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후(使徒後)시대의 교회<II>

 

사도후(使徒後)시대의 교회


                                     




교리(敎理)




사도후시대의 교리는 전례와 마찬가지로 아직 유대교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유대인 그리스도교 신학은 구약성서 ―특히 창세기의 첫 부분(1-3장)의 여러 성구(聖句)에 대한 주해나 예언서, 주로 예레미아와 에제키엘의 단편적인 인용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유대계 그리스도교 신도들은 유대교의 저서들을 구독하고 있었고 또는 이 책들을 그리스도교적 의미로 부분적으로 개정하거나 첨부하였다. 예컨대 「12성조의 성약서」, 「이사야의 승천」, 「요셉의 기도」, 「에녹 1,2서」, 「에스드라 4서」 등은 일부는 유대교적, 일부는 그리스도교적 내용이다. 또한 그들은 묵시록(黙示錄)들을 저술하였는데 이 저서들은 유대교의 묵시사상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묵시록들 중에서 일부는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계시(啓示)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컨대 영지주의자들이 사용하였던 「베드로의 묵시록」, 「12사도의 편지」, 「진리의 복음」, 「클레멘스의 설교」, 「야고보의 묵시록」등이다. 그리고 「요한의 묵시록」과 헤르마스의 「목자」역시 묵시문학에 속하며, 사도교부인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와 빠삐아스도 그리스도교의 묵시사상을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묵시 저서들은 계시의 사실을 설정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묵시중에 천공이 열려 계시를 받는 이가 천계(天界)를 꿰뚫어보면서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조(觀照)하고 그 모습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받음으로 천계의 비밀들을 밝힌다. 이러한 비밀들은 신, 천사, ¾퓔닺 사자(死者)들의 거처와 신이 천상 저서에 정하여놓은 시기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런 비사(秘事)들을 아는 것을 그노시스(지식)라고 하였고 따라서 이는 무엇보다도 묵시적 지식을 의미하였다. 이상의 저서들은 유대인 그리스도교의 신학의 대표적인 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성삼에 대한 이론은 천사론을 표절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ꡐ가장 사랑받는 자ꡑ라고 불리는 성자(聖子)는 ꡐ영광을 받는 천사ꡑ로서 여섯 대천사들의 지도자로 지칭된다(헤르마스, 「목자」의 비유편 Ⅶ,1,1; Ⅸ,12,7). 헤르마스는 이 천사를 「요한의 묵시록」(12,7-10)에서도 나오는 미카엘로 대체하였다(「목자」의 비유편 Ⅶ3,3). 성신(聖神)은 가브리엘 천사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이사야의 승천 Ⅸ,27,36). 그리고 이사야 예언서(6장)에 나오는 두 천사(세라핌)들은 성자와 성신의 재현으로 보고 있는데(이레네오, 사도의 복음 선포에 대한 증명 10), 이는 유대인 그리스도교적 개념으로 4세기에 다시 예로니모에 의해서 제창된다. 그 밖에 성자(ꡐ말씀ꡑ)는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몇 가지 표현으로 지칭되고 있었고 이는 유대교의 이론적인 해석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명칭은 ꡐ이름ꡑ(진리의 복음 37, 37-41,3)과 ꡐ율법ꡑ(헤르마스, 「목자」의 비유편 Ⅶ,3,2)등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신비가 역시 천사론과 관련하여 성자는 천사들이 머물고 있는 일곱 천국들을 거쳐서 천사의 형상으로 내려왔다가 같은 방법으로 승천하여 ꡐ천계에서 천사들에게 흠숭을 받고 있다는 교리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이 승천중에 천사들이 그리스도가 갖고 있는 인성(人性) 때문에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견해도 있다(유스티노, 트리포와의 대화 ⅩⅩⅩⅥ 5-6). 이런 견해는 신학적 의미가 첨부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는 신이 자신은 천사보다 낮추었고, 승천의 신비는 인간이 천사보다 높이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신학을 제시한다.


세째, 그리스도께서 고성소에 내려갔다는 교리 역시 유대인 그리스도교의 신학의 주제 중의 하나이다. 이 교리는 구약성서 속에 나오는 의인의 구원 문제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헤르마스는 사도들이 죽은 이들에게 성세를 베풀기 위해서 고성소에 내려갔다는 특이한 교리를 내세우고 있다(목자의 비유편 Ⅸ, 16,15-17). 이렇게 그리스도가 고성소에 내려갔다는 견해의 신학적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다는 데에 있다.


네째, 교회관은 당시의 유대교에 기원하고 있는 몇 가지 상징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ꡐ농장ꡑ(사해문서, 하바꾹 주해 Ⅵ, 15-17), ꡐ배ꡑ ꡐ건물ꡑ(사해문서, 공동체의 규율 Ⅸ,6) 등이다. 그러나 가장 의미깊은 상징은 선재(先在)하는 교회이다. 이는 첫 창조물인 ꡐ노부인ꡑ(헤르마스, 목자의 묵시편 Ⅱ,4,1)의 상징, 물 위에 세워진 ꡐ건물ꡑ(헤르마스, 목자의 묵시편 Ⅱ,3,3-4)의 상징, 창세기 2장 24절에 대한 묵시적인 주해에 의한 ꡐ남자와 여자ꡑ(코린트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ⅩⅣ,1-2)의 상징 등이다.


마지막으로 종말론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에 대한 기다림과 지상왕국의 건설에 대한 교리가 있었다. 이 종말론은 몇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있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의인들의 부활, 살아있는 성인들의 변형, 낙원생활을 하는 메시아의 천년왕국(이사야의 승천 Ⅳ,15-17) 등이다. 이러한 상징주의는 유대교에 기원을 두며(요벨서 ⅩⅩⅢ 27; Ⅳ,29), 유대계 그리스도교 신도들이 교리로 규정하였다.




신앙생활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가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가르친 사상은 사도후시대에서 별로 영향력이 없었다. 그리스도교 신자의 기도는 유대인의 기도와 유사한 점을 많이 갖고 있었다. 물론 신도들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 구약의 신에게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이 기도는 구약성서의 기도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성격의 기도였다. 신도들은 예수 안에서 인간에게 부여된 새로운 생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부(聖父)에게 기도하였다. 그들은 성부에게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ꡐ아멘ꡑ으로서 감사하는 마음을 굳게 하였다. 로마의 클레멘스는 새로운 형태의 기도를 지적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교 신도는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난한 이에게는 도움을, 통치자에게는 지혜를 신에게 청하는 기도를 드렸고 아울러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 성부께 기도하였다(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59-61). 그러나 성자께 바치는 기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도들은 그리스도에게도 기도하였다(플리니가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편지 10,96).


그리고 사도후시대의 신심은 그리스도 중심이었다. 그리스도의 뜻은 바로 신도들의 윤리생활의 규범이었다. 그의 계명은 신도들의 행동을 좌우하였고 성자 자신이 ꡐ법ꡑ이었다(클레멘스,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3,4; 뽈리까르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4,1; 이냐시오, 마네시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13,1; 헤르마스, 목자의 비유편 Ⅶ,3,2). 그리스도의 생활은 신도들이 따라야 할 표본이었고 그리스도를 본받음은 그리스도교 신심의 기본이 되었다(클레멘스,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16,17,33,7-8; 뽈리까르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10,0; 이냐시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10,3). 이러한 생활의 가장 숭고한 증거는 순교에서 나타난다. 신도들은 그리스도의 뜻 뒤에는 성부의 원의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표양을 따르는 이는 성부에게로 가고 성부 안에서 살게 된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과 그리스도를 본받음은 모든 신도들이 추구해야 하는 이상(理想)이었다.   (가톨릭 대학 교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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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사도후(使徒後)시대의 교회

                                         


    교리(敎理)


    사도후시대의 교리는 전례와 마찬가지로 아직 유대교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유대인 그리스도교 신학은 구약성서 ―특히 창세기의 첫 부분(1-3장)의 여러 성구(聖句)에 대한 주해나 예언서, 주로 예레미아와 에제키엘의 단편적인 인용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유대계 그리스도교 신도들은 유대교의 저서들을 구독하고 있었고 또는 이 책들을 그리스도교적 의미로 부분적으로 개정하거나 첨부하였다. 예컨대 「12성조의 성약서」, 「이사야의 승천」, 「요셉의 기도」, 「에녹 1,2서」, 「에스드라 4서」 등은 일부는 유대교적, 일부는 그리스도교적 내용이다. 또한 그들은 묵시록(黙示錄)들을 저술하였는데 이 저서들은 유대교의 묵시사상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묵시록들 중에서 일부는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계시(啓示)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컨대 영지주의자들이 사용하였던 「베드로의 묵시록」, 「12사도의 편지」, 「진리의 복음」, 「클레멘스의 설교」, 「야고보의 묵시록」등이다. 그리고 「요한의 묵시록」과 헤르마스의 「목자」역시 묵시문학에 속하며, 사도교부인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와 빠삐아스도 그리스도교의 묵시사상을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묵시 저서들은 계시의 사실을 설정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묵시중에 천공이 열려 계시를 받는 이가 천계(天界)를 꿰뚫어보면서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조(觀照)하고 그 모습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받음으로 천계의 비밀들을 밝힌다. 이러한 비밀들은 신, 천사, ¾퓔닺 사자(死者)들의 거처와 신이 천상 저서에 정하여놓은 시기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런 비사(秘事)들을 아는 것을 그노시스(지식)라고 하였고 따라서 이는 무엇보다도 묵시적 지식을 의미하였다. 이상의 저서들은 유대인 그리스도교의 신학의 대표적인 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성삼에 대한 이론은 천사론을 표절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ꡐ가장 사랑받는 자ꡑ라고 불리는 성자(聖子)는 ꡐ영광을 받는 천사ꡑ로서 여섯 대천사들의 지도자로 지칭된다(헤르마스, 「목자」의 비유편 Ⅶ,1,1; Ⅸ,12,7). 헤르마스는 이 천사를 「요한의 묵시록」(12,7-10)에서도 나오는 미카엘로 대체하였다(「목자」의 비유편 Ⅶ3,3). 성신(聖神)은 가브리엘 천사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이사야의 승천 Ⅸ,27,36). 그리고 이사야 예언서(6장)에 나오는 두 천사(세라핌)들은 성자와 성신의 재현으로 보고 있는데(이레네오, 사도의 복음 선포에 대한 증명 10), 이는 유대인 그리스도교적 개념으로 4세기에 다시 예로니모에 의해서 제창된다. 그 밖에 성자(ꡐ말씀ꡑ)는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몇 가지 표현으로 지칭되고 있었고 이는 유대교의 이론적인 해석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명칭은 ꡐ이름ꡑ(진리의 복음 37, 37-41,3)과 ꡐ율법ꡑ(헤르마스, 「목자」의 비유편 Ⅶ,3,2)등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신비가 역시 천사론과 관련하여 성자는 천사들이 머물고 있는 일곱 천국들을 거쳐서 천사의 형상으로 내려왔다가 같은 방법으로 승천하여 ꡐ천계에서 천사들에게 흠숭을 받고 있다는 교리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이 승천중에 천사들이 그리스도가 갖고 있는 인성(人性) 때문에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견해도 있다(유스티노, 트리포와의 대화 ⅩⅩⅩⅥ 5-6). 이런 견해는 신학적 의미가 첨부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는 신이 자신은 천사보다 낮추었고, 승천의 신비는 인간이 천사보다 높이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신학을 제시한다.

    세째, 그리스도께서 고성소에 내려갔다는 교리 역시 유대인 그리스도교의 신학의 주제 중의 하나이다. 이 교리는 구약성서 속에 나오는 의인의 구원 문제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헤르마스는 사도들이 죽은 이들에게 성세를 베풀기 위해서 고성소에 내려갔다는 특이한 교리를 내세우고 있다(목자의 비유편 Ⅸ, 16,15-17). 이렇게 그리스도가 고성소에 내려갔다는 견해의 신학적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다는 데에 있다.

    네째, 교회관은 당시의 유대교에 기원하고 있는 몇 가지 상징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ꡐ농장ꡑ(사해문서, 하바꾹 주해 Ⅵ, 15-17), ꡐ배ꡑ ꡐ건물ꡑ(사해문서, 공동체의 규율 Ⅸ,6) 등이다. 그러나 가장 의미깊은 상징은 선재(先在)하는 교회이다. 이는 첫 창조물인 ꡐ노부인ꡑ(헤르마스, 목자의 묵시편 Ⅱ,4,1)의 상징, 물 위에 세워진 ꡐ건물ꡑ(헤르마스, 목자의 묵시편 Ⅱ,3,3-4)의 상징, 창세기 2장 24절에 대한 묵시적인 주해에 의한 ꡐ남자와 여자ꡑ(코린트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ⅩⅣ,1-2)의 상징 등이다.

    마지막으로 종말론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에 대한 기다림과 지상왕국의 건설에 대한 교리가 있었다. 이 종말론은 몇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있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의인들의 부활, 살아있는 성인들의 변형, 낙원생활을 하는 메시아의 천년왕국(이사야의 승천 Ⅳ,15-17) 등이다. 이러한 상징주의는 유대교에 기원을 두며(요벨서 ⅩⅩⅢ 27; Ⅳ,29), 유대계 그리스도교 신도들이 교리로 규정하였다.


    신앙생활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가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가르친 사상은 사도후시대에서 별로 영향력이 없었다. 그리스도교 신자의 기도는 유대인의 기도와 유사한 점을 많이 갖고 있었다. 물론 신도들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 구약의 신에게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이 기도는 구약성서의 기도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성격의 기도였다. 신도들은 예수 안에서 인간에게 부여된 새로운 생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부(聖父)에게 기도하였다. 그들은 성부에게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ꡐ아멘ꡑ으로서 감사하는 마음을 굳게 하였다. 로마의 클레멘스는 새로운 형태의 기도를 지적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교 신도는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난한 이에게는 도움을, 통치자에게는 지혜를 신에게 청하는 기도를 드렸고 아울러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 성부께 기도하였다(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59-61). 그러나 성자께 바치는 기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도들은 그리스도에게도 기도하였다(플리니가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편지 10,96).

    그리고 사도후시대의 신심은 그리스도 중심이었다. 그리스도의 뜻은 바로 신도들의 윤리생활의 규범이었다. 그의 계명은 신도들의 행동을 좌우하였고 성자 자신이 ꡐ법ꡑ이었다(클레멘스,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3,4; 뽈리까르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4,1; 이냐시오, 마네시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13,1; 헤르마스, 목자의 비유편 Ⅶ,3,2). 그리스도의 생활은 신도들이 따라야 할 표본이었고 그리스도를 본받음은 그리스도교 신심의 기본이 되었다(클레멘스,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16,17,33,7-8; 뽈리까르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10,0; 이냐시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10,3). 이러한 생활의 가장 숭고한 증거는 순교에서 나타난다. 신도들은 그리스도의 뜻 뒤에는 성부의 원의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표양을 따르는 이는 성부에게로 가고 성부 안에서 살게 된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과 그리스도를 본받음은 모든 신도들이 추구해야 하는 이상(理想)이었다.   (가톨릭 대학 교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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