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문학- 天主歌辭(5)

 

 천주가사의 저술목적과 사상


1.1.1. 천주가사의 저술 목적


앞서 단편적으로 살펴보았듯이 천주가사는 호교적 목적과 신자 대중을 교화하고 신심을 함양하려는 목적에서 작사되었다. 천주가사의 본래 목적은 문학적 의미나 음악적 의미가 아니었던 것이다. 천주가사의 의식한 대상은 민중이었으므로 가사의 언어는 지배층의 독점 언어였던 한자가 아니라 민중의 글인 한글이었다. 가사의 형식 또한 조선 후기 대중가사의 형식인 4·4조로 되어 있다. 민중을 대상으로 한 것은 복음의 근본 정신에서 당연한 것이었고 민중들은 천주교를 민중교회의 성격으로 수용하였었다.1)


특히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를 살펴볼 때 이것은 더욱 뚜렷해진다. 최양업 신부가 저술한 동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가 귀국해서 포교활동을 했던 시기는 대박해가 지난 哲宗朝로, 정부로부터 박해가 약간 완화된 상황이었으나 이 때의 교우들의 내적 사정은 매우 황막했었는데, 그 이유는 이전 박해 때 대부분 교회 지도자들이나 중요한 일을 맡았던 회장들이 순교함으로써 교리에 대한 교우들의 교육이 미흡했던 관계도 있었지만 실상 교우촌에 있어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어떻게 교리 교육을 시키는가가 문제였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우들이 피난과 유랑생활과 생활의 궁핍 등으로 도저히 초기에 비해서 교리나 성경에 대하여 혹은 신자로서의 종교생활에서 알아야 되는 기본적 교리 지식이나 의식이 무식해졌으므로, 이와 같은 일반 신자들의 신심생활을 위해서는 대단히 쉽고도 진지하게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함과,아울러 자연히 심리적으로 노래를 불러서 즐겁게 되고 그들의 물질적인 비참함을 잊으며 마음을 위로 향하여 종교적인 信樂을 누리는 것을 도와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뿐만 아니라,교우들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관계로 그들이 일 년에 한 번씩이나 아니면 수 년만에 한 번씩 성직자들을 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가사들은 한번 익혀서 성직자 부재 시에도 교우촌의 공동 집회에서 회장을 통하여 전례를 할 때 교리 교육과 아울러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중심적인 天主讚美에 대한 의식을 일으키게 하기 위함이다.2)




1.1.2. 天主歌辭의 思想- 解寃思想


천주가사의 내용은 진부하리만치 내세 중심적이고 천주중심적이다. 이 두사상은 한덩어리가 되어 신도들의 땀과 고뇌의 눈물을 위로하는 힘이었다. 천주교는 이 땅에 들어와서 한국인과 문화의 解寃을 위한 굿을 하였다. 그리하여 삶의 흥을 불지르고 짓눌린 삶에 신바람을 일으켰다. 천주교의 전례는 생소한 외래품의 감정이 없었다. 천주교의 구원은 한국의 解寃文化와 어울린 것이다.3)




1.1.2.1. 人間 尊嚴性과 平等性


조선 사회는 유교적 사회로서 철저한 신분계급의 사회였다. 그리하여 사람은 태어나면서 이미 자신의 신분과 역할 범위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천주교는 “령혼업 사잇나 만물즁에 귀사 텬쥬잇고 령혼잇네 (중략) 령혼부모 누구신고 유일무이 텬쥬시라 령혼나 귀즁다 유시무죵 텬신다”4)(향주삼덕가 中 신덕가)라 하여 영혼이 있으며 그 영혼의 존귀함이 천신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민중들에게 새로운 생명이 태동하는 소리였고, 그렇게 감격에 벅찬 민중의 가슴은 탄성을 누를 길이 없었다. 이러한 영혼의 재발견과 인간존엄에의 자각은 자연스럽게 천주 앞의 모든 사람은 형제적 유대 관계를 지닌다는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의식구조는, 비록 봉건사회의 구조 질서를 해체하여 평등사회를 실현하는데는 한계가 있었으나 민중에게 인간 평등 사상을 의식화하여 근대 지향적 동기를 자극한 것은 사실이다. 이 안에서 새로이 인간의 가치에 대한 존엄성, 인간 평등, 남녀 평등 등의 실학사상과의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5)




1.1.2.2. 死後觀


천주가사에는 여기저기 “각고난 어렵자너 위쥬치명 리로다(향주삼덕가 中신덕가)”나 “진심견망 열면 위쥬치명 쉬오러라”6)(향주삼덕가 중 애덕가) 등의 순교에의 열망이나 “텬당으로 가이다 우리 벗님 가이다 텬당본향 가이다”7)(텬당가) 등의 천국에의 갈망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천주가사는 인간 조건을 사는 인간, 박해에 쫓기는 신도들이 死線을 넘으며 부르던 노래요 이승의 한을 영원한 천당으로 푸는 해원의 노래인 것이다. 천당을 그리워하는 꿈은 민중들에게 생소한 것은 아니었다. 천주가사는 이러한 천당과 천주의 이해를 일차적으로 주변 문화의 경험에서 차용하고 있다. 사향가 등에서 천당을 本鄕으로 표현한다든지 천당에 대한 표현의 일부를 불교나 도교의 極樂 내지 武陵桃源의 표현에서 빌려온다든지 하는 것은 민중들에게 더 친근감있게 천당과 천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라 할 것이다.


사후의 내세 문제는 영혼과 영혼불멸에 관련된 문제였다. 그러나 민중들에게는 영혼불멸의 내세관이 생소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주가사의 내세관에 큰 영향을 준 ꡔ사말론ꡕ8)은 죽음이 삶의 끝장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출발임을 확인하게 하였다. 민중의 희망은 여기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억눌리고 빼앗기며 기어서 사는 饑民들은 ‘그 功값과 그 죄값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을 내리는 천주의 심판에 억울하게 살아온 생애의 한을 풀 희망을 갖게 되었다.


죄가 海溢하는 세상이지만 천주가 있는 곳에는 解寃의 길이 있었다. 신도들의 생활양식은 성사(Sacramentum)이었다. 천주가사에는 철성사가 정리되어 있다. 그만큼 신도들은 성사를 통하여 출생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해원의 삶을 체험하고 있었다.9)




1.1.2.3. 現世觀


천주가사의 본향은 현세가 아니었다. 현세는 逆旅, 浮游, 風塵같은 세계이다. 또한 초목과 미물들의 고향이요, 초로와 같고, 조약돌에서 튀어나오는 불똥 등 잠시적이고 덧없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들은 허무주의의 부정적인 태도 때문이 아니다. 더 높은 세계, 더 큰 가치를 향하여 사는 사람들의 의식이었다. 오히려 현세는 천당을 준비하는 일회적인 장소인 까닭에 더 없이 소중한 세상이다. 천당에 대한 갈망과 집착은 어떤 역경에서도 삶을 긍정적으로 희망적으로 살게 한 원동력이었다. 순교는 끝장나는 죽음의 절망에서까지 미래의 희망을 더 가깝고 분명하게 보며 죽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증거였다. 그래서 현실의 노예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천주가사는 물질을 죄악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여 구름타고 공기 마시며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쉬운 物慾이 인간을 물질의 노예로 만들고 非理와 非情에 빠지고 마는 현실을 직시한 때문이다. 재물은 사랑의 체온을 전달하는 표현이었다. 가난한 이웃에게 베푸는 愛矜施舍는 가진자의 施蕙가 아니라 천주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보답이었다. 따라서 주는 자의 우월함이나 받는 자의 비굴함이 없는 사랑의 교환이었다.


戒名俊秀는 천주께 받은 사랑에 대한 보답이요 감사의 행동이었다. 사랑은 사랑으로 갚아야 제격이었다. 예수의 치명이 죽기까지 나를 사랑한 증거였으므로 치명자의 죽음은 나 역시 죽기까지 님을 사랑한다는 同態報答이었다.10)




1.1.2.4. 共同體 意識


한국의 전통적인 공동체는 크게 나누어 혈연공동체와 지역 공동체로 나뉘어 진다. 그러나 천주교는 신유박해 이후 이 땅에 신앙을 중심으로 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천주교 신도들의 離鄕현상이 시작되면서 신앙을 보존하고 전파할 기회를 가지며 保命하기 위하여 신자들의 교우촌이 생긴 것이다.


신도들의 생활양식은 공동체 정신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었다. 생계의 수단까지 신앙과 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방법을 떠나지 않았다. 옹기를 굽는 생활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옹기 가마는 교우들이 숨어서 공동으로 기도를 드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것이 한국적 까다콤바였던 것이다. 많은 일손이 필요한 담배 농사는 교우들이 공동으로 작업하여 살아가기에 적합한 농사였다. 紙筆墨 장수는 생계 수단만이 아니었다. 지필묵을 구하기 어려운 곳에서 사는 신도들이 성경과 교리서를 筆寫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또한 옹기와 지필묵으로 행상을 하면서 흩어져 있는 교우들끼리 ‘서로 힘이 되기 위하여 자주 연락하는 방법’으로, 세태와 교회 사정을 교환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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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천주가사의 저술목적과 사상

    1.1.1. 천주가사의 저술 목적

    앞서 단편적으로 살펴보았듯이 천주가사는 호교적 목적과 신자 대중을 교화하고 신심을 함양하려는 목적에서 작사되었다. 천주가사의 본래 목적은 문학적 의미나 음악적 의미가 아니었던 것이다. 천주가사의 의식한 대상은 민중이었으므로 가사의 언어는 지배층의 독점 언어였던 한자가 아니라 민중의 글인 한글이었다. 가사의 형식 또한 조선 후기 대중가사의 형식인 4·4조로 되어 있다. 민중을 대상으로 한 것은 복음의 근본 정신에서 당연한 것이었고 민중들은 천주교를 민중교회의 성격으로 수용하였었다.1)

    특히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를 살펴볼 때 이것은 더욱 뚜렷해진다. 최양업 신부가 저술한 동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가 귀국해서 포교활동을 했던 시기는 대박해가 지난 哲宗朝로, 정부로부터 박해가 약간 완화된 상황이었으나 이 때의 교우들의 내적 사정은 매우 황막했었는데, 그 이유는 이전 박해 때 대부분 교회 지도자들이나 중요한 일을 맡았던 회장들이 순교함으로써 교리에 대한 교우들의 교육이 미흡했던 관계도 있었지만 실상 교우촌에 있어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어떻게 교리 교육을 시키는가가 문제였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우들이 피난과 유랑생활과 생활의 궁핍 등으로 도저히 초기에 비해서 교리나 성경에 대하여 혹은 신자로서의 종교생활에서 알아야 되는 기본적 교리 지식이나 의식이 무식해졌으므로, 이와 같은 일반 신자들의 신심생활을 위해서는 대단히 쉽고도 진지하게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함과,아울러 자연히 심리적으로 노래를 불러서 즐겁게 되고 그들의 물질적인 비참함을 잊으며 마음을 위로 향하여 종교적인 信樂을 누리는 것을 도와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뿐만 아니라,교우들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관계로 그들이 일 년에 한 번씩이나 아니면 수 년만에 한 번씩 성직자들을 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가사들은 한번 익혀서 성직자 부재 시에도 교우촌의 공동 집회에서 회장을 통하여 전례를 할 때 교리 교육과 아울러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중심적인 天主讚美에 대한 의식을 일으키게 하기 위함이다.2)


    1.1.2. 天主歌辭의 思想- 解寃思想

    천주가사의 내용은 진부하리만치 내세 중심적이고 천주중심적이다. 이 두사상은 한덩어리가 되어 신도들의 땀과 고뇌의 눈물을 위로하는 힘이었다. 천주교는 이 땅에 들어와서 한국인과 문화의 解寃을 위한 굿을 하였다. 그리하여 삶의 흥을 불지르고 짓눌린 삶에 신바람을 일으켰다. 천주교의 전례는 생소한 외래품의 감정이 없었다. 천주교의 구원은 한국의 解寃文化와 어울린 것이다.3)


    1.1.2.1. 人間 尊嚴性과 平等性

    조선 사회는 유교적 사회로서 철저한 신분계급의 사회였다. 그리하여 사람은 태어나면서 이미 자신의 신분과 역할 범위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천주교는 “령혼업 사잇나 만물즁에 귀사 텬쥬잇고 령혼잇네 (중략) 령혼부모 누구신고 유일무이 텬쥬시라 령혼나 귀즁다 유시무죵 텬신다”4)(향주삼덕가 中 신덕가)라 하여 영혼이 있으며 그 영혼의 존귀함이 천신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민중들에게 새로운 생명이 태동하는 소리였고, 그렇게 감격에 벅찬 민중의 가슴은 탄성을 누를 길이 없었다. 이러한 영혼의 재발견과 인간존엄에의 자각은 자연스럽게 천주 앞의 모든 사람은 형제적 유대 관계를 지닌다는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의식구조는, 비록 봉건사회의 구조 질서를 해체하여 평등사회를 실현하는데는 한계가 있었으나 민중에게 인간 평등 사상을 의식화하여 근대 지향적 동기를 자극한 것은 사실이다. 이 안에서 새로이 인간의 가치에 대한 존엄성, 인간 평등, 남녀 평등 등의 실학사상과의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5)


    1.1.2.2. 死後觀

    천주가사에는 여기저기 “각고난 어렵자너 위쥬치명 리로다(향주삼덕가 中신덕가)”나 “진심견망 열면 위쥬치명 쉬오러라”6)(향주삼덕가 중 애덕가) 등의 순교에의 열망이나 “텬당으로 가이다 우리 벗님 가이다 텬당본향 가이다”7)(텬당가) 등의 천국에의 갈망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천주가사는 인간 조건을 사는 인간, 박해에 쫓기는 신도들이 死線을 넘으며 부르던 노래요 이승의 한을 영원한 천당으로 푸는 해원의 노래인 것이다. 천당을 그리워하는 꿈은 민중들에게 생소한 것은 아니었다. 천주가사는 이러한 천당과 천주의 이해를 일차적으로 주변 문화의 경험에서 차용하고 있다. 사향가 등에서 천당을 本鄕으로 표현한다든지 천당에 대한 표현의 일부를 불교나 도교의 極樂 내지 武陵桃源의 표현에서 빌려온다든지 하는 것은 민중들에게 더 친근감있게 천당과 천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라 할 것이다.

    사후의 내세 문제는 영혼과 영혼불멸에 관련된 문제였다. 그러나 민중들에게는 영혼불멸의 내세관이 생소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주가사의 내세관에 큰 영향을 준 ꡔ사말론ꡕ8)은 죽음이 삶의 끝장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출발임을 확인하게 하였다. 민중의 희망은 여기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억눌리고 빼앗기며 기어서 사는 饑民들은 ‘그 功값과 그 죄값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을 내리는 천주의 심판에 억울하게 살아온 생애의 한을 풀 희망을 갖게 되었다.

    죄가 海溢하는 세상이지만 천주가 있는 곳에는 解寃의 길이 있었다. 신도들의 생활양식은 성사(Sacramentum)이었다. 천주가사에는 철성사가 정리되어 있다. 그만큼 신도들은 성사를 통하여 출생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해원의 삶을 체험하고 있었다.9)


    1.1.2.3. 現世觀

    천주가사의 본향은 현세가 아니었다. 현세는 逆旅, 浮游, 風塵같은 세계이다. 또한 초목과 미물들의 고향이요, 초로와 같고, 조약돌에서 튀어나오는 불똥 등 잠시적이고 덧없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들은 허무주의의 부정적인 태도 때문이 아니다. 더 높은 세계, 더 큰 가치를 향하여 사는 사람들의 의식이었다. 오히려 현세는 천당을 준비하는 일회적인 장소인 까닭에 더 없이 소중한 세상이다. 천당에 대한 갈망과 집착은 어떤 역경에서도 삶을 긍정적으로 희망적으로 살게 한 원동력이었다. 순교는 끝장나는 죽음의 절망에서까지 미래의 희망을 더 가깝고 분명하게 보며 죽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증거였다. 그래서 현실의 노예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천주가사는 물질을 죄악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여 구름타고 공기 마시며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쉬운 物慾이 인간을 물질의 노예로 만들고 非理와 非情에 빠지고 마는 현실을 직시한 때문이다. 재물은 사랑의 체온을 전달하는 표현이었다. 가난한 이웃에게 베푸는 愛矜施舍는 가진자의 施蕙가 아니라 천주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보답이었다. 따라서 주는 자의 우월함이나 받는 자의 비굴함이 없는 사랑의 교환이었다.

    戒名俊秀는 천주께 받은 사랑에 대한 보답이요 감사의 행동이었다. 사랑은 사랑으로 갚아야 제격이었다. 예수의 치명이 죽기까지 나를 사랑한 증거였으므로 치명자의 죽음은 나 역시 죽기까지 님을 사랑한다는 同態報答이었다.10)


    1.1.2.4. 共同體 意識

    한국의 전통적인 공동체는 크게 나누어 혈연공동체와 지역 공동체로 나뉘어 진다. 그러나 천주교는 신유박해 이후 이 땅에 신앙을 중심으로 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천주교 신도들의 離鄕현상이 시작되면서 신앙을 보존하고 전파할 기회를 가지며 保命하기 위하여 신자들의 교우촌이 생긴 것이다.

    신도들의 생활양식은 공동체 정신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었다. 생계의 수단까지 신앙과 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방법을 떠나지 않았다. 옹기를 굽는 생활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옹기 가마는 교우들이 숨어서 공동으로 기도를 드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것이 한국적 까다콤바였던 것이다. 많은 일손이 필요한 담배 농사는 교우들이 공동으로 작업하여 살아가기에 적합한 농사였다. 紙筆墨 장수는 생계 수단만이 아니었다. 지필묵을 구하기 어려운 곳에서 사는 신도들이 성경과 교리서를 筆寫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또한 옹기와 지필묵으로 행상을 하면서 흩어져 있는 교우들끼리 ‘서로 힘이 되기 위하여 자주 연락하는 방법’으로, 세태와 교회 사정을 교환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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