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나자렛의 침묵! 30년 동안 아무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이것은 비밀이 유지되었음을 뜻합니다. '감추어 계신 하느님' (이사 45,15참조). 십자가 위에사도, 성체 성사에서도 그러합니다. 모든 피조물의 맏물은 강생하신 말씀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성과 인성을 함께 지니시고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사실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입으신 것입니다. 이 근본적 요구(=영광)는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믿기만 한다면 그 영광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분에 이어 또 마리아에 이어 우리도 영광을 입고 평화를 얻고 부활하여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선물입니까! 이미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리의 인간 본성의 요구에 이렇듯 엄청난 약속으로 응답하시다니! 나자렛, 하느님께서는 나자렛의 신비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본질적인 내용을 봅시다. 강생하신 말씀은 30년 동안을 가장 평범하다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사십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사건들이 변하거나 상황이 바뀌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것은 인간적 삶의 모든 행위에는 본질적으로 총체적 완전성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평범한 생활을 통해 당신 내면성의 절대적 완전성을 표현 하실 수 있었다면, 이는 지극히 중요하면서도 상습적으로 이루어 지는 모든 인간적 행위가 본질적으로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예외적인 특별한 사실들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곤 하는 우리, 그래서 삶에서 늘 특별한 것만을 추구하는 오만한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까를르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그리스도와 함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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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1. user#0 님의 말:

    “감추어 계신 하느님”

    스물여섯해, 그리고 스물일곱의 시작.
    30년 동안 감추이고 침묵하며
    당신 누구이신지 모르게 사시었듯이
    저의 스물여섯해 안에서도 감추어계시었습니까..

    가장 어여쁘고 순수할 때에도 아니 나타나시고
    가장 어둡고 아플 때에도 아니 나타나시더니
    어느새 이렇게 와계십니까..
    어느새 당신 드러내시고 당신의 영광을 바라옵게 하십니까..

    당신께서 자꾸 내안을 비추시니
    저는 도무지 당신 계심을 감추일 수가 없습니다.
    감추어지지가 않습니다.

    특별한 것도 당신이요,
    소소한 것도 모두가 다 당신이십니다.

    내 주! 나의 야훼!
    이제 저의 삶은 술래입니다.
    감추어계신 당신 찾아다니는 술래,
    당신 찾는 기쁨을 간직하는 술래입니다..

    내 주! 나의 야훼!
    내 주! 나의 야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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