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종교 지도자들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가르침은 받아들이되
행동은 따르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은 말만 앞세우고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한 분뿐이시고,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 알렐루야.
복음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가 깨끗하고
거룩한 예물이 되게 하시고,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충만하게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주님 앞에서 넘치는 기쁨을 누리리이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를 받아 모시고 힘을 얻은 저희에게
더욱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저희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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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간 토요일(8/25)
말씀의 초대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종교 지도자들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가르침은 받아들이되 행동은 따르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은 말만 앞세우고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한 분뿐이시고,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 알렐루야.
복음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가 깨끗하고 거룩한 예물이 되게 하시고,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충만하게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주님 앞에서 넘치는 기쁨을 누리리이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를 받아 모시고 힘을 얻은 저희에게 더욱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저희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성경을 보면,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가끔 예수님을 반대합니다. 그들의 심성이 악하거나 악의 세력과 연계되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앞장서서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질책을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의 신앙이 위선과 형식에 젖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지닌 잘못은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믿음, 하느님보다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신앙,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자세 등입니다. 그러니 계명을 잘 지키고 열심히 단식하고 아무리 애써 기도해도 참된 존경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자세가 없으면 그렇게 된다고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세는 마음먹는다고 저절로 갖추어지지 않습니다. 은총의 도움이 함께하여야 합니다. 섬기는 자세로 사는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은총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어쩌면 말씀 한마디 한 구절마다 저를 두고 하신말씀 같았습니다
맞아요 주님!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헬레나입니다
복음묵상을 할 때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성찰해보지만…….
묵상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행등으로 실천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말할 뿐….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처럼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면서
빈 수레가 요란합니다
언제나………
복음을 묵상할 때만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보지만…..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말씀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빈 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입으로만 당신을 사랑한다고 떠들지 않으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진실한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지만 노력하겠습니다
부도수표만 남발하며 헛 약속을 하는 위선자 헬레나가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
빈 수레가 요란한 헬레나가 아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리라 믿으며
아멘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묵상하며
♬ 자비송 The Chant of Metta
말레이지아의 뮤지션 “이메이 우위(Imee Ooi)” 의 노래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1.말씀읽기: 마태 23,1-12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의 예를 들면서 좀더 겸손하게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좀더 겸손하게 하느님 앞에 서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입법자였습니다. 모세 이후로는 조상들의 전승만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의 관심사는 모세 율법과 아울러 거기서 발전된 전승을 보존하고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율법학자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과 율법에 나타나 있는 하느님을 뜻을 알려 주었습니다.
율법학자 제도는 에스델 시절(기원 전 5세기)의 것인데, 회당에서 율법을 읽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그들이 맡은 소임이었습니다. 이 제도를 유다 사회는 정당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이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학자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율법학자들은 사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습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행실은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은 유다 국민의 지도자로서, 또 어떤 의미에서는 모세를 이은자들 이었지만 그들 자신은 모세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레위기의 미드라스(해석)에는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가르치고 그리고 그 가르침을 스스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올바른 표양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만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들의 말은 들으라고 하십니다. 행동은 본받지 말고.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씀입니다. 가끔은 신자들이 사제들을 통하여 신앙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제들을 통하여 신앙을 얻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삶의 자세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율법의 해석자로 자처한 율법학자들에 대한 책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멋진 은유법을 사용하십니다. 그들은 노새와 낙타의 등에 엄청난 짐을 실어 놓고 그 짐을 옮기는 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장사꾼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율법학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해석자로 자처하면서 율법의 본질을 왜곡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정결례, 안식일, 단식과 기도 등을 생각해 보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는 얼마나 번잡한 규정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억누르는 짐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들 자신은 겉으로는 신심을 가장하면서도 자기네를 위해서는 그 짐을 가볍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었으니 그들의 첫 번째 죄는 위선이었던 것입니다. 위선.
그런데 저랑 똑같은 모습입니다. 남에게는 시키기를 좋아하고, 나는 하나도 하려 하지 않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말만 할 줄 알지 행동으로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사제들의 말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꽃꽂이를 잘 하시는 신부님의 말씀에 좌지우지되어 봉사자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각이 너무 발달한 신부님의 밥을 해 드리는 분도 어려움에 처합니다. 뭐가 안 들어갔다느니, 뭐가 더 들어갔다느니, 이런 것은 이렇게 해야 한다느니. 그런데 막상 하라고 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습니다. 사제들이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은 꽃꽂이와 요리이다. 배우면 말이 너무 많아진다나요…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허영심을 꼬집으십니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보여주기 위한 것, 남에게서 칭찬 받기를 원하는 것. 명예로운 호칭을 좋아 하는 것. 이것은 허영심의 결과입니다. 성구 넣는 갑은 그리스 말로 부적이라는 뜻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미신적인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구 넣는 갑은 조그만 갑인데 그 속에 탈출기 13,1-10. 11-16 그리고 신명기 6,4-9;11,13-21절까지의 글귀를 양피지에 써서 넣었습니다. 작은 갑은 왼팔이나 이마에 달고 다녔는데 지금도 히브리인들은 기도할 때 그것을 다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명기 6,8절의 그릇된 해석에서 나온 습관 같습니다. 거기에는 야훼 하느님의 계명에 대하여 쓰여 이는데. “네 손에 매어 표를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이 말씀을 상징적으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로니모 성인 당시 이 관습은 인도, 페르샤, 바빌론의 유다인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미신적인 것으로 타락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술은 항상 율법을 회상키시는 의미로 겉옷의 네 귀퉁이에 달려 있는 푸른 털의 술이었습니다.
결국 바리사이파 사람의 미신과 허영심은 사람의 눈에 돋보이도록 일부러 크게 만든 갑과 술에 잘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자리는 나이의 차례에 따라 앉게 정해져 있었으나, 위엄이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 순으로 정해져 있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허영 다툼의 근원 같습니다. 자리 그 자체에 위 아래를 정하는 것은 질서를 잡기 위해 당연한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은 명예심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윗자리 다툼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제가 잔치집에 가면 항상 중앙에 앉습니다. 어르신들도 있는데.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지만 나중에는 중앙에 앉지 못하면 서운할 때도 있습니다. 좋은 자리만 찾아 헤매는 저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히브리인 사이에서는 인사를 받는 사람을 마음과 이마와 입에 새겨 두고 싶다는 그런 뜻으로 깊이 머리를 숙여 절을 하면서 동그라미를 그려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원말은 “라브”(스승), “라삐”(나의 스승), “랏방”(우리의 스승)입니다. 라브는 기원 전 2세기 말, 현재 말하는 박사, 선생 등의 뜻으로 쓰인 말입니다. 기원 후 1세기 말에는 “라삐”라 하고, 일반적으로 팔레스티나의 선생을 가리켰습니다. 그 무렵 로마 정부가 인정한 유다의 으뜸은 “랏방”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신자들이 신부님들에게 인사를 잘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본당 신부님에게만 인사를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불편해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옆 본당 신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을 가르치십니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예수님께서 존칭을 절대적으로 배척하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만을 노리는 명예심과 오만을 배척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분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교적 겸손을 기르기 위한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 오직 한 분의 스승은 하느님뿐이십니다. 사람은 아무리 현명하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높은 지혜에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라는 표현은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사람 사이의 보편적 형제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브라함, 이사악과 야곱 등 세 조상에게만 사용되었고, 어머니는 사라와 레베카와 레아와 라헬에게만 붙였던 존칭입니다. 그 후 “아브”,“앗바”(아버지)를 유명한 사람이나 학자에게 붙였습니다. 라삐 이스마엘과 라삐 아키바는 세상의 아버지라 존경을 받고 그렇게 불렸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 밑에서는 모두가 형제이고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 형제라는 것을.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그리스 말로 지도자는 “주”란 뜻이 있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를 때 이 말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사람이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될 존칭을 나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배제시켜야 할 세 가지 칭호(스승, 아버지, 지도자)의 예는 아무렇게나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칭호들은 초대 교회의 위계 질서의 요소를 반영해 줍니다. 특히 유다계 사회에서 제자들은 다소 신심의 모델이 되는 행위와 혼돈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특히 유다인들의 사회에서는 랍비(나의 스승)라는 경칭이 사용되고 있었으나, 제자들은 그러한 칭호를 의식적으로 거부해야만 했습니다.
지도신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정말 참다운 지도신부가 될까 하는 생각을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지도를 가진 신부라면 좋은데…지도는 사면 되니까요^*^).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유다인들은 처음으로 이런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제자는 선생의 일꾼입니다. 제자의 일꾼이 되는 선생은 없습니다.
“형제에 대하여 뛰어난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형제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명예 때문이 아니라 형제의 선 때문에 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제자들의 탁월한 스승이요 지도자가 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뿐이시기에 그리스도교 안의 어떤 스승이나 지도자도 이러한 칭호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아무도 유다교의 랍비들의 본보기를 따라 자기 자신의 교리적인 견해를 주장하거나 어떤 교리 학파를 세우거나 거기에 가담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먼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의 철저한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아무리 교회 공동체 내에서 으뜸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참된 영광으로 가는 길은 겸손입니다. 온유하시고 겸손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이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자신을 높이는 모든 사람은 이 말씀을 통하여 단죄의 선고를 받아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은 들어 올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말, 즉 미래 심판의 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날에 세속적인 정신 속에서 사는 사람들과 예수님의 영 속에서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 모든 것이 완전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이 말씀이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높여 주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그냥 깔아 뭉게 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으로 받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항감이 있어야 만이 잘해주고, 예의를 갖춰주고, 조심스럽게 대한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3. 나눔 및 묵상
1.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하느님께로 가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가끔은 착각에 빠져 살 때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대단한 인물이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남이 그렇게 대해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기도 합니다. 내가 착각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해야 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부끄러운 저의 모습이 보입니다.
주님께 고백하자면
저는 적어도 제 주위 초등학교 나온 또래 보다 더 많이 배웠다고 우월감에 빠져있었습니다.
겨우 책한권도 재대로 읽지 않았으면서 백권읽은 사람처럼 알은척은 어지간이 했던거 같습니다.
가끔은 남들에게 무시당할까봐 비싼화장품과 고급 명품으로 변장도 잘 합지요.
목과 손가락에도 그 비싸다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도 하고
신앙인처럼 보이기 위해 18금 묵주반지에 십자가목걸이,묵주팔찌도 끼고 다닙니다.
성경 말씀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교리에 대해 잘 모르는 할머니들에게 침 튀겨가며 이해를 시켜줍니다.
할머니들은 제 말에 끄덕이면서 호박도 주고 고구마 심지어 고쟁이에 넣어둔 사탕도 줍니다.
그분들은 매일미사에 다니시는 분들입니다.
이런 저는
이것 저것 다하고 자투리 시간이 나야 갑니다.
그분들은 본당신부님,수녀님 그리고 열심한 신자들…
그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더라도 감싸줍니다.
저는
신부님의 강론말씀과 삶이 다르다며 사제답지 못하다고 궁시렁 거립니다.
수녀님들이나 열심한 신자들의 단점만을 보고 꼬집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말씀하셨는데
진리의 말조차 모습만 보고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보여지는 제 모습이 이렇기에
상대방의 모습이 어떻게 변장을 잘 하느냐에 따라
냉담과 열심을 번갈아 가며 갈아탈수도 있나봅니다.
이런 제가 바로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자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섬기는 사람으로 나야 할텐데…
주님 자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