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하느님 백성이 지켜야 할 규정들(계약의 책)

여섯. 하느님 백성이 지켜야 할 규정들(계약의 책)

(읽어야 할 말씀: 탈출 20,22-31,18)

1. 시작기도: 탈출 23,1-9 정의 실현에 관한 법

1 너희는 헛소문을 퍼뜨려서는 안 된다. 악인과 손잡고 거짓 증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2 너희는 다수를 따라 악을 저질러서는 안 되며, 재판할 때 다수를 따라 정의를 왜곡하는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3 또 힘없는 이라고 재판할 때 우대해서도 안 된다. 4 길을 잃고 헤매는 너희 원수의 소나 나귀와 마주칠 경우, 너희는 그것을 임자에게 데려다 주어야 한다. 5 너희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에 눌려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을 경우, 내버려 두지 말고 그와 함께 나귀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 6 너희는 재판할 때 가난한 이의 권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7 그리고 거짓 고소를 멀리해야 한다.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 나는 악인을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8 너희는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 뇌물은 온전한 눈을 멀게 하고, 의로운 이들의 송사를 뒤엎어 버린다. 9 너희는 이방인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으니, 이방인의 심정을 알지 않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 하느님 백성이 지켜야 할 규정들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규정들을 지켜야 합니다. 제단에 관한 법, 종에 관한 법, 폭력에 관한 법, 상해에 관한 법, 절도에 관한 법, 손해 배상법, 처녀를 범한 자에 관한 범, 그 밖에 사형에 처할 죄인, 약자 보호법, 하느님을 섬기는 몇 가지 법, 정의 실현에 관한 법, 안식년과 안식일에 관한 법, 연중 삼 대 축제에 관한 법, 가나안 땅 입주에 관한 약속과 경고 등,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규정들을 온 마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규정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규정을 바탕으로 서로가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살아가면 평화롭고 기쁨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규정해 놓고, 서로 함께 지켜 나갈 때 공동체는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반대로 규정들에서 벗어나는 순간 공동체에는 분열과 갈등이 생겨나고 평화는 사라지게 됩니다. 하느님 백성은 이러한 규정들 안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하느님의 법은 구속이 아니라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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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하느님 백성이 지켜야 할 규정들(계약의 책)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2.1. 제단에 관한 법(탈출20,22-26)

    주님께서는 제단을 흙으로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돌로 제단을 만들 때는 다듬은 돌로 쌓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돌을 다듬지 못하게 하시는 이유는 자연 그대로의 소박한 제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인간이 돌에 정을 대면 제단이 부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층계로 주님의 제단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제단 앞에서 알몸이 드러남으로써 성적인 요소가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제사의식이 들어와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여 예배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강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어디든지 성소와 제단이 설 수 있다는 것이며 누구나 제단을 세우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과 언제나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눔 29: 전례를 거행할 때 하느님 백성의 마음은 어떠해야 합니까? 경건함과 불경은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전례 거행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요?

     

  2. guest 님의 말:

    2.2. 종에 관한 법(탈출21,1-11)

    종에 관한 법률은 사람에 대한 배려의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으로 팔려갔다 할지라도 일곱째 해에는 조건 없이 자유로운 몸으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의 상황에서는 착한 주인을 섬기며 노예 신분으로 있는 편이 자유의 몸이 되어 가난한 살림을 하기보다 때로는 나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도 왕망이라는 사람이 노예를 해방하자 노예들의 불평이 심했다고 합니다. 가난한 평민으로 살아가며 세금을 내고 국가에 의무를 다하는 것보다는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 당시에는 더 나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런 경우 주인이 집 문에 대고 노예의 귀를 뚫음으로써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복종을 의미하며, 이것으로써 그 노예는 영구히 그 집에 머물게 됩니다. 다른 종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여종으로 팔렸을 경우, 부인이나 첩이 되는 조건으로 주인의 소유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게 될 경우에는 조건 없이 여인을 자유롭게 해 주어야 했습니다.

     

     

  3. guest 님의 말:

    2.3. 폭력과 상해에 관한 법(탈출21,12-36)

    인권은 규정과 법 앞에서 모두가 평등해야 보호되는 것이고, 자유는 인권이 보호되어야 누릴 수 있습니다. 힘이 있는 이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면 약한 이들은 힘 있는 이들의 폭력과 상해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폭력과 상해에 대해서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찾은 백성에게 폭력과 상해에 관한 법을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이 선포를 통해서 하느님 백성은 자신들이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이 법을 통해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 사람을 때려서 죽인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악의로 흉계를 꾸며 이웃을 죽였을 경우에는, 그가 내 제단을 붙잡았더라도 끌어내어 사형에 처해야 한다.(탈출21,12-14)

    ,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때린 자나,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탈출21,15.17)

    , 사람을 유괴한 자는 그 사람을 팔았든 데리고 있든 사형을 받아야 한다.(탈출21,16)

    , 사람들이 서로 다투다 한 사람이 상대방을 돌이나 주먹으로 때려, 그가 죽지는 않고 자리에 눕게 되었을 경우, 그가 나중에 일어나서 지팡이를 짚고 밖을 돌아다니게 되면, 때린 자는 벌을 면한다. 다만 그동안의 손해를 갚고, 나을 때까지 치료해 주어야 한다.(탈출21,18-19)

    다섯, 어떤 사람이 자기 남종이나 여종을 몽둥이로 때렸는데, 그 종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경우, 그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종이 하루나 이틀을 더 살면, 그는 벌을 받지 않는다.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탈출21,20-21) 그리고 자기 남종의 눈이나 여종의 눈을 때려 상하게 하였을 경우, 눈 대신 그를 자유로운 몸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가 자기 남종의 이나 여종의 이를 부러뜨렸어도, 이 대신 그를 자유로운 몸으로 내보내야 한다.(탈출21,26-27)

    여섯, 사람들이 서로 싸우다 임신한 여자와 부딪쳤을 경우, 그 여자가 유산만 하고 다른 해가 없으면, 가해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 요구하는 대로 벌금형을 받아야 한다. 그는 재판관을 통해서 벌금을 치른다. 그러나 다른 해가 뒤따르게 되면,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 하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21,22-25)

    일곱, 소가 남자나 여자를 뿔로 받아서 그가 죽었을 경우, 그 소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 그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소 임자는 벌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소가 예전부터 받는 버릇이 있어, 그 주인이 경고를 받고도 그것을 잡도리하지 않아 남자나 여자를 죽였으면, 소가 돌에 맞아 죽어야 할 뿐만 아니라, 주인도 사형을 받아야 한다. 만일 배상금을 요구해 오면, 그 주인은 자기 몸값으로 요구하는 것을 다 물어야 한다. 소가 남의 아들을 받았거나 남의 딸을 받았을 때에도, 그 주인은 이 법에 따라 다루어진다. 소가 남의 남종이나 여종을 받았으면, 그 주인에게 은 서른 세켈을 갚아야 하고, 소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탈출21,28-32)

    여덟, 어떤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 놓거나 구덩이를 파고 그것을 덮지 않아서 소나 나귀가 거기에 빠졌을 경우, 그 구덩이의 임자는 짐승의 임자에게 돈을 치러 배상해야 한다. 그러나 죽은 짐승은 구덩이 임자의 차지가 된다.(탈출21,33-34)

    아홉, 어떤 사람의 소가 이웃의 소를 받아서 죽게 하였을 경우, 살아 있는 소를 팔아서 그 돈을 나누어 가지고, 죽은 소도 나누어 가진다. 그러나 그 소가 예전부터 받는 버릇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는데도, 그 주인이 그것을 잡도리하지 않았다면, 소는 소로 배상하고 죽은 소는 자기가 차지한다.(탈출21,35-36)

     

    하느님께서는 공동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법적으로 규정해 주심으로써 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며, 폭력이 얼마나 큰 죄임을 알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 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환영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한 이 법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었기에 공동체의 평화에 큰 기여를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회에는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끼리도 다툽니다. 잘못을 했지만 그 죄를 조금이라도 작게 만들려고 거짓말을 하고, 법정에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비록 인간 법정에서는 그렇게 거짓이 통할지 몰라도 하느님 법정에서는 결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위의 아홉 가지를 기본적으로 양심에 담아 놓는다면 잘못을 했을 경우 먼저 인정하고 배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킬 것은 반드시 지켜 나가는 하느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나눔 30: 폭력과 상해에 관한 법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그리고 이 법을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생활과 연결시켜 보고, 성찰과 통회와 정개가 포함된 참된 고해성사로 이어지도록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이야기해 봅시다.

     

    이러한 폭력과 상해는 오늘날에는 더 심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가 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합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법이 없어도 살아가는 사람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법보다도 더 철저하게 하느님의 법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양심은 더욱 예민해져야 하고,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자기 자신을 인내하고 다듬고, 배려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4. guest 님의 말:

    2.4. 절도에 관한 법과 손해 배상법(탈출21,37-22,16)

    남의 것을 탐내고, 마침내 부당하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도둑이라고 합니다. 자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도둑질은 반드시 배상을 해야 합니다. 반드시 배상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 가진 것이 없다면 제 몸을 종으로 팔아서라도 갚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죄는 모두 기워 갚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 어떤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그것을 잡거나 팔았을 경우,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를,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를 배상해야 한다.(탈출21,37)

    , 도둑이 집을 뚫고 들어가다 들켜서 맞아 죽었으면,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해가 이미 떠오른 다음에는 살인죄가 된다.(탈출22,1-2)

    , 도둑질한 자는 배상해야 한다. 그가 가진 것이 없으면, 제 몸을 팔아 도둑질한 것을 갚아야 한다. 그리고 도둑질한 짐승이 소든 나귀든 양이든 아직 산 채로 그의 손에 있으면, 그는 그것을 갑절로 배상해야 한다.(탈출22,2-3)

    , 어떤 사람이 밭이나 포도원에서 풀을 뜯기던 가축을 풀어 놓아 남의 밭 곡식을 뜯어 먹게 하였을 경우, 그는 자기 밭의 가장 좋은 소출과 자기 포도원의 가장 좋은 소출로 배상해야 한다.(탈출22,4)

    다섯, 불이 나서 가시덤불에 옮겨 붙어 남의 낟가리나 거두지 않은 곡식이나 밭을 태웠을 경우, 불을 낸 자는 자기가 태운 것을 배상해야 한다.(탈출22,5)

    여섯, 어떤 사람이 이웃에게 돈이나 물건을 지켜 달라고 맡겼다가 그 집에서 도둑을 맞았을 경우, 그 도둑이 잡히면 도둑은 그것을 갑절로 배상해야 한다. 그러나 도둑이 잡히지 않으면, 그 집 주인이 이웃의 물품에 손을 대지 않았는지 밝히러 하느님께 나아가야 한다.(탈출22,6-7)

    일곱, 소나 나귀나 양이나 겉옷이나 그 밖의 어떤 분실물이든, 한쪽이 저것은 내 것이다.하고 주장하는 사건이 생기면, 양쪽이 관련된 이 일은 하느님께 가져가야 한다. 하느님께서 유죄 판결을 내리신 자는 상대방에게 갑절로 배상해야 한다.(탈출22,8)

    여덟, 어떤 사람이 이웃에게 나귀나 소나 양이나 그 밖의 어떤 가축이든 지켜 달라고 맡겼는데, 죽거나 다치거나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에 없어졌을 경우, 맡았던 이가 이웃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을 주님 앞에서 맹세하여, 두 사람 사이의 시비를 가려야 한다. 그러면 임자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상대방은 배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도둑을 맞았다면, 그 임자에게 배상해야 한다. 그것이 맹수에게 찢겨 죽었다면, 그것을 증거물로 내놓고, 찢겨 죽은 짐승은 배상하지 않는다.(탈출22,9-12)

    아홉, 어떤 사람이 이웃에게 짐승을 빌려갔다가 그것이 다치거나 죽었을 경우, 그 임자가 같이 있지 않았다면 배상해야 한다. 임자가 같이 있었다면 배상하지 않는다. 그 짐승이 세를 낸 것이면 셋돈은 물어야 한다.(탈출22,13-14)

    , 어떤 사람이 정혼하지 않은 처녀를 꾀어 그와 동침하였을 경우, 신부 몸값을 내고 그 처녀를 아내로 맞아들여야 한다.(탈출22,15) 그 처녀의 아버지가 자기 딸을 그에게 주는 것을 거절하면, 처녀의 몸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물어야 한다.(탈출22,16)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사형에 처할 죄인들은(탈출22,17-19) 첫째, 주술쟁이 여자. 둘째, 짐승과 교접하는 자. 셋째, 주님 말고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큰 죄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침을 주셨습니다. 이 지침은 우리가 고해성사를 볼 때 보속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할 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피해자는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고해성사를 본다는 것은 용서를 청하겠다는 것이고, 배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는 고해성사는 죄를 쌓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성당에서 활동을 할 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피해자들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성당을 떠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5. guest 님의 말:

    2.5. 약자 보호법(탈출22,20-26)

    하느님께서는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약자 보호법을 제정하십니다. 약자들은 자비의 대상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기를 원하는 이들은 반드시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배려하며, 이웃에게 너그러운 하느님의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하느님의 위로를 드러내며, 약자들이 나의 모습을 통해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방인 보호법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했던 것을 기억하게 만드십니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에서 긴 종살이를 했습니다. 사내아이들은 죽임을 당해야 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들도 이집트에서는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었기에 출애굽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도 그런 고통을 당했으니 당연히 너희도 당해야 한다.”라는 식의 복수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억압당하고, 학대당하던 때를 기억하면서 내 주변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탈출22,20).

     

    그런데 시집살이를 해 본 사람이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오히려 자신이 당한 것 보다 더 심한 학대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보상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고, 주어지는 시련 속에서 자신의 아름다운 감정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백성은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좋은 것들을 한없이 주시고도 계산하지 않으시고, 더 주시려고 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억할 때, 억압과 학대를 사랑과 자비로 돌려줄 수 있게 됩니다.

     

    과부와 고아 보호법

    고아와 과부는 나약한 자들의 상징입니다. 그들은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고, 만일 힘 있는 이들이 그들을 착취하거나 억압하면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그저 당하기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돌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히브리인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모세를 부르시어 출애굽을 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비를 베풀 수 있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 된다. 너희가 그들을 억눌러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그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다.”(탈출22,21)

     

    하느님의 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이라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대해줄 때, 나는 하느님의 사람이 받게 되는 상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면 저주받는 자들이 가는 곳에 가서 울며 탄식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비를 베풀지 않은 이들을 향하여 그러면 나는 분노를 터뜨려 칼로 너희를 죽이겠다. 그러면 너희 아내들은 과부가 되고, 너희 아들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탈출22,23)라고 경고를 하십니다. 내가 판단한 그 잣대로 내가 판단받을 것이며, 내가 단 그 저울로 내가 심판받을 것입니다. 내가 휘두른 그 칼로 결국 나도 죽고 내 가족들까지 죽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법

    가난한 이들이 돈을 꾸는 이유는 생계와 직결된 것입니다. 만일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채권자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가난한 이들의 생명을 쥐고 좌지우지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자신이 하느님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의 백성에게, 너희 곁에 사는 가난한 이에게 돈을 꾸어 주었으면, 그에게 채권자처럼 행세해서도 안 되고, 이자를 물려서도 안 된다.”(탈출22,24)

     

    하느님 백성은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여 부를 축적해서도 안 되고, 이자를 물려서도 안 됩니다. 가난한 이들이 돈을 빌리고, 또 이자를 갚느라 또 돈을 빌리게 되면 그들은 결코 절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절망에서 건져 주셨던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들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구원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당연하게 요구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당신 손으로 이끄신 백성이고,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이며, 당신을 사랑하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체적인 이웃 사랑 실천의 방법을 명령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입니다.

     

    너희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으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한다. 그가 덮을 것이라고는 그것뿐이고, 몸을 가릴 것이라고는 그 겉옷뿐인데, 무엇을 덮고 자겠느냐? 그가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들어 줄 것이다. 나는 자비하다.”(탈출22,25)

     

    가난한 이가 겉옷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이유는 먹을 양식을 사기 위해서입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아가는 이들이 그날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담보로 잡혔던 겉옷을 찾아갈 수 없게 됩니다. 가난한 이에게는 그 겉옷이 이불입니다. 그는 덮을 이불이 없기 때문에 추운 밤을 떨면서 기도하게 될 것이고, 그 고통에 찬 절규를 하느님께서는 밤새 들으셔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결코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려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불쌍한 처지에 있는 이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애처로운 처지를 내가 만들었다면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고, 나에게 어떤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보이는 이웃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죄인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안에서 사랑이 넘치는 배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할 때, 세상은 행복해지고 밝아집니다. 배려는 다른 배려를 만들어 내고, 그 배려는 감사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지만 그 배려가 사라지고 경쟁과 이기심이 고개를 들어 공동체 안에 자리를 잡게 되면 감사의 열매는 사라지고, 존중과 배려가 없는 삭막한 세상이 됩니다. 하느님 백성은 내가 받은 사랑과 자비를 언제나 기억하며, 또 다른 자비와 배려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마태18,23-35)에서 자비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종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형제자매들에게 하고 있는 말과 행위를 모두 보고 계십니다.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는 내 생각과 말과 행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생각과 말과 행위 때문에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사람이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는 언제나 형제자매들을 향한 배려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흘러넘치는 배려를 통해서 행복한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 배려를 통해서 나 또한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배려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실천의 첫 단추입니다.

    나눔 31: 약자들에 대한 보호는 내 주변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나는 공동체 안에서 약자들을 어떻게 돌보고 있습니까?

     

     

  6. guest 님의 말:

    2.6. 하느님을 섬기는 몇 가지 법(탈출22,27-30)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욕을 멀리하고 하느님을 뜻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기쁘게 봉헌할 줄 알아야 하며, 거룩한 생각을 하고 거룩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이 몇 가지 법을 통해서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결국 실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천 없는 섬김은 섬김이 아닙니다. 그저 말잔치일 뿐입니다.

     

    욕을 멀리하고 하느님의 뜻을 찾기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하느님을 욕하거나 너희 백성의 수장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탈출22,27)고 하십니다. 하느님을 욕하는 사람이 하느님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며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변함없이 기도합니다.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봉사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모함하거나 악담을 하거나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은 큰 죄가 됩니다. 하느님 백성은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전문가이지 판단과 비난과 비평과 판결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봉사자를 욕하는 이는 결코 하느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해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삶의 자세입니다.

     

    기쁘게 봉헌하기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풍성한 수확과 과일즙을 나에게 바치기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 너희 아들들 가운데 맏이는 나에게 바쳐야 한다. 너희 소와 양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레 동안은 어미와 함께 두었다가, 여드렛날에는 나에게 바쳐야 한다.”(탈출22,28-2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위해서 기쁘게 자신의 것을 봉헌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며 기뻐하는 삶이 하느님을 섬기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봉헌의 기쁨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넘치도록 후하게 복을 주십니다.

     

    거룩한 생각을 하고 거룩하게 행동하기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나에게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들에서 맹수에게 찢긴 짐승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은 개에게나 던져 주어야 한다.”(탈출22,30)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거룩한 사람들은 거룩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거룩하게 살아가려는 이들은 먹는 음식도 가려 먹게 됩니다. 맹수에게 죽임을 당한 동물의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그 고기에 피가 남아 있기 때문이고, 하느님 백성은 피가 묻은 고기를 먹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음식과 신앙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분심을 들게 하는 음식을 먹는 것 보다는 차라리 단식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음식을 먹을 때도 들개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 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7. guest 님의 말:

    2.7.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법(탈출23,1-9)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며 정의를 실천하는 삶을 원하셨습니다. 이집트의 지배자들은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의와 평화가 아니라 노동과 복종만을 요구하였습니다. 불의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자유를 찾았으니 삶의 형태를 바꾸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사랑으로 훈육하듯,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포하십니다. 하느님 백성은 공동체와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배려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은 공동체에서 구체적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정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모세를 통하여 규정과 법규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선포하셨으니 인간은 실천하면 됩니다.”

     

    선포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실천은 인간이 하는 것입니다. 정의는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삶으로 실천되지 않는 정의는 그저 무리를 지어 자신들을 드러내는 도구일 뿐입니다. 선포만 하는 정의는 정의라는 이름의 또 하나의 불의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정의와 평화가 실천되지 않으면 나는 하느님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저 선포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정의와 평화를 선포하지 말고, 정의와 평화를 실천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실천을 통하여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세상의 불의를 지적하고 단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정의를 실천하고 평화가 자리 잡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안티오키아 공동체가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선포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살았기에 주변에서 그들을 보고 그리스도인이라 부른 것입니다. 정의와 평화는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삶이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이 그들의 삶을 바꿔 놓을 것임을 하느님 백성은 믿어야 합니다.

    헛소문을 퍼뜨리지 않기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헛소문을 퍼뜨려서는 안 된다. 악인과 손잡고 거짓 증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탈출23,1)고 말씀하셨습니다. 헛소문은 피해자를 죽음의 고통으로 몰고 가고, 거짓 증인의 삶은 올바른 이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가 밝은 웃음이 넘쳐나게 됩니다.

     

    소문(所聞)은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세상에 떠도는 소식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그 중심에 서서 소문을 옮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 남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고, 남을 비난하기를 좋아해서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지 남이 잘못된 것을 좋아하며 판단하고 단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남의 잘못을 꾸짖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잘못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그 사람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며, 그 사람이 하느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다가가는 사람입니다. 남의 잘못을 누군가가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너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좋아할 사람이고, 반드시 누군가에게 이야기 할 사람이니 너에게 얘기하는 거야!”라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가 나와 친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악한 사람이기에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임을 그가 알았더라면 그는 분명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단죄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와 자비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헛소문을 내는 사람을 어찌 자비로운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내 잘못을 공개적으로 떠들고 있는 그 사람을 어찌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비로운 사람은 설령 내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사랑으로 감싸주며 내 삶의 변화를 위해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입니다. 나도 그렇게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만일 헛소문을 퍼뜨렸으면 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었어.”라고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헛소문을 퍼뜨렸을 경우 고해성사를 보고 끝낼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과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복음을 선포하는 존재이지 헛소문을 퍼뜨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수를 따라 악을 저지르지 않기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다수를 따라 악을 저질러서는 안 되며, 재판할 때 다수를 따라 정의를 왜곡하는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또 힘없는 이라고 재판할 때 우대해서도 안 된다.”(탈출23,2-3)고 말씀하십니다. 다수가 언제나 정의는 아닙니다. 힘없는 사람이라 하여 자비심에 죄를 눈감아 줘서도 안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서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일도 하느님 백성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느님 백성은 선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악행을 감추기 위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을 모으고, 자신의 욕심을 실현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악행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여론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분별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기도하며 뒤로 물러날 줄 알아야 합니다. 분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옳다라고 판단하게 되면,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는 모든 이들에게 신뢰와 평화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정의와 평화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단죄하는 일에 앞장서게 되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교회마저 그 대열에 합류해 있다면 방향을 잡아줄 곳은 아무데도 없게 됩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을 들고 오는 곳입니다. 아버지가 작은 아들의 허물을 단죄하면 그 아들은 갈 곳이 없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는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며 결정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다수를 따라 판단하는 것도 악이 될 수 있음을 하느님 백성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기

    하느님께서는 길을 잃고 헤매는 너희 원수의 소나 나귀와 마주칠 경우, 너희는 그것을 임자에게 데려다 주어야 한다. 너희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에 눌려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을 경우, 내버려 두지 말고 그와 함께 나귀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탈출23,4-5)고 말씀하십니다. 그 원수가 밉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백성은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의인이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햇볕을 주시고, 비를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도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10,29-37)를 통해서 하느님 백성이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웃의 고통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조건 없이 도와주는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고통당하는 이웃을 그냥 지나치거나 그러니까 저런 벌을 받는 것이지.”라며 단죄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의 권리를 찾아주기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재판할 때 가난한 이의 권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거짓 고소를 멀리해야 한다.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 나는 악인을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탈출23,6-7)고 말씀하십니다. 거짓으로 사건을 만들어서 소송을 걸고 가난한 이나 불쌍한 이들의 권리를 약탈해서는 안 됩니다. 무죄한 이들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안에서는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났고, 긴 시간이 지난 후에 그들에게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하느님 백성은 가난한 이의 권리를 보호하고,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보호하는데 앞장서는 사람들입니다. 부유하다 하여 그의 죄를 덮어 주고, 가난하다 하여 그의 마음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을 죄 없다고 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내가 악인을 변호하고, 의인의 권리를 짓밟을 때는 나 또한 그 악인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것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뇌물을 받지 않기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 뇌물은 온전한 눈을 멀게 하고, 의로운 이들의 송사를 뒤엎어 버린다.”(탈출23,8)고 말씀하십니다. 뇌물을 받고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편협하게 재판을 해 준다면 그 피의 대가는 내가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뇌물(賂物)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위해 제공하는 것이며, 이권을 얻을 목적으로 일정한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매수하기 위하여 넌지시 주는 부정한 돈이나 물품을 말합니다. 그 선물이 내 마음을 움직여서 그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 됩니다.

     

    그런데 다양한 선물들은 시간이 지나면 뇌물로 바뀔 가능성이 커집니다. 선물을 통해 친교가 유지되고, 친교를 이룬 사람의 개인적인 말 한마디를 그냥 넘기지 못하게 되면 그가 나에게 베푼 모든 호의는 결국 뇌물이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느님 백성을 이끌고 있는 이들은 그 뇌물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재물을 섬기지 말고 하느님을 섬겨야 합니다.

     

    후한 시대에 양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왕밀이라는 사람이 황금을 가지고 찾아와 받아달라고 하였습니다. “왕밀은 양진에게서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기에 그 보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양진은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왕밀은 양진이 남의 눈을 의식해서 그런가 하여 지금은 밤중이고 이 방 안에는 당신과 저 뿐입니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황금을 받아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양진은 왕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네가 알고 내가 알고 있지 않은가?”(天知 地知 汝知 我知) 그 유명한 말이 이렇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왕밀은 양진의 말에 부끄러워하며 물러갔고, 그 후로 양진은 더욱 청렴결백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이방인과 나그네를 배려하기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이방인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으니, 이방인의 심정을 알지 않느냐?”(탈출23,9)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전의 자신들의 모습을 기억한다면 배려해 주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이제 그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계속해서 받고 싶다면 계속해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방인과 나그네를 배려하는 것은 하느님 백성이 주도적으로 해 나가야 할 사명입니다. 배려는 내가 먼저 하는 것입니다. 주도권이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문을 열어 주어야 그가 들어 올 수 있고, 내가 음식을 마련해 주어야 그가 배불리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내가 옷을 주어야 그가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가 비록 이방인이거나 나그네라 할지라도 그를 존중하고 배려해 주면,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기억하시고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또한 이러한 규정들을 공동체가 잘 지켜 나간다면 그 공동체는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이러한 규정들이 어린 시절부터 몸에 습관이 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규정들을 어릴 적부터 잘 지켜 나갈 수 있도록 가정과 교회 안에서 가르친다면 그들이 성장하여 공동체를 이끌어 나갈 때에는 하느님 백성의 합당한 품위를 통해서 하느님께 큰 영광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정의를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백성은 정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정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정의는 헛소문에 반응하며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단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는 많은 사람이 그를 단죄한다 하여 합세하여 그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는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도움을 내미는 삶이지, 상대방의 어려움을 보고 그냥 지나치거나 서로 싸움을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는 가난한 이, 말 못하는 이들의 권리를 찾아주고,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지 다수의 무리에 편들며 그들을 부추기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는 편협한 시각으로 자신의 주장을 절대적인 선으로 포장하여 선포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정의는 한 번 입었다가 불편하다고 벗어 버리는 그런 겉옷 같은 것도 아닙니다. 정의는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고, 내 몸에서 하느님을 향한 열정 때문에 터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8. guest 님의 말:

     

    2.8. 안식년과 안식일, 그리고 축제에 관한 법(탈출23,10-19;31,12-17)

    탈출기는 휴식과 축제가 반복되어서 나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하느님 안에 쉬면서 모든 이들을 배려하는 것이고, 계속해서 강조해야 하는 것은 축제를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기억하며 하느님께 감사하고,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땅에게 주는 안식년과 안식일

    휴식은 인간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창조물에게도 필요합니다. 인간이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나머지는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먼저 땅에게 7년째는 안식년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땅도 다시 힘을 찾고, 백성 가운데에서 가난한 이들도 묵은 땅에서 나는 것들을 먹을 수 있게 되고, 들짐승들도 먹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배려할 때,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조화롭게 살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이는 너희 소와 나귀가 쉬고, 너희 여종의 아들과 이방인이 숨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탈출23,12).

     

    엿새 동안 일한 인간은 이렛날에는 쉬어야 합니다. 주인이 쉴 때 소나 나귀도 쉴 수 있고, 종들이나 이방인들도 쉴 수 있게 됩니다. 주인이 멈추어야 모든 이들에게 휴식의 기회가 주어지니 안식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의 문제이고, 개인의 휴식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거룩한 휴식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반드시 이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삼 대 축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무교절과 수확절과 추수절의 연중 삼 대 축제를 지낼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아빕 달 정해진 때에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그달에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아무도 빈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탈출23,15)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밭에 씨를 뿌려 얻은 너희 노동의 맏물을 바치는 수확절을 지키고, 밭에서 너희 노동의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연말에는 추수절을 지켜야 한다.”(탈출23,1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남자들은 모두 일 년에 세 번 주 하느님 앞에 나와야 한다.”(탈출23,17)라고 말씀하시면서 제물 봉헌의 규정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위한 희생 제물의 피를 누룩 든 빵과 함께 바쳐서는 안 된다. 또 축제 때 나에게 바친 굳기름을 이튿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도 안 된다. 너희 땅에서 난 맏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주 너희 하느님의 집으로 가져와야 한다. 너희는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아서는 안 된다.”(탈출23,18-19)

     

    하느님께 드리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추수에 대한 감사로 가장 좋은 것을 바치라고 말씀하시면서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아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십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음식을 할 때, 이 규정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데, 이 규정을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염소고기를 요리하기 위해서는 고기를 씻어야 하는데 차가운 물이나 다른 음료로는 씻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고기의 지방에 차가운 액체가 들어가면 그 지방이 인간의 위장에서 음식 덩어리 전체를 굳게 하고 달라붙게 하여 심한 통증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염소 고기를 씻으려면 뜨거운 것이 필요했습니다. 염소 고기를 요리하기 전에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생치즈에 몇 시간 담가 두면 좋다고 합니다. 또한 물이 귀한 광야에서 물 대신에 염소의 젖을 사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미의 젖으로 새끼를 삶아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백성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는 것은 새끼의 죽음에 어미를 가해자로 만드는 행위이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또한 그렇게 음식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자녀들은 어미와 새끼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정착 이후, 이 문제는 우상숭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졌기에 추수 감사 예절에서 특별히 강조되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첫 곡식을 수확하여 거두어들인 후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는 것을 전통적인 관습으로 지켰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들로 가지고 나가 땅과 나무에 뿌리며 풍요를 기원했는데, 이런 가나안 사람들의 풍요예식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땅의 풍요로움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미의 젖으로 새끼 염소를 삶는 것은 잔인한 방법이니 인간적인 차원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조리 방법입니다. 인간을 위해서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동물들과 식물들에게 인간은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결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분명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9. guest 님의 말:

    2.9. 가나안 땅 입주에 관한 약속과 경고(탈출23,20-33)

    새로운 땅에 들어가면 새로운 것을 접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에 혼돈과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해 주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탈출23,20)

     

    주님께서는 약속의 땅을 향하는 이 백성에게 몇 가지 경고를 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이방인들과 어울려 살아가며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이방인들과 어울려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우상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이방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이방신까지 받아들이게 되고, 시간이 지난 후에는 신앙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이방신이 신앙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다 하니 나도 해도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나눔 32: 내 딸이 타종교를 믿는 집안이나 우상숭배를 하는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면 나는 내 자녀에게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조언을 해 줄까요? 내 아들이 타종교 신자와 혼인을 한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말해줄까요?

     

    요즘 부모님들의 고민 중에는 혹시 내 딸이 어떤 여자랑 결혼을 한다 하거나 내 아들이 어떤 남자랑 결혼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것도 있습니다. 가정환경과 신앙생활에 좀 더 힘을 써야 하고, 말로만 고백하는 신앙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신앙을 부모님들이 먼저 살아가야 합니다. 대화하는 가정,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가정,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가정 분위기를 만들고,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가정을 만든다면 이런 문제들은 덜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10. guest 님의 말:

    2.10. 시나이산에서 계약을 맺다(탈출24,1-18)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으면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지키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는 이유는 이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아쉬움이 있어서 인간과 계약을 맺고, 바라시는 것이 있어서 인간을 돌보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참된 평화를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으니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지켜야 합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며 하고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 나아갈 사람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시나이산에서 계약을 맺으십니다. 계약을 맺기 전에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나아올 사람들을 지명하십니다.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원로 일흔 명을 데리고 주님에게 올라와, 멀찍이 서서 경배하여라. 너 모세만 주님에게 가까이 오고 다른 이들은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 백성은 아예 산으로 올라와서는 안 된다.”(탈출24,1-2)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의 아들들입니다. 이들은 아론과 함께 사제직을 수행할 사람들입니다. 사제직을 수행할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원로 일흔 명이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 외에는 멀찍이 서서 경배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과 마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가까이에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된 사제와 복사들과 전례봉사자들만이 제단에 설 수 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은 함부로 제단에 올라가서는 안 됩니다. 성당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주님 앞에 있음을 명심하면서 경건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사제직을 수행할 사람들이 하느님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전체와 계약을 맺으셨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모세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고, 백성에게 돌아와서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자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탈출24,3)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는 주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주신 법규와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또한 이것은 자랑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셔서 주신 말씀이고 법규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 백성은 한목소리로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하고 고백한 것입니다.

     

    모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기념 기둥 열둘을 세웠습니다. 이 열두 기둥은 주님과 맺은 계약의 기념비입니다. 이 기념비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는 다릅니다. 오벨리스크에는 신에 대한 찬가와 그것을 세운 파라오의 업적이 이집트의 상형문자인 히에로글리프로 새겨졌지만, 이 열두 기념 기둥은 계약의 기념비로서 열두 지파는 모두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하느님께서는 이 열두 지파를 돌봐 주신다는 것을 드러내는 혼인반지와 같은 것입니다. 이 계약을 통해서 열두 지파는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고, 열두 지파 모두가 하느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며, 이 기념 기둥은 그 증거가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몇몇 젊은이들을 그리로 보내어, 번제물을 올리고 소를 잡아 주님께 친교 제물을 바치게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19,6)고 말씀하셨는데, 사제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이고, 사제들의 나라는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따라서 모세가 젊은이들이 번제물을 올리고 친교 제물을 바치도록 한 것은 모든 이들이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피의 절반을 가져다 여러 대접에 담아 놓고, 나머지 절반은 제단에 뿌렸습니다. 제단에 제물의 피를 바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속량하기 위함입니다. 짐승의 피는 죄를 지은 사람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고, 인간은 하느님께로부터 자비와 구원을 입게 됩니다.

     

    모세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백성들에게 읽어주고, 백성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백성이 하느님의 계약을 받아들이자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며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탈출24,8)라고 선포하였습니다. 피는 생명이고,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고,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자비와 구원을 베푸시어 생명을 이어가게 하십니다.

     

    이제 그 피는 참된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로 대체되어 예수님의 거룩한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는 주님의 자비와 구원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시며 새 계약을 맺어주셨습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며 나는 주님과 계약을 맺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새 계약을 지키며,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모든 이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을 얻습니다. 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신 것입니다.

     

    나눔 33: 하느님의 자녀인 나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노력을 통해 내가 얻고 있는 기쁨들은 무엇입니까?

     

    시나이산에 머물며 계명을 받게 될 모세

    주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내가 있는 이 산으로 올라와 거기 머물러라. 내가 백성을 가르치려고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돌 판을 너에게 주겠다.”(탈출24,12)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일어나 자기 시종 여호수아를 데리고 하느님의 산으로 올라가면서 원로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올 때까지 여기에서 우리를 기다려라. 아론과 후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문제가 있는 이는 그들에게 가거라.”(탈출24,13-14)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산을 덮었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시나이산에 자리 잡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덮었습니다. 이렛날 주님께서 구름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모습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기에 산봉우리에서 타오르는 불과 같았습니다. 모세는 구름을 뚫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모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그 산에서 지냈습니다.

     

    2.11. 예물과 성소에서 사용될 제구들에 관한 규정들(탈출25,1-31,11)

    모세는 산에서 사십 일 동안 시나이산에서 지내며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소를 만들라 하시고, 그 성소에서 그들 가운데에 머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막의 모형과 온갖 기물의 모형들을 보여 주시며 그대로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들은 탈출기 35장 이하에서 차례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계약 궤(탈출25,10-22), 제사상(탈출25,23-30), 등잔대(탈출24,31-40),

    성막(탈출26,1-14), 성막에 쓸 목제품(탈출26,15-30),

    휘장(탈출26,31-37), 제단(탈출27,1-8), 성막 뜰과 등불(탈출27,9-21),

    사제들의 옷(에폿, 가슴받이, 겉옷, 성직패, 그 밖의 사제복: 탈출28,1-43),

    분향 제단(탈출30,1-10), 물두멍(탈출30,17-21),

    성유(탈출30,22-33), 향료(탈출30,34-38)

     

    하느님께서는 이것들에 대한 자세한 규정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소의 제구들을 만들기 위해서 먼저 하느님을 위하여 예물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소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모든 것들을 모든 이들이 바칠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제들의 성별(聖別)

    성소에서 예식을 거행하기 위해서는 사제들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제로서 하느님을 섬기도록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성별하도록 하셨습니다. 성별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제단 앞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따로 구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정결하게 씻기고, 아론에게 사제복을 입히고, 성별 기름을 가져다 그들 머리에 부어 성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아론의 아들들에게 저고리를 입히고, 그들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 두건을 감아 주고, 직무를 맡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임직식을 거행하도록 명하십니다.

     

    너는 이와 같이 내가 너에게 명령한 것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그대로 다 해 주어라. 너는 이레 동안 그들의 임직식을 거행해야 한다.”(탈출29,35)

     

    모세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제들의 임직식을 거행했습니다. 먼저 제물을 잡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죄 제물을 바쳤습니다. 이어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하여 번제 제물을 바쳤는데, 이것은 주님을 위한 번제물이고 향기며 주님을 위한 화제물입니다. 그리고 사제들과 사제들의 옷을 제단 위의 피와 성별 기름으로 그들을 성별하고, 주님을 위한 화제물을 바쳤습니다. 이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거룩한 예복을 입고 직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론의 거룩한 옷은 그의 후대 자손들에게 물려주어, 그들이 그것을 입고 기름부음을 받아 직무를 맡게 하여라. 그의 자손들 가운데에서 그의 뒤를 이을 사제는 만남의 천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예식을 거행할 때, 이레 동안 그 옷을 입어야 한다.”(탈출29,29-30)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의 사제서품식의 규정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임직식을 거행하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사제직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사제들은 성소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제사를 봉헌하게 됩니다. 그렇게 한생을 사제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공동체가 사제들이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단 축성 지침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속죄하기 위하여 날마다 속죄 제물로 황소 한 마리를 바쳐라. 또 제단에 대한 속죄로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 제물을 바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성별하여라.”(탈출29,36)라고 말씀하시며 제단을 축성하는 지침을 주십니다.

     

    너는 이레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하여 그것을 성별하여라. 그러면 제단은 가장 거룩한 것이 되고, 거기에 닿는 것도 모두 거룩하게 된다.”(탈출29,37)

     

    하느님께서는 제단은 가장 거룩한 것이고, 제단에 닿는 것도 모두 거룩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제와 제단의 봉사자들은 어떻게 제단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제단에서 거룩하게 미사를 봉헌해야 하는지를 늘 기억하면서 제단에서 봉사해야 합니다.

     

    사제들의 정화

    사제는 제단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사제는 거룩한 차림을 하고 거룩하게 하느님을 섬겨야 합니다. 사제들은 속죄하기 위하여 날마다 속죄 제물로 황소 한 마리를 바쳐야 하고, 제단에 대한 속죄 제물을 바치고 기름을 부어 성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제는 합당한 몸가짐으로 주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고, 모든 죄와 부정을 깨끗이 씻어야 거룩하신 하느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사제는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백성도 거룩하게 하느님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제는 제단을 정화하고 성별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하느님께 제사를 바치는 제단도 거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제들은 합당하게 하느님을 경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사제도 사람인지라 허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사제들의 이런 허물을 발견하고 사제를 멀리하거나 외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부족한 사제가 미사를 봉헌하면 미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사효성과 인효성입니다.

    사효성이란 말은 특별히 칠성사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성사의 효력은 예수님께서 만드신 그 성사의 예식 자체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성사를 집행하는 사제의 태도나 성사를 받는 사람의 자격은 문제가 되지 않고, 주님이 세우신 그 성사의 예식 자체로써 주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사제가 세례성사를 베풀었으면 당연히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고, 고백소에서 죄를 고백하고 사제가 사죄경을 염했으면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인효성은 사효성과 달리 성직자의 정성이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신자의 마음 자세에 따라 그 은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로 준성사에 적용되는데, 성당에서 기도를 한다든지 사제로부터 강복을 받는다든지 할 때, 그 기도와 강복의 은혜는 그 의식 자체로써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정성과 마음의 자세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효성은 수도꼭지를 틀면 그 자체로써 물이 나오는 것과 같고 인효성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예술적인 능력에 따라서 그 그림이 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정성을 다하여 성사를 거행하고,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제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거룩함에 물들게 해야 하고, 은총 지위에 머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매일매일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시간에 바치는 것이 사제의 직무인 것입니다. 그렇게 직무를 수행할 때, 성소는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인구 조사에 대한 지침

    하느님께서는 인구 조사에 대해서 지침을 말씀해 주십니다. 인구 조사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인구 조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보호하심에 생명을 유지하고 풍요로움을 얻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니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인구 조사를 받는 스무 살 이상의 남자는 누구나 주님에게 예물을 올려야 합니다. 이 예물들은 성소의 유지(만남의 천막 예식 비용)를 위해서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통치자가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하는 인구 조사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하려 하자 요압은 주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백성을 지금보다 백배나 불어나게 하시어,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서 친히 그것을 보시게 되기를 바랍니다만,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려고 하십니까?”(2사무24,3)하고 다윗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위압적으로 명령하자 어쩔 수 없이 인구 조사는 실시되었고, 나중에 다윗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다윗은 제가 이런 짓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당신 종의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2사무24,10)하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은 인구 조사를 하는 행위를 통해서 하느님께로부터 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통치자가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인구 조사를 할 경우에는 하느님께로부터 벌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구 조사를 받는 이는 누구나 성소 세켈로 반 세켈을 내야 합니다. 그 반 세켈은 주님에게 올리는 예물입니다. 그런데 이 예물은 모든 이가 평등하게 내야 합니다.

     

    너희 목숨에 대한 속죄로 주님에게 이 예물을 바칠 때, 부자라고 반 세켈보다 더 많이 내도 안 되고, 가난한 이라고 이보다 덜 내도 안 된다.”(탈출30,15)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께 감사의 예물을 마땅히 드려야 한다는 것이고, 하느님 앞에서 모든 이가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부자라 해서 그 목숨값이 더 비싸지도 않고, 가난한 사람이라 해서 그 목숨값이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봉헌된 이 예물은 모두 만남의 천막 예식 비용으로 쓰게 됩니다. 또한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인간 전체의 마땅한 의무이고, 하느님 백성은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의 유지를 위해 봉헌할 때는 마음을 담아서 봉헌해야 하고, 그 돈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봉헌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이 봉헌한 봉헌금은 전례와 자선, 선교와 신앙교육에 사용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만일 한해 결산의 비율이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급급하고, 먹고 마시며 조직을 유지하는데 더 많이 사용된다면 그것은 올바른 운영이 아닙니다. 이것은 공동체 전체가 반성을 해야 합니다. 또한 봉헌금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곳에 써야지 다른 곳에 써서는 안 됩니다. 봉헌금은 하느님께 봉헌된 것이기에 자신의 품위유지나 친교, 더 나아가 개인적인 취미활동에 사용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큰 죄임을 탈출기는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두멍

    사제직무를 수행하는 사제들은 정결하게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영적인 정결도 중요하지만 육적인 정결도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제들을 위해서 물두멍을 만들게 하십니다.

     

    너는 몸을 씻을 물두멍과 그 받침을 청동으로 만들어, 만남의 천막과 제단 사이에 놓고, 거기에 물을 담아라.”(탈출30,18)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물두멍의 물로 손과 발을 씻어야 합니다. 그렇게 물로 씻고 만남의 천막으로 들어가야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식을 거행하려고, 곧 주님에게 화제물을 살라 바치려고 제단에 다가갈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사제들은 손과 발을 씻고서 성무를 집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제직을 수행하는 이들이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하는 규정입니다.

     

    모세는 만남의 천막 어귀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의 거울을 녹여 청동 물두멍과 청동 받침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여인들의 거울을 녹여서 청동 물두멍을 만들었을까요? 만남의 천막 어귀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이 거울을 사용한 이유는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하여 언제나 자신들을 단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여인들이라면 얼마나 경건한 삶을 살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사제들이 제단으로 나아갈 때, 그 물두멍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기억한다면 더욱 경건하게 자신의 마음자세를 다지게 될 것입니다.

     

    미사를 봉헌하려 할 때, 귀한 시간을 내어 제대 봉사를 해 주신 봉사자들의 정성을 마주하면 감동이 솟아오릅니다. 경건한 제단과 깨끗한 성체포와 성작수건, 손대기 두려울 정도로 경건하게 펼쳐진 제의…, 이런 준비 속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는 당연히 봉사자에게 감사하게 되고, 봉사자의 수고가 온전히 하느님께 올라가기를 청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물두멍에서 몸을 씻을 때, 그 여인들에게 감사하며 하느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성화를 위한 삶을 다짐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성전에 들어갈 때 성수를 찍어 기도하며 들어갑니다.

    주님,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아멘

     

    이 기도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사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씻는 것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수를 찍고 성당 안으로 들어갈 때, 나 또한 아론과 그의 아들들처럼 사제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기 위해 성전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성당 안으로 들어갈 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했던 것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성유와 향료에 대한 규정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가장 좋은 향료를 이렇게 장만하여라. 액체 몰약을 오백 세켈, 향기로운 육계향을 그 절반인 이백오십 세켈, 향기로운 향초를 이백오십 세켈, 계피를 성소 세켈로 오백 세켈, 그리고 올리브 기름 한 힌을 장만하여라. 너는 향을 만드는 법에 따라 이것들을 잘 섞어 거룩한 성별 기름을 만들어라. 바로 이것이 거룩한 성별 기름이 될 것이다.”(탈출30,23-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별기름은 오로지 하느님께 관련된 모든 것들에 부어 하느님을 위해서만 사용될 수 있도록 준비되었습니다. 성별기름은 오로지 하느님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부어 하느님을 위해 살도록 성별해야 합니다. 성유는 말 그대로 거룩한 기름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곳에나 부어서도 안 되고, 아무에게나 발라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이 공동체에서 잘려 나가게 될 것입니다. 향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향료들, 곧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을 장만하여, 이 향료들과 순수한 유향을 섞는데, 각각 같은 분량으로 하여라. 너는 향 제조사가 하듯이, 이것들을 잘 섞고 소금을 쳐서 깨끗하고 거룩한 것을 만들어라.”(탈출30,34-35)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그 가운데 일부를 가루로 빻아서, 내가 너를 만나 줄 만남의 천막 안 증언 궤 앞에 놓아라. 이는 너희에게 가장 거룩한 것이다.”(탈출30,36)

     

    거룩하신 하느님께 봉헌될 것들은 거룩하게 만들어야 하고, 거룩하게 만들어진 것들은 거룩한 곳에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향료의 사용에 대해서 엄격하게 규제를 하십니다. 사사로이 쓰려고 같은 배합법으로 향을 만들어서도 안 되고, 향기를 즐기려고 그와 같은 것을 만드는 사람은 이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사사로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은 다니엘서의 벨사차르에게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벨사차르 임금이 천 명에 이르는 자기 대신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벌이고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술기운이 퍼지자 벨사차르는 자기 아버지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기물들을 내오라고 분부하였습니다. 벨사차르 임금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금과 은,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을 찬양하였습니다. 벨사차르가 하느님의 집에서 약탈해 온 기물로 술을 마실 때, 갑자기 사람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촛대 앞 왕궁 석고 벽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도 그 글을 해석할 수 없었지만 다니엘은 그 글을 풀이해 주었고. 다니엘이 풀이한 대로 그날 밤 벨사차르는 죽음을 맞게 됩니다.(참조: 다니엘5,1-30) 거룩한 것은 거룩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것을 함부로 대할 때, 벨사차르의 운명은 내 운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막 제조 기술자

    하느님께서는 성막 제조 기술자로 한 사람을 지정하시며 그를 하느님의 영으로, 곧 재능과 총명과 온갖 일솜씨로 채워 주겠다.”(탈출31,3)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 기술자는 유다 지파에 속하는 후르의 손자이며 우리의 아들인 브찰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브찰엘의 조수로서 단 지파에 속하는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브찰엘에게 붙여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재능 있는 모든 이의 마음에 재능을 더해 주어, 하느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들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그들은 만남의 천막과 증언 궤와 그 위에 덮을 속죄판과 천막에 딸린 모든 기물, 상과 거기에 딸린 기물들, 순금 등잔대와 거기에 딸린 모든 기물, 분향 제단과 번제 제단과 거기에 딸린 모든 기물, 물두멍과 그 받침, 예식을 거행할 때 입는 옷, 사제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의 아들들이 사제직을 수행할 때 입는 옷, 성별 기름과 성소에서 쓸 향기로운 향을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만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시나이산에서 모세와 말씀을 다 하신 다음, 당신 손가락으로 쓰신, 돌로 된 두 증언판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이렇게 모세는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과 함께 사십 일을 거룩한 산에서 보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모세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하느님께서 주신 기쁨은 모세로 하여금 백성들이 주는 피곤함을 다 잊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또 다른 문제들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11. guest 님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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