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
내가 보고 있고 느끼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내게 줄곧 던지시며
답변을 기다리시는
신비로운 물음과 같은 것입니다.
아마도 잿더미 위에
앉아 있는 욥에게 던지는
그 무서운 물음 자체도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일 것입니다.
'내게 소아마비에 걸린 아들이 있고',
'내 부인을 참아 줄 수 없고',
'내 머리가 모자라고'.
'내 친구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런 것들은 내가 살아가야 하는
오늘의 내 삶에 줄곧 던지는 물음들입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고통스러운 현실
-어둠에 싸여 있는 진짜 신비-을
통해 내게 제시하는
물음들에 답해야 하고
그 안에서, 바로 그 안에서
나의 구원을 발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구원이
그 물음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 모든 구원은
나의 신비를 받아들임에 있고
그 신비를 통해 내 아내나
내 자녀의 신비를 받아들임에 있습니다.
피조물에 대한
사랑의 근본적 태도는
비록 그것이 이상해 보이고
불안전해 보이며
때로는 적대적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근본적 태도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아주 비이성적이고,
비위에 거슬리고, 때로는
적대적으로까지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나를 덮치고 있는 고통에서
나를 해방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기 전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악을
바로 잡는 데 효과적으로
개입하기 전에,
그 신비 앞에서
머리를 수구려야 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나의 것으로 삼음으로써
나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주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루가 22,42)
결국 그 태도는 하느님을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신뢰를 바탕으로
나와 그분의 관계가 구축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고통스러운 현실
-어둠에 싸여 있는 진짜 신비-을
통해 내게 제시하는
물음들에 답해야 하고
그 안에서, 바로 그 안에서
나의 구원을 발견해야 합니다. ‘
나는 바로 이같은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바로 이것이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내 자신, 한없이 무가치하고 무능력하고..
게다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란
대부분이 이해되지 않는 것들, 아프고 힘들고 지치고 어둔것들..
내가 좀더 가치있고 능력있는 사람이 되었을때,
나를 둘러싼 것들이 좀더 밝고 선하고 긍정적일때,
그때에 아버지를 찾고 아버지를 부르며 찬미 찬송 드리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내 소명을 져버리겠다는 가장 쉬운 방법일 뿐입니다.
내가 만약 가치있고 능력이 있다면,
내 주변이 만약 행복뿐이라면
그것은 나의 소명이 아닐 것입니다.
이미 다 이루어진것이므로, 더이상 내게서 이루어질 것이 없으므로.
내 자신 못난채로, 아픈채로, 두려운채로
하느님과 함께 하며, 하느님과 함께 가며
이룰 것이 있는 것.
그것이 나의 소명입니다.
그것이 아마도 우리 모두의 소명이 아닐까 합니다..
아버지 하느님!
저는 지금 이렇지만.. 당신으로 인하여 행복합니다.
제가 행복한 것이 당신께서도 행복하신 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더욱 청하옵는 것은,
“주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루가 22,42)
당신께서 행복하신 것이 제가 행복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