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참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굵어졌다 가늘어 졌다를 반복하면서 하염없이 내리는 비가

꼭 저의 마음을 표현하는 분수대 같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아버지께서는 용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라고~

다 썩은 고목나무에서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한 사람!

건조함에 바닥이 다 갈라진 마음에서

용서의 꽃이 펴주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저입니다.

작은 사랑의 그늘이 없이는 용서가 있을 수 없음을 알면서

내심 용서를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저가 아닌지

돌이켜 보는 시간입니다.

늘 용서를 청하면서 그리고 아버지의 자비를 청하면서

정작 전 작은 것 하나도 베풀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큰 것을 받았음에도 작은 것 하나도 주려하지 않는 욕심장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늘 용서의 샘물이 넘치기를 바라면서

전 어떠한 댓가를 바라며 계산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사랑을 청하면서 그 사랑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바라지 않듯이~~

참 못났지요?

그런다고 부족하거나 손해보는 것이 아닌데~~

사랑이 있어야 용서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랑을 받은 자가 사랑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랑이 있음에 당연 용서의 꽃도 피어날 수 있음이지요.

사랑없는 용서는 진정한 용서를 낳긴 어려우니까요.

사랑을 머금은 사람은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줄도 압니다.

무엇이 아픔인지, 무엇이 힘들게 하는지를 사랑안에서 배웠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베풉니다.

용서가 아니라 그저 사랑을 부어줄 뿐입니다.

밉고 원망스럽더라도 그 나머진 아버지께 맏기고

전 그냥 있는 그대로 그를 받아주어야 했음인데

제 욕심대로 미워하면서 마음속 앙금으로 남겨두었던 것은 아닌지요.

그가 변하기를 바라기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변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용서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용서받지 못할 것이 없음을 알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풍랑을 잠재우기엔

제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가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용서는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찌보면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마음을 비우면 그 어떤 것도 용서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한번의 용서를 하면 그 다음엔 어려울게 없다고 하시면서

받기보다는 하는 것이 훨 좋다고~~

때가 묻어서 누적되면 그 얼룩을 지우기란 어렵지만

금방 닦으면 얼룩이 남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의 얼룩을 닦는게 아니라 바로 내 얼룩을 닦는 것이기에 빠르고 기쁘게 한 뒤에

나를 추스림이 현명한거라 하셨습니다.

말씀속에서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하시지요.

정말 한번이 어렵지 그 한번의 사랑을 베풀면 무한이 될 수 있음을 새삼 되뇌여 봅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그 사랑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것이지만

그 작은 것에 목숨을 걸면서 자물쇠를 풀지 않았던 저가 아니었는지요.

용서를 했다곤 하지만 진정 가슴의 저 깊은 곳의 얼룩까지 지웠는지 돌이켜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께선 저희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내어 놓으셨는데

한 형제라 부르면서 당연한 사랑의 꽃을 피우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아픔을 주면서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요.

또 그 모습을 보시는 아버지께선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제가 바로 매정한 종보다 더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온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께서 베푸시는 자비속에 현명한 저가 되어

매일매일 새로운 삶으로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을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 승화되어 용서의 꽃으로 피어나게 할 것입니다.

당연히 피어야 하는 꽃을 못피움도 저의 부족임을 가슴에 새겨 봅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용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고 ~~

사실 사랑을 고백하는 저 이지만

단 한번의 용서도 쉽지 않음을 압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무엇보다 싫은 것도 사실이고

그 한번이 계속해서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아

어쩌면 외면으로 그를 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그 외면이 허울좋은 용서가 된 듯이 말하진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용서를 하였다면 그에게 사랑으로 나아가야 함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용서를 했다고 하는 저는 아니었는지요.

다 용서했다고 하면서 마음속엔 더 강한 부정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사랑은 하지만 제게 상처를 준 이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모순으로

아버지 앞에서 믿음을 고백한 저는 아니었는지요.

아버지!

부족한 저가 아버지께 넘치는 사랑을 받았음에

저 또한 그 사랑을 나누는 작은 조롱박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사랑과 용서가 함께 어우러져 더 깊은 우물을 만들게 하소서.

갈증을 호소하는 형제에게 작은 사랑의 물을 건네주며

용서로 나아가는 날개를 달게 하시어

언제 어디로든 날아가게 하소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꽃을 피워야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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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에 1개의 응답

  1. ^*^ 님의 말:

    주님! 저는 그런 상황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용서가 참 어렵더라구요…딤비면….휴… 하지만 용서는 받고 싶은디…어렵네유^*^

  2. 샘지기 님의 말:

    《Re》^*^ 님 ,
    맞아요. 언젠가 신부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있답니다.
    용서는 가장 어려운 사랑의 실천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도 그 입장이 되어 그에게 머물수 있음을
    생각하라 하셨지요.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 준다고~~
    그 사랑은 말씀에서 나를 들여다 볼 때 조금조금씩 커져 가고 있다고 하신 말씀이
    지금도 가슴깊이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늘 존경하고 또 존경합니다.
    고삐풀린 망아지를 멀리 가지 않게 해 주신 또 다른 사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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