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마리아와 마르타!

아버지께서 부활하심을 전하는 마리아!

라자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서 베타니아로 돌아오시는 예수님을 마중나가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마르타!

오빠 라자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서 베타니아로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마중나가

철없는 딸이 아버지께 어리광 섞인 투정을 부리는 듯한 그 모습에는

강한 사랑의 믿음이 있었나 봅니다.

성녀 마르타의 기념일을 맞아 그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베드로 사도의 고백도 가슴 뜨거웠지만

여자인지라 오늘 마르타의 고백 또한

가슴벅차게 다가왔습니다.

늘 같은 고백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한치의 흔들림이 없이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간의 두렵고 힘들었던 것들이 원망이 되어 사랑을 덮을 것 같은데

마르타나 마리아는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했는지가 느껴집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합니다. 사랑이신 아버지시기에~~

서로 사랑하면 아버지께서 저희 안에 머무르시고

아버지의 사랑이 저희에게서 완성된다고 요한1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

넘치게 고백을 하였지만 형식적인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보이지 않는 결정체이면서 금방은 느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임을 압니다.

사랑은 책임을 묻진 않지만 가슴아린 투정은 합니다.

그래서 하고나면 또 다른 힘과 기쁨을 안고 살아가게 되거든요.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바라보고 계시니까요.

그 가슴아린 투정속엔 사랑이 숨어있답니다.

그래서 사랑이 있는 투정은 다르다는 것을 아버지의 딸로 새로나고 깨달았습니다.

사랑이 없는 투정은 협박이 되고 그 협박 뒤엔 등을 돌리게 되나 봅니다.

제가 늘 고백하는 사랑이 그런것은 아닌지요.

사랑을 고백하면서 늘 아버지 안에 머물렀어야 했는데

진정 그리하였는지 반성해 봅니다.

한 꼬마가 과자를 사먹으러 갑니다.

아빠의 손을 잡고 가다가 가게가 눈앞에 들어오자 손을 뿌리치고 달려갑니다.

가다가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납니다.

눈물이 범벅되어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쳐 울면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빠가 와서 \”아유 조심하지\” 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더 크게 울면서 원망을 합니다.

\”그러게 왜 내 손을 잡아주지~\” 하면서 몸을 떨며 소리칩니다.

머쓱했지만 아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함을 알기에

어린 마음에도 그리 자신있게 고집을 부리는 것이지요. ㅎㅎ

바로 접니다.

아버지!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든 아버진 절 가장 사랑해야 하는 줄로 착각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습 그대로 아버지께 저를 맡기고 안겨야 함을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따지고 계산하면서 아버지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그저 당연히 제 아버지니까 사랑하고 사랑하니까 믿음으로 나아가는

그런 저였어야 오늘 마르타처럼 아버지를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것을 보면 너무나 부족한 저이지요.

언제나 넘치는 사랑으로 아버지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함께 머리를 기대는 저가 될런지요.

등대를 그려봅니다.

배들을 항구로 들어올 수 있게 빛을 비춰주는 등대!

저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채워

작은 등대가 되어보려 다짐해 봅니다.

사랑의 오롯한 믿음으로 아버지를 고백하고 증언할 수 있는 그런 저가 되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라자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나서 베타니아로 들어오십니다.

마중나갔던 마르타가 아버지를 원망하는 듯 했지만

가슴뜨거운 고백을 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라고~~

참 가슴아리게 다가왔습니다.

그 모습에 더욱더 작은 저가 보였지요.

저는 어떤 고백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사랑의 믿음이 제안에 자리잡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 상황에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사랑어린 투정을 했을 뿐

결국은 아버지를 믿고 있었던 그녀의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가장 믿는 이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관계에 얽혀 자신의 자리를

인내로 지켜내는 그런 것이 아니라

같이 있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제 마음속에 늘 함께 하는 사랑의 그림자!

그 그림자 안에 당연 아버지께서 계셨어야 했는데

제 지성소의 그림자 안에도 아버지의 자리를 마련해 놓았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사랑은 아버지에게서 온다고 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하듯이

부족한 저가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 삶으로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게 하소서.

그저 아버지시기에 저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사랑의 울타리되어

믿음의 줄기가 무성히 올라가게 하소서.

그 사랑의 몸짓으로 아버지를 말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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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에 1개의 응답

  1. 아리랑 님의 말:

    풍경이 그려 집니다. 하얀 종이위에 알록 달록 그려지는 샘지기님의 풍경입니다. *^* 님을 잘은 모르지만, 제가 알고 있는 지인분들의 풍경화와 비슷합니다. 백지위에 이제 점 하나 찍으려는 제가 가장 존경하고 가슴에 담는 풍경입니다. 정오인 지금 창 밖은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과 나뭇가지 소리, 가지에 있는 매미소리, 그 옆에 잠자리들 비행소리, 그위 새들의 날개짓 소리, 그보다 위에 비행기 지난 흰 줄 모양 소리, 오전보다 가차워진 구름 이동소리, 그리고 파아란 하늘 소리가 납니다. 자연의 소리들이 지인분들과 샘지기님의 화첩에 있습니다…………

  2. 샘지기 님의 말:

    《Re》아리랑 님 ,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에 저도 잠시 잠겨 봅니다.
    마음의 여유를 느낌은 그 안에 사랑이 잔재함이겠지요.
    늘 아버지의 말씀과 사랑안에 머무르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행복한 오후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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