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9-27 <또는 루카 10,38-42>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TN-lectiodominus-C2, 복음 나눔(주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에 1개의 응답

  1. 아리랑 님의 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우리승당 주변에는 성지가 많습니다. 성지에 한 두 번씩 가보기는 하였지만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모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어대충의 구조만 있을뿐 희미합니다. 천주님을 믿는다면서, 사랑이신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천지창조의 말씀부터 믿는다면서, 교회의 가르침을 믿는다면서,,,,,, 입으로만 하였지 약간의 모션만 취했지 참 답답한 인간이었습니다. 학식에 비교도 못되지만 흔히 알고 있는 바리사이파 같은 종교인 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길이요 부활이요 생명”인 주님을 진정 저 깊은 심연 속에 모시지 못하고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주변의 성지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우리 합덕승당 현제 자매님 쉬고있는 신자분과 제가 오늘 말씀인 마르타의 고백처럼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습니다.” 하고 조그마하게라도 말 할 수 있는 신앙인이되길 소원합니다.

  2. 샘지기 님의 말:

    《Re》아리랑 님 ,
    누구나 다 그럴겁니다. 부족하고 아쉽고 그럼에 죄송하고
    그래서 나아가기보다 자꾸 뒤를 돌아보는 그런 마음이요.
    하지만 그 마음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아버지를 마음에 담기 위한 작은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걸음걸음에 사랑을 담아 아버지를 바라본다면 마르타의 고백에 조금은 더 가까이 가 있지 않을까요?
    완성한 그릇을 바라보기 보다는 아직도 빗고 있는 그릇에 더 희망이 있는 법이니까요.
    ㅎㅎ^*^

아리랑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