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복음화의 일환으로서 냉담의 예방과 치유

 

<새로운 복음화의 일환으로서 냉담의 예방과 치유>



오늘 전 세계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봄”이라 일컫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복음화”를 교회의 시대적 사명의 표지로 받아들이며 그 실현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근대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전국적 차원으로 그리고, 각교구 차원으로 ‘새로운 복음화’를 모색하며 시도하고 있다.


요즈음 유행어처럼 쓰이는 ‘새로운 복음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화’, ‘선교’라는 전통개념과 근본이 같은 것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시각,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표현’으로 선교하고 복음화한다는 것이다. 낡은 방법이 아닌 참신한 방법으로 선교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복음화가 요청하는 것은 우리 교회가 세상과 사람들에게 선교하기에 앞서서 또는 동시적으로 교회와 그 안의 사람들이 먼저 복음화되고 달라지라는 것이다. 즉 우리 사제를 비롯하여 모든 신자들이 전교하기 위하여 먼저 회심하고 영적으로 쇄신되고 성령으로 충만하며,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 이미 냉담상태에 있는 사람들과 잠재적 냉담에 가까운 소극적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하고 선교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의 신자들부터 신앙 활성화해야 한다. 냉담자들에 대한 치유와 소극적 신자들에 대한 냉담 예방책으로 활성화 방법을 찾아 실행해야 한다. 또한 적극적 신자들을 복음화 일꾼으로 양성하고 활용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제한된 시간관계로 냉담자 예방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냉담자 재복음화, 치료측면은 사례발표에서 이미 언급되었다).


그에 앞서 간단히 냉담자의 개념을 정리하고 냉담의 요인을 지닌 한국사회의 현실상황과 교회 공동체 내부의 상황을 살펴보겠다.




1. 냉담자의 개념 정립




교회 역사 안에서 ‘냉담자’의 개념은 여러 가지로 정의되었다(때론 배교자, 이교자, 파문당한 사람 등).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렇게 규정된다. “믿음이 식어서 사랑의 계명과 교회법을 잘 지키지 아니하고, 신자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는 사람”


요약해서 말하면 “수계 생활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러한 정의엔 신앙에 대한 내면적 자세와, 외적 실천행동이 동시에 고려된 판단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에서 ‘냉담자’로 규정되는 사람은 ‘최근 3년 이내에 판공성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다(판공성사표 제도 없는 서구 교회와 다른 정의이다).


여기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냉담이란 본래 신앙의 내면 양심적 측면과 외적 행위 -양쪽 모두 결함이 있을 경우에 해당되는데, 한국교회에선 판공성사 불이행자라는 실천적 행위 부분만을 기준으로 냉담자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비록 판공성사는 보지 아니했다 해도, 내적으로 신앙을 갖고 있으며, 교회의 기본적 가르침을 존중하고(때로 미사에 참여하며) 복잡한 문제가 해결되면 신앙생활을 정상화 할 것으로 마음 먹는 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교회의 냉담자 개념을 존중하면서 그 치유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냉담하기 쉬운 소극적 사람들에 대한 교육과 예방책이다. 우리 교회 안에 잠재적 냉담에 가까운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인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냉담의 원인(요인)




냉담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냉담의 원인에 관한 분석이 요청된다. 그리고 냉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교회의 객관적 상황을 고려함과 동시에 냉담의 유혹에 이르는 그리스도인 주관적 계기들을 고찰해야 한다. 냉담이란 객관적 여건에 대한 주관적 반응에 의해 진행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1) 한국 사회의 현실


한국 사회는 근래 30여년간 경제 개발을 통하여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이러한 경제성장은 우리사회의 여러 분야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큰 문제점도 동반했다.




가) 산업화에 따른 가치 혼란 :물질 제일주의


유럽 사회가 근대사회로 변하는데는 3세기 정도의 긴 시간을 필요로 한데 비해, 한국사회는 30년 정도 사이에 전통적(전근대적) 사회구조를 근대화하였다. 따라서 우리 사회엔 외적인 삶의 모습은 급변하였지만, 거기에 따르는 내적변화, 정신적 뒤받침이 이뤄지지 못해 내외 조화를 못 이루고 있다.


이에 전통적 가치가 전도되고, 요란스러우며, 물질 제일주의가 깊이 침투되고 있다. 이때 근검, 절약, 절제는 결핍사회의 산물로 여기며 극기, 수덕, 나눔을 경시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 이기적 소비 편의주의에 빠진다. 인생을 즐기는 것이 삶에 있어 중요 현안으로 여겨, 주말엔 여가 선용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며, 교회생활, 주일전례, 미사참석은 뒷전으로 밀린다. 물질적 가치기준에 의해 살아갈 때 인간관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변하고, 공동체 의식을 깨트리며, 봉사, 희생에 무관심하다. 그럴 경우 종교와 신앙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설령 종교인이 된다해도 그의 삶엔 현세 구복적, 기복적 신앙 형태를 이루게 되고 이해 관계에 따라 언제든 냉담의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나) 반종교적, 무신론적 분위기


오늘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나 그 존재의식은 불필요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무신론은 최소한 신의 존재 유무를 논란하며 신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의식에 관하여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무신론적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은 오늘의 사회에선 점점 신이 존재하든 안하든 살아 있던 죽었던, 관심밖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신은 있어도 좋다. 나와 무관하니까 그러나 없으면 훨씬 낫다” 이러한 현대인의 표현은 하느님에 대한 심각한 무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종교적 세속화 상황을 부추키는데 가장 중요한 몫을 하는 것중의 하나가 3S문화이다. 이 문화는 일반대중과 노동자들의 정책비판과 저항의식을 마비시킬 목적으로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후 여러 나라에서 의도적으로 유포했다고 하는데, 오늘 점차적으로 전 세계에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도 지배적 대중 문화의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문화가 지배적인 사회의 대중은 도덕적, 문화적으로 빈약해지고 때론 윤리적으로 황폐화되며, 그 결과 각종 범죄들과 사회 병리 현상들이 나타나 사회의 기존질서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 3S 문화에 충족된 사람들은 유명한 가수, 탤런트, 배우, 운동선수들을 영웅시하고 열광적으로 흠모하며 모방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성서나 교회서적에 눈을 돌리고자 하지 않으며 십자가나 성모상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오늘의 젊은이들의 냉담의 한 주요 요인이다.




다) 교육제도의 문제로 인한 전인교육의 실종


지적 교육중심의 현행 교육제도는 학생들의 전인교육을 어렵게 하고 있어 전인성숙을 이루는데 큰 장애를 준다. 인간개발을 위한 사회적, 정적측면, 윤리적, 영적 측면을 위한 교육과 성장을 위한 기회가 별로 없고, 오히려 그런 측면의 노력은 학교공부에 지장을 주는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학생들의 주일미사참석, 주일학교 교육, 중고생들의 교회활동과 봉사활동이 권장되지 못하고 오히려 불참석을 유도한다.


전인성숙이 안되는 가운데 공부에 쪼들이며, 스트레스에 눌리는 중·고 청소년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윤리적으로 방황하고 있다(술, 담배, 마약, 가출, 폭력 등).



2) 교회 내부의 상황


근래 한국교회는 외적으로 많이 성장하여 왔다. 최근 15년 사이에 신자비율은 전체 인구중 4%에서 8.07%(1995년 말 통계)로 증가하였으며, 신자수는 거의 세배에 가깝도록 급성장하였다. 그러나 한편 내실과 영적 성장이 병행되지 못하고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 대전교구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역인구 중 신자비율이 5.2%로, 전체교구 중 하위권에 속하는 실정이다. 또한 공동체 내부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현실적 사목구조 전반을 살펴보면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사목방침과 내면적 분위기를 쇄신해야 할 것이다.






가) 교회의 구조와 조직의 경직성


교회의 전통적 조직과 구조는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급변하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오늘 사회의 추세는 민주화 과정에서 중앙집권적이며 관료적인 구조대신 권위와 권력이 분산되고, 집단 구성원들간의 의견이, 평등히 존중되며, 의사결정과정이 다양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 구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신자들 중 교회공동체의 신앙생활을 멀리하도록 하는 이유중 하나가 사제들의 구태의연한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감이다. 지나친 사제 중심의 사목과 보수적 사목의 낙후성이 지적된다.


조사보고서들에 의하면, 어려움이나 문제점을 상의하고 조언을 얻기 위해서 종전에 교회의 사목자들에게 찾아가던 많은 사람들이 근래엔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운명철학 분야의 종사자들에게 점점 더 호감을 가지고 몰려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목자들을 찾는 이들이 현격히 줄고 있다.


【 예) 美 조사보고 “귀하의 개인문제 상의하기 위해 누구에게 가느냐?”


1960년대; 교회 사목자, 종사자-42% 의사-29%, 심리 상담자18%


근래; 교회 사목자 5%미만, 심리상담자, 사회사업가를 찾음 】


이러한 경향의 원인을 관계학자들은 여러모로 분석하는데, 그 중에 사회의 빠른 변화, 학문, 문화의 급속한 발전에 비해, 그에 대응 대처할 수 없는 교회의 둔감성, 사목자들의 상황 및 시대적 토착화의 영성부족, 인간에 관한 학문의 지식 및 인간을 돕는 기술의 부족을 손꼽고 있다.




나) 지역간 본당들의 불균형과 본당내 친교의 어려움


인구의 도시 급증으로 인해, 지역간 본당들이 불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 대도시의 본당들은 점점 대형화되고 있고, 지방의 본당들은 위축되어가고 있다.


본당의 대형화는 교회의 본질적 요소인 친교를 불가능하게 한다. 사목자와 신자들 그리고 신자들 상호간의 인격적 관계와 친교의 만남을 어렵게 한다. 이에 따르는 소외현상으로 냉담, 행방불명자, 개종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편 지방본당에선, 젊은이들의 도시이주로 신자 노령화 현상으로 신자감소, 예비자 감소, 경제적 어려움, 사목협력자들의 부족으로 공동체 활기가 떨어지고 사목자의 사기가 저하되고 있다.    



다) 신자들의 신앙의 본질 이해 부족, 선교,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이해 부족과 신앙 생활 소극성.


많은 신자들이 성서, 성사 및 전례 이해 부족으로 신자 생활의 소극성과 무력감을 드러내고 있다(교회 생활에 흥미 못 느낌). 따라서 신앙인으로서 기쁨과 긍지를 못 갖고 있으며, 게다가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선교 활동에도 소극적이고, 잠재적 냉담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많은 것이다.


이러한 결과엔 우선 체계적 교육 프로그램을 못 갖추는 교회 당국의 책임이 크다. 또한 지속 교육과 쇄신, 성장하려는 신자들의 의지 부족도 큰 문제이다.




우리 교구에서 실시한 「신자 의식 실태 조사」에 의하면 ‘선교’ 부문의 18항 : “선교 활동에 있어 어려운 점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에 대한 조사에서


① 응답의  50% – 교리 지식 부족하다.


②  "    21.6% – 신앙은 각자 자유, 권유 사항 아니다(구원관, 신앙관의 문제점, 신앙 이해 부족)


③  "    13.6% – 구체적 선교 방법을 모른다.




라) 교회의 영성 운동과 사도직 단체의 한계성, 소공동체의 소극성


우리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영성운동과 사도직 단체들이 대부분 국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토착화 과제가 놓여 있다. 한편 그러한 운동들(예 : 꾸르실료, 성령 세미나, M.E. 등)의 수료 후 지속 교육 및 쇄신 프로그램이 이행되고 또한 적극 참여해야 한다.


한편 우리의 현실 여건에 맞는 영성운동들과 사도직 단체들이 계발되어야 할 것이다. 영성 운동(신심 단체)들과 사도직 단체의 구성원들이 ghetto적 파벌주의를 형성한다든지 지도자적 선민의식으로 봉사대신 우월감, 지배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될 것이다. 선교를 위한 사도직 단체(예, 레지오 마리애)에는 남자와 젊은이들의 참여가 적은 편이다.


구역, 반 모임의 대다수가 활기를 잃고 있다. 구역, 반장들이 본당에서 임명되고 있기에 자발성이 부족하고 또한 leader로서의 양성이 미흡하다.




마) 신자 중산층화와 사목의 중산층 경향


근래 조사통계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은 전국민의 평균 수준에 비해 학력, 경제, 직업 및 사회적 지위 등에 있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예, 국회 의원과 고급 관료의 신자 비율은 15-20%이다).


한편,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는 이들 중엔 신자 비율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그 원인 연구와 분석, 그리고 대책이 필요하다.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 중에 – 본당 사목 계획과 운영이 중산층 신자들 중심으로 흔히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사목 위원들 대부분이 중산층으로 구성되며, 그들 의견이 본당 사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경제적으로 하위의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교회를 멀리하게 된다.


또한 경제적(주로 학력의) 하류의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 생활을 하기엔 어려운 상황이 있다. 무엇보다 노동과 피곤, 시간의 부족으로 긴 기간의 예비자 교리에 나가기 어렵다. 그리고 통신 교리도 어렵다(지적 수준 미달). 뿐만 아니라 휴일을 내기 어려워 주일 미사 참석이 쉽지 않다.




3. 냉담자 예방을 위한 방안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상황과 교회 내의 구조적 원인으로, 또한 신자들의 성장과 쇄신 노력 부족으로 냉담자들과 늘 냉담 가능성을 지닌 소극적 신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냉담자 재복음화 대책도 시급하지만, 더 우선적인 것은 냉담에 떨어지기 쉬운 소극적 신자층에 대한 교육과 복음화이다. 이 소극적 신자층은 잠재적 냉담에 가까운 신앙 생활을 하고 있어 우리 교회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변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예방적 차원에서 각별한 대책이 요청된다. 여기에서 두 방향을 고찰하고자 한다. 첫째는 지속적 재교육이고 둘째는 공동체의 친교 활성화이다.


「신자 의식 실태 조사」에서도 두 방안이 지배적 여론이다.




28항 : “냉담 예방 효과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① 영세 후 신자 재교육      (37.1%)


② 친교 방법                        (63%) 




27항 응답에서도 냉담자가 생기는 이유는 친교 부족 이유가 지배적이다.




1) 지속적 재교육


세 공관 복음은 우리에게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마르 4,1-9; 마태 13,1-9; 루가 8,4-8) 말씀을 전해 준다. 씨앗들은 4부류의 땅에 떨어진다. ① 길바닥, ② 돌밭, ③ 가시덤불 속의 땅, ④ 좋은 땅.


① 길바닥의 씨 : 뿌리도 못 내리고 있다가 새들의 먹이가 된다.


② 돌밭의 씨 : 싹은 났으나 햇볕에 금방 말라죽는다.


③ 가시덤불의 씨 : 싹이 나고 자라긴 하나 숨이 막혀 열매 맺지 못한다.


④ 좋은 땅의 씨 :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이 직접 설명해 주신 바에 의하면, 씨는 하느님 말씀이고, 땅(밭)은 인간들의 마음 자세이다. 또한 싹은 믿음, 열매는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결실(그리스도의 성숙 상징)이다.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결실은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갈라 5,22-23)이라고 할 수 있다.




네 그룹의 땅과 그리스도인의 다양한 자세를 비교해 볼 수 있다.


① 길바닥 같은 마음 – 빗물을 흡수하지 않고 흘려 버리는 굳은 땅처럼 하느님의 일들을 거부하는 경직된 마음(이기주의, 교만, 탐욕, 진리에 무관심)으로 하느님과 이웃에 폐쇄적이다.


② 돌밭 같은 마음 – 하느님의 말씀을 잠시 혹은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말씀의 뿌리, 싹은 유혹과 시련에 항구치 못한 그 마음에서 말라죽는다.


③ 가시덤불 같은 마음 – 말씀을 받아들이지만 역시 항구하지 못하여 하느님의 것보다 세상의 것을 더 높이 마음에 두면서 그 말씀을 가로막아 질식시킨다.


④ 좋은 땅같은 마음 – 잘 가꾸어진 마음이며 성숙을 위한 기본 자세이다. 성령에 의한 은총의 단비, 따뜻한 사랑의 햇살, 그리고 적절한 섭리의 기후에 의해 풍성한 결실 맺으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길바닥 같은 마음은 그야말로 냉담상태이며, 한편 돌밭 같은 마음, 가시덤불 같은 자세의 신자들은 잠재적 냉담자들로서 언제든 쉽게 신앙 생활을 떠날 수 있다.


지속적 재교육은 위의 세 그룹의 신앙 자세의 신자들을 좋은 땅과 같은 자세의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고 도와주는 것이다.




가) 지속적 재교육 제도


교구 차원, 본당 차원의 신자 재교육 전담반 구성. 냉담 가능성을 지닌 소극적 신자들은 주일 미사 외에 다른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웬만한 사유가 있으면, 주일 미사까지 빠질 수 있다. 주간 중 유일한 교육기회인 강론마저 놓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을 재교육시킬 수 있을 것인가?


현재 구성되어 있는 교구 차원과 본당 차원의 교육 담당 부서가 좀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계획과 그것을 실천하는 데 고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행의 대부분의 교육 프로그램이 지도자 양성 내지 적극적 신자들이 대상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예컨대, 본당에서 식상하기 쉬운 사순절 대림절 특강에 어떤 사람들이 참석하는가? 꼭 참석할 필요가 있는 소극적 신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나) 재교육의 목표 및 내용


왜 재교육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소극적 신자들은 흔히 성서, 전례, 기본 교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기도나 성사 및 전례 생활에 별 흥미 없어하고 성서 읽기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오늘의 시련과 유혹 많은 사회에서 어떻게 신앙을 키우며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겠는가? 과연 그들에게 재교육을 통해 무엇을 도와줄 것인가?




그리스도 신자로서의 정체성 확립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어느 시대보다 더욱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고(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왜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신자로서 긍지를 갖고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영적으로 쇄신되어야 한다(예컨대, 전쟁에서 상대방이 강할수록, 대적하기 위해 이쪽에서 더욱 훈련되어야 하고 더욱 무장이 잘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타종교의 유혹에 넘어 가기 쉽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속화에 젖어들고 말 것이다.




「신자 의식 실태 조사」 선교 부분 11항의 응답 결과에 의하면, 근래 천주교 신자들의 교회관, 구원관에 큰 문제점이 나타난다. – “가톨릭 신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보다 천당가기가 쉽다고 생각하십니까?”에 대하여 천당가기 쉽다가 44%, 사실은 똑같다가 56%로 나타났다.




어느 종교를 믿던지, 구원은 자신의 행실에 달렸다고 믿는 신자가 반수를 훨씬 넘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와 다른 종교의 차별화 의식 없는 신자들이 이렇게 많을 때, 적극적 선교에 대한 기대는 고사하고 개종과 냉담의 위기를 심각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선교 부분 8항 (영세 동기) : “왜 영세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까?”


① 유아세례          (31.1%)


② 종교 중 선택     (23.1%, 천주교가 제일 맘에 들어서)


③ 마음의 평화              (20.3%)




신앙생활 선택의 동기는 매우 인간적인 것일 수도 있고 유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비자 교리 기간이나 지속적 재교육을 통해 그러한 동기들이 정화, 순화되면서 성숙한 목적을 지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신앙은 실상 자유나 취미, 이기적 만족의 방편이 아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자녀로서 드려야 할 마땅한 孝이다. 안 그럴 경우, 미성숙한 동기와 그 신앙관(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신앙관) 때문에 쉽게 냉담한다. 천주교 생활을 하다보니, 천주교가 마음에 안들을 수도 있고, 마음의 평화를 잃을 수 있는데(동기를 만족시켜주지 못할 때), 그렇다면 기대에 어긋나니 떠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 재교육은 지식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복음적 가치관의 확립과 그리스도인 생활을 정립하는 데 목적하고 있다. 올바른 하느님관, 교회관, 세계관, 인생관, 올바른 구원관, 신앙관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영세 후 5년 이내에 냉담 경험자 중(55%가 이 기간 내에 냉담) 냉담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으로 보아, 영세 후 즉시 단계적 재교육이 요청된다(예; 지속교육 1단계는 영세하면서 3개월간 성사, 전례, 교회생활교육 후 첫 고백성사를 보도록 한다. 그리고 신심 혹은 활동단체에 가입하도록 도와준다).




신앙과 생활의 조화 정립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이며 신앙생활의 본질인 사랑은 두 측면을 이룬다. 하나는 수직적 측면으로 하느님과의 관계이며, 다른 하나는 수평적인 것으로 이웃과 세상과의 관계이다.


그리스도인 영성생활을 위해서는 두 측면의 조화와 통합이 필요하다. 수직적 측면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이웃에 대한 봉사와 사랑의 실천, 세상의 복음화 활동이 소홀히 되고, 세속을 떠나서 기도, 재와 극기 등 개인 수덕을 통해서만 완벽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한다.


한편 이웃관계로서 영성의 수평관계가 너무 강조될 때 세속주의에 빠진다. “이웃사랑을 통해 하느님께”라며 이웃과의 관계 개방을 과장하는 경우이다. 기도와 묵상, 참된 애덕 등 그리스도의 정신이 흐려지게 된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도와 활동의 일치, 신앙과 사회생활의 일치이다.


평신도의 영성이 세상 안에서 세상을 통해 세상을 복음화하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삶이라면, 신앙과 일상생활을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본당 안에서는 자신들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신자들도 흔히 가정이나 직장,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며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어 있다. 이러할 때 괴리감, 분리감을 느끼며 신앙생활이 짐이 된다(냉담하기 쉬워진다).




「신자의식 실태조사」 냉담부분 21항 “가톨릭 신자 생활하는 데 무엇이 가장 짐이 되는가?”


① 일상에서 죄를 많이 범하는 자책감                         (47.6%)


②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살다보면 생활에서 손해볼 때가 많다 (10.4%)




교회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복음 안에서 현세의 질서를 올바르게 하고 활성화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예술 등의 전반 분야의 제도들과 기구들을 복음화하는 데 기여해야 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구원과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순교자적 용기를 결행하도록 고무해야 한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세상에 대한 소극성과 부정적 자세로서의 지나친 죄의식 대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고무해야 한다.




다) 지속적 재교육의 구체적 방향




성서․교리지식을 위한 교육


선교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과 사회조사보고서 그리고 여러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 신자들 중에 성서를 자주 읽거나 묵상하는 사람이 소수이다.


㉡ 교회 출판물을 구독하는 신자는 매우 적은 편이다.


㉢ 신자로서 갖추어야 할 성서지식 및 교리지식과 사회인으로서 갖춰야 할 전문지식이나 상식간에 엄청난 차이를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은 잠정적 냉담자인 소극적 신자들의 자세이다. 성서를 읽지 않고 묵상하지 않으며, 신심 서적을 읽지 않을 때 그리스도인은 기도하기 어렵고, 성사생활을 잘할 수 없으며, 믿음을 키우기 어렵다. 각 본당별로 고민하며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영성교육을 위한 체계적 프로그램


전 신자가 골고루 알맞은 기회에 참여하여 받을 수 있는 영성교육 프로그램을 가진 본당 공동체는 그리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본당에서는 대림절·사순절에 식상하기 쉬운 반복적 내용의 특강과 일부 단체들이 연례행사로 치르는 피정이 있다.


특강이나 피정엔 꼭 참석해야 하는 젊은이들이나 남자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쇄신이 필요하고 또 일꾼으로 뛰어야 할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는 것이다.


신자들이 연령별, 단체별, 그룹별로 참석하여 공부할 수 있는 성서강좌, 교리교육뿐 아니라, 영성생활을 위한 체계적 교육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운영하여야 한다. -이점을 다각적으로 연구하여 성공해야 한다. 평신도 교육자를 양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전례 및 성사의 생활화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적지 않는 신자들이 전례, 특히 미사성제에 대한 본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형식적·습관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전례 시간이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여겨져 참석을 꺼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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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복음화의 일환으로서 냉담의 예방과 치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새로운 복음화의 일환으로서 냉담의 예방과 치유>

    오늘 전 세계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봄”이라 일컫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복음화”를 교회의 시대적 사명의 표지로 받아들이며 그 실현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근대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전국적 차원으로 그리고, 각교구 차원으로 ‘새로운 복음화’를 모색하며 시도하고 있다.

    요즈음 유행어처럼 쓰이는 ‘새로운 복음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화’, ‘선교’라는 전통개념과 근본이 같은 것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시각,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표현’으로 선교하고 복음화한다는 것이다. 낡은 방법이 아닌 참신한 방법으로 선교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복음화가 요청하는 것은 우리 교회가 세상과 사람들에게 선교하기에 앞서서 또는 동시적으로 교회와 그 안의 사람들이 먼저 복음화되고 달라지라는 것이다. 즉 우리 사제를 비롯하여 모든 신자들이 전교하기 위하여 먼저 회심하고 영적으로 쇄신되고 성령으로 충만하며,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 이미 냉담상태에 있는 사람들과 잠재적 냉담에 가까운 소극적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하고 선교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의 신자들부터 신앙 활성화해야 한다. 냉담자들에 대한 치유와 소극적 신자들에 대한 냉담 예방책으로 활성화 방법을 찾아 실행해야 한다. 또한 적극적 신자들을 복음화 일꾼으로 양성하고 활용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제한된 시간관계로 냉담자 예방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냉담자 재복음화, 치료측면은 사례발표에서 이미 언급되었다).

    그에 앞서 간단히 냉담자의 개념을 정리하고 냉담의 요인을 지닌 한국사회의 현실상황과 교회 공동체 내부의 상황을 살펴보겠다.


    1. 냉담자의 개념 정립


    교회 역사 안에서 ‘냉담자’의 개념은 여러 가지로 정의되었다(때론 배교자, 이교자, 파문당한 사람 등).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렇게 규정된다. “믿음이 식어서 사랑의 계명과 교회법을 잘 지키지 아니하고, 신자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는 사람”

    요약해서 말하면 “수계 생활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러한 정의엔 신앙에 대한 내면적 자세와, 외적 실천행동이 동시에 고려된 판단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에서 ‘냉담자’로 규정되는 사람은 ‘최근 3년 이내에 판공성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다(판공성사표 제도 없는 서구 교회와 다른 정의이다).

    여기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냉담이란 본래 신앙의 내면 양심적 측면과 외적 행위 -양쪽 모두 결함이 있을 경우에 해당되는데, 한국교회에선 판공성사 불이행자라는 실천적 행위 부분만을 기준으로 냉담자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비록 판공성사는 보지 아니했다 해도, 내적으로 신앙을 갖고 있으며, 교회의 기본적 가르침을 존중하고(때로 미사에 참여하며) 복잡한 문제가 해결되면 신앙생활을 정상화 할 것으로 마음 먹는 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교회의 냉담자 개념을 존중하면서 그 치유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냉담하기 쉬운 소극적 사람들에 대한 교육과 예방책이다. 우리 교회 안에 잠재적 냉담에 가까운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인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냉담의 원인(요인)


    냉담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냉담의 원인에 관한 분석이 요청된다. 그리고 냉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교회의 객관적 상황을 고려함과 동시에 냉담의 유혹에 이르는 그리스도인 주관적 계기들을 고찰해야 한다. 냉담이란 객관적 여건에 대한 주관적 반응에 의해 진행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1) 한국 사회의 현실

    한국 사회는 근래 30여년간 경제 개발을 통하여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이러한 경제성장은 우리사회의 여러 분야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큰 문제점도 동반했다.


    가) 산업화에 따른 가치 혼란 :물질 제일주의

    유럽 사회가 근대사회로 변하는데는 3세기 정도의 긴 시간을 필요로 한데 비해, 한국사회는 30년 정도 사이에 전통적(전근대적) 사회구조를 근대화하였다. 따라서 우리 사회엔 외적인 삶의 모습은 급변하였지만, 거기에 따르는 내적변화, 정신적 뒤받침이 이뤄지지 못해 내외 조화를 못 이루고 있다.

    이에 전통적 가치가 전도되고, 요란스러우며, 물질 제일주의가 깊이 침투되고 있다. 이때 근검, 절약, 절제는 결핍사회의 산물로 여기며 극기, 수덕, 나눔을 경시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 이기적 소비 편의주의에 빠진다. 인생을 즐기는 것이 삶에 있어 중요 현안으로 여겨, 주말엔 여가 선용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며, 교회생활, 주일전례, 미사참석은 뒷전으로 밀린다. 물질적 가치기준에 의해 살아갈 때 인간관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변하고, 공동체 의식을 깨트리며, 봉사, 희생에 무관심하다. 그럴 경우 종교와 신앙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설령 종교인이 된다해도 그의 삶엔 현세 구복적, 기복적 신앙 형태를 이루게 되고 이해 관계에 따라 언제든 냉담의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나) 반종교적, 무신론적 분위기

    오늘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나 그 존재의식은 불필요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무신론은 최소한 신의 존재 유무를 논란하며 신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의식에 관하여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무신론적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은 오늘의 사회에선 점점 신이 존재하든 안하든 살아 있던 죽었던, 관심밖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신은 있어도 좋다. 나와 무관하니까 그러나 없으면 훨씬 낫다” 이러한 현대인의 표현은 하느님에 대한 심각한 무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종교적 세속화 상황을 부추키는데 가장 중요한 몫을 하는 것중의 하나가 3S문화이다. 이 문화는 일반대중과 노동자들의 정책비판과 저항의식을 마비시킬 목적으로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후 여러 나라에서 의도적으로 유포했다고 하는데, 오늘 점차적으로 전 세계에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도 지배적 대중 문화의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문화가 지배적인 사회의 대중은 도덕적, 문화적으로 빈약해지고 때론 윤리적으로 황폐화되며, 그 결과 각종 범죄들과 사회 병리 현상들이 나타나 사회의 기존질서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 3S 문화에 충족된 사람들은 유명한 가수, 탤런트, 배우, 운동선수들을 영웅시하고 열광적으로 흠모하며 모방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성서나 교회서적에 눈을 돌리고자 하지 않으며 십자가나 성모상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오늘의 젊은이들의 냉담의 한 주요 요인이다.


    다) 교육제도의 문제로 인한 전인교육의 실종

    지적 교육중심의 현행 교육제도는 학생들의 전인교육을 어렵게 하고 있어 전인성숙을 이루는데 큰 장애를 준다. 인간개발을 위한 사회적, 정적측면, 윤리적, 영적 측면을 위한 교육과 성장을 위한 기회가 별로 없고, 오히려 그런 측면의 노력은 학교공부에 지장을 주는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학생들의 주일미사참석, 주일학교 교육, 중고생들의 교회활동과 봉사활동이 권장되지 못하고 오히려 불참석을 유도한다.

    전인성숙이 안되는 가운데 공부에 쪼들이며, 스트레스에 눌리는 중·고 청소년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윤리적으로 방황하고 있다(술, 담배, 마약, 가출, 폭력 등).

    2) 교회 내부의 상황

    근래 한국교회는 외적으로 많이 성장하여 왔다. 최근 15년 사이에 신자비율은 전체 인구중 4%에서 8.07%(1995년 말 통계)로 증가하였으며, 신자수는 거의 세배에 가깝도록 급성장하였다. 그러나 한편 내실과 영적 성장이 병행되지 못하고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 대전교구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역인구 중 신자비율이 5.2%로, 전체교구 중 하위권에 속하는 실정이다. 또한 공동체 내부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현실적 사목구조 전반을 살펴보면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사목방침과 내면적 분위기를 쇄신해야 할 것이다.



    가) 교회의 구조와 조직의 경직성

    교회의 전통적 조직과 구조는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급변하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오늘 사회의 추세는 민주화 과정에서 중앙집권적이며 관료적인 구조대신 권위와 권력이 분산되고, 집단 구성원들간의 의견이, 평등히 존중되며, 의사결정과정이 다양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 구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신자들 중 교회공동체의 신앙생활을 멀리하도록 하는 이유중 하나가 사제들의 구태의연한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감이다. 지나친 사제 중심의 사목과 보수적 사목의 낙후성이 지적된다.

    조사보고서들에 의하면, 어려움이나 문제점을 상의하고 조언을 얻기 위해서 종전에 교회의 사목자들에게 찾아가던 많은 사람들이 근래엔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운명철학 분야의 종사자들에게 점점 더 호감을 가지고 몰려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목자들을 찾는 이들이 현격히 줄고 있다.

    【 예) 美 조사보고 “귀하의 개인문제 상의하기 위해 누구에게 가느냐?”

    1960년대; 교회 사목자, 종사자-42% 의사-29%, 심리 상담자18%

    근래; 교회 사목자 5%미만, 심리상담자, 사회사업가를 찾음 】

    이러한 경향의 원인을 관계학자들은 여러모로 분석하는데, 그 중에 사회의 빠른 변화, 학문, 문화의 급속한 발전에 비해, 그에 대응 대처할 수 없는 교회의 둔감성, 사목자들의 상황 및 시대적 토착화의 영성부족, 인간에 관한 학문의 지식 및 인간을 돕는 기술의 부족을 손꼽고 있다.


    나) 지역간 본당들의 불균형과 본당내 친교의 어려움

    인구의 도시 급증으로 인해, 지역간 본당들이 불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 대도시의 본당들은 점점 대형화되고 있고, 지방의 본당들은 위축되어가고 있다.

    본당의 대형화는 교회의 본질적 요소인 친교를 불가능하게 한다. 사목자와 신자들 그리고 신자들 상호간의 인격적 관계와 친교의 만남을 어렵게 한다. 이에 따르는 소외현상으로 냉담, 행방불명자, 개종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편 지방본당에선, 젊은이들의 도시이주로 신자 노령화 현상으로 신자감소, 예비자 감소, 경제적 어려움, 사목협력자들의 부족으로 공동체 활기가 떨어지고 사목자의 사기가 저하되고 있다.    

    다) 신자들의 신앙의 본질 이해 부족, 선교,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이해 부족과 신앙 생활 소극성.

    많은 신자들이 성서, 성사 및 전례 이해 부족으로 신자 생활의 소극성과 무력감을 드러내고 있다(교회 생활에 흥미 못 느낌). 따라서 신앙인으로서 기쁨과 긍지를 못 갖고 있으며, 게다가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선교 활동에도 소극적이고, 잠재적 냉담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많은 것이다.

    이러한 결과엔 우선 체계적 교육 프로그램을 못 갖추는 교회 당국의 책임이 크다. 또한 지속 교육과 쇄신, 성장하려는 신자들의 의지 부족도 큰 문제이다.


    우리 교구에서 실시한 「신자 의식 실태 조사」에 의하면 ‘선교’ 부문의 18항 : “선교 활동에 있어 어려운 점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에 대한 조사에서

    ① 응답의  50% – 교리 지식 부족하다.

    ②  "    21.6% – 신앙은 각자 자유, 권유 사항 아니다(구원관, 신앙관의 문제점, 신앙 이해 부족)

    ③  "    13.6% – 구체적 선교 방법을 모른다.


    라) 교회의 영성 운동과 사도직 단체의 한계성, 소공동체의 소극성

    우리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영성운동과 사도직 단체들이 대부분 국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토착화 과제가 놓여 있다. 한편 그러한 운동들(예 : 꾸르실료, 성령 세미나, M.E. 등)의 수료 후 지속 교육 및 쇄신 프로그램이 이행되고 또한 적극 참여해야 한다.

    한편 우리의 현실 여건에 맞는 영성운동들과 사도직 단체들이 계발되어야 할 것이다. 영성 운동(신심 단체)들과 사도직 단체의 구성원들이 ghetto적 파벌주의를 형성한다든지 지도자적 선민의식으로 봉사대신 우월감, 지배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될 것이다. 선교를 위한 사도직 단체(예, 레지오 마리애)에는 남자와 젊은이들의 참여가 적은 편이다.

    구역, 반 모임의 대다수가 활기를 잃고 있다. 구역, 반장들이 본당에서 임명되고 있기에 자발성이 부족하고 또한 leader로서의 양성이 미흡하다.


    마) 신자 중산층화와 사목의 중산층 경향

    근래 조사통계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은 전국민의 평균 수준에 비해 학력, 경제, 직업 및 사회적 지위 등에 있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예, 국회 의원과 고급 관료의 신자 비율은 15-20%이다).

    한편,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는 이들 중엔 신자 비율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그 원인 연구와 분석, 그리고 대책이 필요하다.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 중에 – 본당 사목 계획과 운영이 중산층 신자들 중심으로 흔히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사목 위원들 대부분이 중산층으로 구성되며, 그들 의견이 본당 사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경제적으로 하위의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교회를 멀리하게 된다.

    또한 경제적(주로 학력의) 하류의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 생활을 하기엔 어려운 상황이 있다. 무엇보다 노동과 피곤, 시간의 부족으로 긴 기간의 예비자 교리에 나가기 어렵다. 그리고 통신 교리도 어렵다(지적 수준 미달). 뿐만 아니라 휴일을 내기 어려워 주일 미사 참석이 쉽지 않다.


    3. 냉담자 예방을 위한 방안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상황과 교회 내의 구조적 원인으로, 또한 신자들의 성장과 쇄신 노력 부족으로 냉담자들과 늘 냉담 가능성을 지닌 소극적 신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냉담자 재복음화 대책도 시급하지만, 더 우선적인 것은 냉담에 떨어지기 쉬운 소극적 신자층에 대한 교육과 복음화이다. 이 소극적 신자층은 잠재적 냉담에 가까운 신앙 생활을 하고 있어 우리 교회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변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예방적 차원에서 각별한 대책이 요청된다. 여기에서 두 방향을 고찰하고자 한다. 첫째는 지속적 재교육이고 둘째는 공동체의 친교 활성화이다.

    「신자 의식 실태 조사」에서도 두 방안이 지배적 여론이다.


    28항 : “냉담 예방 효과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① 영세 후 신자 재교육      (37.1%)

    ② 친교 방법                        (63%) 


    27항 응답에서도 냉담자가 생기는 이유는 친교 부족 이유가 지배적이다.


    1) 지속적 재교육

    세 공관 복음은 우리에게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마르 4,1-9; 마태 13,1-9; 루가 8,4-8) 말씀을 전해 준다. 씨앗들은 4부류의 땅에 떨어진다. ① 길바닥, ② 돌밭, ③ 가시덤불 속의 땅, ④ 좋은 땅.

    ① 길바닥의 씨 : 뿌리도 못 내리고 있다가 새들의 먹이가 된다.

    ② 돌밭의 씨 : 싹은 났으나 햇볕에 금방 말라죽는다.

    ③ 가시덤불의 씨 : 싹이 나고 자라긴 하나 숨이 막혀 열매 맺지 못한다.

    ④ 좋은 땅의 씨 :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이 직접 설명해 주신 바에 의하면, 씨는 하느님 말씀이고, 땅(밭)은 인간들의 마음 자세이다. 또한 싹은 믿음, 열매는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결실(그리스도의 성숙 상징)이다.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결실은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갈라 5,22-23)이라고 할 수 있다.


    네 그룹의 땅과 그리스도인의 다양한 자세를 비교해 볼 수 있다.

    ① 길바닥 같은 마음 – 빗물을 흡수하지 않고 흘려 버리는 굳은 땅처럼 하느님의 일들을 거부하는 경직된 마음(이기주의, 교만, 탐욕, 진리에 무관심)으로 하느님과 이웃에 폐쇄적이다.

    ② 돌밭 같은 마음 – 하느님의 말씀을 잠시 혹은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말씀의 뿌리, 싹은 유혹과 시련에 항구치 못한 그 마음에서 말라죽는다.

    ③ 가시덤불 같은 마음 – 말씀을 받아들이지만 역시 항구하지 못하여 하느님의 것보다 세상의 것을 더 높이 마음에 두면서 그 말씀을 가로막아 질식시킨다.

    ④ 좋은 땅같은 마음 – 잘 가꾸어진 마음이며 성숙을 위한 기본 자세이다. 성령에 의한 은총의 단비, 따뜻한 사랑의 햇살, 그리고 적절한 섭리의 기후에 의해 풍성한 결실 맺으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길바닥 같은 마음은 그야말로 냉담상태이며, 한편 돌밭 같은 마음, 가시덤불 같은 자세의 신자들은 잠재적 냉담자들로서 언제든 쉽게 신앙 생활을 떠날 수 있다.

    지속적 재교육은 위의 세 그룹의 신앙 자세의 신자들을 좋은 땅과 같은 자세의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고 도와주는 것이다.


    가) 지속적 재교육 제도

    교구 차원, 본당 차원의 신자 재교육 전담반 구성. 냉담 가능성을 지닌 소극적 신자들은 주일 미사 외에 다른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웬만한 사유가 있으면, 주일 미사까지 빠질 수 있다. 주간 중 유일한 교육기회인 강론마저 놓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을 재교육시킬 수 있을 것인가?

    현재 구성되어 있는 교구 차원과 본당 차원의 교육 담당 부서가 좀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계획과 그것을 실천하는 데 고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행의 대부분의 교육 프로그램이 지도자 양성 내지 적극적 신자들이 대상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예컨대, 본당에서 식상하기 쉬운 사순절 대림절 특강에 어떤 사람들이 참석하는가? 꼭 참석할 필요가 있는 소극적 신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나) 재교육의 목표 및 내용

    왜 재교육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소극적 신자들은 흔히 성서, 전례, 기본 교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기도나 성사 및 전례 생활에 별 흥미 없어하고 성서 읽기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오늘의 시련과 유혹 많은 사회에서 어떻게 신앙을 키우며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겠는가? 과연 그들에게 재교육을 통해 무엇을 도와줄 것인가?


    그리스도 신자로서의 정체성 확립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어느 시대보다 더욱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고(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왜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신자로서 긍지를 갖고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영적으로 쇄신되어야 한다(예컨대, 전쟁에서 상대방이 강할수록, 대적하기 위해 이쪽에서 더욱 훈련되어야 하고 더욱 무장이 잘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타종교의 유혹에 넘어 가기 쉽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속화에 젖어들고 말 것이다.


    「신자 의식 실태 조사」 선교 부분 11항의 응답 결과에 의하면, 근래 천주교 신자들의 교회관, 구원관에 큰 문제점이 나타난다. – “가톨릭 신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보다 천당가기가 쉽다고 생각하십니까?”에 대하여 천당가기 쉽다가 44%, 사실은 똑같다가 56%로 나타났다.


    어느 종교를 믿던지, 구원은 자신의 행실에 달렸다고 믿는 신자가 반수를 훨씬 넘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와 다른 종교의 차별화 의식 없는 신자들이 이렇게 많을 때, 적극적 선교에 대한 기대는 고사하고 개종과 냉담의 위기를 심각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선교 부분 8항 (영세 동기) : “왜 영세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까?”

    ① 유아세례          (31.1%)

    ② 종교 중 선택     (23.1%, 천주교가 제일 맘에 들어서)

    ③ 마음의 평화              (20.3%)


    신앙생활 선택의 동기는 매우 인간적인 것일 수도 있고 유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비자 교리 기간이나 지속적 재교육을 통해 그러한 동기들이 정화, 순화되면서 성숙한 목적을 지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신앙은 실상 자유나 취미, 이기적 만족의 방편이 아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자녀로서 드려야 할 마땅한 孝이다. 안 그럴 경우, 미성숙한 동기와 그 신앙관(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신앙관) 때문에 쉽게 냉담한다. 천주교 생활을 하다보니, 천주교가 마음에 안들을 수도 있고, 마음의 평화를 잃을 수 있는데(동기를 만족시켜주지 못할 때), 그렇다면 기대에 어긋나니 떠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 재교육은 지식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복음적 가치관의 확립과 그리스도인 생활을 정립하는 데 목적하고 있다. 올바른 하느님관, 교회관, 세계관, 인생관, 올바른 구원관, 신앙관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영세 후 5년 이내에 냉담 경험자 중(55%가 이 기간 내에 냉담) 냉담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으로 보아, 영세 후 즉시 단계적 재교육이 요청된다(예; 지속교육 1단계는 영세하면서 3개월간 성사, 전례, 교회생활교육 후 첫 고백성사를 보도록 한다. 그리고 신심 혹은 활동단체에 가입하도록 도와준다).


    신앙과 생활의 조화 정립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이며 신앙생활의 본질인 사랑은 두 측면을 이룬다. 하나는 수직적 측면으로 하느님과의 관계이며, 다른 하나는 수평적인 것으로 이웃과 세상과의 관계이다.

    그리스도인 영성생활을 위해서는 두 측면의 조화와 통합이 필요하다. 수직적 측면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이웃에 대한 봉사와 사랑의 실천, 세상의 복음화 활동이 소홀히 되고, 세속을 떠나서 기도, 재와 극기 등 개인 수덕을 통해서만 완벽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한다.

    한편 이웃관계로서 영성의 수평관계가 너무 강조될 때 세속주의에 빠진다. “이웃사랑을 통해 하느님께”라며 이웃과의 관계 개방을 과장하는 경우이다. 기도와 묵상, 참된 애덕 등 그리스도의 정신이 흐려지게 된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도와 활동의 일치, 신앙과 사회생활의 일치이다.

    평신도의 영성이 세상 안에서 세상을 통해 세상을 복음화하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삶이라면, 신앙과 일상생활을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본당 안에서는 자신들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신자들도 흔히 가정이나 직장,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며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어 있다. 이러할 때 괴리감, 분리감을 느끼며 신앙생활이 짐이 된다(냉담하기 쉬워진다).


    「신자의식 실태조사」 냉담부분 21항 “가톨릭 신자 생활하는 데 무엇이 가장 짐이 되는가?”

    ① 일상에서 죄를 많이 범하는 자책감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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