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호

 

  정종호는 경기도 여주에 있는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록이 미비하여 그의 교명이나 어렸을 때의 행적 등에 관하여는 알 수가 없다. 1800년(正祖 24) 3월에 그는 절친한 교우 이중배(李中培) 마르띠노와 원경도(元景道) 요한 등을 자신의 집에 맞아들여 가족들과 함께 부활축일을 지내게 되었다. 그들은 길가에서 큰소리로 기도를 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기쁜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다. 이러한 신심의 행사와 즐거운 잔치로 그 날을 지내고 있을 때, 외교인의 밀고로 이 사실을 안 고을의 수령이 포졸들을 보내어 그들을 체포하도록 하였다. 정종호와 동료들은 즉시 체포되어 관아로 압송당하였다.


  정종호의 일행이 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관장은 그들을 향하여 ꡒ공범자들을 밀고하고 천주를 배반하라ꡓ고 명령하였다. 이에 그들이 명백하게 배교와 밀고를 거절하자 관장은 화가 나서 주리를 틀고 주장(朱杖)을 가하도록 하였으나, 이중배 마르띠노의 용기와 격려의 힘을 얻어 그들은 모두 그 혹독한 형벌을 참아 내었다. 옥중에 6개월 이상을 갇혀 있으면서 정종호는 동료들과 함께 한달에 두 번씩 관장 앞에 출두하여 신문을 받고 점점 더 심한 형벌을 당해야만 하였다. 10월 경에 이르러서는 감사로부터 다시 신문과 형벌을 받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감사는 처음에는 배교의 말 한 마디만 하면 자유의 몸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하여 부드럽게 유혹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시도가 모두 쓸데없음을 알고는 형벌을 가혹하게 가한후 결안(結案)을 작성하여 서명하도록 하였다.


  그러던 중 정종호와 교우들은 감사의 권한에서 벗어나 서울로 압송되기에 이르렀다. 이미 지방 관아로부터 여러 차례 보고를 들은 금부의 관리들은 곧 결안을 확정하고, 지방민들에게 위협을 가할 목적으로 그들 모두를 고향 여주로 다시 이송하여 사형을 집행하도록 하였다. 정종호의 결안에는 그가 천주교라는 사악한 종교에 빠져 제사를 지내지 않음으로써 인륜을 패멸케 하고 인심을 혼란케 하였다고 적혀 있었다. 이리하여 그는 동료들과 함께 여주의 성 밖에서 참수(斬首) 되었던 것이니, 이 때가 1801년 4월 25일(陰, 3월 13일)로 그의 나이 5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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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호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정종호는 경기도 여주에 있는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록이 미비하여 그의 교명이나 어렸을 때의 행적 등에 관하여는 알 수가 없다. 1800년(正祖 24) 3월에 그는 절친한 교우 이중배(李中培) 마르띠노와 원경도(元景道) 요한 등을 자신의 집에 맞아들여 가족들과 함께 부활축일을 지내게 되었다. 그들은 길가에서 큰소리로 기도를 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기쁜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다. 이러한 신심의 행사와 즐거운 잔치로 그 날을 지내고 있을 때, 외교인의 밀고로 이 사실을 안 고을의 수령이 포졸들을 보내어 그들을 체포하도록 하였다. 정종호와 동료들은 즉시 체포되어 관아로 압송당하였다.

      정종호의 일행이 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관장은 그들을 향하여 ꡒ공범자들을 밀고하고 천주를 배반하라ꡓ고 명령하였다. 이에 그들이 명백하게 배교와 밀고를 거절하자 관장은 화가 나서 주리를 틀고 주장(朱杖)을 가하도록 하였으나, 이중배 마르띠노의 용기와 격려의 힘을 얻어 그들은 모두 그 혹독한 형벌을 참아 내었다. 옥중에 6개월 이상을 갇혀 있으면서 정종호는 동료들과 함께 한달에 두 번씩 관장 앞에 출두하여 신문을 받고 점점 더 심한 형벌을 당해야만 하였다. 10월 경에 이르러서는 감사로부터 다시 신문과 형벌을 받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감사는 처음에는 배교의 말 한 마디만 하면 자유의 몸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하여 부드럽게 유혹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시도가 모두 쓸데없음을 알고는 형벌을 가혹하게 가한후 결안(結案)을 작성하여 서명하도록 하였다.

      그러던 중 정종호와 교우들은 감사의 권한에서 벗어나 서울로 압송되기에 이르렀다. 이미 지방 관아로부터 여러 차례 보고를 들은 금부의 관리들은 곧 결안을 확정하고, 지방민들에게 위협을 가할 목적으로 그들 모두를 고향 여주로 다시 이송하여 사형을 집행하도록 하였다. 정종호의 결안에는 그가 천주교라는 사악한 종교에 빠져 제사를 지내지 않음으로써 인륜을 패멸케 하고 인심을 혼란케 하였다고 적혀 있었다. 이리하여 그는 동료들과 함께 여주의 성 밖에서 참수(斬首) 되었던 것이니, 이 때가 1801년 4월 25일(陰, 3월 13일)로 그의 나이 5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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