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가 이해한 하느님
사제 양성 교령 16항 “ 성 토마스를 스승으로 삼고, 그의 사변 양식을 이어…….”
그의 신론은 오늘날 가톨릭 교리의 기본을 이루고 있고, 개신교 역시 그의 몇몇 이론을 수용하고 있다.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의 구성
Iꠏꠇꠏꠏ1부;하느님의 본질ꠏꠇꠏꠏ하느님의 존재(2문)
ꠉꠏ 2부;Persona ꠉꠏꠏ하느님의 존재방식 ꠏꠇꠏꠏꠏ하느님의 단순성( 3문)
ꠌꠏ 3부;하느님에서의 ꠐ (부정 신학) ꠐ완전성( 4문)
발 출 ꠐ ꠐ선 성( 6문)
(Procession) ꠐ ꠐ무한성( 7문)
ꠐ ꠐ불변성( 9문)
ꠐ ꠐ영원성(10문)
ꠐ ꠐ유일성(11문)
ꠐ ꠉꠏꠏꠏ하느님의 인식 (12문)
ꠐ ꠌꠏꠏꠏ하느님의 이름 (13문)
ꠌꠏꠏꠏ하느님의 작용
II인간의 최종 목적인 하느님
III 그리스도,칠성사,고백성사 이후는 제자들의 보충
I부— 1 부 ꠏꠏꠇꠏꠏ 1–13 문 ; 하느님의 본성
ꠉꠏ 14–26 문 ; 신의 생명 (Life), 작용들
ꠉꠏ 27–43 문 ; 삼위 일체
ꠉꠏ 44–49 문 ; 창 조
ꠌꠏ 50–64 문 ; 천 사
1) 1문에서는 신앙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신학 전반에 대한 서론.
1항; 계시 진리가 인간에게 필요하다. 신인식이 완전히 인식되기 위해서는 자연적인 것에까지
계시가 핑요하다. 신학 역시 학문이다. 신학은 인간을 통해 하느님을 논하기에…
5항; 신학은 가장 고상한 학문
6항; 신학은 가장 고상한 학문이며 지혜이다
신학의 규범, 출발은 하느님이다
8항; 신학의 계시를 받아들이고 성서의 논술방식을 채택한다.
9항; 인간은 감각적 사물에서 지성을 얻기 때문에 성서…
10항; 성서의 저자는 하느님이시다
2) 2문에서는 “하느님은 실존하는가?”
1항; 하느님의 실존은 참되지만 명확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증명이 필요하다.
2항; 이 증명은 하느님에 대해서 잘 알려진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귀납적으로>
3항; 하느님의 존재 증명 시도, 5가지의 길
① 세상에는 계속적 변화가 있다. 많은 것들이 운동상태에 있으므로 모든 것은 운동 원인
이 있어야 한다. 그 원인을 소급한면 무한히 갈 수는 없다. 즉 제 1 원인이 있어야 한
다. 이 제 1 운동인(Primum movens)이 하느님이다.
② 능동인의 끝에는 결과가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자신 스스로가 원인이 될수는 없다.
그러므로 제 1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제 1 원인은 하느님이다.
③ 어떤 것이 형성되고 해체되는 것은 하나의 우연류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필연류에 의해
생겨나는데 이 필연류가 하느님이다.
④ 선 (Bonum)의 기준은 그 자체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선 자체가 곧 하느님이다.
⑤ 자연은 질서를 가지고 있다. 그 질서지운 분이 바로 하느님이다. 즉 자연이 가지고 있
는 목적이 하느님이다.
3) 3문은 “하느님의 단순성”
1항; 하느님은 물체가 아니다. 하느님은 부동의 원동자이기에 물체가 아니다. 물체는 변화에
매여 있는데 하느님은 변화를 주시는 분이다. 물체는 덜 영적 존재이고 하느님은 가장
고귀하다.
2항; 사물은 질료로 구성되고 형상은 그 고유한 존재를 규정해준다. 그러나 하느님은 질료화
형상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하느님은 형상 자체이다.
3항; 질료와 형상으로 구성된 인간은 ‘인간성’을 지니는데, 하느님은 자신의 본성이다.(신성)
4항; 하느님은 존재와 본질이 동일. 하느님은 어떤 Genus(類)나 Species (種)에도 속하지 않
기 때문이다.
7항; 하느님은 가장 단순하다. 하느님은 Ens Primum이기에.
8항; 어떤 것도 anima mundi이거나, 세상의 물질로 구성될 수 없다.
4) 4문은 “하느님은 가장 완전하다”
1항; 물질이 아니고, 가능태도 없고, 완전성의 원리, 원천이다.
2항; 사물의 완전성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것이다.
5) 5문은 건너 뜀
6) 6문은 “하느님은 선이신가”
1항; 하느님은 선이다. 결과는 원인에 유사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만물은 하느님에 가까워지려
하기 때문에.
2항; 하느님은 최고의 선이다.
3항; 하느님은 본질상 선이다. ㄱ) 본성상 조재를 지니고 있기에
ㄴ) 불번적이므로
ㄷ) 최후 목적이므로
7) 7문은 “하느님은 무한하시다”
1항; 자립하는 존재 자체이므로.
2항; 질료와 형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은 유한하다. 천사는 형상으로만 되어 있지만 하느님
으로부터 받았기에 유한하다.
3항; 모든 물체는 유한하다. 형상이 그것을 種으로 규정짓고 질료는 그것을 개체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4항; 모든 물체는 크기상 유한하다.(수학적 물체-숫자-는 개념상으로 무한)
8) 8문은 “하느님은 무소부재하시다”
1항; 하느님은 아니계신곳 없이 모든 것 안에 계신다.
2항; 하느님은 모든 장소에서 발견된다. 즉 사물은 하느님에 의해 지탱된다. 하느님의 현존은
다른 것을 현존하게 한다.
3항; 하느님은 창조주이므로 모든 것에 있고, 현존상 모든 것 안에 있다
4항; 하느님은 어디에나 다 계신다. 오직 하느님만이 그러실수 있다.
9) 9문은 “하느님은 불변하다”
하느님은 제 1 존재, 순수 현실태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변화될수 없는 분이시다. 하느님
이외의 모든 것은 가변적이다.심지어 영들도 가변적이다.
10)10문은 “하느님의 영원성”
1항; 영원성은 동시적, 완전하며, 시작, 끝도 없다.
시간은 선후를 이야기하는 운동의 척도이다.
2항; 하느님은 변화가 없고 선후의 구별점, 즉 시간이 없고 영원하다.
3항; 영원성은 하느님의 고유한 본질이다. 사물은 이에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4항; 영원성은 시간과 다르다. 영원성은 모든것이 동시에 함께 있는 것인데 시간안에서는 불
가능하다.
5항; 시간과 영원성의 중간개념 (aevum). aevum은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것.
11)11문은 “하느님의 유일성”
1항; 단일성은 구분에 반대된다. 구분지닌 존재하는 구분되지 않는 동안에만 하나이다.
2항; 단일성은 다수성과 반대이다. 다수성의 원리이며 척도이다.
3항; 만일 소크라테스가 유일 인간이라면 세상에는 소크라테스만이 있을 것이다. 즉 하느님은
오직 한 분 뿐이다. 거기다가 하느님은 완전성을 지닌 분이다. 따라서 어느 신도, 어느
것도 완전하지 못하다. 세상은 단일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하느님을 창조주로 모시고 있다.
4항; 하느님은 존재 자체인 완전히 불가분적이다.
12)12문은 “하느님의 인식 문제”
1항; 모든 존재자가 자기원리에 접근할수록 완전하다면 이성적 피조물의 완전성은 하느님안에
서 발견된다. 인간은 뚜렷한 지성을 갖추고 있고 하느님은 가지적이므로 인간은 그 지성
을 하느님에 고정시킬때 완전해질 수 있다.
2항; 인식이 가능하려면 주체에게 인식 기능이 있어야 하고 대상은 주체에 결합되어야 한다.
하느님은 봄의 대상이지만 무한 대상성 때문에 인간지성이 하느님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영광의 빛을 필요로 한다.
3항; 눈, 완상으로 하느님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나. 하느님은 영적이기 때문에
4항; 사물은 인식 주체의 본성에 유사하게 인식된다. 인간은 추상기능을 통해 그것들을 보편
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립유이기 때문에 포착능력을 벗어나고 오직 하느님
자신만이 인식할 수 있다.
5항; 지성이 하느님의 본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영광의 빛(은총)을 필요로 한다.
7항; 하느님은 완전하게 인식될때 완전하게 이해될수 있다. 따라서 하느님은 이해될수 없는
채로 남는다.
8항; 피안의 세계에서는 하느님안에서 모든 것을 인식할수는 없다.
9항; 신적 본질속에서 보이는 사물은 그 상들을 통해서 보는 것은 아님.
10항; 동시에 한 눈길속에 보이게 된다.
11항; 차안의 세계에서 우리는 물질속에 영을 포함하므로 감각적 피조물을 통해서 인식하므로
하느님의 본질을 직관할 수 없다.
12항; 사물은 하느님이 원인인 결과이다
13항; 우리는 인식에서 정신력과 사물의 비물질적 유사성이 함께 작용한다. 하느님은 어느 하
나를 더 강화하고 주입해 줄 수 있다. 이 은총을 통해 높은 경지의 인식을 지닐수 있다.
13)13문은 “하느님의 이름”
1항; 말은 관념의 기호이고 관념은 사물의 유사성이다. 피조물로부터 추출된 이름은 하느님의
본질을 설명 못한다.
2항; 하느님의 상대적 이름(창조자)과 부정적 이름(무한자)은 하느님의 관계나 결함의 제거를
지시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적극적 이름(선한 분)은 불완전하나마 그 실체를 지시해 준다.
3항; 따라서 즉극적 이름은 하느님에 해당된다.
4항; 하느님의 여러 이름은 동의어가 아니다. 즉 모두 단순 실재임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에 두
루 일치하기 때문이다.
5항; 이 이름은 인간에서와 하느님에서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 이름은 오직 유비적이다.
6항; 하느님은 피조된 질서위에 군림한다. 따라서 하느님과 피조물의 관계가 역전될수 없다.
즉 창조주같은 상대적 이름은 피조물에서 신에게 적용될수 있다.
7항; 하느님 이름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작품를 표상한 것이고,하느님의 본성은 지칭하는대로
방향지워져 있다.
8항; 하느님의 본성은 알려질 수 없고 그 이름도 알려질 수 없다.
9항; 하느님의 참 이름은 야훼다. 왜냐하면
ㄱ)하느님의 존재를 지시하고, 존재는 그 본질을 형성
ㄴ)하느님에 대해 가장 가능한 것을 담기 때문이다 (무한성)
ㄷ)하느님의 고유한 특성인 현재의 영원성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근본적 하느님 이해
1) 하느님에 있어서 존재와 본질이 동일시된다. (3문 4항)
2)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존재에로 질서지워져 참여하기에 하느님은 모든 존재의 첫번째 원
인이다.
1)에 대한 반대이론; 본질과 존재가 같다면 신에 대해서 더 첨가될수 없고,
공통된 존재이어야 하므로
토마스의 이론; 첨가될수 없는 것은 두가지 모양이다.
한 경우는…..
다른 경우는 첨가되지 않은 다른 것이 이에 내포되지 않은 경우 하느님은 물질일 뿐 아니라 존재이다. 왜냐하면 본질밖에 속하는 것은 원인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존재 논증 (2문)
①원인을 통한 논증 (연역적); ‘–때문에’라는 논증
②결과를 통한 논증 (귀납적); ‘그러니까’하는 논증
결과는 원인보다 명확하기에 더욱 잘 이해될수 있다.그러므로 그 원인을 논증할 수 있다. 즉 결과가 주어지는 한 원인이 있어야 하는 것은 필연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알겨진 결과를 통해 논증될수 있다. 어떤 것의 존재를 보충하는 주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않다.
원인에 비례하지 않은 결과로는 원인에 대해 올바로 알수 없다. 그러나 어떠한 결과에도 원인이 있음은 명백하다. 우리는 하느님의 결과들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논증할수 있다. 하느님의 창조의 최종목적이고 피조물은 모두 하느님에서 유래한다.
1부 24문 (?44문)
1항; 하느님에 있어 존재와 본질은 동일하고, 자존적 존재로서 하나일수 밖에 없다. 다른 사물
은 존재를 소유할수 밖에 없다. 즉 참존재에 참여하므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2항; 제 1 질료와 사물 구성요소. 모든 것이 하느님에서 유래한다.
4항; 창조는 목적을 따라 했다. 이목적은 선(Bonum)이다.하느님에 있어서 선은 취득하는 것이
아니고 나누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논증은 자명한 것이다. 가령 완전성에서, 사물에서 발견되는 선, 진실, 성들은 차이가 있음이 발견된다. 이는 최고의 선, 진실, 聖등이 있기에 거기에 더 가까운 것을 더 선, 진실, 聖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존재에 있어서도 최고의 존재가 있는 것이다.
자연 질서를 보면서, 인식능력이 없는 사물들이 질서를 따라 조화를 이룸은 어떤 의도에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 명백하다. 예컨데 화살은 그 쏘는이에 의해서 목적을 갖는 것이다. 이 목적을 주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다. 이런 이유에서 13문에 나오듯 하느님의 가장 적절한 이름은 ‘야훼’이다.
모든 존재는 그 첫번째 존재일 수가 없고, 반드시 첫번째 존재가 있고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다. 이 하느님은 존재와 본질이 동일하다. 그러나 하느님의 존재가 분명하다 할지라고 분명한 해답을 줄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 각자의 체험의 문제이다. 그래서 12문에서 (하느님의 인식)
반대 이론;① 하느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② 무한하다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알려질수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우리가 인식할수 없다.
③ 창조된 지성은 존재한 것만을 알수 있다.
그런데 하느님은 존재자를 초월하므로 우리 지성이 하느님을 인식할수 없다.
④ 인식자에게는 대상에 대해 대비, 대조이다. 그런데 창조된 지성인에게는 하느님에
대비할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지성은 하느님을 알수 없다.
이에 대해 토마스는 요한 1 서를 반론으로 든다. 사물은 모두 가지적이기에 가능태를 용납치 않는 순수 현실태인 하느님이 가장 가지적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가지적이 될수 없다. 예를 들어 태양은 모든 사물을 비추어주고 있지만 박쥐는 태양때문에 사물을 못본다. 이성적 피조물의 궁국적 완성은 그 근원에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는 결과에 대한 원인을 알고자하는 경향이 있다. 이성적 피조물이 제 1 원인에 도달할수 없다면 이 열망은 공허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한자들의 하느님 인식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지복직관).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하느님을 인식하는가 ?
보는 능력과 보여지는 것의 합일; 보여지는 것이 보는 것안에 있는 것은 그 사물의 유사성에
의해서이다. 피조물의 지성능력은 근원적 지성인 하느님의 유사에 불과하다.
이런 유사로말미암아 지성은 하느님을 볼수 있다.
하느님에 관한 모든 진술의 기초
① 하느님은 현존하는 분
② 하느님은 만물의 근거
③ 하느님은 만물의 최종 목표
④ 하느님은 존재로서의 제 1 원인과 목적으로서의 부동적 제 1 원인
존재 자체로서의 하느님과 존재관념으로서의 하느님의 구별;
존재의 관념이 하느님인 것은 아니다. 하느님은 모든 존재자의 존재가 아니라 모든 존재자 위의 존재이다. 일종의 부정신학적 입장.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해한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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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가 이해한 하느님
사제 양성 교령 16항 “ 성 토마스를 스승으로 삼고, 그의 사변 양식을 이어…….”
그의 신론은 오늘날 가톨릭 교리의 기본을 이루고 있고, 개신교 역시 그의 몇몇 이론을 수용하고 있다.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의 구성
Iꠏꠇꠏꠏ1부;하느님의 본질ꠏꠇꠏꠏ하느님의 존재(2문)
ꠉꠏ 2부;Persona ꠉꠏꠏ하느님의 존재방식 ꠏꠇꠏꠏꠏ하느님의 단순성( 3문)
ꠌꠏ 3부;하느님에서의 ꠐ (부정 신학) ꠐ완전성( 4문)
발 출 ꠐ ꠐ선 성( 6문)
(Procession) ꠐ ꠐ무한성( 7문)
ꠐ ꠐ불변성( 9문)
ꠐ ꠐ영원성(10문)
ꠐ ꠐ유일성(11문)
ꠐ ꠉꠏꠏꠏ하느님의 인식 (12문)
ꠐ ꠌꠏꠏꠏ하느님의 이름 (13문)
ꠌꠏꠏꠏ하느님의 작용
II인간의 최종 목적인 하느님
III 그리스도,칠성사,고백성사 이후는 제자들의 보충
I부— 1 부 ꠏꠏꠇꠏꠏ 1–13 문 ; 하느님의 본성
ꠉꠏ 14–26 문 ; 신의 생명 (Life), 작용들
ꠉꠏ 27–43 문 ; 삼위 일체
ꠉꠏ 44–49 문 ; 창 조
ꠌꠏ 50–64 문 ; 천 사
1) 1문에서는 신앙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신학 전반에 대한 서론.
1항; 계시 진리가 인간에게 필요하다. 신인식이 완전히 인식되기 위해서는 자연적인 것에까지
계시가 핑요하다. 신학 역시 학문이다. 신학은 인간을 통해 하느님을 논하기에…
5항; 신학은 가장 고상한 학문
6항; 신학은 가장 고상한 학문이며 지혜이다
신학의 규범, 출발은 하느님이다
8항; 신학의 계시를 받아들이고 성서의 논술방식을 채택한다.
9항; 인간은 감각적 사물에서 지성을 얻기 때문에 성서…
10항; 성서의 저자는 하느님이시다
2) 2문에서는 “하느님은 실존하는가?”
1항; 하느님의 실존은 참되지만 명확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증명이 필요하다.
2항; 이 증명은 하느님에 대해서 잘 알려진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귀납적으로>
3항; 하느님의 존재 증명 시도, 5가지의 길
① 세상에는 계속적 변화가 있다. 많은 것들이 운동상태에 있으므로 모든 것은 운동 원인
이 있어야 한다. 그 원인을 소급한면 무한히 갈 수는 없다. 즉 제 1 원인이 있어야 한
다. 이 제 1 운동인(Primum movens)이 하느님이다.
② 능동인의 끝에는 결과가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자신 스스로가 원인이 될수는 없다.
그러므로 제 1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제 1 원인은 하느님이다.
③ 어떤 것이 형성되고 해체되는 것은 하나의 우연류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필연류에 의해
생겨나는데 이 필연류가 하느님이다.
④ 선 (Bonum)의 기준은 그 자체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선 자체가 곧 하느님이다.
⑤ 자연은 질서를 가지고 있다. 그 질서지운 분이 바로 하느님이다. 즉 자연이 가지고 있
는 목적이 하느님이다.
3) 3문은 “하느님의 단순성”
1항; 하느님은 물체가 아니다. 하느님은 부동의 원동자이기에 물체가 아니다. 물체는 변화에
매여 있는데 하느님은 변화를 주시는 분이다. 물체는 덜 영적 존재이고 하느님은 가장
고귀하다.
2항; 사물은 질료로 구성되고 형상은 그 고유한 존재를 규정해준다. 그러나 하느님은 질료화
형상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하느님은 형상 자체이다.
3항; 질료와 형상으로 구성된 인간은 ‘인간성’을 지니는데, 하느님은 자신의 본성이다.(신성)
4항; 하느님은 존재와 본질이 동일. 하느님은 어떤 Genus(類)나 Species (種)에도 속하지 않
기 때문이다.
7항; 하느님은 가장 단순하다. 하느님은 Ens Primum이기에.
8항; 어떤 것도 anima mundi이거나, 세상의 물질로 구성될 수 없다.
4) 4문은 “하느님은 가장 완전하다”
1항; 물질이 아니고, 가능태도 없고, 완전성의 원리, 원천이다.
2항; 사물의 완전성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것이다.
5) 5문은 건너 뜀
6) 6문은 “하느님은 선이신가”
1항; 하느님은 선이다. 결과는 원인에 유사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만물은 하느님에 가까워지려
하기 때문에.
2항; 하느님은 최고의 선이다.
3항; 하느님은 본질상 선이다. ㄱ) 본성상 조재를 지니고 있기에
ㄴ) 불번적이므로
ㄷ) 최후 목적이므로
7) 7문은 “하느님은 무한하시다”
1항; 자립하는 존재 자체이므로.
2항; 질료와 형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은 유한하다. 천사는 형상으로만 되어 있지만 하느님
으로부터 받았기에 유한하다.
3항; 모든 물체는 유한하다. 형상이 그것을 種으로 규정짓고 질료는 그것을 개체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4항; 모든 물체는 크기상 유한하다.(수학적 물체-숫자-는 개념상으로 무한)
8) 8문은 “하느님은 무소부재하시다”
1항; 하느님은 아니계신곳 없이 모든 것 안에 계신다.
2항; 하느님은 모든 장소에서 발견된다. 즉 사물은 하느님에 의해 지탱된다. 하느님의 현존은
다른 것을 현존하게 한다.
3항; 하느님은 창조주이므로 모든 것에 있고, 현존상 모든 것 안에 있다
4항; 하느님은 어디에나 다 계신다. 오직 하느님만이 그러실수 있다.
9) 9문은 “하느님은 불변하다”
하느님은 제 1 존재, 순수 현실태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변화될수 없는 분이시다. 하느님
이외의 모든 것은 가변적이다.심지어 영들도 가변적이다.
10)10문은 “하느님의 영원성”
1항; 영원성은 동시적, 완전하며, 시작, 끝도 없다.
시간은 선후를 이야기하는 운동의 척도이다.
2항; 하느님은 변화가 없고 선후의 구별점, 즉 시간이 없고 영원하다.
3항; 영원성은 하느님의 고유한 본질이다. 사물은 이에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4항; 영원성은 시간과 다르다. 영원성은 모든것이 동시에 함께 있는 것인데 시간안에서는 불
가능하다.
5항; 시간과 영원성의 중간개념 (aevum). aevum은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것.
11)11문은 “하느님의 유일성”
1항; 단일성은 구분에 반대된다. 구분지닌 존재하는 구분되지 않는 동안에만 하나이다.
2항; 단일성은 다수성과 반대이다. 다수성의 원리이며 척도이다.
3항; 만일 소크라테스가 유일 인간이라면 세상에는 소크라테스만이 있을 것이다. 즉 하느님은
오직 한 분 뿐이다. 거기다가 하느님은 완전성을 지닌 분이다. 따라서 어느 신도, 어느
것도 완전하지 못하다. 세상은 단일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하느님을 창조주로 모시고 있다.
4항; 하느님은 존재 자체인 완전히 불가분적이다.
12)12문은 “하느님의 인식 문제”
1항; 모든 존재자가 자기원리에 접근할수록 완전하다면 이성적 피조물의 완전성은 하느님안에
서 발견된다. 인간은 뚜렷한 지성을 갖추고 있고 하느님은 가지적이므로 인간은 그 지성
을 하느님에 고정시킬때 완전해질 수 있다.
2항; 인식이 가능하려면 주체에게 인식 기능이 있어야 하고 대상은 주체에 결합되어야 한다.
하느님은 봄의 대상이지만 무한 대상성 때문에 인간지성이 하느님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영광의 빛을 필요로 한다.
3항; 눈, 완상으로 하느님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나. 하느님은 영적이기 때문에
4항; 사물은 인식 주체의 본성에 유사하게 인식된다. 인간은 추상기능을 통해 그것들을 보편
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립유이기 때문에 포착능력을 벗어나고 오직 하느님
자신만이 인식할 수 있다.
5항; 지성이 하느님의 본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영광의 빛(은총)을 필요로 한다.
7항; 하느님은 완전하게 인식될때 완전하게 이해될수 있다. 따라서 하느님은 이해될수 없는
채로 남는다.
8항; 피안의 세계에서는 하느님안에서 모든 것을 인식할수는 없다.
9항; 신적 본질속에서 보이는 사물은 그 상들을 통해서 보는 것은 아님.
10항; 동시에 한 눈길속에 보이게 된다.
11항; 차안의 세계에서 우리는 물질속에 영을 포함하므로 감각적 피조물을 통해서 인식하므로
하느님의 본질을 직관할 수 없다.
12항; 사물은 하느님이 원인인 결과이다
13항; 우리는 인식에서 정신력과 사물의 비물질적 유사성이 함께 작용한다. 하느님은 어느 하
나를 더 강화하고 주입해 줄 수 있다. 이 은총을 통해 높은 경지의 인식을 지닐수 있다.
13)13문은 “하느님의 이름”
1항; 말은 관념의 기호이고 관념은 사물의 유사성이다. 피조물로부터 추출된 이름은 하느님의
본질을 설명 못한다.
2항; 하느님의 상대적 이름(창조자)과 부정적 이름(무한자)은 하느님의 관계나 결함의 제거를
지시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적극적 이름(선한 분)은 불완전하나마 그 실체를 지시해 준다.
3항; 따라서 즉극적 이름은 하느님에 해당된다.
4항; 하느님의 여러 이름은 동의어가 아니다. 즉 모두 단순 실재임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에 두
루 일치하기 때문이다.
5항; 이 이름은 인간에서와 하느님에서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 이름은 오직 유비적이다.
6항; 하느님은 피조된 질서위에 군림한다. 따라서 하느님과 피조물의 관계가 역전될수 없다.
즉 창조주같은 상대적 이름은 피조물에서 신에게 적용될수 있다.
7항; 하느님 이름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작품를 표상한 것이고,하느님의 본성은 지칭하는대로
방향지워져 있다.
8항; 하느님의 본성은 알려질 수 없고 그 이름도 알려질 수 없다.
9항; 하느님의 참 이름은 야훼다. 왜냐하면
ㄱ)하느님의 존재를 지시하고, 존재는 그 본질을 형성
ㄴ)하느님에 대해 가장 가능한 것을 담기 때문이다 (무한성)
ㄷ)하느님의 고유한 특성인 현재의 영원성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근본적 하느님 이해
1) 하느님에 있어서 존재와 본질이 동일시된다. (3문 4항)
2)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존재에로 질서지워져 참여하기에 하느님은 모든 존재의 첫번째 원
인이다.
1)에 대한 반대이론; 본질과 존재가 같다면 신에 대해서 더 첨가될수 없고,
공통된 존재이어야 하므로
토마스의 이론; 첨가될수 없는 것은 두가지 모양이다.
한 경우는…..
다른 경우는 첨가되지 않은 다른 것이 이에 내포되지 않은 경우 하느님은 물질일 뿐 아니라 존재이다. 왜냐하면 본질밖에 속하는 것은 원인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존재 논증 (2문)
①원인을 통한 논증 (연역적); ‘–때문에’라는 논증
②결과를 통한 논증 (귀납적); ‘그러니까’하는 논증
결과는 원인보다 명확하기에 더욱 잘 이해될수 있다.그러므로 그 원인을 논증할 수 있다. 즉 결과가 주어지는 한 원인이 있어야 하는 것은 필연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알겨진 결과를 통해 논증될수 있다. 어떤 것의 존재를 보충하는 주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않다.
원인에 비례하지 않은 결과로는 원인에 대해 올바로 알수 없다. 그러나 어떠한 결과에도 원인이 있음은 명백하다. 우리는 하느님의 결과들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논증할수 있다. 하느님의 창조의 최종목적이고 피조물은 모두 하느님에서 유래한다.
1부 24문 (?44문)
1항; 하느님에 있어 존재와 본질은 동일하고, 자존적 존재로서 하나일수 밖에 없다. 다른 사물
은 존재를 소유할수 밖에 없다. 즉 참존재에 참여하므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2항; 제 1 질료와 사물 구성요소. 모든 것이 하느님에서 유래한다.
4항; 창조는 목적을 따라 했다. 이목적은 선(Bonum)이다.하느님에 있어서 선은 취득하는 것이
아니고 나누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논증은 자명한 것이다. 가령 완전성에서, 사물에서 발견되는 선, 진실, 성들은 차이가 있음이 발견된다. 이는 최고의 선, 진실, 聖등이 있기에 거기에 더 가까운 것을 더 선, 진실, 聖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존재에 있어서도 최고의 존재가 있는 것이다.
자연 질서를 보면서, 인식능력이 없는 사물들이 질서를 따라 조화를 이룸은 어떤 의도에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 명백하다. 예컨데 화살은 그 쏘는이에 의해서 목적을 갖는 것이다. 이 목적을 주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다. 이런 이유에서 13문에 나오듯 하느님의 가장 적절한 이름은 ‘야훼’이다.
모든 존재는 그 첫번째 존재일 수가 없고, 반드시 첫번째 존재가 있고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다. 이 하느님은 존재와 본질이 동일하다. 그러나 하느님의 존재가 분명하다 할지라고 분명한 해답을 줄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 각자의 체험의 문제이다. 그래서 12문에서 (하느님의 인식)
반대 이론;① 하느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② 무한하다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알려질수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우리가 인식할수 없다.
③ 창조된 지성은 존재한 것만을 알수 있다.
그런데 하느님은 존재자를 초월하므로 우리 지성이 하느님을 인식할수 없다.
④ 인식자에게는 대상에 대해 대비, 대조이다. 그런데 창조된 지성인에게는 하느님에
대비할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지성은 하느님을 알수 없다.
이에 대해 토마스는 요한 1 서를 반론으로 든다. 사물은 모두 가지적이기에 가능태를 용납치 않는 순수 현실태인 하느님이 가장 가지적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가지적이 될수 없다. 예를 들어 태양은 모든 사물을 비추어주고 있지만 박쥐는 태양때문에 사물을 못본다. 이성적 피조물의 궁국적 완성은 그 근원에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는 결과에 대한 원인을 알고자하는 경향이 있다. 이성적 피조물이 제 1 원인에 도달할수 없다면 이 열망은 공허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한자들의 하느님 인식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지복직관).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하느님을 인식하는가 ?
보는 능력과 보여지는 것의 합일; 보여지는 것이 보는 것안에 있는 것은 그 사물의 유사성에
의해서이다. 피조물의 지성능력은 근원적 지성인 하느님의 유사에 불과하다.
이런 유사로말미암아 지성은 하느님을 볼수 있다.
하느님에 관한 모든 진술의 기초
① 하느님은 현존하는 분
② 하느님은 만물의 근거
③ 하느님은 만물의 최종 목표
④ 하느님은 존재로서의 제 1 원인과 목적으로서의 부동적 제 1 원인
존재 자체로서의 하느님과 존재관념으로서의 하느님의 구별;
존재의 관념이 하느님인 것은 아니다. 하느님은 모든 존재자의 존재가 아니라 모든 존재자 위의 존재이다. 일종의 부정신학적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