갔으나 군중들은 바오로를 때리고 발로 밟고 하여 그는 실신하고 말았다. 바오로가 다시 의식을 회복하자 관장은 포졸들에게 그를 치도록 하였다. 그의 다리는 부러져 뼈가 드러나고 골수가 땅에 까지 흘러내렸다. 결박을 풀어 주었을 때 바오로는 땅에 누운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포졸들은 그의 칼을 벗기지 않은 채 옥으로 쳐넣고 문을 단단히 잠갔다. 관장은 그에게 물 한모금도 주지 못하도록 엄명하였다.
이틀후인 12일 저녁때 쯤 관장은 포졸들에게, ꡒ옥에 가서 그 천주교인을 끌어내어 얼굴을 보고 맥을 짚어 보라. 그래서 아직 살아 있으면 아주 죽여버리고 오라ꡓ고 명령하였다. 포졸들은 그대로 집행하여 돌과 몽둥이로 그를 때렸지만 그의 숨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관장은 성이 나서 다시 형벌을 가하도록 명령하였으며, 이에 포졸들은 다시 옥으로 가서 더없이 잔혹한 형벌을 가하였다. 그의 갈비뼈는 부러지고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시체는 이미 사람의 형상을 갖추지 않았다.
이튿날 시체는 관장의 명령으로 땅에 묻혔다. 교우들은 7, 8일 후에 그의 시체를 찾아다가 그들 동네에 예를 갖추어 장례지냈다. 이 때 바오로의 나이는 56세였으며, 그가 순교하여 천상의 자리에 오른 날은 천주강생 1798년 6월 12일이었다. 훗날 한 옥사장이 그의 부인에게 ꡒ그의 죽음을 슬퍼하지 마시오. 12잉ㄹ 밤에 나는 큰 광채가 시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오ꡓ라고 말하였다 한다.

충청도 청양(靑陽) 고을에서 1743년(英祖 19)에 태어난 이도기 바오로는 어려서부터 덕행이 있어 칭송을 받았다. 비록 그가 세속의 글은 배우지 않았을지라도 하느님의 사랑과 천주교의 덕행을 익히고 실천했던 때문이었다. 그는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을 모두 외교인을 입교시키는 데 사용하였다. 이러한 그의 열성은 신자들을 박해하려는 자들의 주의를 끌게 되어 대여섯 번이나 이사할수 밖에 없었는데 그가 피해가는 곳마다 얼마 안 있어 천주교회가 형성되곤 하였다.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던 바오로는 마침내 정산(定山) 고을(현, 충남 청양군 정산면)의 어떤 옹기점에서 자리잡고 조그만 장사로 살아갔다. 그런데 그 곳 주위 사람들은 모두가 외교인이었으므로 그를 몹시 학대하였다. 그렁에도 불구하고 바오로는 그들에게 하느님을 알리는 데에 전심하였고, 이 일이 크게 성공하여 잠깐 사이에 온 마을이 입교하게 되었다.
당시 공주의 충청감사 한용화(韓用和)는 도내의 모든 수령들에게 명령하여 천주교인들을 없애버리도록 하였다. 이러한 감사의 명령이 내렸을 때 바오로의 근처에 살던 金이라는 외교인이 그를 천주교인들의 두목으로 고발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의 아내는 겁이 나서 그에게 도망하라고 권하였으나, 그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또 그를 신임하고 있는 신입교우들을 저버릴 수 없다고 하여 아내의 말을 거절하였다. 이제 그는 천주교 서적과 성물을 감추고 체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707년(正祖 21) 6월 8일, 그가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장한 포졸들이 나타나 그가 집에 있는가를 물었다. 바오로는 즉시 그들을 집안으로 맞아 들인 다음, 그를 찾아온 까닭을 물었다. 그들은 말하길 ꡒ우리는 도망친 관노(官奴)를 찾으러 나온 관비이다. 네가 책력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으로 우리의 범인 색출에 다소간 도움을 얻으려고 그것을 보러 왔다ꡓ고 하였다. 당시 조선에서 쓰는 중국 책력(冊曆)에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한 미신의 말이 들어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었던 것이다. 바오로는 ꡒ책력이 있긴 합니다만 거기에는 절기(節氣)의 바뀜만이 적혀 있습니다ꡓ라고 대답하며 책력을 가져다 주었다. 포졸들의 두목은 그것을 자기에게 읽어 달라고 하였다. 그가 한문지 읽지 못한다고 하자, 포졸 두목은 ꡒ그러면 너는 천주교의 책밖에는 읽을 줄 모른단 말이냐?ꡓ라고 힐문한 후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0여명의 포졸들은 그를 묶고 나서 집을 뒤져 십자고상과 몇 권의 책을 찾아냈다. 그들은 바오로를 근처의 숲 속으로 끌고 가 매질을 하여 신부가 숨어 있는 곳과 함께 생활하던 천주교인들의 거처를 자백시키려고 하였으나 헛일이었다.
밤이 되자 그들은 바오로와 함께 체포된 다른 교우들을 초라한 주막으로 끌고 갔다. 주막 주인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들을 괴롭게 하는 결박을 늦추어 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읍내에 이르러 그와 동료들은 또 다시 쇠사슬로 결박되었다.
관청에 이르자 관장은 십자고상과 책들을 살펴보고 나서 잡혀온 사람들을 출두시키고 우선 바오로에게 물었다. ꡒ너는 어디 사느냐?ꡓ ꡒ처음에는 청양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정산에서 삽니다.ꡓ ꡒ누가 너를 가르쳤으며, 너의 제자는 누구냐?ꡓ ꡒ저는 선생도 없고 제자도 없습니다.ꡓ ꡒ너는 죽어 마땅한 놈이다. 선생도 없고 제자도 없다면 이 책들과 이 그림은 어디서 났다는 말이냐?ꡓ 바오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이내 손발을 쇠사슬로 결박당하고 다시 옥으로 끌려 갔다. 그의 목에는 큰 칼이 채워져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였다.
이튿날 관장은 그를 장거리로 끌고 가서 군중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도록 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바오로는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이 ꡒ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니, 저희는 그런 모욕을 달게 받겠습니다ꡓ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관장은 ꡒ공자나 맹자의 도나 불도는 바른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것을 배우기를 거절하고 어디가서 거짓 도를 찾아다가 따르며, 또 어찌하여 그것으로 온 나라를 휩쓸려 하느냐? 너희 무리는 국왕도 부모도 몰라서 국왕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그 도를 따르니 이는 크나큰 질서 문란이며, 따라서 너희는 죽어 마땅한 놈들이다ꡓ라고 질책하여 조금이라도 그의 마음을 꺾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천주교가 옳은 종교임을 밝히면서, ꡒ저는 무식한 탓으로 선비들이 배우는 공자와 맹자의 도를 알지 못하며, 불도는 중들에게만 관계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교리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천주 한 분만이 세상에 계셨습니다. 지금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은 그 분입니다. 창조 후에 부부와 가족이 있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임금과 신하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부처, 공자, 맹자, 임금과 신하 등은 천지창조 후에 생겨난 것입니다. 천주는 하늘과 땅의 참 임금이시고, 만물을 주재(主宰)하시고 보존하시는 분이시며, 부모께 대한 효도와 임금께 대한 충성의 근원이십니다. 부모께 대한 효도와 임금께 대한 충성은 십계(十誡)의 제4계에 명령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부모도 임금도 모른다고 우리를 부당하게 책망하십니까?ꡓ라고 설명하였다. ꡒ그렇다면 임금님과 조정과 관장들이 그것을 알 것이며 그들에게서 백성이 배울 것인데, 반대로 그들은 너희 종교가 조선에 불란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너희 무리들은 순종하기를 거절하며 너희 선생들을 바로대지도 않으니 죽어 마땅하다.ꡓ ꡒ천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것은 자기 영혼에 영원한 영광을 보존하는 것입니다ꡓ라고 하면서 바오로는 천주를 위하여 순교할 뜻을 명백히 하였다.
그러자 포졸들은 바오로와 배교하지 않은 교우 한 명을 관아에서 끌어 내어 뺨을 치고 발로 차며, 침을 뱉고 쓰고 있는 칼을 온 몸의 무게로 찍어 누르는 등 수없는 모욕을 가하였다. 마침내 포졸들은 그들의 얼굴에 회칠을 하고, 머리에는 글을 써서 달고 등에는 커다란 북을 지웠다. 관장은 말을 타고 포졸들은 채찍질로 그들을 장에 까지 뛰어 가게 하였다. 장으로 가는 동안 포졸들의 외치는 소리와 울리는 북소리에 끌려 꽤 많은 군중이 연도에 모여 들었다. 그들이 장에 이르자 관장은, ꡒ이 악한들은 천주교인이요, 이들의 죄는 반역죄이다. 이놈들은 임금을 섬기지 않고 부모도 공경치 않는 자들이다. 장을 한 바퀴 돌은 다음에 이놈들을 죽일 것이다ꡓ라고 말한 다음 곤장 열 대를 치게 하며 배교하라고 명하였다. 형리들은 여러개의 몽둥이 끝으로 바오로의 옆구리를 찌르며 배교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용감한 바오로는 ꡒ만번 죽어도 저는 배교할 수 없습니다ꡓ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백성들은 그의 굳센 태도에 감탄하며 ꡒ저 사람은 분명 배교하지 않을 것이다ꡓ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였다. 열두시간 이상이나 형벌을 가한 뒤 그들을 다시 옥으로 데려왔을 때는 저녁 일곱시가 되었다. 포졸들은 그에게 만일 관장에게 순종치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마음을 다시 흔들어 보려고 하였지만, 바오로는 그것을 잘 알고 있노라고만 대답하였다.
며칠 후 옥리가 와서 관장이 큰 잔치를 베풀 것인데 배교하면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다고 유혹하였다. 바오로는 절대로 이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약해진 동료 교우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 다음날 잔치를 하면서 관장은 바오로를 불러내어 배교를 강요하고 형벌을 가하기도 하였다. 함께 형벌을 받던 동료 교우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배교한다는 나약한 마음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렇게도 많은 고문을 당하였음에도 바오로는 침착하였고 계속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가을이 될 때까지 바오로는 이러한 신문을 당하고 또 반복하여 곤장을 맞았다. 그를 보는 사람들은 항상 ꡒ저 사람은 매를 맞아 죽을 것이다ꡓ하고 말하였다. 이럴 때면 바오로는 매를 맞아 죽거나 곤장을 맞아 죽거나 모든 것이 천주의 명령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천주의 찬미를 빌면서 끊임없이 순교의 영광을 기원하였다.
바오로는 자주 굶주림을 당하였고 옷이 해져 추위로 고통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의 아내는 돈을 약간 모아 술과 고기를 그에게 사다 주었다. 그는 처음에 그것을 거절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ꡒ성모님이 나를 십자가 위에 두셨으니 내가 그것을 먹으면 부당하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고통밖에 받지 않으셨으며, 맛있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잡수셨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오. 나도 십자가 위에 있으니 예수님과 같이 해야 되오.ꡓ 그러나 그는 아내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 음식을 받을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그는 끊임없이 천주를 생각하였고 그로부터 많은 위안을 받았다. 하루는 ꡒ주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ꡓ라는 천사의 말씀이 그에게 들려와 그는 기쁨이 자기 마음에 넘쳐 흐름을 깨달았다. 겨울의 혹한 중에 그는 상처로 인하여 매우 고통을 받았고, 성탄날에는 무자비한 신문을 당하였으므로 몸이 불덩이처럼 끓었다. 이때 그는 사람들을 향하여 ꡒ보시오, 천주께서는 특별한 은혜를 내리시어 내 마음이 식지 않도록 매로써 덥게 하여 주십니다ꡓ하고 말하였다.
1798년 새해의 첫날 이후 그는 세번 신문을 당하였다. 세번째에 가서 관장은 그에게 말하였다. ꡒ네가 배교한다면 네게 쌀을 주고, 네 상처를 치료하여 주고, 풍헌(風憲 : 조선시대 面․里의 일을 맡았던 鄕所職의 하나)자리도 하나 마련해 줄 것이다.ꡓ 이에 바오로가 ꡒ정산 고을을 전부 주신다해도 저는 천주를 결코 배반하지 못하겠습니다ꡓ라고 대답하자, 관장은 ꡒ너는 천주교인들이 부모를 공경한다고 주장하지만, 네 자식들은 네가 옥에 갇힌 뒤로 한번도 보러 온 일이 없으니 그러한 일이 또 어디 있느냐?ꡓ라고 덧붙여 반문하였다. 바오로는 ꡒ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바로 효도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제 자식놈들에게 나를 보러 오는 것이 해가 될 것이니 오지 말라고 여러번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금했기 때문에 그들이 오지 않은 것입니다ꡓ라고 대답하였다.
5월에 이르러서는 포졸들이 문을 별로 지키지 않고 그에게 도망가라고 권유하는 것 같았으나, 그는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누가 도망가라고 권하면 그는 ꡒ관장의 명령으로 내가 옥에 갇혔으니 그의 명령 없이는 여기서 나갈 수 없오ꡓ라고 대답하였다. 천주교인들이 그를 보러 와서 포졸들의 행동은 관장이 시켜서 한것이 분명하니 도망가는 것을 꺼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는 잠시 생각한 후, ꡒ만일 우리가 마귀의 함정에 빠져 들어가면 우리의 영혼과 함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공로를 잃게 될 것이오. 내집은 하도 가난해서 내가 옥에 있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고, 여기 있는 것이 차라리 편하오. 식구들이 나를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이 내게는 괴롭소ꡓ라고 말한 다음 아내에게도 다음과 같이 부탁하였다. ꡒ나를 위해 기도하는 모든 사람이 나의 세속생활을 위한 것이라면 그들의 기도를 그만두어야 하오. 그러나 내 영혼과 내 영생을 위하여 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공로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에게 끊임없이 기도하도록 부탁해 주시오. 또한 나는 내 가족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여 주기를 바라오. 내 음식은 당신 힘 자라는 대로 하루나 이틀에 한 사발씩만 갖다 주고,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걱정은 하지 마오. 앞으로는 어느 누구든지 무슨 말을 내게 전해 달라고 하더라도, 만약에 내 마음을 흔들리게 할 성질의 말이라면 내게 전하지 마시오. 내 마음이 약해질지도 모르니까 말이오. ꡓ 그날부터 그는 아내의 면회를 거절하고 멀리서 몇 마디 말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며칠이 지난 6월 3일에 그의 아내는 남편의 상태를 알아보고 혹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가를 물어보려고 왔다. 이때 바오로는 ꡒ나는 고통도 없고 배도 고프지 않소. 나는 매를 몇 대나 맞았는지도 모르오. 이달 초열흘까지 먹을 식량만 있으면 충분하겠오ꡓ라고 말하였다. 그가 더 이상 긴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하늘이 그에게 머지 않아 순교하리라는 것을 알려 주었음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10월 아침 포졸들이 와서 사형집행일이 되었다고 알려주자 바오로는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 하였다. 그 날은 장터에서 그에게 형벌을 가한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는 작은 칼을 쓰고 형구를 든 포졸들에게 둘러싸여 형장으로 나아갔고, 그 뒤에는 관장이 따랐다. 관장은 말에서 내려 그를 고문하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형리들은 그를 엎어 놓고 머리카락을 형틀에 잡아맨 후 두 팔을 큰 돌에 묶어 놓았다. 그가 질식할 정도까지 칼을 죄고 망나니 여럿이 삼모장으로 칠 때는 매번 상처가 났다. 관장은 그에게 배교하기를 원치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기진맥진하여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남은 힘을 다하여 배교할 수 없다고 소리쳤다. 그의 입술은 새카맣게 타 있었고, 생명의 입김이 겨우 붙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몇분 후에 그는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ꡒ성모 마리아여, 당신께 하례하나이다ꡓ라고 말한 다음 의식을 잃었다.
그러는 동안 외교인들은 ꡒ저놈 때문에 가뭄이 이렇게 심하고 우리가 굶어 죽게 되었으니 저놈을 발로 차서 끝장을 내야겠다ꡓ고 말하면서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의 아내가 그를 도우려고 가까이 갔으나 군중들은 바오로를 때리고 발로 밟고 하여 그는 실신하고 말았다. 바오로가 다시 의식을 회복하자 관장은 포졸들에게 그를 치도록 하였다. 그의 다리는 부러져 뼈가 드러나고 골수가 땅에 까지 흘러내렸다. 결박을 풀어 주었을 때 바오로는 땅에 누운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포졸들은 그의 칼을 벗기지 않은 채 옥으로 쳐넣고 문을 단단히 잠갔다. 관장은 그에게 물 한모금도 주지 못하도록 엄명하였다.
이틀후인 12일 저녁때 쯤 관장은 포졸들에게, ꡒ옥에 가서 그 천주교인을 끌어내어 얼굴을 보고 맥을 짚어 보라. 그래서 아직 살아 있으면 아주 죽여버리고 오라ꡓ고 명령하였다. 포졸들은 그대로 집행하여 돌과 몽둥이로 그를 때렸지만 그의 숨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관장은 성이 나서 다시 형벌을 가하도록 명령하였으며, 이에 포졸들은 다시 옥으로 가서 더없이 잔혹한 형벌을 가하였다. 그의 갈비뼈는 부러지고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시체는 이미 사람의 형상을 갖추지 않았다.
이튿날 시체는 관장의 명령으로 땅에 묻혔다. 교우들은 7, 8일 후에 그의 시체를 찾아다가 그들 동네에 예를 갖추어 장례지냈다. 이 때 바오로의 나이는 56세였으며, 그가 순교하여 천상의 자리에 오른 날은 천주강생 1798년 6월 12일이었다. 훗날 한 옥사장이 그의 부인에게 ꡒ그의 죽음을 슬퍼하지 마시오. 12잉ㄹ 밤에 나는 큰 광채가 시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오ꡓ라고 말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