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숙

 



  유한숙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한 문헌은 보이지 않는다. 이름을 「사겸」으로도 불리었던 그녀는 경기도 양근(楊根, 現 楊平) 지방의 동막골(東幕洞)이라는 곳에 살던 향반(鄕班)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행적이나 입교과정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녀는 입교한 후 한때는 친척인 동정녀 이(李) 아가다의 수정생활(守貞生活)을 돕기 위하여 외교인들 몰래 그녀를 서울의 윤점혜(尹占惠) 아가다에게 데려다 준 일이 있었다. 관찬기록(官撰記錄)에서는 그녀가 경기도 감사였던 이익운(李益運)으로부터 신문과 형벌을 받고도 신앙심을 잃지 아니하여 사형의 결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 결안에서는 유한숙이 천주교를 열성적으로 신봉하고 당시의 윤리를 지키지 아니하여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유한숙은 고향 양근의 길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참수를 당하였으니, 때는 1801년 4월 25일(陰, 3월 13일)이었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ata2020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유한숙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유한숙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한 문헌은 보이지 않는다. 이름을 「사겸」으로도 불리었던 그녀는 경기도 양근(楊根, 現 楊平) 지방의 동막골(東幕洞)이라는 곳에 살던 향반(鄕班)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행적이나 입교과정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녀는 입교한 후 한때는 친척인 동정녀 이(李) 아가다의 수정생활(守貞生活)을 돕기 위하여 외교인들 몰래 그녀를 서울의 윤점혜(尹占惠) 아가다에게 데려다 준 일이 있었다. 관찬기록(官撰記錄)에서는 그녀가 경기도 감사였던 이익운(李益運)으로부터 신문과 형벌을 받고도 신앙심을 잃지 아니하여 사형의 결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 결안에서는 유한숙이 천주교를 열성적으로 신봉하고 당시의 윤리를 지키지 아니하여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유한숙은 고향 양근의 길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참수를 당하였으니, 때는 1801년 4월 25일(陰, 3월 13일)이었다.

guest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