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문학- 天主歌辭(2)

 

1.1. 佛敎歌辭


조선후기에 천주교,불교,도교,유교 동학 등에서 일반 대중에게 친숙한 가사의 형식을 빌어 자신의 교리를 설명하고 포교하는 목적으로 종교가사들을 창작하였다. 천주가사는 특히 이미 널리 성행하고 있던 불교가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불교가사를 개략적으로 살펴 보고 그 관계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1.1.1. 朝鮮 後期 佛敎歌辭


불교는 위로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고 표방한다.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수행해서 얻은 바를 이론적인 저술로 나타내거나 한시로 읊었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 형태가 필요했다. 따라서 불교가사는 불교의 교화를 널리 펴자는 노래로 시작되었고 일반 신도를 끌어들이는 방편으로 가사를 사용하였다. 즉 일반 신도가 공식적인 절차를 떠나서도 쉽게 애창하며 불교에 귀의해서 염불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는 쉬운 노래가 요구되었고 그 조건을 가사는 잘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가사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문자화된 것은 1704년의 ꡔ普勸念佛文ꡕ의 부록에 몇 편이 실린 것이 처음이다. 여기 실린 가사는 ꡔ서왕가ꡕ,ꡔ낙도가ꡕ,ꡔ회심곡ꡕ 이다. 이후 호를 枕肱이라고 한 懸辯(1616-1684)의 작품은 작자와 출처가 분명한 불교가사이다. 현변은 자기 문집인 ꡔ침굉집ꡕ에서 「歸山曲」, 「太平曲」, 「靑鶴洞歌」라는 가사를 시조 1수와 함께 남겼다.


불교 교단에서 일반 신도를 교화하는 가사를 계속 필요로 했기에 ꡔ奠設因果曲ꡕ같은 대작이 마련되었다. ꡔ전설인과곡ꡕ이라는 책은 1795년(정조 19년)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으며, 그보다 한해 전에 智螢이라는 승려가 지었다고 한다. 지형은 어떤 인물인지 밝혀지지 않지만, 작품이 불교가사를 대표할 수 있는 짜임새와 내용을 갖추고 있으니 교단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지형의 작품은 이밖에도 「參禪曲」, 「修善曲」, 「勸善曲」 등이 있다. 이후로 「送女僧歌」, 「僧答歌」, 「再送女僧歌」, 「女僧再答歌」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은 불교가사라기보다 불교가사에다 빗대서 지은 애정가사이니 성격이 아주 다르다고 하겠으나 그것대로 관심을 가질 만하다.1)




1.1.2. 天主歌辭와의 關係


불교가사와 천주가사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은 불교가사가 종교가사의 가능성을 넓게 열어 주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처럼 불교가사는 1795년에 이미 불교의 교리를 막라하는 대작을 발간하였고 애정가사의 성격을 지닌 가사까지 등장할만큼 나름대로 굳건한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불교가사의 유포는 천주가사를 창작하는데 고무적인 역할을 하였다. “불교가사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적지 않은 자극을 받고 불교가사 또한 천주가사와의 경쟁을 의식했다”2)는 조동일의 주장은 1860년대에 崔濟愚(1824-1864)가 龍潭遺詞3)를 발표하자 기성종교들이 가사에 새삼스러운 관심을 보였다는 점과 비교해 볼 때 더욱 개연성을 가진다. 또한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와 지형의 ꡔ전설인과곡ꡕ을 비교해볼 때 일련의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4) 예를 들면, 교리상 필요로 하는 내용을 모두 갖춘 가사 한벌을 만들고자 한 점, 천당과 지옥의 묘사에 있어 그 용어의 차이는 있지만 즐거움과 괴로움을 감각적으로 구체화하는 방식5) 등에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


오쥬예수 법되샤 문셔를 뎡하시고


디옥문을 크게열어 죄인을 드리겟네


뭇마귀 원고되여 각죄악 다고고


호슈텬신 원쳑되여 량심속인 문셔되니


답말 아조업고 도망길 젼혀업네


                         (심판가 中)6)




일부 발췌해 본 「사심판가」에서 볼 수 있듯이 염라대왕과 재판관이 정좌하고 죄인을 잡아들인 광경을 천주교식으로 바꾼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런 면에서 불교가사와 천주가사는 교리는 아주 달라도 표현과 전개는 서로 견주어 볼 필요가 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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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문학- 天主歌辭(2)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1.1. 佛敎歌辭

    조선후기에 천주교,불교,도교,유교 동학 등에서 일반 대중에게 친숙한 가사의 형식을 빌어 자신의 교리를 설명하고 포교하는 목적으로 종교가사들을 창작하였다. 천주가사는 특히 이미 널리 성행하고 있던 불교가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불교가사를 개략적으로 살펴 보고 그 관계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1.1.1. 朝鮮 後期 佛敎歌辭

    불교는 위로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고 표방한다.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수행해서 얻은 바를 이론적인 저술로 나타내거나 한시로 읊었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 형태가 필요했다. 따라서 불교가사는 불교의 교화를 널리 펴자는 노래로 시작되었고 일반 신도를 끌어들이는 방편으로 가사를 사용하였다. 즉 일반 신도가 공식적인 절차를 떠나서도 쉽게 애창하며 불교에 귀의해서 염불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는 쉬운 노래가 요구되었고 그 조건을 가사는 잘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가사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문자화된 것은 1704년의 ꡔ普勸念佛文ꡕ의 부록에 몇 편이 실린 것이 처음이다. 여기 실린 가사는 ꡔ서왕가ꡕ,ꡔ낙도가ꡕ,ꡔ회심곡ꡕ 이다. 이후 호를 枕肱이라고 한 懸辯(1616-1684)의 작품은 작자와 출처가 분명한 불교가사이다. 현변은 자기 문집인 ꡔ침굉집ꡕ에서 「歸山曲」, 「太平曲」, 「靑鶴洞歌」라는 가사를 시조 1수와 함께 남겼다.

    불교 교단에서 일반 신도를 교화하는 가사를 계속 필요로 했기에 ꡔ奠設因果曲ꡕ같은 대작이 마련되었다. ꡔ전설인과곡ꡕ이라는 책은 1795년(정조 19년)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으며, 그보다 한해 전에 智螢이라는 승려가 지었다고 한다. 지형은 어떤 인물인지 밝혀지지 않지만, 작품이 불교가사를 대표할 수 있는 짜임새와 내용을 갖추고 있으니 교단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지형의 작품은 이밖에도 「參禪曲」, 「修善曲」, 「勸善曲」 등이 있다. 이후로 「送女僧歌」, 「僧答歌」, 「再送女僧歌」, 「女僧再答歌」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은 불교가사라기보다 불교가사에다 빗대서 지은 애정가사이니 성격이 아주 다르다고 하겠으나 그것대로 관심을 가질 만하다.1)


    1.1.2. 天主歌辭와의 關係

    불교가사와 천주가사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은 불교가사가 종교가사의 가능성을 넓게 열어 주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처럼 불교가사는 1795년에 이미 불교의 교리를 막라하는 대작을 발간하였고 애정가사의 성격을 지닌 가사까지 등장할만큼 나름대로 굳건한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불교가사의 유포는 천주가사를 창작하는데 고무적인 역할을 하였다. “불교가사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적지 않은 자극을 받고 불교가사 또한 천주가사와의 경쟁을 의식했다”2)는 조동일의 주장은 1860년대에 崔濟愚(1824-1864)가 龍潭遺詞3)를 발표하자 기성종교들이 가사에 새삼스러운 관심을 보였다는 점과 비교해 볼 때 더욱 개연성을 가진다. 또한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와 지형의 ꡔ전설인과곡ꡕ을 비교해볼 때 일련의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4) 예를 들면, 교리상 필요로 하는 내용을 모두 갖춘 가사 한벌을 만들고자 한 점, 천당과 지옥의 묘사에 있어 그 용어의 차이는 있지만 즐거움과 괴로움을 감각적으로 구체화하는 방식5) 등에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

    오쥬예수 법되샤 문셔를 뎡하시고

    디옥문을 크게열어 죄인을 드리겟네

    뭇마귀 원고되여 각죄악 다고고

    호슈텬신 원쳑되여 량심속인 문셔되니

    답말 아조업고 도망길 젼혀업네

                             (심판가 中)6)


    일부 발췌해 본 「사심판가」에서 볼 수 있듯이 염라대왕과 재판관이 정좌하고 죄인을 잡아들인 광경을 천주교식으로 바꾼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런 면에서 불교가사와 천주가사는 교리는 아주 달라도 표현과 전개는 서로 견주어 볼 필요가 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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